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부활한 록 음악계의 악동들
화려하게 부활한 록 음악계의 악동들
The Little Band That Could
록음악계의 가장 악명높은 문제아들이 만나 하나의 그룹을 만든다면? 건즈 앤 로지즈(GNR)의 슬래시·더프 매카건·매트 소럼과 스톤 템플 파일러츠(STP)의 스콧 웨일랜드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벨벳 리볼버가 지난 1년간 첫 음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사람들은 음반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웨일랜드는 지난 10년간 3번이나 마약사범으로 구속됐고, STP의 마지막 투어공연 때는 멤버들과 무대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벨벳 리볼버의 첫 음반 ‘Contraband’를 녹음하는 동안에도 마약 재활센터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슬래시·매카건·소럼 역시 마약 재활센터를 들락거렸고 1996년 멤버들 간의 갈등으로 슬래시가 그룹을 탈퇴한 후 한번도 함께 연주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6월 둘쨋주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그들의 첫 앨범 ‘Contraband’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봤다. 음반 출시 전부터 조짐이 좋았다. 첫번째 싱글 ‘Slither’가 음반 출시 전에 이미 록음악 인기차트 5위권에 진입했고 예상과 달리 평론가들의 호평도 쏟아졌다.
역시 음반 출시 전에 시작된 클럽 투어는 연일 만원 사례를 이뤘다. 클럽 공연 전 무대 뒤에서 만난 웨일랜드(35)는 “이블 크니블(오토바이 공중곡예사)의 쇼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의 공연이 항상 매진된 것은 그가 ‘혹시 깨지고 구르고 불에 타지나 않을까’하는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소화기가 필요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록음악계를 평정한 GNR와 1990대 중반을 주름잡은 STP라는 두 막강팀의 뜻밖의 결합은 가위 폭발적이다. 기타 천재 슬래시는 블루스 색채가 짙은 ‘어레나 록’(주류 팝에 가까운 상업적 록)에서 탈피했고, 웨일랜드의 양성(兩性)적인 기묘한 개성은 예술성을 가미해준다. 그 결과 모태가 된 두 그룹의 음악은 물론 요즘 라디오에 나오는 다른 음악과도 다른, 에너지 넘치는 음반이 탄생됐다.
슬래시(40)는 “나는 멋진 로큰롤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GNR 시절 멤버들과 함께 투병중인 친구를 위한 자선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을 때 그룹을 재결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뭉친 GNR 멤버들은 1년 6개월 전에 공식 해체된 STP의 웨일랜드를 싱어로 영입했다. 슬래시는 “나는 음반업계의 표준에 결코 순응한 적이 없다. 내가 머리를 단정히 깎고 보이밴드를 한다면 상상이 되겠나? 진짜 황당무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그룹의 멤버들 외에 데이브 나바로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쿠슈너가 합류한 벨벳 리볼버는 아직 하나의 응집된 그룹으로 보기는 힘들다. 무대 뒤에서 슬래시와 웨일랜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뷰도 따로 하고 공연 전에 무대를 점검할 때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모두들 아직까지는 각자 분위기를 탐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웨일랜드는 이렇다할 자존심 싸움은 없다고 했다.
슬래시의 경우 록음악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리드싱어 액슬 로즈를 상대해 본 후라 웨일랜드와 작업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슬래시는 “웨일랜드는 늘 먼저 연습을 하려 한다. 그게 다른 점이다. 액슬 로즈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웨일랜드의 문제는 마약이라는 해결책이 있는 문제다. 절대로 이해할 수도, 어떻게 할 도리도 없는 황당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웨일랜드는 마약을 끊었지만 여전히 깡말랐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다. 그는 다시 인터뷰를 하는데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고 결혼 4년차인 아내와 두명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벨벳 리볼버가 탄생한 후 그는 소수의 기자들과만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번을 끝으로 당분간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경찰차 뒤에 앉아 있을 때 기분이 어쨌느냐는둥 마약이나 구속에 관한 질문을 지겹도록 듣는 데 지쳤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 앞에서는 아부하다가 나중에 멋대로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한테 질렸다. 내 앞에서 욕을 해도 좋다. 하지만 할 말이 있다면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내기 전에 내 면전에서 먼저 하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그 기자들의 얼굴을 갈겨주고 싶다.” 한편 슬래시는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공연장을 점검하러 건물에 들어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 그는 “우리가 잘 안될 거라는 사람들한테 통쾌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공연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벳 리볼버는 아마 STP처럼 7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다든지, GNR처럼 전설적인 그룹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도달하기에 너무 높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일랜드는 앞으로 어떻게 되든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는 “STP 시절에는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났다. 갑자기 미친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것 같았다.
땅에 내려 보니 3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또 그런 식으로 10년이 흘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벨벳 리볼버 멤버들은 모두 마약과 관련된 불미스런 일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달라질 기회를 맞았다. 이 그룹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진짜 제대로 즐기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록음악에 목말랐던 음악팬들은 이미 그들의 음악을 진하게 음미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록음악계의 가장 악명높은 문제아들이 만나 하나의 그룹을 만든다면? 건즈 앤 로지즈(GNR)의 슬래시·더프 매카건·매트 소럼과 스톤 템플 파일러츠(STP)의 스콧 웨일랜드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벨벳 리볼버가 지난 1년간 첫 음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동안 사람들은 음반이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웨일랜드는 지난 10년간 3번이나 마약사범으로 구속됐고, STP의 마지막 투어공연 때는 멤버들과 무대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벨벳 리볼버의 첫 음반 ‘Contraband’를 녹음하는 동안에도 마약 재활센터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슬래시·매카건·소럼 역시 마약 재활센터를 들락거렸고 1996년 멤버들 간의 갈등으로 슬래시가 그룹을 탈퇴한 후 한번도 함께 연주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6월 둘쨋주 이 모든 어려움을 딛고 그들의 첫 앨범 ‘Contraband’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봤다. 음반 출시 전부터 조짐이 좋았다. 첫번째 싱글 ‘Slither’가 음반 출시 전에 이미 록음악 인기차트 5위권에 진입했고 예상과 달리 평론가들의 호평도 쏟아졌다.
역시 음반 출시 전에 시작된 클럽 투어는 연일 만원 사례를 이뤘다. 클럽 공연 전 무대 뒤에서 만난 웨일랜드(35)는 “이블 크니블(오토바이 공중곡예사)의 쇼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의 공연이 항상 매진된 것은 그가 ‘혹시 깨지고 구르고 불에 타지나 않을까’하는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소화기가 필요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록음악계를 평정한 GNR와 1990대 중반을 주름잡은 STP라는 두 막강팀의 뜻밖의 결합은 가위 폭발적이다. 기타 천재 슬래시는 블루스 색채가 짙은 ‘어레나 록’(주류 팝에 가까운 상업적 록)에서 탈피했고, 웨일랜드의 양성(兩性)적인 기묘한 개성은 예술성을 가미해준다. 그 결과 모태가 된 두 그룹의 음악은 물론 요즘 라디오에 나오는 다른 음악과도 다른, 에너지 넘치는 음반이 탄생됐다.
슬래시(40)는 “나는 멋진 로큰롤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GNR 시절 멤버들과 함께 투병중인 친구를 위한 자선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을 때 그룹을 재결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뭉친 GNR 멤버들은 1년 6개월 전에 공식 해체된 STP의 웨일랜드를 싱어로 영입했다. 슬래시는 “나는 음반업계의 표준에 결코 순응한 적이 없다. 내가 머리를 단정히 깎고 보이밴드를 한다면 상상이 되겠나? 진짜 황당무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그룹의 멤버들 외에 데이브 나바로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쿠슈너가 합류한 벨벳 리볼버는 아직 하나의 응집된 그룹으로 보기는 힘들다. 무대 뒤에서 슬래시와 웨일랜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뷰도 따로 하고 공연 전에 무대를 점검할 때도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모두들 아직까지는 각자 분위기를 탐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웨일랜드는 이렇다할 자존심 싸움은 없다고 했다.
슬래시의 경우 록음악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리드싱어 액슬 로즈를 상대해 본 후라 웨일랜드와 작업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슬래시는 “웨일랜드는 늘 먼저 연습을 하려 한다. 그게 다른 점이다. 액슬 로즈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게다가 웨일랜드의 문제는 마약이라는 해결책이 있는 문제다. 절대로 이해할 수도, 어떻게 할 도리도 없는 황당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웨일랜드는 마약을 끊었지만 여전히 깡말랐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다. 그는 다시 인터뷰를 하는데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고 결혼 4년차인 아내와 두명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벨벳 리볼버가 탄생한 후 그는 소수의 기자들과만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번을 끝으로 당분간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경찰차 뒤에 앉아 있을 때 기분이 어쨌느냐는둥 마약이나 구속에 관한 질문을 지겹도록 듣는 데 지쳤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 앞에서는 아부하다가 나중에 멋대로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한테 질렸다. 내 앞에서 욕을 해도 좋다. 하지만 할 말이 있다면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내기 전에 내 면전에서 먼저 하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그 기자들의 얼굴을 갈겨주고 싶다.” 한편 슬래시는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공연장을 점검하러 건물에 들어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 그는 “우리가 잘 안될 거라는 사람들한테 통쾌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공연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벳 리볼버는 아마 STP처럼 7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다든지, GNR처럼 전설적인 그룹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도달하기에 너무 높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일랜드는 앞으로 어떻게 되든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는 “STP 시절에는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났다. 갑자기 미친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것 같았다.
땅에 내려 보니 3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또 그런 식으로 10년이 흘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벨벳 리볼버 멤버들은 모두 마약과 관련된 불미스런 일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달라질 기회를 맞았다. 이 그룹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진짜 제대로 즐기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록음악에 목말랐던 음악팬들은 이미 그들의 음악을 진하게 음미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식물성 대체식품' 이노하스, 배우 정일우와 'Merry Giftmas' 바자회 연다
2삼성, 이번엔 진짜 ‘엔비디아 왕국’ 입성할까?...주요점은 ‘결합력’
3도미노피자, 27일 단 하루 ‘SKT T day’ 프로모션 진행
43조 클럽 입성 노리는 LIG넥스원…페루 해군에 함정 핵심장비 수출 성공
59년 세월 야속하네…이동휘-정호연, 끝내 헤어져
6"월가서 들려오는 '엔비디아 매도론'"...이유는?
7불닭 1조 시대 열더니...김동찬 삼양식품 대표 ‘초고속 승진’
8KB국민은행, 대학생해외봉사단 ‘라온아띠 24기’ 36명 선발
9주금공, 12월 보금자리론 금리 동결…연 3.95~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