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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상암구장 관리사업소장…“주력은 쇼핑몰, 축구장은 부업”

정인준 상암구장 관리사업소장…“주력은 쇼핑몰, 축구장은 부업”

정인준 소장
요즘 서울 상암구장을 관리하는 관리사업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구장에서 열리는 경기는 물론이고 구장 안의 ‘월드컵몰’에 밀려드는 수많은 인파를 관리·감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상암구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연수단만 한 달에 서너 팀 이상 방문한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기장 흑자 운영과 구장 내 상가(몰) 운영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이 끝난 무대는 쓸쓸하고 경기가 끝난 운동장은 허전하다. 낭만적일 수도 있는 분위기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텅 빈 경기장은 상당한 낭비다. 지난 2002년 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한국과 일본의 20개 경기장. 이곳들은 지금 텅 비어 있다.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20~30억원의 ‘세금 먹는 하마’가 돼 있다.

‘월드컵 4강’ 이후 ‘또 다른 기적’ 그러나 유일하게 예외인 곳이 한군데 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그곳이다. 이곳은 요즘 평일에도 2~3만 명의 인파가 물결치고, 주말에는 두 배 가까운 5~6만여 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2만5,500평의 공간에 인산인해를 이룬다.경기장을 하나의 기업으로 볼 때, 이곳은 완전한 흑자기업이다. 월드컵을 치른 2002년 21억원 적자에서 2003년 60억원 흑자, 올해는 70억원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154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이곳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축구 전문지인 ‘월드 사커’가 ‘세계 10대 경기장’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서울시 산하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관리사업소를 맡고 있는 정인준 소장을 만났다. 정소장은 “운영이 아니라 경영을 했던 점이 주효했다”면서 “이제부터는 축구 허브가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장인지 쇼핑·놀이공간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이곳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외국에서 많이 오는데, 다들 놀랍니다. 대형 경기장에 대형 몰(mall)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이 유일할 겁니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타임스 기자가 4시간 동안 여기(소장실)서 인터뷰를 하고 갔는데, 미국에도 이런 시설은 없다고 하더군요.”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옵니까? “많이 오는 편입니다. 올 초에는 싱가포르에서 제안을 해왔는데 칼랑(kallang) 지구라는 곳에 80만평 규모의 경기장 몰을 짓는다며 컨소시엄으로 참가해 달라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운영 노하우를 수출하라는 거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만 흑자인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월드컵이 끝난 지난해 3월에 부임했는데, 그 전 분들의 공이 큽니다. 워낙 치밀하게 준비를 했으니까요. 원래 논의됐던 뚝섬 대신 상암을 선택한 것은 집객(集客)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었고, 또 축구장이 아니라 쇼핑몰을 짓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했죠. 소속 직원들도 세일즈맨처럼 업체를 유치하러 다녔어요. (유치가)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공무원 생각’으로 했다면 흑자는 불가능했겠죠.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그저 그렇게’ 추진했던 다른 경기장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겨우 ‘스포츠센터’쯤 유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조를 잘 지었다고 없던 도시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 텐데요. “그렇죠.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경기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야 몰에 오는 손님도 많아지고, 몰에 손님이 많아야 경기장도 활성화되거든요. 장사가 안 되는데 몰에 비싼 임대료 주고 들어와 장사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점포들의 영업이익이 늘어야 수수료가 늘어나는 구조라 항상 직원들에게 ‘공무원 티 내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은 영업점주들이거든요.”

‘경영 마인드’가 상당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사실 누가 그 정도 못하겠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막상 여기 와서 일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한 예로 축구장은 1년 365일 중 155일은 쓰지 못합니다. 잔디 보호를 위해서죠. 1년에 30게임밖에 소화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운영’ 차원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경영’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곳이 여기입니다.” 실제로 상암구장의 흑자는 이런 틈새를 잘 활용하고 있는 그의 아이디어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난해에는 오페라 ‘투란도트’를 국내 처음으로 경기장에 유치, 잔디 위 좌석의 경우 좌석당 50만원을 받아 상당한 수익을 남겼는데, 이후 전국의 각 경기장이 경쟁적으로 오페라 유치에 나섰을 정도다. 전광판을 이용한 영화 시사회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 10월18일 영화 ‘If only’ 시사회를 열었는데 관객이 무려 4,000명이나 됐다. 국내 영화 시사회 사상 최대 규모였다. 최근에는 ‘4강 잔디’라는 이름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상암구장 잔디를 맥주 캔 크기의 용기에 넣어 파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물론 정소장 혼자 이룬 결과는 아니지만 이런 노력은 흔치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처음 입점할 때 연간 임대료 91억원을 써 냈던 할인점 까르푸는 국내 28개점, 중국 400여개점을 포함해 아시아 1위 매출을 올리고 있고, 멀티플렉스인 CGV 또한 지난해까지는 3위 수준이었으나 올해 들어 매출 기준 1위에 올라섰다. 이 모든 것이 정규직 43명을 포함한 75명이 이룬 결과다. 덕분에 이곳을 다른 단체와 통합하려던 이명박 서울시장도 당초 의사를 철회했을 정도다.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면. “조직은 꿈틀대지 않으면 언제든지 죽음이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익을 취할 수도 없습니다. 공공기관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도전해야죠. 혁신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한테 가는 거니까요. 예전 같으면 앉아서 일처리를 했을 텐데 이제는 경기 유치를 위해 축구협회에 가서 영업을 합니다.” 사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성향이다. 이전에 재직했던 곳이 벽제 장묘사업소였는데, 그는 “그곳에서 원없이 욕을 먹어봤다”고 말했다. 고양시 주민들이 그의 화형식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음울한 곳을 현재의 밝고 환한 곳으로 만들어놓았다. 떠들썩했던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 기획단장 때도 “원성 좀 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는 상당하다. “짱답다”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정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말 기분 좋았던 사례”를 슬쩍 말했다. “얼마 전 경기장 덕분에 주변 집값이 평당 1,000만원 정도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낸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정인준 소장
1952년 경남 밀양 生
성균관대 경영학과·한양대 도시행정학 석사
75~84년 군 복무
97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총무처장
99년 서울시 장묘사업소장
2003년~現 서울월드컵경기장관리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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