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임준수의 BIZ 시네마 … ‘눈물의 상품성’ 아직도 건재

임준수의 BIZ 시네마 … ‘눈물의 상품성’ 아직도 건재

1960년대 멜로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 의 한 장면.
누가 플라토닉 사랑을 빗대 ‘플라스틱 사랑’이라 폄하했는가. 누가 요즘 젊은이는 눈물의 샘이 말랐다 했는가. 그리고 누가 도시민은 서민촌에 나부끼는 빨랫줄의 옷들에 더 이상 정감을 느끼지 않는다 했는가. 적어도 ‘너는 내 운명’이란 소시민의 애잔한 러브 스토리에 몰리는 관객을 보면 그런 속설들은 사실과 크게 어긋나 있다. 영화계에서도 최루성 멜로 드라마로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눈물을 짓짜는 영화로 흥행 수입을 올리는 것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다니는 아줌마들이나 시골에서 올라온 고무신 부대의 주머니를 털 수 있었던 1960~70년대에나 가능했다는 이야기들이 영화 제작자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돌았다. 우리 영화의 본류였던 멜로 드라마는 사실 60~70년대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는 게 영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8년 ‘미워도 다시 한번’이 일으킨 멜로 바람은 70년대 후반 흥행 신기록을 세운 ‘겨울여자’까지 국산영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 멜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예외없이 버림받은 여성이었다. 유부남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울거나(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 없이 순결을 잃고 고통받거나(겨울여자), 뭇 남성의 노리개로 전락한(영자의 전성시대) 여인들이다. “울다 지쳐서…”라는 가사가 붙은 유행가 ‘동백아가씨’처럼 이들 멜로물의 여주인공들은 울고 또 울어 끊임없이 관객의 손수건을 적시게 했다. 그런데 이들 눈물의 여왕이 당하는 경우를 보면 대개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아 자식을 빼앗기고 종국에 가선 스스로 목숨까지 버리는 사례들이다. 이들의 대표 직종이 호스티스나 윤락녀라는 것도 우리나라 멜로물의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겨워 죽도록 남자에게 헌신한다. 그런데 이런 멜로물의 주인공들이 오랜 기간 잠적했다 최근 맹렬한 기세로 고개를 들고 있다. 9월 23일 개봉된 ‘너는 내 운명’은 3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아 역대 멜로 영화의 최고 흥행 기록을 깼다는 소식이다. 또 다른 멜로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이어 주간 흥행성적 2위를 달리고 있는 이 영화에 20~30대 젊은층 관객이 몰리고 있다는 점도 영화산업계의 관심거리다.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maxmovie.com)의 집계에 따르면 두 멜로 영화의 연령별 예매 비율은 20대 64%, 30대 30%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 관객이 60~70년대의 아줌마 부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의 여왕에 푹 빠져 있는 것일까. 적어도 ‘너는 내 운명’의 스토리를 보면 그런 진단이 나올 수 없다. 이 영화의 히로인은 멜로물 여주인공의 대표 직종인 다방 레지·호스티스·윤락녀 등 3박자를 다 갖췄지만 정작 눈물을 쏟게 하는 당사자는 그녀의 파트너인 농촌 총각이다. 서른여섯 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그가 과거가 복잡한 떠돌이 접대부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은 눈물 겨울 지경이다.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소재의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죽도록 여자에게 헌신하는 남성상’이 요구되는 요즘의 시대정신(?)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이제는 멜로 영화로 돈을 벌려면 순진가련형의 여성이 아닌 순박우직형의 남성에게 눈물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사업은 도박과 같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예측불허의 사업이라지만 기획단계부터 시장조사를 철저히 해 그에 맞는 상품을 내놔야 하는 일반 제조업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달라진 소비자(관객) 심리를 꿰뚫고 한국인의 가슴 깊이 잠재해 있는 멜로 취향을 공략한 덕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멜로 영화가 갑자기 뜨는 것은 불황으로 얼룩진 세태와 인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적시에 매질을 해 주니 사람들이 반기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억지 해석이겠지만 손님이 내심 바라는 메뉴로 상을 바꿔 차려 놓는 것도 일종의 고객감동 비즈니스 전략이라 할 것이다.

너는 내 운명
감독 : 박진표
출연 : 황정민(농촌 총각) / 전도연(다방 레지)
상영시간 : 123분
장르 : 로맨스 / 드라마
제작 : 영화사 봄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 www.mysunshine.co.kr


한국 영화계의 멜로 드라마

영화 제작사 ‘봄’과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출자한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이 한국 멜로 드라마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는 9월 23일 개봉한 이래 10월 16일까지 273만 명(영화진흥위 전산망 집계는 222만 명)의 관객을 모아 종전 멜로 드라마 최고 흥행작이었던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세운 263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영화산업계는 ‘너는 내 운명’의 관객이 최종 집계일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 곧 3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두 48억원을 들여 제작과 배급을 맡은 두 회사가 이 영화로 얻는 흥행 수입이 40억~50억원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과 2차 판권 매출 등을 합치면 수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영화에 투자한 CJ엔터테인먼트는 흥행 성공에 힘입어 같은 계열인 CJ자산운용과 함께 실시한 ‘CJ 무비 & 조이’ 영화펀드 공모에서 발매 1주일 만인 10월 19일 100억원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극장가에서 멜로 드라마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68년 개봉돼 공전의 흥행 기록을 세운 ‘미워도 다시 한번’은 멜로 드라마의 고전으로 꼽힌다. 70년대 후반엔 ‘겨울여자’가 60만 명의 관객을 모아 전 장르를 통해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멜로 드라마는 한동안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흥행 장르였다. 80년대 들어선 ‘애마부인’류의 에로틱 영화들이 멜로물의 명맥을 유지했지만 90년대 말부터는 코미디와 액션 영화에 밀려 200만 명 이상의 관객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 90년대 이후 100만 명 이상의 흥행 기록을 세운 멜로 영화는 ‘약속’(170만 명), ‘편지’(170만 명), ‘접속’(147만 명) 등이 꼽힌다. 단관 개봉관 시절에 세운 이들 기록은 개봉 당시엔 대박으로 통했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전국 대도시에 깔린 현재의 상황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실시간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