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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엔 찬바람 부자들도 안쓴다

시장엔 찬바람 부자들도 안쓴다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부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불황에도 아랑곳 않고 잘 나가던 명품관 ·위스키 ·수입차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서울 압구정동 명품 거리(일명 로데오 거리)에서 15년째 외국 잡지를 팔고 있는 이수봉씨의 하소연이다. 매상이랄 것도 없다. 하루에 한 권도 안 팔릴 때가 많다. 이씨는 “근처 레스토랑도 예전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외환위기 때도 불황의 ‘무풍 지대’로 불렸던 명품 거리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저녁 7시만 넘어도 인적이 끊긴다. 도로의 차도 줄었다. 로데오 거리 부근 S와인매장의 직원은 “지난 연말부터 와인업계도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명품 매장에서 만난 직원 역시 “2월부터 손님이 크게 줄었다”며 “브랜드마다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북핵 위기와 SK쇼크에 이어 이라크 전쟁까지 겹치면서 부자들의 소비도 얼어붙은 모습이다. 지난해까지 휘파람을 불던 백화점 명품관의 매출이 줄었고, 고급 레스토랑과 술집들도 불황의 여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1999년 이후 해마다 두 자리 수의 성장세를 보였던 갤러리아 명품관은 지난 2월 매출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8%, 1월 4%로 점차 매출증가율이 낮아지더니 2월에는 급기야 마이너스 1.5% 성장으로 돌아섰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내수가 침체 상황인데다 국내 브랜드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하 행사장에만 사람들이 몰릴 뿐 명품관 내부는 한산하기 그지 없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과거 불황 때는 부유층의 씀씀이가 오히려 늘었지만 지금은 부자들도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평소 예약 없이는 자리잡기조차 힘든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 저녁 7시가 넘었지만 곳곳에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청담동의 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곳의 유은정 실장은 “IMF 때도 불경기를 몰랐는데 요즘은 하루 매상이 3분의 2로 줄었다”며 “단골 고객들도 발길이 뜸하다”고 말했다. 지금껏 잘 나가던 강남의 고급 룸살롱들도 불경기에 허덕이긴 마찬가지다. 룸살롱이 즐비한 선릉역 부근에는 밤 10시가 넘어서자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G룸살롱의 이수은 이사는 “예전보다 손님들이 턱없이 줄어 출혈경쟁이 심하다”고 말할 정도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위스키 시장도 불황의 영향권에 들었다. 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25만868상자(500㎖ 18병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25만7,551상자)보다 3% 줄었다. 한달 전(37만8,767상자)보단 34%나 감소했다. 월 단위로 위스키 판매량이 1년 전보다 줄어든 것은 99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1월 위스키 판매량이 11.6% 늘어난 점과 비교하면 소비심리가 갑자기 위축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호성 진로발렌타인스 과장은 “2월의 하락세는 무엇보다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요인”이라며 “새 정부의 경제정책과 이라크 전쟁 등이 맞물려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입차 시장에도 ‘이상 기류’가 일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월 등록 대수는 1,288대로 1월의 1,422대보다 9.4% 감소했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2월 내수 판매 대수가 4.2% 하락한 점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2월이 비수기인데다 영업일수도 적고 경제 불안 심리까지 확산돼 수입차 판매가 줄었다”며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호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래시장 ·중고차도불황 직격탄

서민들이 겪는 불황의 체감 온도는 더욱 낮다. 통계청에 따르면 6개월 전과 비교 해 현재 경기와 생활 형편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를 나타내는 1월 중 소비자평가지수는 79.6으로 전월의 81.2에서 1.6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9?1테러 직후인 지난 2001년 10월(79.0)과 비슷한 수준이다. 3월14일 오후 2시 남대문 D상가. 평소 발디딜 틈도 없이 바쁜 금요일이지만 내부는 한산한 모습. 지하 매장에서 안경점을 하고 있는 이수창씨는 “지난해만 해도 수입 명품 안경테가 곧잘 나갔는데 요즘은 국산 안경만 하루에 고작 2∼3개 정도 팔린다”고 밝혔다.

백화점 역시 불황에 휩싸여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2월 백화점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나 줄었다. 그나마 불황에 한발 비켜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할인점들도 주춤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 관계자는 “생필품의 경우 수요가 꾸준하지만 가전 제품 등은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다 기름값까지 고공 행진을 거듭하면서 중고차 시장도 위축됐다. 경차와 소형차만 겨우 조금씩 팔리고 있는 지경이다.

특히 경차와 소형차, 준중형차 가격은 보합세지만 중 ·대형차종은 100만~300만원까지 떨어졌다. 특히 대형차일수록 하락폭이 컸다. 서울 지역 매매상으로 구성된 서울시 자동차 매매사업조합에 따르면 2월 서울에서 팔린 중고차 대수는 7,314대. 한달 전보다 6%, 지난해 2월보다는 13.4%가 떨어졌다.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나쁜데다 신차업계가 무이자 할부 판매 등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어 더욱 고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자들, 남아도는 현금 어찌하오리까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주식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자 부자들이 안전한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국내외 경제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대부분 단기 금융 상품만 찾고 있는 실정이다.

압구정동에 있는 한미은행 로얄프라자의 김혜영 PB 팀장은 “대부분의 고객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3개월짜리 단기 예금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며 ”부동산의 경우 가격이 고평가됐다는 인식이 강해 가격 추이만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SK 사태 이후에는 주식 투자도 꺼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달러 등 외환에 대한 문의는 부쩍 늘어났다는 것. 동부증권 압구정 지점의 최병화 투자상담사는 “일부 사람들은 새 정부가 내세우는 ‘분배 정책’에 위축되는 것 같다”며 “안전성이 뛰어난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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