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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산, ‘세계의 월마트化’

산 너머 산, ‘세계의 월마트化’

소매체인 월마트가 미국은 쉽게 정복했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뜻대로 안 되는 듯하다.
월마트(WalMart)는 현재 미국에 3,550개 매장이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슈퍼센터 1,000개가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시장 싹쓸이뿐이다. 월마트는 이미 토이즈러스(Toys “R” Us)보다 많은 장난감, 갭과 리미티드(Limited)를 합친 것보다 많은 옷, 크로거(Kroger)보다 많은 식료품을 판매하고 있다. 월마트를 한 나라의 경제로 간주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인 세계 30위에 해당한다. 연간 성장률 11%를 기록 중인 월마트는 2010년대 초반에 매출액이 5,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월마트가 미국에서 거둔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미국 밖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점이다. 월마트는 캐나다 ·멕시코 ·영국에서 이른 시간 안에 대성공을 거뒀다. 해외 매출 가운데 80% 이상이 이들 3개국에서 비롯된다.

유럽에서는 기존 매장을 인수하면서 잘한 경우도 있었고 잘못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원시적인 공급망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일본은 쥐꼬리만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지역의 대규모 시장에서는 만만찮은 경쟁업체들에 포위된 채 고전 중이다.

큰 실수도 더러 있었다. 1994년 홍콩에 진출했다가 거래선과 매장 위치 선정에서 실패해 2년 만에 포기하고 나왔다. 96년 인도네시아에 들어갔지만 97~98년 폭동 당시 자카르타의 한 매장이 약탈 ·방화로 초토화된 뒤 사업을 접었다. 독일에서는 두 업체를 인수해 자체 시스템으로 바꾸려다 수억 달러만 날리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취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도심에서 동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던 탓이다.

그러나 월마트의 강점은 공급업체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거나, 가용자본을 110억 달러나 비축하고 있다는 점 외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매주 금요일이면 36개 지역 관리자들이 오전 7시30분부터 열리는 유명한 금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칸소주 벤턴빌 본사로 몰려든다. 장시간 진행되는 이 회의에서는 그 주의 업무 성과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평가한다. 해외 주재원들도 참석한다. 월마트 인터내셔널의 CEO 존 멘저(John Menzer)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털어놓았다.

월마트 인터내셔널은 이미 월마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업부로 자리 잡았다. 월마트 인터내셔널의 매출은 475억 달러로 총매출의 20%를 차지한다. 소매점체인 타깃(Target)만한 규모다. 영업이익은 24억 달러로 역시 총영업이익의 20%에 이른다. 월마트 CEO 리 스콧(Lee Scott)은 앞으로 3~5년 안에 해외 부문 매출의 총이익 ·총매출 성장 기여도가 3분의 1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해외 부문은 월마트 전체 매출 증가분 267억 달러 중 68억 달러, 전체 영업이익 증가분 18억 달러 중 3억7,200만 달러를 차지했다.

세계의 ‘월마트화’가 지구 전역에서 상거래 문화를 바꾸고 있다. 물론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월마트가 중국 등 저임금 국가로부터 많은 상품을 수입함으로써 미국 내 제조업 부문에서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 상승은 억제되고 있다. 월마트 매장이 많이 들어선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월마트의 값싼 상품들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월마트는 향후 몇 년에 걸쳐 세계적으로 일자리 80만 개를 만들어내는 역할도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월마트가 공급업체들을 너무 심할 정도로 쥐어짠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오렌지 글로 인터내셔널(Orange Glo International)처럼 월마트 덕에 성공한 업체도 있다. 오렌지 글로는 원래 콜로라도주 그린우드빌리지에서 가정용품을 취급하던 가족경영 기업이었다. 그러던 중 98년 월마트의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월마트는 오렌지 글로에 몇 가지를 조언했다.

가령 옥시크린 얼룩 제거제 용기를 일본의 낮은 매장 진열대에 맞게 5cm 정도 작게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중국 광둥성(廣東省) 선전(深)의 샘스 클럽(Sam’s Club)에서 매장 진열을 담당할 상근 직원을 고용하라고 일러줬다. 오렌지 글로는 현재 미국 제품을 11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매출은 99년 이래 4배 이상으로 늘어 4억 달러에 이른다.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Sam Walton ·92년 사망)은 세계 정복을 꿈꾸던 인물이 아니다. 샘이 활동하던 시절에 월마트의 해외사업은 멕시코시티에 운영하던 샘스 클럽 두 곳 정도였다. 샘이 타계한 지 1년 후 경영권을 물려받은 로브 월튼(Rob Walton) 회장, CEO 데이비드 글라스(David Glass)가 최고정보책임자(CIO) 봅 마틴(Bob Martin)에게 해외 진출안 작성을 지시했다.

마틴은 프랜차이징 ·기업인수 ·신규 설립 ·합작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해외 진출을 밀어붙였다. 99년 마틴이 은퇴할 당시 월마트 인터내셔널은 매출 120억 달러에 영업이익 5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는 최대 소매업체로 우뚝 섰다.

멘저는 95년부터 월마트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면서 경영의 정밀성과 기획능력을 끌어올렸다. 예컨대 영국 제3의 식료품업체 ASDA의 경우 2년6개월에 걸쳐 기술통합과 직원 훈련을 끝낸 후인 99년에 비로소 인수를 했다. 일본 시장의 경우 4년간의 연구조사를 거쳐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다. 멘저는 2002년 일본 유통업체 세이유(西友) 지분의 6%만을 5,1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 같은 지분 인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이유 주가는 2배로 껑충 뛰었지만, 멘저는 이미 고정가격으로 세이유 지분을 67%까지 확보할 수 있는 보증서를 확보해놓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월마트의 해외사업에서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노무문제다. 예컨대 독일 최대 노동조합은 월마트를 산업별 포괄 단체교섭 협약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월마트는 사업장별로 이미 개별적인 단체협약이 마련돼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노조가 큰 힘을 못 쓰는 중국에서 월마트는 임금의 2%를 국영 노동위원회에 내놓는 관행을 거부하고 대신 직원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어디를 가든 경쟁업체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영국 최대 식료품업체 테스코(Tesco)는 ASDA보다 빠른 속도로 대형 할인점을 신설하면서 매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양대 소매업체 롄화(聯華超市)와 화롄(華聯商廈)이 국영 바이롄 그룹(百聯集團)으로 통합됐다. 현재 바이롄의 연간 매출은 80억 달러에 이른다.

월마트의 다음 행보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에셀룽가(Esselunga), 프랑스의 세계적 유통업체 카르푸 ·오샹(Auchan), 일본의 다이에(大榮) 혹은 에이온(Aeon)에 인수를 제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뿐이다. 현재 월마트 매니저 40명이 러시아에서 운송경로 ·유통거점 ·경쟁사 매장 위치 ·소비자 취향등을 조사 중이다. 길은 험하지만 월마트가 주도하는 유통혁명은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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