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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문화와 노조는 원래 안 맞아”

“벤처문화와 노조는 원래 안 맞아”

일러스트: 박용석
노조가 유달리 적은 벤처기업 가운데 대표적 노조로 자리잡았던 한글과컴퓨터의 노조가 지난 2월13일 해산을 결의했다. 한글과컴퓨터 노동조합은 2월11일 오후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어 85%의 찬성으로 노조 자진 해산을 결의하고, 근로자와 회사의 협의사항은 직장협의회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한컴 노조는 민주노총에 속해 있으며, 지난해 6월 프라임산업이 한컴을 인수하고 백종헌 사장이 취임할 당시 이에 반대해 경영진과 충돌할 정도로 강성이었다. 한컴 노조의 진성용 위원장은 “직원 수에 비해 조합원 수가 현저히 떨어지고, 벤처기업의 특성상 노조에 대한 호응이 떨어져 노조보다는 직장협의회로 대체하는 것이 직원들의 의견을 좀더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아 노조를 해산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한컴 노조는 지난 2001년 10월에 결성됐다. 결성 2년 4개월 만에 자진 해산을 결의한 한글과컴퓨터 노조는 벤처기업의 사업여건·근로환경·경영안정성 등에 따라 변화해 온 노사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90년 설립된 한글과컴퓨터는 2001년 10월까지만 해도 다른 대부분의 정보기술(IT) 분야 중소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노조 활동의 무풍지대였다. 한때 국민기업으로까지 불렸던 한글과컴퓨터는 한국의 대표적 벤처기업으로 세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컴에 노조가 결성된 것은 전하진씨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직후인 2001년 10월. 닷컴 대박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사라지면서 구조조정과 수백만주의 스톡옵션을 잇따라 취소해야 했던 한컴 직원들은 경영권 공백에 따른 고용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노조를 결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경영진이 자주 바뀌면서 회사가 갈팡질팡하자 직원들은 회사의 경영진에 불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진위원장 역시 “한컴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고용불안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컴 노조는 2003년 1월 취임 1년째였던 김근 사장이 이사회 내분으로 해임되고 한국계 미국인 폴 류씨가 사장에 취임하면서 사측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기도 했으나 4개월 만에 백종헌 프라임산업개발 회장이 최대주주로 등장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우선 일단락됐다. 한컴 경영진은 지난해 8월 한컴 직원들을 상대로 한컴 회생방안을 설명했고, 노조도 회생방안과 경영진의 약속을 믿었다. 그리고 지난해 한컴은 4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회사는 지난해 8월 약속한 대로 순이익 43억원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전 직원에게 성과급으로 나눠줬다. 한컴의 1백14명 직원들은 인센티브 명목으로 1인당 평균 1천1백65만원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번 노조 해산이 성과급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조 측은 “노조 해산은 성과급 지급의 대가가 아니라 그동안 한컴이 계속 요구했던 경영투명성 확보와 경영정상화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직원들에게 경영정상화 방안을 설명하면서 약속한 것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노조의 자진 해산 소식에 회사 역시 기본급 10% 인상이라는 카드로 화답했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다시 흑자로 돌아서면서 경영상태가 좋아진 것이 노조의 필요성을 감소시킨 원인이지만 벤처기업의 특성이 노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벤처기업의 특성상 이직률이 높고 각자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제조업과 달리 노조 활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진위원장은 “노조라는 조직을 유지하기보다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면서 “직장협의회를 통해 모든 사원의 의견을 함께 모으는 일이 더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1백14명의 직원 중 노조원은 41명에 불과해 전체 직원을 대표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또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3년이 안 될 정도로 이직이 심하고, 직원들도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보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직장을 옮기기 때문에 노조활동에 호응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실제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직원들이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더 나은 조건으로 회사를 옮기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노조를 자진 해산한 한컴이 과연 앞으로도 계속 흑자를 낼 수 있을지, 또 경영진 역시 직원들의 신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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