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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재선되면 한반도는 위험하다?

부시가 재선되면 한반도는 위험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년 11월의 미국 대선 전에 북한 핵 문제가 타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새해 들어 인사차 동교동 자택을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러 올해 안에 북핵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라크를 무력으로 점령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올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북한에도 마찬가지의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 대선이 치러진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매우 위험한 고비’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진단이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을 만나본 한 측근은 “김 전 대통령은 부시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대북 전략을) 군사적 방법에 의존할 가능성을 북한측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런 우려를 하는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담 후세인 체포,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폐기 선언, 한국과 일본의 이라크 파병 결정 등 미국 안팎의 상황이 부시와 공화당에 유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뿐 아니라 상당수 한국인들은 재선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부시 정부가 북한을 힘으로 제압해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위협에 빠져드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부시 정부는 엄격한 상호주의와 이행·검증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등 클린턴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직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런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은 여론조사에도 투영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대표 노규형)가 1월 5일 전국 성인 8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39%)이 북한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북한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그보다 적은 33%였다. 지난해 9월 김정일 위원장(42%)이 부시 대통령(38%)보다 한국의 평화에 더 위협적이라던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다른 통계가 나온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게 1월 19일의 미국 민주당 아이오와주 예비선거로 본궤도에 오른 미 대선은 북핵 해법과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국내 비정부기구(NGO) 중 일부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부시 낙선운동, 민주당 후보 당선운동을 조직화하면서 국제적인 연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부시 낙선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부시 정부와 이른바 네오콘 세력들이 공세적 군사주의를 노골화하고 반 테러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전을 감행함으로써 세계 평화와 안전을 심대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부시 낙선운동에 나서게 된 동기를 밝혔다.

조교수를 비롯한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 참석, 각국 시민운동가를 대상으로 ‘반 부시 네트워크’(Defeat Bush Network)의 결성을 제안했다. 이 제안을 계기로 미국·필리핀·이탈리아·콜롬비아·호주·벨기에·한국 등 7개국의 NGO 대표들은 ‘Another America is possible’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크 결성에 합의했다. 웹사이트상에서 부시 낙선운동과 관련된 한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함께 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부시 정부의 군사주의 외교정책이 세계 평화를 저해함은 물론 한반도 북핵 위기를 부추기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이 운동에는 한국노총·민주노총·참여연대·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20여개 국내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낙선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미국 민주당 후보 당선운동을 펴자는 매체도 이미 등장했다. 진보적 색체의 인터넷 언론인 ‘브레이크 뉴스’는 ‘부시 낙선, 하워드 딘 당선운동’을 내걸고 있다. 브레이크 뉴스는 부시 재선이 한반도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절대적인 걸림돌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딘에 대해서는 “딘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북한과 즉시 직접 협상에 들어가 핵 폐기와 경제·에너지 지원을 교환하는 ‘일괄타결’(Package Deal)을 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고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여타 민주당 후보들에 비해 딘의 외교정책이 한반도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판단인 것이다. 브레이크 뉴스는 부시 낙선운동과 관련한 기사를 시리즈로 게재하는 데 이어 딘 후보 선거 지원을 위한 네티즌 1인당 1달러 모금운동,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참관단 파견 등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활발한 당선운동을 펼친다는 복안이다. 한국의 제도권 정당들 역시 대북정책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 미국 대선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수적 노선인 한나라당은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부시의 재선이 무난할 것으로 보면서 공화당의 선전에 느긋해 하고 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한나라당측 간사인 조웅규 의원은 “한반도에서 핵을 제거하는 데는 부시 정부의 강경정책이 가장 유효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민주당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배어 있다. 열린우리당의 유재건 국제협력위원장은 “지난 1년을 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 물리력 행사를 막는데 다 소진해버린 느낌”이라고 했다.

한국이 이처럼 미국 대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민주당 대선 후보들도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안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딕 게파트 하원의원은 1월 13일 민간 싱크탱크인 미국 외교협의회(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www.cfr. org)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이 과장되고 천박한 수사로 북한과의 다년간 협상을 위험에 빠뜨리고, 일관된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도 1월 5일 “내가 대통령이라면 지금 당장 국무장관을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파견해 북핵 사태를 조율한 뒤 이를 기조로 북핵 위기 해결에 나서겠다”고 협상론에 힘을 실었다.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도 “미국은 북한과 협상해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선을 계기로 오히려 북핵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내 미국통으로 통하는 장성민 전 의원은 북핵 문제가 북·미간 직거래에 의해 전격적으로 타결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대선에서 확고한 우위를 확보하려는 부시의 대선전략과 대선 전에 체제보장을 확약받고 싶은 김정일 위원장의 이해가 일치할 때 가능한 해법이다. 클린턴 정부 당시 북한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을 초청해놓은 바 있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초청이 부시 정부에도 유효하다면 양국 정상의 극적인 회담이 평양 혹은 제3국에서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게 장 전 의원의 전망이다.
이같은 대타협을 거쳐서라도 북핵 문제가 미 대선 전에 해소되지 않는다면 김 전 대통령이 우려한 ‘매우 위험한 고비’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등 제네바 합의를 깬 것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크게 다르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북핵 위기는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약속 파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북한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는 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 해도 북핵을 둘러싼 북·미간 갈등의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부시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대북전략을 군사적 방법에 의존할 가능성을 북한측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김 전 대통령의 조언을 김위원장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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