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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추천 도서… “근로자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

「이코노미스트」 추천 도서… “근로자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좌),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우).
생활용품기업 유한킴벌리의 혁신이 화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1980년대 중반 100% 가까웠던 시장점유율이 18%까지 떨어지고, 10여 년간의 노사분규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다가 2000년대 들어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회복한 회사. 지난 20년 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많은 기업이 유한킴벌리의 혁신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다. 유한킴벌리의 성공 신화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문국현 사장은 미국 듀크 대학에서 성공 사례를 발표했고, 2003년부터는 합작사인 킴벌리 클라크의 북아시아 법인들을 책임지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혁신의 세계화’를 돕고 있는 사람이 바로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다. 그는 지난 3년여 동안 유한킴벌리의 혁신을 연구한 후 “유한킴벌리가 세계 기업들의 진로를 보여줬다”며 ‘유한킴벌리 혁신 모델’의 전도사로 나섰다. 공동 저서『세계가 배우는 한국 기업의 희망 유한킴벌리』는 보고서와 교재로만 쓰이던 내용을 쉽게 재구성한 것이다. 두 저자는 “새로운 혁신 모델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CEO와 경영학자의 공동 저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두 분이 함께 책을 낸 계기가 뭔가요? 조동성:“지난 5월 미국 듀크대에서 유한킴벌리의 혁신 사례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만 전파할 게 아니라 이를 경영자들과 일반인에게도 알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기업에 대한 책은 지금까지 우화나 에피소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은퇴한 경영자들의 회고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유한킴벌리의 혁신 모델을 여덟 가지 사례로 정리하고 문제의 해결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현실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입니다.” 문국현:“유한킴벌리의 혁신에 대한 책이 몇몇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학자의 연구 결과로는 처음입니다. 은퇴한 뒤 책을 내면 옛날 얘기가 될 텐데 시의성을 살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한킴벌리의 혁신은 어떻게 진행됐고,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지요. 문국현: “고성과(高成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첫째 투명·윤리 경영, 둘째 사회성·환경성 강화, 셋째 직원들에 대한 평생학습을 통해 생산성 높은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요. 언뜻 보기에 이 같은 경영방식은 기업이 수익을 높이는 일과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일 다 하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유한킴벌리의 성공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기업 내부나 가족, 지역·국제사회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생산성을 개선시킬 수 있었지요.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광고비도 줄었습니다. 정직해야 기업이 성장하고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저는 그것이 곧 고객과 시장 중심의 사고라고 봅니다. 혁신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문국현: “지지를 받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84년 마스터 플랜을 세우고 주주 설득에 나섰는데, 합의를 보는 데만 7년이 걸렸습니다. 이 계획이 비현실적으로 들렸는지 외국의 주주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근로자를 대차대조표로 보자” 조 교수님은 유한킴벌리를 어떻게 보시나요? 조동성: “유한킴벌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경영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19세기에 경영은 공장 관리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이후 직원과 고객이 경영자의 시야로 들어왔지요. 이제 경영은 사회와 환경까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그만큼 기업이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입니다. 기업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기업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발전시켜야 가치를 키울 수 있습니다. 사회·환경경영이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문 사장이 이 같은 사회·환경경영을 해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아직 이론도 정립되지 않았는데 현실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공’했다는 것이지요.” 유한킴벌리 혁신의 또 다른 특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조동성: 재무제표는 크게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로 이뤄져 있습니다. 손익계산서는 비용을 줄여 매출과 이익을 높이자는 것이고, 대차대조표는 부채를 줄여 자산 가치를 올리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경영은 이 둘 중 손익계산서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차대조표를 더 중시할 것입니다. 이익보다는 자산에 더 신경쓴다는 얘기지요. 근로자를 손익계산서로 따지면 비용이 됩니다. 그러면 구조조정을 할 때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차대조표로 본다면 근로자는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 됩니다. 문 사장의 경영 핵심은 바로 인적 자산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렸다는 것입니다.”

“유한킴벌리 모델의 세계화 가능” 문 사장께서는 개방된 조직을 강조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문국현: “폐쇄적 경영을 고집하는 기업은 수명이 50년을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조직화되고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변화에 둔감해 리스크도 큽니다. 그러나 개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변화에 적응하지요. 그래서 기업 조직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30여 년간 빠르게 성장했다 해도 그 이후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만일 문 사장이 없어도 유한킴벌리는 지금과 같은 혁신을 계속할 것으로 보시나요? 문국현: “물론입니다. 유한킴벌리의 수많은 임직원에게는 이미 혁신의 정신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제가 없어도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한킴벌리의 사례가 어느 정도 해외에 전파되고 있는지요. 문국현: “2003년 3월부터 일본·중국·대만·홍콩·몽골 등 킴벌리 클라크의 북아시아 법인의 경영을 맡아 유한킴벌리 모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정직과 투명 경영, 고객 중심 경영, 종업원 역량 강화 등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 성과를 냈습니다. 북아시아 법인이 경영성과를 내자 미국이나 유럽, 남미의 킴벌리 법인들과 유럽의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도 우리 회사에 찾아와 사례를 배워갔습니다.” 조동성: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로 사업을 확대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현지에 적용하는 것을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유한킴벌리의 북아시아 법인 경영은 로컬 스탠더드를 세계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른바 ‘로커벌리제이션(Locabalization)’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대단히 희귀한 사례며, 유한킴벌리의 모델이 세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가적 도입으로 사회 개선해야” 유한킴벌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국현: “유한킴벌리의 위기 대처 과정에서 이룬 성과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생활용품 시장처럼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유럽·미국·일본 등 전 세계 강자들이 다 모여 있는 시장은 흔치 않습니다. 제가 사장에 취임할 당시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서 회사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원칙을 바탕으로 한 고객·사회·종업원의 신뢰와 품질을 높이는 시스템을 만들게 됐습니다.” 유한킴벌리 모델을 정부 차원에서 도입하는 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문국현: “지난해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사람입국 신경쟁력위원회’에서 우리 모델을 업종이나 기업 규모에 맞춰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노동연구원 산하 뉴패러다임센터에서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시범 기업들에 우리 시스템을 가르쳐 주고 있지요. 앞으로 이런 컨설턴트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 단위로 늘린다면 전파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봅니다.” 유한킴벌리 모델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설명해 주시지요. 문국현: “유한킴벌리 모델은 일자리를 늘리는 모델입니다. 계획대로라면 전국적으로 일자리를 200만 개 이상 늘릴 수 있다고 봅니다. 정리해고 없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는 모델이라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지요. 기업뿐 아니라 사회도 비용 대비 성과를 최대화한다면 나라 전체가 고성과 조직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조동성: “시설보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는 명제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보다 부동산이나 자산에 돈을 씁니다. 연구소를 짓는 데 돈을 쓰지 연구원 교육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적용시키려면 유형 자산보다 사람에게 투자할 때 혜택을 보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1949년 서울生
1971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6년 미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1989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現)
2005년 한국경영학회 회장(現)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1949년 서울生
1972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1974년 유한킴벌리 입사
1995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現)
2004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사람입국 신경쟁력위원회’ 위원장(現)
유한킴벌리의 혁신은…


4조 근무제로 ‘내부 만족’
화장지·기저귀 등 생활용품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했던 유한킴벌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 및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95년 문국현 사장 취임 후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회사의 체질과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문 사장 취임 후 매출은 2배 이상, 순이익은 6배 이상 늘었다. 유한킴벌리의 혁신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내부 프로세스 개선이다. 문 사장은 취임 직후 경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고객 만족 경영을 표방, 신제품 기획부터 제품 공급, 불만 처리 등 전 과정을 고객 입장에서 처리했다. 둘째, 투명 경영이다. 그는 “직원도 고객”이라는 생각에서 기업의 재정상태와 경영정보를 직원들에게 공개하는 한편 담당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 직원들의 주인의식을 높였다. 셋째 매출의 1%를 사회공헌비로 내놓고 각종 사회·환경운동에 참여하며 기업 이미지를 높였다. 그의 혁신 중 가장 큰 성과는 4조 근무제 도입이다. 4개 조로 나뉜 생산직원 중 3개 조는 교대로 생산라인에 투입되고, 나머지 1개 조는 휴식 또는 학습을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생산직 직원들의 신기술 습득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됐다. 문 사장은 이 시스템을 ‘평생학습시스템’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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