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세계의 항만을 지배한다

세계의 항만을 지배한다

리카싱은 항만사업에도 꾸준히 투자해왔다. 그의 항만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다.
순재산이 120억 달러를 웃도는 홍콩의 부동산 재벌 리카싱(李嘉誠 ·75)은 마이클 델(Michael Dell)과 스티븐 발머(Steven Ballmer) 같은 미국의 부자들에 견줄 만하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물이 전혀 없다. 그는 상장기업 허치슨 왐포아(Hutchison Whampoa ·和記黃捕有限公可와 청쿵 홀딩스(Cheung Kong Holdings ·長江實業)를 통해 홍콩의 전력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홍콩 제1의 이동통신 사업자로 부동산개발 ·소매업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가 소유한 기업들은 홍콩 증시 시가 총액의 11.5%를 차지한다. 그가 지금까지 3세대(3G) 휴대전화 기술에 투자한 금액은 110억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다. 3G란 모바일 화상과 멀티미디어 통신을 서비스하는 기술이다.

외국 언론들은 리의 대담한 통신 관련 투자와 거침없는 부동산 거래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기업제국의 참맛은 짠 바닷물에 있다. 영국의 해운 컨설팅 전문업체인 드루어리 시핑 컨설턴츠(Drewry Shipping Consultants)에 따르면 리는 지난 4년 동안 15억 달러를 들여 15개 해운 컨테이너 터미널을 매입했다. 리의 해운 컨테이너 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5개국 32개 항에서 세계 컨테이너의 13%를 처리하고 있다.

드루어리에 따르면 중국발 컨테이너 가운데 42%가 리의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수출 급증 덕에 허치슨 포트 홀딩스(Hutchison Port Holdingsr )는 리가 경영하는 사업체 가운데 수입이 가장 짭짤했다. 중국의 수출은 1980년 180억 달러에서 지난해 3,250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2002년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허치슨 왐포아의 이자 ·세금 공제 전 이익 31억 달러 가운데 28%를 차지한 반면 매출에서는 18.5%에 그쳤다.

리는 이런 내용에 관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항만사업과 관련한 리의 최근 행보를 통해 그가 암암리에 어떤 전략으로 나서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터미널은 다른 사업들을 위한 일종의 닻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리는 92년 상하이(上海)항 운영권 지분 일부를 매입하는 식으로 중국 본토에 처음 투자했다. 이후 도로 ·교량 건설, 부동산 매입, 소매 체인 개설 등에 75억 달러를 투자했다. 리는 서인도제도 바하마에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는 97년 유람선 시설 등 바하마 항만 운영사업에 투자했다. 아시아에서 미국 등 아메리카 대륙 각지로 향하는 화물을 취급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그랜드바하마 공항을 매입하고 몇몇 골프장 ·호텔도 개발했다. 현재 바하마 최대 외국인 투자가인 리는 영국에서도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영국의 최대 항구 펠릭스토에 투자한 뒤 통신 ·소매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리는 1940년 일본의 중국 침략을 피해 아버지와 함께 홍콩으로 건너갔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12세에 중도포기하고 일터로 나서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중병을 앓다 결국 결핵으로 사망했다. 리의 남다른 집중력 ·결단력 ·근면성은 일찍부터 나타났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헌 교과서와 역사책을 사서 혼자 공부했다.

리는 22세에 어엿한 플라스틱 공장주가 됐다. 이어 부동산 개발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투자시기는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었다. 시장이 침체돼 있을 때 매입에 나선 것이다.
리의 항만사업 진출은 영국계 무역상사 허치슨 왐포아를 매입한 79년 시작됐다. 당시 허치슨 왐포아는 오랫동안 홍콩 경제를 지배했으면서도 고전하고 있었다. 허치슨 왐포아의 자산 가운데 하나가 짭짤한 어느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권이었다.

당시 대다수 항구는 국영으로, 기껏해야 손익분기점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홍콩은 민간 업체 세 곳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 업체는 항만 준설에서 터미널 시설 건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홍콩은 리가 컨테이너 터미널 사업의 경제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는 사업을 급속도로 확장해 나아갔다. 경쟁업체 한 곳을 매입하고 터미널 세 개도 신설했다. 선장 출신으로 리의 항만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존 메러디스(John Meredith)는 “현대식 항만 건설 비용에 대해 허치슨 포트 홀딩스만큼 잘 아는 업체도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리는 94년 이래 홍콩에 6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자체 부두 시설을 갖췄다. 자동화 크레인이 5개씩이나 쌓아 올린 컨테이너를 잘 처리한다. 그 덕에 컨테이너를 에이커(약 1,200평)당 경쟁사의 서너 배나 처리할 수 있다. 허치슨 포트 홀딩스의 시간당 컨테이너 처리량은 최소 30개다. 세계 평균의 2배인 셈이다. 트럭으로는 하루 1만 대를 소화할 수 있다.

많은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리는 중국 남부 전역에 걸쳐 보조항까지 개발했다. 보조항들이 개발되기 전 본토의 중소 도시에서 생산한 상품 대부분은 기차나 트럭으로 홍콩까지 실려왔다. 하지만 리는 소규모 하항(河港) 건설로 물자를 쉽게 운송할 수 있었다. 본토의 얕은 수로를 오가는 소형 선박들에 착안한 것이다. 소규모 하항은 논 위에 건설되는 경우가 많았다.

리는 불안하거나 적대적인 환경에도 거침없이 진출하는 배짱까지 갖고 있었다. 베이징(北京)에서 톈안먼(天安門)사태가 일어난 지 1년도 안 된 90년 상하이 시장이 항만사업에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상하이는 선박이 접안하려면 바다에서 최장 1주 동안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혼잡했다. 리는 이후 수년에 걸쳐 5억 달러를 투자했다. 오늘날 선박이 접안해 하역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 데 7시간이면 충분하다.

99년 리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신임 대통령이 다양한 인종겵아?사이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었다. 리는 자카르타 항만을 효율성에서 싱가포르와 경쟁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테러가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4억 달러나 들여 자카르타항을 쇄신했다. 오늘날 자카르타항은 세계 첨단의 시설을 갖춘 컨테이너 터미널 가운데 하나가 됐다.

리는 미국에서 항만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의 항만은 정부 소유이기 때문이다. 리는 정부가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는 나라에서 경쟁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처리하고 있는 화물의 80%는 미국 시장으로 향한다. 미국에 발판이 없어 적잖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파나마 ·멕시코 항구들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왔다. 미국 항구의 대안으로 삼기 위해서다.

중미에서 철로를 이용할 경우 미국 대서양 연안으로 쉽게 운송할 수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라 무관세로 미 국경을 넘게 된다.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2001년 멕시코에서 첫 번째 컨테이너 터미널을 확보했다. 컨테이너항 운영업체인 ICTSI 인터내셔널 홀딩스(ICTSI International Holdings)에 4억 달러를 지급한 뒤의 일이다. 당시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ICTSI로부터 아메리카 대륙 ·탄자니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태국 소재 터미널들을 확보했다.

97년 허치슨 포트 홀딩스는 파나마 운하 양단에 위치한 크리스토발과 발보아의 항만 운영권을 각각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정계 일각에서 리와 중국 정부의 관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요즘 미국 정치인들은 중국 공산당 정권을 그리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효율성의 달인인 리가 미국 시장에 쏟아붓는 값싼 중국 제품은 다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오징어게임2' 주가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역시 기훈이형 효과?

2 여야, 오는 26·31일 국회 본회의 개최 합의

3트럼프, "틱톡 퇴출 막고싶다"…구제 될까?

4정용진 트럼프·머스크 만났다…신세계I&C 급등

5이지혜, 남몰래 시험관 시술 "안정적이고 싶어서…" 눈시울 붉혀

6김종민, 11살 연하 여친과 '연락 두절' 내년 결혼이라며…왜?

7은행권, 7000억원 투입해 ‘소상공인 채무·폐업·대출’ 지원한다

8박하선 치마 밑 몰래 촬영…긴장 풀려 주저앉은 사연

9‘오리온 3세’ 담서원, 2년 만에 전무로 승진

실시간 뉴스

1'오징어게임2' 주가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역시 기훈이형 효과?

2 여야, 오는 26·31일 국회 본회의 개최 합의

3트럼프, "틱톡 퇴출 막고싶다"…구제 될까?

4정용진 트럼프·머스크 만났다…신세계I&C 급등

5이지혜, 남몰래 시험관 시술 "안정적이고 싶어서…" 눈시울 붉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