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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새가 더 높이 난다”

“가벼운 새가 더 높이 난다”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경쟁력 없는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항공운송 서비스 부문에 핵심역량을 집중하는 ‘비즈니스 다이어트’를 계속해왔다. 박 사장은 사스 ·고유가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김포공항 활주로와 아시아나항공 본사 빌딩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하지만 공항에 가려면 외곽을 따라 2km 이상 돌아야 한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에서 승용차를 몰고 활주로를 통해 곧바로 공항으로 진입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박찬법(59) 아시아나항공 사장이다. 위험하지만 고집을 부려 출입증 발급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CEO는 항상 수시로, 예고 없이 영업장을 방문해야 한다”며 “그래야 서비스 품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최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업부들을 한 곳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마무리짓고 김포공항 바로 옆에 ‘아시아나항공 타운’을 오픈하는 등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통합을 통해 관리비용을 줄이고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영업장에 본사가 있고 CEO가 직접 사업을 진두지휘하면 그것이 바로 ‘현장경영’”이라고 말한다. 박 사장은 1969년 ㈜금호에 입사해 90년 아시아나항공 영업담당 상무로 옮겨 2001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금호 시절부터 홍콩지점장을 시작으로 미주 등지를 돌며 주로 영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영업맨이다.

박 사장은 부임 이후 술을 거의 안 마신다. 술 마실 시간에 골프를 부지런히 쳤다. 그의 골프 실력은 85타 정도로 수준급이다. 골프는 그가 환갑의 나이에도 거의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회사의 다이어트에도 충실했다. ‘가벼운 새가 더 높이 난다.’ 박 사장의 항공론이자 경영철학은 이처럼 단순명료하다. 그동안 회사의 체질을 개선해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한 만큼 앞으로의 실적도 수직상승할 것이란 확신에 차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외환위기 이후 단계적으로 수익기반이 약한 사업 부문을 정리해왔다. 훨씬 더 ‘가벼운’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지난해 케이터링 사업부를 처분했고 최근에는 아시아나공항서비스 부문을 KTB네트워크에 매각했다. 고속철 개통에 대비해 일찌감치 수익성 낮은 국내선 비즈니스석도 폐지했다.

박 사장은 “최악의 상황에선 인원도 줄여야 했다”며 “하지만 다른 것은 다 줄여도 직원을 함부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고민 끝에 순환무급휴직제를 실시해 인원감축 없이 비용을 절감했다. 이런 일련의 사업 감축은 금호그룹 구조조정의 큰 틀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박 사장이 줄곧 견지해온 ‘다이어트 경영’ 전략이 뒷받침돼 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는 셔츠 주머니 속에서 보고서 한 장을 자랑하듯 꺼내 보이며 그간의 비용절감에 따라 개선된 경영효율을 수치로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 한 대를 운항하는 데 필요한 인원을 나타내는 계수가 99년 ‘116’에서 지난해 ‘99’로 낮아졌다. 이는 항공기 한 대를 띄우는 데 필요한 인원이 5년 사이 17명이나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실적에도 반영됐다. 지난해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여파로 적자를 내기도 했지만 99년 1,000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했고 2002년에도 1,800억원에 가까운 남는 장사를 한 것도 이런 비용절감 덕이다.

항공사는 본연의 사업인 항공운송서비스 부문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후발주자가 선발 경쟁사를 의식해 무리하게 회사 규모를 키우다가는 결국 가랑이가 찢어질 뿐”이라며 “우리는 그럴 돈이 있으면 좋은 비행기를 한 대라도 더 들여오고, 노선을 하나라도 더 개척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볼륨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는 주장이다. 박 사장의 이 같은 감량경영 덕에 아시아나는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부채 부담도 많이 덜었다. 박 사장은 아시아나공항서비스 매각으로 얻은 유동성을 기반으로 현재 400%대로 낮아진 부채비율을 2006년에는 100%대까지 떨어뜨릴 각오다.

박 사장은 이런 회사의 체중 감량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자평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세계 최대의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경쟁력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스타얼라이언스는 루프트한자 ·싱가포르항공 등 14개 항공사가 제휴한 동맹체다. 그는 “세계 최고의 항공사들이 결집한 스타얼라이언스가 국내 후발주자인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우리의 서비스 품질과 안전성 그리고 개선된 경영상태를 높이 평가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당시 동맹체 쪽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가입 조건을 맞추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 항공운항 서비스의 생명인 안전성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는 “어떤 황금노선이라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영업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또 “항공기 도입에서 정비 ·직원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인다. 박 사장은 스타얼라이언스를 통해 아시아나의 경쟁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고 자신한다.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일자리창출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사장은 “관광산업 육성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효과적”이라며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면 5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항공사들이 얼라이언스를 통해 새로운 노선을 계속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스 ·조류독감 공포에 이어 현재 항공사들은 고유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이 최근 발표한 1분기 실적은 오히려 전분기보다 높게 나타났다(그래프 참조).박 사장은 “우리는 이제 가벼워질 만큼 가벼워졌다”며 “앞으로 훨씬 더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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