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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원에도 진출해야죠”

“포뮬러원에도 진출해야죠”

엔지니어 출신인 오 사장은 걸음이 꽤 빠른 편이다. 30년간 쉬지 않고 작업현장을 돌아다녀 붙은 탄력 때문이다. 구두가 닳는 동안 그가 만든 타이어는 더욱 견고해졌다.
30년 회사 생활 중 오세철(57) 금호타이어 사장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1994년이었다. 당시 광주공장 공장장에 부임한 그를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대규모 노사분규 직후였던 터라 노조는 새로 부임한 공장장을 처음부터 불신으로 일관했다. 그는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해도 고개를 돌려버리는 직원들 앞에서 정말 울고 싶었다”고 그때의 심정을 토로한다.


광주 공장을 다 둘러보려면 빠른 걸음으로도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런 공장을 오 사장은 하루에 두 바퀴씩 돌았다. 냉담하기 짝이 없는 직원들에게 말을 붙여 보기도 하고 술 한 잔 하자며 사정도 해 봤다. 매일 6시간씩의 강행군으로 발바닥은 물집이 잡혔다 터지고 아물 틈도 없이 피고름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부임 3개월이 다 돼 가도록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제야 그는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여보, 더 이상은 못 하겠소. 회사에서 나를 믿고 일을 맡겼는데 일은커녕 직원들과 말도 못 나눌 정도로 무능함을 알았으니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소.”

발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던 아내는 그러라고 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대신 제가 돈 벌 궁리를 해 볼 테니 3개월만 더 해보세요.”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다시 공장 대장정에 나섰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호소했다. “우리는 여기서 머물 수 없습니다. 똘똘 뭉쳐 세계로, 미래로 가야 합니다.” 아내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직원들이 하나둘 그의 진심을 알아주기 시작했다. 탄력을 받은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날이 갈수록 즐거워지는 공장 순회는 계속됐다. “직원들과 완전히 화합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경영인지를 톡톡히 배웠다고 한다. “노사 간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올해 초 그는 사장이 됐다. 하지만 10년 전 직원들을 설득해낸 그의 ‘발바닥 경영’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사무실과 공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회사 근무복 차림으로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세븐일레븐’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집에 가서도 새벽까지 일할 때가 있지만, 절대로 일에 중독된 건 아니에요. 건강 하나는 타고난 데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죠.”

그는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다. 연구 ·개발에 대한 욕심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 직원일 때부터 그의 연구열은 남달랐다. 타이어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다 테스트를 하려는데 본사에서 테스트용 차량이 빨리 지원되지 않으면 자신의 승용차에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달리기도 했다.
학구열은 또 어떤가. 고학으로 전남대 화공과를 졸업한 후 바로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그는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졸업 18년 만에 모교에서 고분자공학 석사를 마치고 96년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공계에선 드문 일이다.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춘 그는 늘 직원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지난해 출시한 ‘엑스타STX 26인치’만 해도 그렇다. 18인치짜리가 전부인 시장에 26인치짜리를 만들어 팔자고 그가 제안하자 전 부서의 임직원들은 “빅3(미쉐린 ·브리지스톤 ·굿이어)도 못 만드는 것을 어떻게 세계 9위 업체가 만드느냐”며 반대했다. 그의 대답은 “그러니까 만들자”였다. “시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먼저 뛰어들어야 시장을 리드한다”는 논리였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엑스타STX 26인치’는 현재 미국 시장에서 개당 1,099달러의 고가에도 줄을 서서 사갈 정도로 잘 팔리고 있다.

그의 이런 돌파력은 자동 생산 시스템을 갖춘 평택 공장을 지을 때도 발휘됐다. 평택 공장은 9개 독립 공정을 하나의 공정으로 통합해 온라인으로 운영된다. 그만큼 타이어 품질의 균일도를 높일 수 있다. 이 공장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건설된 자동화 타이어 공장이다. 최근 그는 내친김에 ‘엑스타STX 28인치’도 개발해 냈다. 그는 “타이어가 차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면서 사이즈를 키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여기에 우리의 피나는 연구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가 일반 타이어와는 달리 고속주행 ·코너링 성능이 보강된 고성능(UHP) 타이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된 것도 그가 틈새시장이 커질 것을 미리 읽은 결과였다. 지난 4월에는 사계절용 UHP 타이어를 출시하기도 했다.
지속적인 연구 ·개발 통한 제품개발은 서둘러도 출시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이미 다음, 그 다음 제품을 다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시장이 생길 것을 확신했을 때 하나씩 터트리기만 하면 되죠.” 그러려면 연구 ·개발 쪽에서 늘 준비된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연구원이나 엔지니어라고 해서 영업이나 시장상황에 무심한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시장을 예측하지 못하는 연구원이 어떻게 시장을 리드할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임원 시절 해외 연구센터를 방문해 연구원들로부터 보고받을 때도 현지 시장상황과 실적이 빠져 있으면 불호령을 하곤 했다.
그에겐 꿈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금호타이어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원(F1)에 진출하는 것이다. “2008년까지는 어떻게든 F1용 타이어를 만들어내고야 말겠습니다.

그것은 브랜드 자존심이 걸린 문제죠.” 또 하나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타이어 메이커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특히 기술에서만큼은 탑5에 올라서겠다는 각오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1조4,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외 시장에서의 브랜드 파워는 약한 것이 사실이다. 오 사장은 힘겨웠던 94년의 강행군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젠 뛰어야죠. 발바닥이 닳으면 닳을수록 더 견고한 타이어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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