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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들 왜 중도하차하나

한국 유학생들 왜 중도하차하나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미국의 명문대에 입학하면 아이들의 미래와 행복이 보장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버드대에 입학해도 확실한 인생의 목표가 없다면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합니다.” 강영우(61) 박사는 시각장애인이다.

중학생 때 한국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시력을 잃었지만 꿈만은 잃지 않은 그는 연세대 문과대(교육학과 졸업)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강박사는 3년 8개월만에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바로 일리노이대 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다가 지난해부터 부시 행정부의 장애인 정책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강박사는 미국 한인타운에서 어려운 유학생활에 지친 한국 학생들을 위해 강연하고 있다. 그의 강연 주제는 늘 후배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는 조언으로 시작된다. 최근 미국 LA 한인교회에서 한 강연에서도 강박사는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과 꿈이 없던 한국 유학생들은 조그만 실패에도 헤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며 “미국 대학에 입학한 것에만 만족하지 말라”고 전했다. 그는 10여년 동안 같은 주제의 강연으로 유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했지만 후배들의 태도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며 걱정이다.

세계에서 자녀 교육열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에선 요즘 중·고생들이 조기 유학길에 오르는 사례가 나날이 늘고 있다. 하지만 강박사의 우려대로 이들은 ‘왜 미국 학교에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에 쉽게 좌절한다.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유학생 상담 사이트(www. colinpak. com)를 운영하는 콜린 박(미국 버클리대 졸업 후 서울대 해외 유학 상담역을 맡고 있다)은 “미국 명문대 입학은 뛰어난 인재가 되기 위한 1백m 달리기에서 50m만 뛴 것”이라며 “하지만 많은 한국 유학생들은 끝없는 리포트와 미국식 토론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나머지 50m를 완주하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최동석(22·가명)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2년 미국 동부의 한 명문대에 입학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설득에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SAT(미국 학력평가시험으로 한국의 수능시험과 비슷)를 준비해 결국 부모가 바라는 대로 명문대 문과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유는 미국식 수업방식에 적응할 수 없어서였다. 토론 위주의 수업과 엄청난 양의 독서, 작문 과제를 소화하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진 최씨는 좌절의 쓴맛을 봐야 했다. 콜린 박은 “한국 학생들은 미국 교수들에게 ‘이것도 글이냐. 네가 어떻게 우리 학교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며 꾸중을 듣는다”며 “유학생활의 성패는 영어에 달려 있다. 유학 전 2∼3년간 강도높게 영어를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콜린 박에 따르면 문법식 영어공부에만 매달린 한국 학생과는 달리 대만이나 일본 학생들은 미국 유학생활에 무리없이 적응하고 있다. 유학가기 전 철저히 영어를 준비한 덕분이다. 일본 학생들은 발음은 형편없지만 자신있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추고 온다. 중국이나 대만의 유학생 대부분은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고 유학길에 오를 만큼 준비가 탄탄하다. 한양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캐나다 출신 로빈 버팅은 “한국 학생들은 영어 실력이 부족한데도 현지에서 같은 한국 학생들과 몰려다니며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유학의 경우 부모의 역할을 원만히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김현진(24·가명)씨는 99년 미국 중부의 명문 주립대 경영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실력있는 여학생이었다. 김씨의 부모 역시 자녀의 명문대 입학에 대해 매우 기뻐했지만 딸이 학교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엔 무관심했다. 김씨는 대학 입학 후 부모가 한국에서 이혼하자 1학년 2학기에 낙제점수를 받았다.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이겨내려 하기보다는 학교 주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방황하다가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2002년 한국에 돌아왔다. 버팅은 “어린 학생들이 언어 문제나 문화적 충격,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냉혹한 주위 환경을 이겨내는 데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이해가 절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영우 박사는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학 입학 뒤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을 미국 친구나 담당 교수 혹은 교회 목사 등 멘토를 찾는 것도 훌륭한 대학생활의 요령”이라고 조언했다.

사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을 바랄 뿐 대학에 입학한 뒤 어떤 배려를 해줘야 하는지에 대해선 무지한 경우가 많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의 이미나 교수는 치열한 명문대 입학 전쟁에 지친 학부모들이 국내 대학 입학보다 수월한 외국으로 눈을 돌렸고, 이런 생각없는 부모들 때문에 유학에 성공하는 한국 학생들은 10명 중 1명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한국의 중산층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자녀들의 평생을 보장한다고 믿는다”며 “학벌 만능주의가 뼛속 깊숙이 자리잡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명문대 입학에만 매달린 일부 학부모들은 때론 삐뚫어진 교육열을 발산하기도 한다. 유학생들을 지도하는 한 전문가는 “서울 시내 일부 외국어 고등학교의 유학반에선 학생의 영어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교사들은 높은 점수를 준다”고 털어놓았다. 교사가 실력대로 점수를 줄 경우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해 격렬하게 항의해서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쓴 영어 에세이에서 전부 ‘A’학점을 받아야 명문대에 합격한다는 집착 때문에 학부모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양심을 버린 채’ 학부모들의 성화에 굴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학반 학생들은 SAT만 준비하고, 영어 교사가 15∼30쪽에 달하는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명문대의 경우 자기소개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왜 이 대학에서 공부하려는 것인지, 또는 어떤 꿈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개인적인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명문대 입학관리 담당자들은 유학생의 영어 실력을 아울러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한국 학생의 경우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교사와 짜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결국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서울대의 이교수는 최근 미국 동부의 명문대를 방문, 입학관리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국 학생들은 입학 전 낸 자기소개서의 영어 실력과 입학 후 시험에서 드러나는 영어 실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교수는 원인을 파악하던 중 일부 유학 준비생들과 교사들의 ‘협동작전’을 알게 됐다.

그는 “미국 입학관리 담당자가 한국 학생들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입학 조건의 변경을 검토하고 있으며, 입학원서를 낸 학생들과 장시간 통화해 직접 영어 실력을 확인하는 방안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학생들은 SAT만 준비하고, 교사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가 하면, 학교는 학부모 눈치보느라 학생들에게 후한 영어 점수를 주는 관례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 학생의 명문대 입학률은 의미가 없다”고 질타했다.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생명의말씀사 펴냄)는 책을 저술한 강영우 박사는 “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하여 승리했다”며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실패를 몰라서 오히려 미국 유학생활 적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모진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 심력(心力)을 키우다 보면 훌륭한 인재로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강박사의 큰 아들 진석(하버드 메디컬 스쿨 졸업)씨는 “아버지 덕분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으며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건설에 기여할 의욕을 갖게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어떤 일이든 본인의 동기 유발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깊이 있는 학문 연구보다는 명문대 입학 만을 목표로 공부하는 한국 교육의 풍토를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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