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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PB영업망 확충해 ‘맹공’… “은행 텃밭 PB시장을 뺏어라”

증권사 PB영업망 확충해 ‘맹공’… “은행 텃밭 PB시장을 뺏어라”

은행과 증권사가 PB시장에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하나은행이 5월 3일 대치동 지점에서 PB사업본부 출범식을 가진 장면.
이명희 한화증권 서초 PB 지점장.
부자 고객을 전담하는 금융회사의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은행의 텃밭으로 여겨져 온 PB시장에 최근 들어 증권사들이 강력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부자들은 주식을 싫어한다’는 고정관념이 차츰 무너지자 주식 등 투자상품에 관한 노하우가 뛰어난 증권사들이 PB 점포 및 영업망을 확충하면서 부자고객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30~40대의 이른바 ‘뉴리치(new rich)그룹’을 주 타깃으로 하면서 초저금리로 마땅한 투자수단을 찾기 어려워진 40~60대의 기존 부유층을 파고드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증권사 PB 영업의 선두주자인 삼성증권은 최근 ‘전 지점의 PB 점포화’를 선언했다. 우수고객(예탁자산 1억원) 뿐만 아니라 잠재 우수고객에게도 차별화된 PB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2000년부터 VIP 전문 점포인 ‘FN아너스’를 운영해온 삼성증권은 자산관리영업이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 FN아너스 고객 수는 연초 4400명에서 6월 말 4700명으로, 예탁자산은 3조원에서 3조6000억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한화증권은 지난해 1월 PB 전문점 1호인 르네상스지점을 오픈한 데 이어 11월에는 갤러리아지점을 열었다. 지난 5월에는 서초동에 3호 PB 지점을 개장했다. 우리투자증권도 지난 5월 강남 PB센터 투체어스를 개장하면서 VIP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특히 부유층 밀집지역인 강남권을 파고들고 있다. 독립 PB 점포를 보유한 삼성·한화·동양종금증권 등 3개사의 PB 점포 11개 가운데 8개가 강남과 분당에 몰려 있다. 증권사들은 또 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은행 뺨치는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FN아너스 최우수 고객에게 노화방지 혈액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화증권은 3개월 평균잔액 1억원이 넘으면 여행·골프·의료서비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지난 6월 말 신탁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증권사의 신탁업 진출이 가능해졌다”면서 “증권사 PB 영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직접주식투자·채권·펀드·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외에 새로운 자산관리 수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증권사 고객분류도 희미해져 은행권은 증권사의 이 같은 공격적인 영업에 대비해 증권사 출신의 PB를 스카우트함으로써 투자상품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한편 PB 전용 투자상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강남 PB 점포 투체어스를 개장하면서 증권사에서 6명의 PB를 스카우트했다. 고급 PB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PB들의 몸값도 뛰고 있다. 연봉 1억원을 웃도는 30대 중반의 PB들이 적지 않다. 시중은행 가운데 부자 고객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강남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 2층에 자산 21억원 이상 고객만 상대하는 ‘웰스 매니지먼트 센터’를 열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과거 PB 영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농협이나 기업은행·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PB 점포를 잇따라 설립하면서 부자고객 유치전에 가세하고 있다. 과거 은행 PB 고객은 주로 40~50대 이상의 기존 부유층이었다. 자산 규모가 수백억원대를 웃도는 이른바 ‘부(富)가 성숙된’ 계층이다. 이들의 투자 성향은 매우 보수적이며 따라서 투자 대상도 예금·부동산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지섭 하나은행 PB팀장은 “재산을 불리기보다는 상속·증여·절세 등 재산관리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증권사 PB 고객은 성공한 벤처기업 및 중견기업 오너, 전문직 종사자 등 신흥부자들이 중심이다. 연령층도 은행 고객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이들은 기존 부유층과 달리 재산을 불리는 데 더 관심이 많다. 따라서 여유자산을 예금·부동산뿐만 아니라 주식·펀드·채권 등 투자상품으로 주로 굴리고 있다. 한화증권 PB팀 관계자는 “예금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기존 부유층보다는 벤처기업 오너, 전문직 종사자 등 뉴리치 그룹이 주 타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과 증권사의 이런 고객 분류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저금리가 심화되면서 기존 부유층 사이에서도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홍 한국씨티은행 압구정골드 지점장은 “은행과 증권사를 모두 거래하는 고객이 증가하면서 과거 은행 간 경쟁에 증권사가 합세해 PB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PB영업의 주된 타깃 층인 5억원 이상 예금계좌 및 잔액은 지난 2000년 말 3만9000개, 89조원에서 2003년 말 5만4000개, 123조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에는 그 규모가 6만 개(150조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PB 영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은 수익기여도가 높은 우량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선진은행의 경우 흔히 ‘80대 20의 룰’이 적용된다고 한다. 은행 수익의 80%가 상위 20% 고객에서 나온다는 것. 부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회사 간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터뷰 이명희 한화증권 서초 PB 지점장

“증권사 PB는 자산관리 능력이 밑천” “증권사 PB들은 근성이 있습니다.” 이명희(39) 한화증권 서초 PB지점장은 “은행과 증권사 PB 가운데 어느 쪽이 경쟁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HSBC를 거쳐 삼성증권에서 5년간 PB로 일하다 최근 한화증권으로 스카우트된 이 지점장은 “은행 PB의 주된 무기가 브랜드와 조직력이라면 증권사 PB는 운용 노하우, 다시 말해 자산관리 능력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 PB 고객과 달리 증권사 PB 고객은 십중팔구 자산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장은 “주식 투자는 고객과 PB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접착제 같은 것이어서 PB에 대한 고객의 로열티도 증권 쪽이 은행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주식 투자를 통해 PB와 고객들이 ‘동고동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PB가 회사를 옮기면 고객도 PB를 따라 거래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13일 개장한 한화증권의 서초 PB 지점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100억원의 자산을 유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지점장은 “은행 고객은 대부분 창구를 방문하는 고객인데 반해 증권사들은 직접 고객을 찾아다니며 세일즈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업 노하우 측면에서도 한 수 위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장은 그러나 “주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즉 증권사와 거래하면 원금을 까먹을 수 있다는 막연한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다는 점이 증권사 PB들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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