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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은 차세대 컴퓨터

휴대폰은 차세대 컴퓨터

Your Next Computer

1백19시간 41분 16초. 필라델피아의 한 고교 졸업반 학생 애덤 래포포트가 지난 하누카(유대교 명절)에 선물로 받은 버라이즌 LG 휴대폰으로 통화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그가 휴대폰으로 수다만 떠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스포츠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새 벨소리를 다운받으며,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나는 컴퓨터 자판보다 휴대폰 문자판에 더 익숙하다. 나는 휴대폰인”이라고 말했다.
지구 반바퀴 떨어진 곳에 있는 도쿄의 대학 3학년생 고이소 사토시도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고이소는 최신 첨단기기들의 세계적 중심지에서 산다. 도쿄에 있는 모든 전화의 20%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선 접속망에 연결돼 있다. 도쿄 주민들은 전화로 TV를 보고 책과 잡지를 읽으며 게임도 한다. 그러나 고이소는 그보다 더 간단하고 중요한 일을 할 때도 전화에 의존한다. 그의 조그만 휴대폰 화면에는 매일 아침 학생 금연 장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신하는 금연 메시지가 뜬다. 하루는 “교사들도 금연을 하려고 애쓴다. 참아라”라는 메시지가 떴다.

핀란드의 한 컴퓨터 회사 영업간부 페테르 힐투넨(32)은 유럽의 한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대기 중이었다. 힐투넨은 1994년 핀란드의 아마추어 카레이싱 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나이도 많을 뿐 아니라 업무상 매주 출장을 다녀야 한다. 그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휴대폰으로 스포츠 잡지 ‘리엔토!’를 다운받았다. 센단세 출판사에서 2유로에 각종 스포츠 행사와 운동선수들에 대한 8쪽짜리 사진·텍스트 기사를 제공한다. 그는 “차를 타고 수백km 떨어진 회의 장소에 가는 동안 포뮬러 원 국제자동차경주대회의 결과를 알고 싶을 때 차를 세우지 않고도 결과를 알고 사진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혁명은 충격적일 정도로 빠른 것과 감지조차 못할 정도로 느린 것의 두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애플의 디지털 음악 재생기 i포드의 갑작스러운 인기나 인터넷 음악공유 사이트의 급증 등 빠른 기술 혁명은 즉각적으로 문화 지형도를 재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느린 혁명은 수십년에 거쳐 진행되면서 미세하게 우리의 생활과 근로 방식을 바꾼다. 세계적으로 휴대폰의 보급은 천천히 이뤄지고 있지만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AT&T는 1977년 시카고의 고객 2천명을 위해 최초의 휴대폰을 출시했다. 그 전화기는 모양과 무게가 대충 벽돌 같았다. 이제 그 전화기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고 해마다 5억개 정도의 산뜻하고 화려한 새 휴대폰이 판매된다. 휴대폰 판매량은 TV·전축·PC의 판매량을 압도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15억대의 휴대폰이 있으니 PC의 세배가 넘는 물량이다. 휴대폰은 이제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휴대폰이 더욱 정교해지고 소형화되고 빨라지며 사용자들이 인터넷에 고속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의문이 떠오른다. 휴대폰은 과연 차세대 컴퓨터로 변신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차세대 컴퓨터가 됐다. 요즘 나오는 휴대폰은 90년대 중반의 PC에 맞먹는 처리능력을 갖고 있으며 전력 소모도 1백분의 1에 불과하다. 점점 더 많은 휴대폰이 컴퓨터의 기능을 지니게 되면서 e메일을 보내고 인터넷 접속도 하며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이 8천4백만대나 팔렸다.

그러나 위의 질문을 휴대폰이 PC를 누르거나 대체할 것이냐로 바꾸면 갑자기 논쟁의 대상이 된다. PC 애호가들은 컴퓨터의 널찍한 대형 화면과 키보드를 통해 이뤄지는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는 휴대폰이 너무 작고 인터넷 접속도 느리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해 휴대폰 애호가들은 좀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장차 기술 혁신을 통해 그 한계가 극복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인 휴대용 단말기(PDA) 팜 파일럿의 개발자로 현재 팜원의 기술 책임자인 제프 호킨스는 “20억~30억 인구가 휴대폰은 있어도 모두가 PC를 갖고 있지는 않은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휴대폰이 그들의 디지털 생활이 될 것이다.”

팜원은 휴대폰 업계에서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갖춘 휴대폰을 출시하기 위해 경쟁하는 여러 업체 가운데 하나다. 호킨스의 최신 제품인 산뜻한 소형 트리오 600 스마트폰에는 작은 컴퓨터 자판과 내장형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메모리 추가를 위한 슬롯이 장착돼 있다. 다른 업체들도 독자적인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지난해 가을 출시됐으며 곧 새 버전이 시판될 예정인 노키아의 N-게이지는 비디오게임을 할 수 있다.

곧 공개될 모토롤라 MPx의 디자인은 멋진 ‘이중경첩’형이다. 한쪽으로 열면 일반 휴대폰이지만 다른 축을 따라 열면 휴대폰 문자판을 소형 키보드처럼 쓸 수 있는 e메일 송수신 기기가 된다. 비디오 카메라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안테나, 그리고 구내 Wi-Fi 핫스폿 접속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도 있다. Wi-FI 핫스폿은 사무실·공항·카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고속 무선 인터넷망이다. 전동칫솔 겸용 휴대폰은 아직 없지만 머지않아 나올 만도 하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가트너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판매량은 전체 휴대폰 시장의 5%에 불과하지만 해마다 두배로 는다. 미국에서 이같은 고성능 휴대폰의 주요 고객은 전문 직업인들이다. 직원 수가 80명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법률사무소 ‘고든, 페인블랫’은 최근 변호사들에게 랩톱 컴퓨터 대신 트리오 600을 지급했다. 직원 제프 해켓은 “이 스마트폰이 컴퓨터보다 좋은 점은 항상 함께 있으며, 늘 켜진 상태이고, 언제든 쓸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휴대폰 시장의 최신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따분한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본인들 사이에서 게이타이(携帶) 매니어로 통하는 젊은이들이다. 도쿄의 복잡한 광장에 앉아 있는 10대들은 미친 듯이 서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e메일 잡지를 읽는가 하면 드래건 퀘스트 같은 판타지 게임을 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휴대폰을 워낙 애지중지하는지라 최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어린이날 선물로 휴대폰을 원했다. 애완견은 22%, PC는 고작 10%였다. 아시아의 많은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기능으로 발명된 지 75년이 지난 TV의 기능을 꼽는다. 지난 5월 삼성은 40개의 위성 TV 방송 수신이 가능한 휴대폰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휴대폰이 PC와 비슷한 모습을 갖출 것 같지 않다. 그 유명한 블랙베리 e메일 송수신 기기의 제조사인 ‘리서치 인 모션’의 마케팅 책임자 마크 귀버트는 “휴대폰 업계는 휴대폰은 PC와는 완전히 다른 제품이라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전문가들은 몇해 안으로 휴대폰에 1기가바이트 이상의 플래시 메모리가 내장되면서 휴대폰이 방대한 사진 앨범이나 음악 재생기가 되어 독립형 i포드의 경쟁 상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몇해 전부터 업계는 세계 어디에서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휴대폰의 성능을 십분 활용해 ‘위치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휴대폰은 그런 성능을 바탕으로 곧 운전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지나치는 가게에서 할인구매를 하도록 하며, 데이트 상대 소개 서비스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 기술자들이 모두 휴대폰의 궁극적 전망이 거기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휴대폰이 워드프로세싱이나 웹 브라우징 같은 PC의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 팜원의 호킨스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가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세운 두뇌연구소에 가보면 팜 파일럿과 트리오의 발명자인 그의 사무실에 데스크톱 컴퓨터와 바이오 랩톱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그것들이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운명이라는양 필요없다는 손짓을 한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전화기는 모두 휴대폰으로 통일되고, 모든 네트워크는 광대역 속도로 음성과 인터넷 신호를 수신할 수 있을 것이며, 전화회사들이 신 네트워크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면서 휴대폰 이용료는 불과 몇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호주머니에 늘 [고속] T1선을 갖고 다니는 셈이 된다. 틀림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호킨스는 장담했다. 컴퓨터는 퇴출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휴대성을 선호하고 또 부팅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켜지는 기기를 선호함에 따라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PC 옹호자들은 그같은 예언에 종교 신자들처럼 화를 낸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수천개의 Wi-Fi 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랩톱은 또다른 유형의 휴대용 컴퓨터가 된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올해 말께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랩톱의 절반이 Wi-Fi 시설을 갖춰 랩톱을 가진 사람이 카페나 공원에서 즉석 사무실을 차릴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실용성의 문제도 있다. 휴대폰은 가뜩이나 작은 것이 갈수록 더욱 작아진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작은 화면을 쳐다보기 위해 큰 화면과 마우스 및 키보드를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 수억명은 된다”고 인텔의 숀 멀로니 전무는 말했다. 인텔은 현재 Wi-Fi와 휴대폰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 기술 개발자들 역시 그 만만찮은 문제의 해결에 매달린다. 과학자들은 수십년에 걸친 음성인식 시스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 그 기술을 PDA에 도입했다. 사용자는 몇마디의 구두 명령으로 장비를 제어할 수 있다. 휴대폰은 아직 음성인식을 처리할 만한 용량을 갖고 있지 않지만 무어의 법칙(CPU의 처리용량이 18개월마다 두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에 따라 배터리 수명만 뒷받침되면 휴대폰도 곧 그 수준에 이를 것이다.

다른 개발자들은 키보드의 폐기 대신 개선에 주력한다. 캘리포니아주 샌호제이에 있는 카네스타는 ‘프로젝션 키보드’라는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휴대폰 내부의 레이저 광선이 평평한 바닥에 대형 키보드의 패턴을 방사하고, 휴대폰의 카메라가 사용자의 손가락 동작을 인식한다. 카네스타에서 휴대폰용으로 만드는 첫 제품은 올해 하반기 플러그인 형태로 나올 예정이지만 언젠가는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에 장착될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이 그같은 밝은 미래를 위해 최단 코스를 달려갈 것 같지는 않다.

이동전화 업계의 기술 혁신은 옆길로 새거나 방향을 잘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회사가 기기를 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통신사들이 고객에게 전화기를 팔고 요금을 청구하며 전화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소니·노키아·삼성 같은 기기 메이커는 전화기를 설계하지만 막상 실제 제작은 중국의 공장들에 맡긴다. 또다른 난제는 인터넷과 달리 휴대폰 세계에는 프로그래머들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공개된 단일 프로토콜 세트가 없다는 점이다. 한 전화기용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다른 것들에는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급성장을 부른, 조정되지 않은 비영리적 프로그래밍은 휴대폰 세계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업상의 장벽을 비켜나 오로지 상상력이나 현 기술의 실행 가능성에 의해서만 제약을 받는 상태에서 미래의 휴대폰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뉴스위크는 그런 궁금증을 품고 모토롤라나 넥스텔 같은 기업들의 전화기 제작에 도움을 주는, 창립 34주년을 맞이한 실리콘밸리의 프로그 디자인사에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한달 동안 네명의 전문 기술 디자이너가 달라붙어 매끈한 미래의 휴대폰 ‘페트프로그’의 시방서를 만들었다. 이 휴대폰의 터치스크린은 키패드·키보드·마우스패드·게임 콘솔 등 어떤 인터페이스도 표시할 수 있다. 비디오 채팅이나 웹 서핑용으로 또다른 고해상 스크린이 장착돼 있다. 얇은 카트리지를 삽입하면 휴대폰은 MP3 플레이어·카메라로 변신하거나, 메모리나 대형 키보드를 추가할 수 있다. “이 전화기는 제2의 자아가 될 것”이라고 프로그 창립자 하트멋 에슬링어는 말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페트프로그는 아직 현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에슬링어는 2~3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제는 기업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하고 자기네 사업의 영역 너머를 생각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페트프로그의 모습을 우리가 언젠가는 퇴출 대상이라고 믿는 바로 그 PC인 얇은 소니 바이오 랩톱에서 보여줬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미개척 신기술의 비전에서 우리는 모두 휴대폰인이다.

With EMILY FLYNN in London,
KAY ITOI in Tokyo and B. J. LE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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