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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메모리로 제2 반도체 신화 이룬다”

“플래시메모리로 제2 반도체 신화 이룬다”

황 사장은 플래시메모리의 대박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봤다. 스스로를 ‘반도체 유목민’이라고 부르는 그는 세계 D램 시장을석권한 데 만족하지 않고 S램과 플래시메모리 개발 등으로 끊임없이 먼저 움직였다.
"D램 이후가 걱정이었는데, 플래시메모리에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았다."
올해의 CEO로 황창규(50)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을 뽑은 어느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의 추천 이유다. 황 사장에게 ‘Mr. 플래시’란 별명이 붙은 배경도, 세계 반도체 업계가 요즘 그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도 그래서라는 것.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 16메가 D램을 개발한 뒤 지금껏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호사다마라고 마냥 좋은 일만 생기진 않았다. D램의 첫 글자인‘D(Dynamic: 역동적)’가 뜻하는 것처럼 D램 산업은 경기 부침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했다. 호황을 누리다가도 PC산업 등이 부진하면 덩달아 불황에 허덕였다. 삼성그룹을 먹여 살릴 미래 신수종감으론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플래시메모리 사업은 삼성전자의 이런 말못할 걱정을 크게 덜어줬다. 6분기 만에 영업이익 2조원대를 다시 돌파한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실적은 반도체, 특히 플래시메모리 사업의 호조 덕이 컸다. 전원 공급이 끊겨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플래시메모리는 디지털 카메라 · 휴대전화 등의 폭발적인 보급에 힘입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매출 가운데 플래시메모리 비중도 2분기 25%에서 3분기 32%로 늘어났다. 내년에는 D램 사업의 매출액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성장세도 꾸준하리란 전망이다. 품귀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플래시메모리는 현재 시장 수요의 40%밖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통계기관인 데이터퀘스트는 시장 규모가 지난해 77억 달러에서 올해 101억 달러, 내년에는 13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반도체 무역통계기구(WSTS)도 내년 플래시메모리 시장은 40%가 넘는 고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숫자로 본 황창규 사장


256메가 : 황 사장은 94년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256메가 D램을 개발할 때 팀장을 맡았다.



70나노미터 : 황 사장 지휘 아래 70나노미터급 4기가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세계 첫 개발. 인텔은 개발중이며 제품으로는 90나노미터급만 내놓은 상태.



4기가 : 황 사장은 99년 256메가에 이어 올해 4기가 제품을 내놔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입증하고 있다.
이런 플래시메모리의 ‘대박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사람이 바로 황창규 사장이다. 지난 94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256메가 D램을 개발할 때 주역이었던 그는 97년부터 플래시메모리로 눈을 돌렸다. 당시 그는 일본의 전자 시장 동향을 보면서 동영상과 음성 등이 지원되는 멀티미디어 기기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판단했다. 플래시메모리는 데이터 저장형(NAND: 낸드)과 코드 저장형(NOR: 노어)으로 나뉘는데, 황 사장은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에 필수적인 낸드형 플래시메모리에 승부수를 던졌다.

황 사장은 도박에 가까운 진언도 했다. 이건희 회장 등이 2001년 8월 도쿄(東京)에 모여 반도체 사업의 미래 전략을 논의했던 ‘자쿠로 회동’에서였다. 당시 반도체 업계는 세계적인 불황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는 과정이었다. 역시 어려움을 겪던 일본 도시바(東芝)는 삼성전자에 제휴를 제안했다. 도시바는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부문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그 무렵 낸드 플래시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도시바가 45%로 1위였으며, 삼성전자는 26%로 2위였다. 황 사장은 그러나 “조금 뒤처진 기술 등은 몇 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으니 (플래시메모리를) 독자개발하자”고 주장했다. 그룹 경영진은 고심 끝에 그의 손을 들어줬다.
결과는 황 사장이 웃었다. 운도 따랐는지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플래시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2위에 올랐다. 특히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 65%로 세계 1위를 굳혔다(도시바는 30%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면 플래시메모리 업계 1위인 인텔은 노어형에 치우친 탓에 별 재미를 못봤다.

이를 반영하듯 삼성전자에서도 플래시메모리를 보는 눈이 확 달라졌다. 이건희 회장은 10월 10일 열린 반도체 특별전략회의에서 플래시메모리를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선정했다. 올해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째가 되는 삼성전자가 플래시메모리 사업을 중심으로 ‘제2 반도체 신화’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이었다.황 사장으로선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만큼 삼성전자에서 위상도 높아졌다. 특히 연말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그의 승진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벌써부터 황 사장이 보다 큰 일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럴 만한 자질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황 사장은 스스로를 ‘반도체 유목민(semi-conductor nomad)’이라고 부른다. 유목민의 이동성과 도전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세계 D램 시장을 석권한 데 만족하지 않고 S램과 플래시메모리 개발 등으로 끊임없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반도체 분야에서 무려 14건의 특허를 갖고 있는 것도 그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반도체의 메카’ 스탠퍼드대학에서 책임연구원을 지냈고 인텔사에서 자문역도 맡았던 그가 1989년 고참 부장으로 삼성전자에 합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목표와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의 반영인지 황 사장은 대체로 낙관적이다. 2001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해 8월과 9월 메모리사업부는 적자로 돌아선 상태였다. 황 사장은 메모리사업부 임직원 400여 명을 모아놓고 4시간짜리 강의를 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직접 만들었다. ‘이러저러하게 나가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해법 제시가 강의의 골자였다(메모리사업부는 12월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가 지난해 2월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술포럼의 기조연설에서 주장한 ‘메모리 신성장론’에도 자신감이 묻어 있다. 그는 “모바일 ·디지털 기기 등의 발전으로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황 사장의 성을 따서 ‘황의 법칙(Whang’s law)’이라고 불리는 그의 주장은 반도체 용량이 1년6개월마다 두 배가 된다는 기존의 ‘무어의 법칙’을 뒤집는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황 사장은 그러나 지난 99년 256메가 낸드 플래시메모리 개발을 기점으로 집적도를 해마다 두 배씩 향상시켜 메모리 신성장론을 입증했다. 2000년 512메가 제품을 개발한 데 이어 2001년 1기가, 2002년 2기가를 거쳐 지난 10월 29일에는 70nm(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m)급 4기가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선보였다. 세계 첫 개발로, PC시장에 의존했던 메모리 수요를 모바일 분야로 넓혀 삼성의 독주 체제를 다질 수 있는 역작이었다. 특히 이날 함께 발표된 ‘퓨전메모리(메모리와 연산 기능을 통합한 제품)’도 모바일용 메모리를 확대한다는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인텔을 제치고 플래시메모리 전체 시장에서 1위에 오르려는 황 사장의 또 다른 ‘대이동’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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