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에 몰아치는 변화의 바람
사법부에 몰아치는 변화의 바람
17대 총선에서 충북 보은·옥천·영동에서 출마해 낙선한 심규철 전 의원(한나라당)은 본업인 변호사 생활로의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서울대 법대 76학번이자 사시 28회 출신인 심 전 의원은 4년간 몸담은 국회를 떠나 법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로 유명해진 이정렬 판사(서울남부지법)가 속한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우리법연구회란 1백여명의 현직 판사와 20여명의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법조계 내 모임이다.
강금실 법무장관과 박범계 전 청와대 민정·법무 비서관을 비롯해 지난해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서 발생한 사법 파동의 주역들이 회원이라 해서 유명해진 모임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친정부적 모임’ 혹은 ‘법조계의 하나회’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심 전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세간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인권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뤄보자는 분들이 많이 모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정파적이라거나 이념적인 접근을 꾀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심 전 의원은 변호사업에 복귀하는 대로 우리법연구회원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창립 이래 15년 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권위주의 타파와 사법권 독립을 겨냥한 사법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항상 서있었다. 우리법연구회는 1993년 서울민사지법 단독 판사들이 사법부의 자기 반성과 사법 민주화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내면서 확산된 제3차 사법 파동을 주도한 단체다. 현 정권 들어 법무장관과 청와대 법무 비서관을 배출하고, 이 모임의 창립 멤버인 김정훈 변호사가 대북 송금 사건의 특별검사보에 임명되면서 막강 법조 파워의 산실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지난해 8월 대법관 인사 파동 당시 소장 판사들이 대거 참여한 ‘연판장 사건’도 이용구 판사를 비롯해 이 모임 회원 판사들이 주도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사법개혁 추진기구 실무협의회 위원 6명 중 3명이 이 모임 소속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법연구회는 어딜 가든 이슈를 생산해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법연구회는 자신들에게 쏠리는 사회적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 모임 회원인 이정렬 판사가 지난 5월 21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며칠 후 춘천지법 이철의 판사는 동일 사안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유죄다). 일선 법관들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결과적으로 이정렬 판사가 속한 우리법연구회가 법 해석상의 혼란을 조장했다는 내부의 비판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헌법학계의 권위자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뉴스위크 한국판과의 인터뷰에서 “상급심의 판례에 하급심이 기속되지 않으면 법적 안정성은 물론 사법 정의도 실현될 수 없다”고 이정렬 판사의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 70% 가까이가 무죄 판결에 부정적이며, 법조계 내부에서도 현행법 하에서 무죄 판결은 무리였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리법연구회는 이정렬 판사의 판결이 모임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변하고 있으나 법조계 내 보수진영에서는 우리법연구회가 그런 판결의 자양분을 제공해온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법연구회의 주된 활동 범위는 주로 사법제도와 관행의 개선 즉, 대내적 현안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번처럼 법관의 판결 문제는 법률 해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크다. 그것도 유력한 대권 후보로 하여금 두번이나 패배의 쓴맛을 보게 한 병역 문제에 대한 파격적인 판결은 외부의 공격에 한층 더 취약한 게 사실이다.
우리법연구회를 이끌어온 판사들도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우리법연구회장을 지낸 서울행정법원의 한기택 부장판사는 “판결의 독립성은 판사의 생명인데 행여 국민들에게 다른 인상을 줄까봐 우려된다”고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회원들이 모임의 논의나 토론 결과에 구속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는 집단적 결론에 따른 판결인양 해석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 이 모임의 총무인 최은배 서울행정법원 판사도 “회원 중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은 점을 부정하지 않지만 모임의 결정이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우리법연구회는 토론의 ‘시장’에서 자신의 견해가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타당한 지를 알아보는 순수한 학술적 통로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 인사들의 결집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회칙에는 “기본적 인권 신장과 실질적 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모임의 목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모임의 주된 토론 주제도 헌법·노동법·국가보안법·환경관련 법률·법률구조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분야에 고루 퍼져 있다. 구성원들도 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사회적 비판의식을 길러온 세대다.
그래서 사법부 내 개혁을 주도하고,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갈 그룹 중 하나라는 시각이 설득력있게 보인다. 한기택 부장판사는 “우리 사회가 지난 시대에 겪어온 바를 판사들도 같이 경험해왔다”면서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학교를 다닌 30대 판사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선배 세대들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일부 회원들은 사법부 내의 오래된 관행과 제도의 개선 방안을 이론적으로 심도있게 논의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 내의 관료주의·폐쇄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법무 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변호사는 사법부 내 관료주의가 법관으로 하여금 독립적이고, 소신에 기초한 판결을 내리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견지에서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논의도 우리법연구회에서 심도있게 전개됐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모임의 초대 회장을 지낸 오진환 변호사는 “대법관을 연공서열을 떠나 학자·변호사 등 외부의 인재로 충원하게 되면 법원 내 관료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사제도의 개선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3월 사법개혁국민연대(공동 대표 김주덕·김종표·이영구·서성철)가 대법원장에게 제출한 사법개혁 제안서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보다 파격적인 방법론으로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국민의 이념 성향별 분포에 부합시키는 방안이 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라고 평가하는 마당에 대법원의 인적 구성도 시대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시각이다. 진보적 성향을 갖는 법조인을 대법관에 다수 임명함으로써 보수 일색의 대법원에 이념적 다양성을 불어넣자는 제안이다.
법관의 판결과 관련해서도 하급심에서의 진보적 판결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2년 전 병역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시환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라 보고 있다.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고통과 현행법상의 제도적 흠결을 치열하게 고민한 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법관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결국 현행법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박범계 변호사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판사들은 오랫동안 국민을 눌러온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풍토를 극복하는 측면에서 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면 가급적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부회장인 임광규 변호사는 “병역의무는 헌법상의 의무이므로 무죄 판결은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법관은 판례를 바꾸기에 앞서 그에 합당한 역사의식과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학생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이를 학교가 징계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울대 법대의 조국 교수는 “과거 유신시절 김해여고에서 신앙적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을 학교에서 징계한 적이 있는데 당시 법원은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며 “향후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할 때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병역거부보다는 훨씬 경미한 사안이어서 하급심에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말이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유죄 판결을 내린 춘천지법 이철의 판사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죄를 선고했으나 이정렬 판사의 판결에 공감하는 측면도 있다”고 내면의 갈등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실정법과 사법제도가 극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포용해내지 못할 경우 나타날 사법적 혼란상을 미리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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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장관과 박범계 전 청와대 민정·법무 비서관을 비롯해 지난해 대법관 후보 추천 과정에서 발생한 사법 파동의 주역들이 회원이라 해서 유명해진 모임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친정부적 모임’ 혹은 ‘법조계의 하나회’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심 전 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세간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인권 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뤄보자는 분들이 많이 모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정파적이라거나 이념적인 접근을 꾀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심 전 의원은 변호사업에 복귀하는 대로 우리법연구회원으로서의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창립 이래 15년 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권위주의 타파와 사법권 독립을 겨냥한 사법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항상 서있었다. 우리법연구회는 1993년 서울민사지법 단독 판사들이 사법부의 자기 반성과 사법 민주화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내면서 확산된 제3차 사법 파동을 주도한 단체다. 현 정권 들어 법무장관과 청와대 법무 비서관을 배출하고, 이 모임의 창립 멤버인 김정훈 변호사가 대북 송금 사건의 특별검사보에 임명되면서 막강 법조 파워의 산실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지난해 8월 대법관 인사 파동 당시 소장 판사들이 대거 참여한 ‘연판장 사건’도 이용구 판사를 비롯해 이 모임 회원 판사들이 주도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사법개혁 추진기구 실무협의회 위원 6명 중 3명이 이 모임 소속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법연구회는 어딜 가든 이슈를 생산해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법연구회는 자신들에게 쏠리는 사회적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 모임 회원인 이정렬 판사가 지난 5월 21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며칠 후 춘천지법 이철의 판사는 동일 사안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유죄다). 일선 법관들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결과적으로 이정렬 판사가 속한 우리법연구회가 법 해석상의 혼란을 조장했다는 내부의 비판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헌법학계의 권위자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뉴스위크 한국판과의 인터뷰에서 “상급심의 판례에 하급심이 기속되지 않으면 법적 안정성은 물론 사법 정의도 실현될 수 없다”고 이정렬 판사의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국민의 70% 가까이가 무죄 판결에 부정적이며, 법조계 내부에서도 현행법 하에서 무죄 판결은 무리였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리법연구회는 이정렬 판사의 판결이 모임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변하고 있으나 법조계 내 보수진영에서는 우리법연구회가 그런 판결의 자양분을 제공해온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법연구회의 주된 활동 범위는 주로 사법제도와 관행의 개선 즉, 대내적 현안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번처럼 법관의 판결 문제는 법률 해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크다. 그것도 유력한 대권 후보로 하여금 두번이나 패배의 쓴맛을 보게 한 병역 문제에 대한 파격적인 판결은 외부의 공격에 한층 더 취약한 게 사실이다.
우리법연구회를 이끌어온 판사들도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우리법연구회장을 지낸 서울행정법원의 한기택 부장판사는 “판결의 독립성은 판사의 생명인데 행여 국민들에게 다른 인상을 줄까봐 우려된다”고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회원들이 모임의 논의나 토론 결과에 구속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는 집단적 결론에 따른 판결인양 해석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 이 모임의 총무인 최은배 서울행정법원 판사도 “회원 중에는 현실적인 문제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자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은 점을 부정하지 않지만 모임의 결정이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우리법연구회는 토론의 ‘시장’에서 자신의 견해가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타당한 지를 알아보는 순수한 학술적 통로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 인사들의 결집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회칙에는 “기본적 인권 신장과 실질적 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함과 아울러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모임의 목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모임의 주된 토론 주제도 헌법·노동법·국가보안법·환경관련 법률·법률구조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분야에 고루 퍼져 있다. 구성원들도 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사회적 비판의식을 길러온 세대다.
그래서 사법부 내 개혁을 주도하고,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갈 그룹 중 하나라는 시각이 설득력있게 보인다. 한기택 부장판사는 “우리 사회가 지난 시대에 겪어온 바를 판사들도 같이 경험해왔다”면서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학교를 다닌 30대 판사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선배 세대들과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일부 회원들은 사법부 내의 오래된 관행과 제도의 개선 방안을 이론적으로 심도있게 논의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 내의 관료주의·폐쇄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법무 비서관을 지낸 박범계 변호사는 사법부 내 관료주의가 법관으로 하여금 독립적이고, 소신에 기초한 판결을 내리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견지에서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논의도 우리법연구회에서 심도있게 전개됐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모임의 초대 회장을 지낸 오진환 변호사는 “대법관을 연공서열을 떠나 학자·변호사 등 외부의 인재로 충원하게 되면 법원 내 관료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사제도의 개선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이는 지난 3월 사법개혁국민연대(공동 대표 김주덕·김종표·이영구·서성철)가 대법원장에게 제출한 사법개혁 제안서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
보다 파격적인 방법론으로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국민의 이념 성향별 분포에 부합시키는 방안이 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자신의 이념 성향을 진보라고 평가하는 마당에 대법원의 인적 구성도 시대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시각이다. 진보적 성향을 갖는 법조인을 대법관에 다수 임명함으로써 보수 일색의 대법원에 이념적 다양성을 불어넣자는 제안이다.
법관의 판결과 관련해서도 하급심에서의 진보적 판결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2년 전 병역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시환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라 보고 있다. 이정렬 판사의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고통과 현행법상의 제도적 흠결을 치열하게 고민한 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법관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결국 현행법 속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박범계 변호사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판사들은 오랫동안 국민을 눌러온 국가주의적·전체주의적 풍토를 극복하는 측면에서 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면 가급적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부회장인 임광규 변호사는 “병역의무는 헌법상의 의무이므로 무죄 판결은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법관은 판례를 바꾸기에 앞서 그에 합당한 역사의식과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학생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이를 학교가 징계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울대 법대의 조국 교수는 “과거 유신시절 김해여고에서 신앙적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을 학교에서 징계한 적이 있는데 당시 법원은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며 “향후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할 때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병역거부보다는 훨씬 경미한 사안이어서 하급심에서 논란이 예상된다는 말이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유죄 판결을 내린 춘천지법 이철의 판사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죄를 선고했으나 이정렬 판사의 판결에 공감하는 측면도 있다”고 내면의 갈등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실정법과 사법제도가 극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포용해내지 못할 경우 나타날 사법적 혼란상을 미리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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