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스, 복병을 만나다
노바티스, 복병을 만나다
한 알에 20달러를 호가하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생산하는 노바티스는 세계시장을 정복할 것 처럼 보였다. 값이 10분의 1밖에 되지않는 인도산 카피 제품이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모(41)씨는 최근 인도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 2년간 ‘글리벡’(Glivec)으로 생명을 연장해 왔다. 문제는 약값이다. 그는 한 알(캡슐)에 2만5,000원씩이나 하는 글리벡을 복용해야 했다. 그 동안 3,000만원 이상을 약값으로 쓴 셈이다.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인도에 가면 글리벡의 카피 제품인 ‘비낫(Veenat)’을 한 알당 단돈 2.5달러에 살 수 있다.
3년 전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개발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글리벡은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를 보이는 꿈의 신약으로 떠올랐다. 암세포를 만드는 단백질과 효소만 막는 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노바티스측에 따르면 임상실험에 참가한 환자의 약 90%에서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약 50%는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현저하게 줄었다. 글리벡은 백혈병 외에도 위장관기저종양(GIST) 치료에도 효능이 있음이 입증됐다.
노바티스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4위의 제약사다. 140여개 국에 걸쳐 7만3,000명 직원을 둔 거대기업이다. 보유한 특허권만 4만종이 넘는다. 지난해 209억달러의 매출과 47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노바티스는 한 알에 20달러가 넘는 값비싼 글리벡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1년8개월 동안 80개국에 12억1,000만 스위스프랑(1조440억원)어치를 팔았다. 노바티스측이 제시하는 개발비용인 8억달러(9,470억원)보다 많다. 앞으로 글리벡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20년간 특허권을 누릴 수 있어 글리벡은 노바티스의 확실한 캐시카우가 될 것이다. 지난해 글리벡 매출이 전년의 3배나 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노바티스는 올초 이런 장미빛 꿈에 찬물을 끼얹는 비보를 접했다. 글리벡의 독점권이 미치지 않는 인도에서 복제품이 나온 것이다. 인도 제약회사 나코(Natco)가 제조한 ‘비낫’은 이미 시판되고 있다. 한 알당 3달러도 안 된다. 그 뒤를 이어 인도 내 5개 제약사가 이미 글리벡의 카피 제품을 개발해 인도 식약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제약사들의 발표대로 이 카피품들이 오리지날 글리벡과 효능면에서 차이가 없다면 노바티스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인도에서 어떻게 이런 복제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인도에는 제법특허만 있고 물질특허가 없다. 현재 비낫의 수입 가능성을 검토 중인 남희석 변리사는 “한국과는 달리 인도에는 물질특허가 없어 제조방법만 다르다면 글리벡에 쓰인 동일한 원료로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도의 몇몇 제약회사가 에이즈 약물로 제네릭(일반약)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인도의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수출국이고 과학·기술인력 규모도 세계 3위다.
노바티스가 글리벡 수출에서 인도 시장만 포기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에서도 비낫은 백혈병 환자들 사이에서 화두다. 자가치료용 의약품으로 환자가 개별적으로 비낫을 수입해 복용할 수 있다. 백혈병 말기 환자가 1년간 복용해야 하는 글리벡은 보험혜택을 받아도 대략 1,000만원어치.
이를 비낫으로 대체 복용할 경우 2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직접 인도에 가서 사 올 경우 왕복 항공료를 충분히 뽑고도 남는다. 인도에서 추가로 복제품이 나오게 되면 단가는 1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
복제약이 한국에 들어오면 이제껏 환자들의 성화에도 높은 값을 고수했던 노바티스는 궁지에 몰린다. 노바티스에게 한국시장은 특별했다. 스위스, 미국에 이어 글리벡을 출시한 곳이 한국이다. 처음부터 노바티스는 고가전략을 폈다. 한 알당 2만5,000원을 고수했고 한국정부는 환자들의 저항을 우려해 1만7,000원으로 시판허가를 냈다. 노바티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철수할 생각도 없었다.
지난 2월말 2만3,045원으로 가격이 결정될 때까지 한국노바티스는 무려 150억원어치를 무상으로 공급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의 강주성 사무국장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환자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한 노바티스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글리벡을 무상 공급했다”고 설명한다. 노바티스가 적지 않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줄다리기를 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밀리면 다른 지역에서도 원하는 값을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환자들은 한국노바티스를 점거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농성 중 혈소판 부족으로 혈관이 터져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 노바티스의 부도덕성을 비난했다. 환우회측은 글리벡이 연구소, 정부 세금, 공공의 노력으로 개발된 성과임에도 특허를 무기로 글리벡 수익을 고스란히 노바티스가 독식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그 사이 원하던 대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족스런 약값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로 한국내 환자들 상당수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됐고 노바티스가 약값의 10%를 환자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2만3,045원에 약값은 타결됐다. 이제 노바티스는 맘놓고 공장에서 약만 찍어내면 될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비낫이 출현하기 전까진 그랬다.
백혈병 환자들이 모두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필라델피아양성급성골수성백혈병(Ph+ ALL) 환자들은 여전히 2만3,045원을 다주고 글리벡을 사 먹어야 한다. 이들은 당연히 10분의 1 가격의 비낫을 선택할 것이다. 백혈병환우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비낫 구입방법을 묻는 환자들의 질문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온다.
비낫은 정말로 글리벡과 똑같은 약인가.
백혈병환우회와 글리벡공동대책위는 지난해 8월 인도 제약회사의 공장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2002년 12월 나코의 비낫 주성분인 이메티닙 메실산을 글리벡 성분과 비교하는 실험을 한국화학연구원에 의뢰했다. 민중의료연합의 김소영 공공의약센터장은 “각종 실험을 통해 글리벡과 비낫의 주성분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약물의 인체반응을 보는 생물학적 동등성에서도 하자가 없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시판된만큼 앞으로 비낫에 대한 임상결과 자료가 나올 것이다. 환우회와 공대위는 환자가 한 알당 2.5달러에 직수입할 수 도록 나코와 합의한 상태다.추가로 2∼3곳의 인도 제약사와도 협의중이어서 조만간 1달러까지 값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노바티스는 아직까지 비낫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측 관계자는 “비낫에 대해 아무런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의사들은 카피 제품이 안전성과 품질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담을 안고 처방해야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 카피 제품들은 인도와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지 모른다. 돈이 없어 글리벡을 복용하기 힘든 아시아지역 환자들에게 주목받는 카피제품을 노바티스는 어떻게 피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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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모(41)씨는 최근 인도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 2년간 ‘글리벡’(Glivec)으로 생명을 연장해 왔다. 문제는 약값이다. 그는 한 알(캡슐)에 2만5,000원씩이나 하는 글리벡을 복용해야 했다. 그 동안 3,000만원 이상을 약값으로 쓴 셈이다.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인도에 가면 글리벡의 카피 제품인 ‘비낫(Veenat)’을 한 알당 단돈 2.5달러에 살 수 있다.
3년 전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개발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글리벡은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를 보이는 꿈의 신약으로 떠올랐다. 암세포를 만드는 단백질과 효소만 막는 저격수란 별명도 얻었다. 노바티스측에 따르면 임상실험에 참가한 환자의 약 90%에서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약 50%는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현저하게 줄었다. 글리벡은 백혈병 외에도 위장관기저종양(GIST) 치료에도 효능이 있음이 입증됐다.
노바티스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4위의 제약사다. 140여개 국에 걸쳐 7만3,000명 직원을 둔 거대기업이다. 보유한 특허권만 4만종이 넘는다. 지난해 209억달러의 매출과 47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노바티스는 한 알에 20달러가 넘는 값비싼 글리벡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1년8개월 동안 80개국에 12억1,000만 스위스프랑(1조440억원)어치를 팔았다. 노바티스측이 제시하는 개발비용인 8억달러(9,470억원)보다 많다. 앞으로 글리벡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20년간 특허권을 누릴 수 있어 글리벡은 노바티스의 확실한 캐시카우가 될 것이다. 지난해 글리벡 매출이 전년의 3배나 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노바티스는 올초 이런 장미빛 꿈에 찬물을 끼얹는 비보를 접했다. 글리벡의 독점권이 미치지 않는 인도에서 복제품이 나온 것이다. 인도 제약회사 나코(Natco)가 제조한 ‘비낫’은 이미 시판되고 있다. 한 알당 3달러도 안 된다. 그 뒤를 이어 인도 내 5개 제약사가 이미 글리벡의 카피 제품을 개발해 인도 식약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제약사들의 발표대로 이 카피품들이 오리지날 글리벡과 효능면에서 차이가 없다면 노바티스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인도에서 어떻게 이런 복제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인도에는 제법특허만 있고 물질특허가 없다. 현재 비낫의 수입 가능성을 검토 중인 남희석 변리사는 “한국과는 달리 인도에는 물질특허가 없어 제조방법만 다르다면 글리벡에 쓰인 동일한 원료로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도의 몇몇 제약회사가 에이즈 약물로 제네릭(일반약)을 생산해 공급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인도의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세계 2위의 소프트웨어 수출국이고 과학·기술인력 규모도 세계 3위다.
노바티스가 글리벡 수출에서 인도 시장만 포기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에서도 비낫은 백혈병 환자들 사이에서 화두다. 자가치료용 의약품으로 환자가 개별적으로 비낫을 수입해 복용할 수 있다. 백혈병 말기 환자가 1년간 복용해야 하는 글리벡은 보험혜택을 받아도 대략 1,000만원어치.
이를 비낫으로 대체 복용할 경우 2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직접 인도에 가서 사 올 경우 왕복 항공료를 충분히 뽑고도 남는다. 인도에서 추가로 복제품이 나오게 되면 단가는 1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
복제약이 한국에 들어오면 이제껏 환자들의 성화에도 높은 값을 고수했던 노바티스는 궁지에 몰린다. 노바티스에게 한국시장은 특별했다. 스위스, 미국에 이어 글리벡을 출시한 곳이 한국이다. 처음부터 노바티스는 고가전략을 폈다. 한 알당 2만5,000원을 고수했고 한국정부는 환자들의 저항을 우려해 1만7,000원으로 시판허가를 냈다. 노바티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철수할 생각도 없었다.
지난 2월말 2만3,045원으로 가격이 결정될 때까지 한국노바티스는 무려 150억원어치를 무상으로 공급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의 강주성 사무국장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환자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한 노바티스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글리벡을 무상 공급했다”고 설명한다. 노바티스가 적지 않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줄다리기를 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밀리면 다른 지역에서도 원하는 값을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환자들은 한국노바티스를 점거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농성 중 혈소판 부족으로 혈관이 터져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 노바티스의 부도덕성을 비난했다. 환우회측은 글리벡이 연구소, 정부 세금, 공공의 노력으로 개발된 성과임에도 특허를 무기로 글리벡 수익을 고스란히 노바티스가 독식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그 사이 원하던 대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만족스런 약값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로 한국내 환자들 상당수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됐고 노바티스가 약값의 10%를 환자에게 돌려주는 조건으로 2만3,045원에 약값은 타결됐다. 이제 노바티스는 맘놓고 공장에서 약만 찍어내면 될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비낫이 출현하기 전까진 그랬다.
백혈병 환자들이 모두 의료보험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필라델피아양성급성골수성백혈병(Ph+ ALL) 환자들은 여전히 2만3,045원을 다주고 글리벡을 사 먹어야 한다. 이들은 당연히 10분의 1 가격의 비낫을 선택할 것이다. 백혈병환우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비낫 구입방법을 묻는 환자들의 질문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온다.
비낫은 정말로 글리벡과 똑같은 약인가.
백혈병환우회와 글리벡공동대책위는 지난해 8월 인도 제약회사의 공장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2002년 12월 나코의 비낫 주성분인 이메티닙 메실산을 글리벡 성분과 비교하는 실험을 한국화학연구원에 의뢰했다. 민중의료연합의 김소영 공공의약센터장은 “각종 실험을 통해 글리벡과 비낫의 주성분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약물의 인체반응을 보는 생물학적 동등성에서도 하자가 없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시판된만큼 앞으로 비낫에 대한 임상결과 자료가 나올 것이다. 환우회와 공대위는 환자가 한 알당 2.5달러에 직수입할 수 도록 나코와 합의한 상태다.추가로 2∼3곳의 인도 제약사와도 협의중이어서 조만간 1달러까지 값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노바티스는 아직까지 비낫에 대해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측 관계자는 “비낫에 대해 아무런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의사들은 카피 제품이 안전성과 품질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담을 안고 처방해야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 카피 제품들은 인도와 한국을 넘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지 모른다. 돈이 없어 글리벡을 복용하기 힘든 아시아지역 환자들에게 주목받는 카피제품을 노바티스는 어떻게 피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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