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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1000억$ 추산…美 카트리나 손실 이라크 전비 1/3

전문가들 1000억$ 추산…美 카트리나 손실 이라크 전비 1/3

뉴올리언스에서 동남쪽으로 240㎞ 떨어진 멕시코만 해상에 위치한 BP사의 ‘선더호스(Thunder Horse)’ 원유 굴착 플랫폼이 허리케인 데니스의 영향으로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후폭풍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을 것이란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대재앙은 21세기 ‘오일 쇼크’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70~80년대의 두 차례 중동발 오일 쇼크와는 달리 이번 대재앙으로 원유 생산의 한계와 정유시설 부족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오일 쇼크는 공급의 차질을 초래할 사고나 사건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지구촌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대니얼 예르긴 케임브리지 에너지 연구소 소장은 “세계 석유 수요가 급증한 상태에서 카트리나로 공급에 타격을 입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1차 오일 쇼크인 1973년과 매우 닮았다”고 지적했다. 1973년 에너지 위기가 세계적인 석유 부족으로 가격 폭등을 일으키고 미국 경제를 침체시켰듯이, 현재의 휘발유 부족 사태가 미국 경제의 성장을 둔화시키고 이에 따라 세계 경제까지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21세기 오일 쇼크가 과거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지난 1, 2차 오일 쇼크는 정치적 요인에 따른 의도적 위기인 반면 앞으로 닥칠 쇼크는 수급 차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마브로 옥스퍼드 에너지 연구소 소장은 “카트리나가 위기를 조성하기는 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공급 부족이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빈센트 라우어만 캐나다 에너지 연구소 연구원은 “공급에 차질을 줄 수 있는 큰 사건이 터지면 국제 원유가격은 세 자릿수로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략 비축유 방출 후유증이 온다 실제로 카트리나가 멕시코만을 휩쓴 뒤 세계 에너지 최대 소비국인 미국은 휘발유 부족 현상에 직면했다. 멕시코만 일대에선 미국 전체 석유의 30%, 천연가스의 20%가 생산되고, 또 이곳에 정유시설의 17% 정도가 몰려 있다. 카트리나로 이곳의 원유 시설 58개가 피해를 보았으며 이 중 30개는 완전히 부서져 유실됐다. 현재 이 지역 14곳의 정유공장 중 9곳의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 광물관리국(MMS)은 멕시코만 산유량의 92%인 하루 140만 배럴과 천연가스 생산량의 83%인 하루 83억 입방피트의 생산이 중단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특히 정유시설 피해로 휘발유를 비롯한 항공기유 등 석유제품의 생산 피해가 앞으로 두 달 동안 20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은 1976년 이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정유시설을 추가 건설하지 않았다. 지난 25년 동안 정유시설은 절반 이상 감소했고 정제 능력도 하루 1700만 배럴로 10% 줄었다. 반면 휘발유 소비는 하루 950만 배럴로 45%나 늘어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을 인용, 이 같은 시설 피해로 세계 원유 공급이 하루 150만 배럴 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9월 5일자). 이에 따라 휘발유 생산은 미국 수요량의 10%인 하루 100만 배럴 정도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시설 복구에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IEA가 지난 2일 26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앞으로 하루 200만 배럴씩 한 달간 6000만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방출키로 결정한 것도 이처럼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IEA가 전략 비축유 방출 조치를 내린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당시 IEA는 하루 250만 배럴의 원유를 방출한 바 있다. 국제 석유시장에는 이처럼 공급의 여유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세계 제1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시설을 100% 가동하고 있어 추가 생산의 여유가 없다. 석유 금수로 발생한 1, 2차 오일 쇼크 때는 원유 생산량만 늘리면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폭발적 수요를 맞출 공급 능력이 없다. 특히 중국·인도 등의 경제 성장으로 전 세계 수요는 2년 동안 연간 2%포인트가 증가했다. 이는 과거 10년간의 증가율에 비해 두 배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국이 전략 비축유를 방출했기 때문에 내년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석유 수입을 늘릴 것으로 보여 공급이 더욱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 카트리나의 후유증으로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미국발 경제 위기다. 무엇보다 이번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올스테이트, 세인트 폴 트래벌러스 등 미국 굴지의 보험사들은 이번 피해로 지불해야 할 총 보험금 규모가 최대 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를 준 허리케인은 1992년 플로리다를 강타한 앤드루였으며 총 보험금은 209억 달러였다. 자연재해 평가기관인 리스크 매니지먼트 솔루션스는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칠 손실액이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현재까지 이라크 전쟁에 사용한 전비가 3000억 달러인데, 카트리나는 ‘한 방’에 3분의 1 규모의 피해를 미국에 끼쳤다. 경기진단 전문기관인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는 카트리나로 미국의 3분기, 4분기 경제성장률이 0.5~0.7%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먼 삭스도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0.5~1%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초긴장하고 있는 아시아 신흥국들 이처럼 미국의 엄청난 피해와 더불어 공급 부족에 따른 고유가의 지속이라는 에너지 위기가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과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또 내년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럴 경우 세계 경제도 불똥을 피해가기 어렵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3일 연례 보고서에서 지난해 3.8%에 달한 세계 경제성장률은 올해 카트리나 여파로 당초 예상치보다 1%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소비 위축→성장 둔화란 악순환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6일 “현재의 고유가는 1970년대와 비교해 볼 때 주요한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OECD의 장 필립 코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는 국제 원유시장에 단계적으로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면서 “다음에 어떤 상황이 도래할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과 아시아 경제에도 이미 ‘카트리나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기름값 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독일·스페인·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의 휘발유값이 한때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유가 상승에 따른 에너지 보조금 부담으로 루피아화가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하는 등 경제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태국도 옥외 간판의 조명 시간을 하루 세 시간으로 제한하는 등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1997년 IMF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양국은 가뜩이나 지난해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본 바 있어 더욱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는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의 경기 침체)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9월 4일자). 이 신문은 석유 공급 측면에서 한 가지 악재만 더 나오면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최신호에서 “카트리나의 피해가 석유시장 혼란과 소비 축소로 이어질 경우 세계는 ‘길고 추운 겨울’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올리언스의 대재앙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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