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소비가 하나로 공생의 에너지 시대
생산과 소비가 하나로 공생의 에너지 시대
People Power
테리 페니의 생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기업 중역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 콜로라도주 골든에 위치한 국립 재생 에너지 연구소(NREL)의 엔지니어인 그는 한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한가지에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타입이랄까. 사실 그는 로키 산맥 높은 곳에 위치한 자신의 오두막에 처박혀 사흘 동안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열과 배터리에만 의존해 지내는 게 낙이다.
그러나 겉으론 황당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날 때를 아는 재주가 그에겐 있는 것 같다. 1991년 당시 그는 미국의 자동차회사와 연료회사 중역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존의 엔진뿐 아니라 배터리로도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시제품 개발을 위한 정부 예산 지원을 제안했다. 당시 중역들은 비관적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예산을 지원받았다”고 그는 말한다. 7년 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어스의 판매에 나섰고, 이제 미국 자동차회사들도 그 뒤를 쫓고 있다. 그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요즘 페니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 에너지의 미래를 위해 자동차가 떠맡게 될 색다른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 중이다. 그는 연구소 내 주차장을 가리키며 “저 곳에 주차된 차들을 보라. 전력회사들은 저 자동차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이란 대개 풀가동되지 않는 발전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도 약간만 바꾸면 강력한 소형 발전소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만일 NREL 내 주차장에 주차된 수백대의 자동차를 새로운 전력 공급망에 연결하면 소형 발전소와 맞먹는 MW급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발 더 나아가 만일 전세계 주차장에 주차된 모든 자동차를 전력 공급망에 연결한다면 현재 전세계가 소비하는 전기의 10배 가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자동차를 발전소로 변모시킨다는 페니의 생각은 에너지 퍼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모른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영원히 석유와 각종 탄화수소 에너지에 의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크든 작든 폭넓은 에너지 자원의 활용에 달려 있다는 데 동의한다. 태양광과 풍력, 자동차와 자하실에 설치된 수소 연료전지, 그리고 옥수수 등 식물에서 추출한 연료를 태워 가동되는 마이크로 터빈 등이 좋은 예다. 현재로선 어떤 에너지 공급망도 이처럼 뒤죽박죽인 에너지원을 수용할 수 없다.
전기는 대개 한 방향으로 흐르며 대규모 중앙 발전소에서 가정·공장·도시로 공급된다. 미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엮는 30만km 이상의 전선들이 전세계 전기 공급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전기를 광대한 지역으로 나른다. 평균적으로 이 에너지의 8%가 전선을 통한 이동 중에 상실된다. 지난해 미 동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기존의 전력 공급망이 지금의 에너지 욕구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만일 에너지 공급망이 더욱 효율적이라면, 다시 말해 인터넷처럼 중앙 시스템을 벗어나 더욱 분산화돼 있다면 에너지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평균 거리가 줄어 더욱 효율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에너지 공급망을 과부하·폭풍·테러리스트 등의 위협으로부터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바로 융통성있고 다이내믹한 쌍방향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를테면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동시에 수백만가구로부터 남는 에너지를 회수하는 시스템이 그것이다. NREL의 수석 과학자 존 터너는 “그것은 근본적으로 에너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이라며 “기존 에너지 생산·사용 방법의 전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화석연료와 재사용 가능 연료 중 어느 게 더 좋은지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두가지 연료는 개념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저마다 타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옹호론자들은 석유보다 ℓ당 많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연료는 없다고 주장한다. 옳은 지적이다(엑슨모빌사의 중역들은 주유소 한곳이 평균적으로 공급하는 에너지는 2백평방km 면적의 태양전지판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능가한다는 점을 즐겨 지적한다). 또 석유는 거의 ‘완제품’ 상태로 지상으로 끌어올려지지만 수소는 물 속에 전류를 흘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전기분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바로 이것이 수소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된다. 수소는 어떤 에너지를 사용해도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는 가정이나 공장뿐 아니라 자동차에 필요한 전기도 공급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지금은 주로 석유에 의존하는 운송용 에너지뿐 아니라 석탄·핵·천연가스를 이용한 전력도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은 최초의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자동차는 전력이 남아돌아가는 발전기인 셈이다. 연료탱크에는 가솔린 대신 연료전지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는 수소가 가득 들어 있다. 탱크가 거의 비면 수소 충전소에서 다시 채워넣을 수 있다. 원한다면 직장에 하루 종일 있는 동안 집에서 태양전지와 풍차가 생산해서 비축해둔 수소를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많지 않고 집까지 가는데 연료가 남아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하면 여유분을 언제든지 에너지업체에 팔 수 있다.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최대 전력 소비시간에 남은 전력을 현지 전력 공급망으로 방사하도록 가정 에너지 컴퓨터를 프로그램하면 된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자동차의 플러그를 전력 공급망에 꽂아 에너지를 팔 수 있다.
이론상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력산업에서 닷컴처럼 많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수소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집에서 재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수소 충전소가 곳곳에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 태양전지·마이크로 터빈 등 전력 생산 설비에 대한 소비자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게다가 구멍가게식 에너지 공급업이라는 전례없는 사업이 등장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전력업계는 수많은 표준과 사양을 개발해야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현재 많은 우수 엔지니어들이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 국가에서 안이한 독점체제로 남아 있는 에너지회사들이 변화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하이브리드 전력 시스템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력업계가 발전소같이 거대하고 비싼 인프라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동차업계를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회사의 경영진은 수십만대씩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선가 조립 라인에서 자동차가 2초마다 한대씩 생산되고 있다”고 NREL의 터너는 말했다. “에너지업계는 자동차업계에서 고속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미 전력업계가 조금씩 변화하는 조짐이 있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우려에서 1993년 태양력 사용을 권장하는 야심찬 계획에 착수했다. 현재 일본의 약 17만호 주택이 에너지회사의 공급망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도쿄 북쪽의 우쓰노미야(宇都宮)에서 사는 세 자녀의 아버지로 번역가인 이오카와 히토시는 1997년 3만3천달러(그중 약 1만달러는 정부 보조금)를 들여 자기 집 지붕에 태양전지판을 설치, 전력회사에 전기를 판매함으로써 매년 약 4백60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정도면 전기요금을 내고도 남는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험하길 좋아한다”고 그는 말했다.
새로운 것을 시험하는 추세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의사는 최근 뉴질랜드 완가토의 별장에 풍력 터빈을 설치했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생산된 전력에 대해서는 현지의 발전회사가 대금을 지불한다.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에서 사는 이그나시오 벨라는 2백34개의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자신이 운영하는 치즈 공장의 냉장고에 전력을 공급할 뿐 아니라 남은 전력을 현지 에너지회사 PG&E에 판매한다. 샌디에이고 샌안젤로 구역의 1백호가 넘는 맥맨션 주택들에는 전기요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독일에서는 정부의 야심찬 ‘10만호 지붕’ 계획과 세계 최고의 순수 미터 요금제 덕택에 풍력 및 태양력을 이용하는 수천 가정과 기업체가 현지 전력 공급망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근년 들어 그런 가정 에너지 팬들의 기호에 맞춘 소기업들이 많은 혁신을 이루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리뉴어블 디바이시스사는 대형 풍향계처럼 보이지만 연간 4천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지붕 설치 풍력 발전기를 판매하고 있다(일반 가정의 연간 평균 전력 소비량은 1만∼1만5천kwh).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에너지회사 플러그파워는 가정용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벽장 크기의 수소 연료전지인 그 시스템은 난방·온수에 사용될 뿐 아니라 전력을 생산하고 수소 동력 자동차에까지 동력을 공급한다. BP 솔라사는 지난 5월 창문과 채광창을 소형 발전소로 변환시킬 가능성이 있는 태양력 전기 유리를 선보였다.
전력 공급망을 개방하는 것은 인도처럼 전력의 공급이 수요에 한참 못미치는 개도국들에 특히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인도의 설탕 생산업자들은 현지 발전소로부터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자 사탕수수에서 당분을 짜고 남은 깍지를 이용해 자가 발전을 시작했다. 인도 카르나타카와 마하라슈트라에서는 설탕 생산업자들이 자가 발전으로 연간 5백MW의 전력을 생산, 그중 일부를 에너지회사에 팔고 있다. 이런 농장에서 생산된 전력은 몇년 안에 10배로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인도설탕협회의 M. N. 라오는 말했다.
인도 정부도 에너지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으로 그런 노력을 장려하고 있다. “전력 공급망에 판매되는 전력은 설탕 공장의 경영 여건을 개선할 뿐 아니라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도 도움이 된다”고 뉴델리의 정부 관리는 말했다.
최대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대중이 하이브리드 전력 공급망을 대폭 수용할지 여부다. 주차시 플러그를 꽂았는지 꽂지 않았는지 기억해야 하는데 짜증을 내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비아 디아즈는 그런 일에 전혀 짜증을 내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날씨에 따라 세탁을 해야 할지 판단한다. 날씨가 흐리면 그녀는 바지·양말·티셔츠를 나중에 세탁하기 위해 쌓아둔다. 그러나 해가 비추면 모든 시스템이 풀가동된다.
디아즈와 남편 라파엘(현지 견인업체 트럭기사)은 2003년 8월부터 캘리포니아주 왓슨빌 비스타 몬타냐 지구에 있는 2백57호의 제로 에너지 주택 가운데 하나에서 세 자녀와 살고 있다. 그 집은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한 건축 기법으로 지어졌으며 태양력 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다. 디아즈는 가족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충당해주는 붉은 타일 지붕의 태양전지판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그녀는 대부분 비디오게임에 사용된다고 농담했다).
그녀는 흰옷을 세탁할지 결정하기 전에 늘 전력 미터기를 점검한다. “미터기가 세탁실 바로 곁에 있어서 우리가 전력을 얼마나 생산하는지와 사용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디아즈 가족은 관리비의 3분의 2를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집을 구입했다. “이전엔 우리는 에너지에 무심했지만 지금은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With KAY ITOI in Tokyo and
SUDIP MAZUMDAR in New Delhi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테리 페니의 생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기업 중역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 콜로라도주 골든에 위치한 국립 재생 에너지 연구소(NREL)의 엔지니어인 그는 한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한가지에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타입이랄까. 사실 그는 로키 산맥 높은 곳에 위치한 자신의 오두막에 처박혀 사흘 동안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열과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열과 배터리에만 의존해 지내는 게 낙이다.
그러나 겉으론 황당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날 때를 아는 재주가 그에겐 있는 것 같다. 1991년 당시 그는 미국의 자동차회사와 연료회사 중역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존의 엔진뿐 아니라 배터리로도 달릴 수 있는 자동차 시제품 개발을 위한 정부 예산 지원을 제안했다. 당시 중역들은 비관적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예산을 지원받았다”고 그는 말한다. 7년 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어스의 판매에 나섰고, 이제 미국 자동차회사들도 그 뒤를 쫓고 있다. 그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요즘 페니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 에너지의 미래를 위해 자동차가 떠맡게 될 색다른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 중이다. 그는 연구소 내 주차장을 가리키며 “저 곳에 주차된 차들을 보라. 전력회사들은 저 자동차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이란 대개 풀가동되지 않는 발전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도 약간만 바꾸면 강력한 소형 발전소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만일 NREL 내 주차장에 주차된 수백대의 자동차를 새로운 전력 공급망에 연결하면 소형 발전소와 맞먹는 MW급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발 더 나아가 만일 전세계 주차장에 주차된 모든 자동차를 전력 공급망에 연결한다면 현재 전세계가 소비하는 전기의 10배 가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활용하지 못하는 자산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자동차를 발전소로 변모시킨다는 페니의 생각은 에너지 퍼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지 모른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영원히 석유와 각종 탄화수소 에너지에 의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크든 작든 폭넓은 에너지 자원의 활용에 달려 있다는 데 동의한다. 태양광과 풍력, 자동차와 자하실에 설치된 수소 연료전지, 그리고 옥수수 등 식물에서 추출한 연료를 태워 가동되는 마이크로 터빈 등이 좋은 예다. 현재로선 어떤 에너지 공급망도 이처럼 뒤죽박죽인 에너지원을 수용할 수 없다.
전기는 대개 한 방향으로 흐르며 대규모 중앙 발전소에서 가정·공장·도시로 공급된다. 미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엮는 30만km 이상의 전선들이 전세계 전기 공급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전기를 광대한 지역으로 나른다. 평균적으로 이 에너지의 8%가 전선을 통한 이동 중에 상실된다. 지난해 미 동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기존의 전력 공급망이 지금의 에너지 욕구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만일 에너지 공급망이 더욱 효율적이라면, 다시 말해 인터넷처럼 중앙 시스템을 벗어나 더욱 분산화돼 있다면 에너지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평균 거리가 줄어 더욱 효율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에너지 공급망을 과부하·폭풍·테러리스트 등의 위협으로부터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바로 융통성있고 다이내믹한 쌍방향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를테면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동시에 수백만가구로부터 남는 에너지를 회수하는 시스템이 그것이다. NREL의 수석 과학자 존 터너는 “그것은 근본적으로 에너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이라며 “기존 에너지 생산·사용 방법의 전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화석연료와 재사용 가능 연료 중 어느 게 더 좋은지를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두가지 연료는 개념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저마다 타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옹호론자들은 석유보다 ℓ당 많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연료는 없다고 주장한다. 옳은 지적이다(엑슨모빌사의 중역들은 주유소 한곳이 평균적으로 공급하는 에너지는 2백평방km 면적의 태양전지판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능가한다는 점을 즐겨 지적한다). 또 석유는 거의 ‘완제품’ 상태로 지상으로 끌어올려지지만 수소는 물 속에 전류를 흘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전기분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바로 이것이 수소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된다. 수소는 어떤 에너지를 사용해도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수소는 가정이나 공장뿐 아니라 자동차에 필요한 전기도 공급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선 지금은 주로 석유에 의존하는 운송용 에너지뿐 아니라 석탄·핵·천연가스를 이용한 전력도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은 최초의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자동차는 전력이 남아돌아가는 발전기인 셈이다. 연료탱크에는 가솔린 대신 연료전지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는 수소가 가득 들어 있다. 탱크가 거의 비면 수소 충전소에서 다시 채워넣을 수 있다. 원한다면 직장에 하루 종일 있는 동안 집에서 태양전지와 풍차가 생산해서 비축해둔 수소를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많지 않고 집까지 가는데 연료가 남아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하면 여유분을 언제든지 에너지업체에 팔 수 있다.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최대 전력 소비시간에 남은 전력을 현지 전력 공급망으로 방사하도록 가정 에너지 컴퓨터를 프로그램하면 된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자동차의 플러그를 전력 공급망에 꽂아 에너지를 팔 수 있다.
이론상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력산업에서 닷컴처럼 많은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수소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집에서 재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수소 충전소가 곳곳에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 태양전지·마이크로 터빈 등 전력 생산 설비에 대한 소비자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게다가 구멍가게식 에너지 공급업이라는 전례없는 사업이 등장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전력업계는 수많은 표준과 사양을 개발해야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현재 많은 우수 엔지니어들이 그 작업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 국가에서 안이한 독점체제로 남아 있는 에너지회사들이 변화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하이브리드 전력 시스템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력업계가 발전소같이 거대하고 비싼 인프라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동차업계를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회사의 경영진은 수십만대씩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선가 조립 라인에서 자동차가 2초마다 한대씩 생산되고 있다”고 NREL의 터너는 말했다. “에너지업계는 자동차업계에서 고속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미 전력업계가 조금씩 변화하는 조짐이 있다. 일본은 에너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우려에서 1993년 태양력 사용을 권장하는 야심찬 계획에 착수했다. 현재 일본의 약 17만호 주택이 에너지회사의 공급망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도쿄 북쪽의 우쓰노미야(宇都宮)에서 사는 세 자녀의 아버지로 번역가인 이오카와 히토시는 1997년 3만3천달러(그중 약 1만달러는 정부 보조금)를 들여 자기 집 지붕에 태양전지판을 설치, 전력회사에 전기를 판매함으로써 매년 약 4백60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정도면 전기요금을 내고도 남는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험하길 좋아한다”고 그는 말했다.
새로운 것을 시험하는 추세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의사는 최근 뉴질랜드 완가토의 별장에 풍력 터빈을 설치했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생산된 전력에 대해서는 현지의 발전회사가 대금을 지불한다.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에서 사는 이그나시오 벨라는 2백34개의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자신이 운영하는 치즈 공장의 냉장고에 전력을 공급할 뿐 아니라 남은 전력을 현지 에너지회사 PG&E에 판매한다. 샌디에이고 샌안젤로 구역의 1백호가 넘는 맥맨션 주택들에는 전기요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독일에서는 정부의 야심찬 ‘10만호 지붕’ 계획과 세계 최고의 순수 미터 요금제 덕택에 풍력 및 태양력을 이용하는 수천 가정과 기업체가 현지 전력 공급망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근년 들어 그런 가정 에너지 팬들의 기호에 맞춘 소기업들이 많은 혁신을 이루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리뉴어블 디바이시스사는 대형 풍향계처럼 보이지만 연간 4천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지붕 설치 풍력 발전기를 판매하고 있다(일반 가정의 연간 평균 전력 소비량은 1만∼1만5천kwh).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에너지회사 플러그파워는 가정용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벽장 크기의 수소 연료전지인 그 시스템은 난방·온수에 사용될 뿐 아니라 전력을 생산하고 수소 동력 자동차에까지 동력을 공급한다. BP 솔라사는 지난 5월 창문과 채광창을 소형 발전소로 변환시킬 가능성이 있는 태양력 전기 유리를 선보였다.
전력 공급망을 개방하는 것은 인도처럼 전력의 공급이 수요에 한참 못미치는 개도국들에 특히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인도의 설탕 생산업자들은 현지 발전소로부터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자 사탕수수에서 당분을 짜고 남은 깍지를 이용해 자가 발전을 시작했다. 인도 카르나타카와 마하라슈트라에서는 설탕 생산업자들이 자가 발전으로 연간 5백MW의 전력을 생산, 그중 일부를 에너지회사에 팔고 있다. 이런 농장에서 생산된 전력은 몇년 안에 10배로 늘 것으로 전망된다고 인도설탕협회의 M. N. 라오는 말했다.
인도 정부도 에너지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으로 그런 노력을 장려하고 있다. “전력 공급망에 판매되는 전력은 설탕 공장의 경영 여건을 개선할 뿐 아니라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도 도움이 된다”고 뉴델리의 정부 관리는 말했다.
최대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대중이 하이브리드 전력 공급망을 대폭 수용할지 여부다. 주차시 플러그를 꽂았는지 꽂지 않았는지 기억해야 하는데 짜증을 내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실비아 디아즈는 그런 일에 전혀 짜증을 내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날씨에 따라 세탁을 해야 할지 판단한다. 날씨가 흐리면 그녀는 바지·양말·티셔츠를 나중에 세탁하기 위해 쌓아둔다. 그러나 해가 비추면 모든 시스템이 풀가동된다.
디아즈와 남편 라파엘(현지 견인업체 트럭기사)은 2003년 8월부터 캘리포니아주 왓슨빌 비스타 몬타냐 지구에 있는 2백57호의 제로 에너지 주택 가운데 하나에서 세 자녀와 살고 있다. 그 집은 에너지 효율성을 제고한 건축 기법으로 지어졌으며 태양력 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다. 디아즈는 가족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충당해주는 붉은 타일 지붕의 태양전지판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그녀는 대부분 비디오게임에 사용된다고 농담했다).
그녀는 흰옷을 세탁할지 결정하기 전에 늘 전력 미터기를 점검한다. “미터기가 세탁실 바로 곁에 있어서 우리가 전력을 얼마나 생산하는지와 사용하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디아즈 가족은 관리비의 3분의 2를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집을 구입했다. “이전엔 우리는 에너지에 무심했지만 지금은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With KAY ITOI in Tokyo and
SUDIP MAZUMDAR in New Del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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