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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가 찾아낸 누드 모델

카사노바가 찾아낸 누드 모델

얀 스텐, <상사병에 걸린 여인> , 1660년
프란스 할스, <빌렘 반 헤이타위센> , 1625~30년
프랑수아 부셰 <쉬고있는 소녀 1752년>
그림의 배경은 여염집의 실내. 한 여인이 기력을 잃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왼팔 아래 쿠션을 댄 것으로 보아 몸이 상당히 불편한 것 같다. 한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는데, 정황상 의사임을 알 수 있다. 몸이 워낙 불편해 의사가 왕진을 온 것이다. 의사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다. 병의 원인이 잘 잡히지 않는 까닭이다. 환자에게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괴롭다고 호소하니 갈피를 잡기 힘든 것이다.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는 의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17C 네덜란드 미술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이 여인의 병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림 왼쪽 현관 위의 작은 조각상이 잘 말해주고 있다. 바로 상사병이다. 조각상은 큐피드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의 모습으로 보아 그는 지금 막 사랑의 화살을 여인에게 쏘아 맞춘 듯하다. 여인의 병은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인 것이다. 여염집 숙녀로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지만, 이를 스스로 이룰 길은 없고, 갈수록 마음이 아파 오니 어찌하겠는가. 의사를 불러 대증적(對症的)으로 치료할 길이라도 찾을 수밖에. 하지만 상사병이란 어떤 약도 소용이 없는 병. 게다가 부끄러움을 느낀 탓에 여인은 의사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꺼낼 생각 조차 못하니 아무런 감이 없는 의사로서는 그저 눈만 껌뻑일 따름이다. 여인의 손에 쥐어진 종이(쓰다 만 연애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에는 ‘Daar baat geen medesyn, want het is minepyn(상사병에는 백약이 무효)’라고 쓰여 있다. ‘상사병에 걸린 여인’(1660년)을 그린 얀 스텐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다. 그는 그림만을 그려서는 먹고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여인숙을 운영했는데, 이로 인해 풍부한 인간극장의 소재들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상사병에 걸린 여인’에서도 우리는 그 표정이나 제스처·소품들에 어린 화가의 남다른 눈썰미와 섬세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알테 피나코테크’에는 이와 같은 인간극장의 다양한 양상들을 짚어보게 하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예술을 통해 삶의 파노라마를 관찰해 보는 것도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런 류의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선술집의 서민적인 정취를 생생히 표현한 아드리안 브라우버의 ‘선술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농부들’(1631∼32년), 고아들의 애잔한 삶을 표현한 에스테반 무리요의 ‘포도와 레몬을 먹는 아이들’(1645∼46년), 남녀의 전원적인 사랑을 노래한 니콜라 랑크레의 ‘새장’(1735년), 명사의 사회적 성공을 초상화로 멋들어지게 담아낸 프란스 할스의 ‘빌렘 반 헤이타위센’(1625∼30년), 로코코 시대의 관능적인 여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린 프랑수아 부셰의 ‘쉬고 있는 소녀’(1752) 등이 있다. 할스의 ‘빌렘 반 헤이타위센’은 왕이나 귀족들을 그릴 때 주로 쓰는 ‘위세 초상’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모델은 매우 당당한 자세로 서 있고, 관객은 그를 올려다보도록 시점이 잡혀 있다. 전형적인 위세 초상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모델인 반 헤이타위센은 결코 귀족이 아니다. 그는 평민 계급 출신의 상인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처럼 화려한 옷과 검, 그리고 매우 도도한 자세로 ‘무장’하고 귀족처럼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막대한 부를 쌓아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무렵 네덜란드는 카톨릭 교회와 귀족 세력의 몰락으로 상층 시민들이 권력을 장악한 공화국 형태의 국가였기에 반 헤이타위센의 이런 의기양양함은 그 나름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위세 초상 형식으로 그려져 있어도 그는 결코 귀족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권력과 부를 누리고는 있지만 반 헤이타위센 역시 과거의 귀족과 똑같이 표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나름의 부르주아적 합리성과 도덕관이 그림에 반영되고 스스로가 보다 균형잡힌 의식의 소유자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부르주아의 당당한 초상, ‘빌렘 반 헤이타위센’ 그로 인해 더해진 소품이 바로 화면 왼쪽 하단의 장미꽃 넝쿨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장미꽃 넝쿨은 한창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베어져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화병에 꽃아 예쁘게 공간을 장식하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바닥에 널브러져 시든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제아무리 꽃 중의 꽃 장미꽃도 그 짧은 영광의 날이 지나면 금세 시드는 것처럼 인생 역시 그 영광의 날이 짧아 금세 늙어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인물은 자신의 영광이 풀잎 위의 이슬임을 의식하고 남은 세월 동안 어리석지 않게 스스로 경계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에 새긴 이 맹세가 얼마나 확고했는가 하는 사실은 그가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 두 개의 대형 양로 시설을 지어 바쳤다는 기록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마침내 루이 15세의 정부 되기도 부셰의 ‘쉬고 있는 소녀’는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취향이 얼마나 감각적이었는가를 생생히 전해주는 작품이다. 고급스러운 카우치 위에 옷을 홀라당 벗고 누운 소녀. 여염집의 숙녀로 보기는 어렵고 돈 많고 힘있는 귀족의 정부쯤 돼 보인다. 화가는 다소 퇴폐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런 정황을 그대로 나타내면서 나름의 감각적 취향을 덧붙였다. 소녀의 몸이 지닌 곡선을 실제보다 오밀조밀하게 강조하고 색채도 매우 탐미적인 성격으로 구사함으로써 육체적 욕망을 보다 선명히 자극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얗게 빛나는 소녀의 엉덩이와 대퇴부는 그런 미적 쾌락의 정점을 나타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그림 어디에서도 귀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생활상이 어땠을지를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루이즈 오머피이다. 그녀는 1738년 혹은 그 이듬해 루앙의 가난한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엽색가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 카사노바에 의해 ‘발견’됐다고 하는데, 부셰가 그녀를 알게 된 것 역시 카사노바를 통해서였다. 아마도 카사노바가 그녀를 모델로 한 소품을 그에게 부탁한 인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후 그녀는 부셰의 모델로 오랜 세월 활동하게 된다. 현존하는 부셰의 그림에서 그녀가 그려진 최초의 것이 바로 ‘쉬고 있는 소녀’다. 이 무렵 그녀의 나이는 13∼14살쯤 됐던 것 같다. 워낙 예쁘기로 소문이 자자해 마침내 루이 15세의 눈에까지 띈 루이즈는 그의 정부가 돼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며, 루이 15세의 총애가 옅어지면서 정부 관리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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