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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식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공기업 혁신 시간 걸려도 해낼 것”

[윤성식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공기업 혁신 시간 걸려도 해낼 것”

남의 일일 때는 당연한 듯 보이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막상 자기 앞에 놓이면 별로 반갑지 않은 단어가 있다. ‘혁신’이다. 단어만 들어도 반갑지 않을 정도니 이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일지는 불문가지다. 윤성식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이 바로 그런 경우다. 윤 위원장은 스스로 “어느 공무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신은 대한민국 공적(公敵) 1호’라고 하더라”며 최근 자신에게 붙은 별칭을 소개했다. 여기서 ‘공적 1호’란 ‘공무원의 적’이라는 뜻이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조직을 흔들어 놓아 ‘철밥통’을 코너로 몰고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출발부터 정부조직 혁신을 하기로 했다. 정권의 핵심 화두로 설정했다. 혁신이란 게 뭔가. 서슬 퍼런 칼날의 다른 말 아닌가. 칼날이 겨누어질 관가는 긴장했고 3년이 흘렀다. 그동안 각종 정책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고 조직마다 담당자가 임명됐다. 하지만 국민에게 이 같은 움직임은 강 건너 불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참여정부는 치켜든 서슬 퍼런 칼로 뭘 자르고 베었을까? 그리고 하기는 한 걸까? 「이코노미스트」는 1월 16일 이 ‘칼자루를 쥔’ 윤성식 위원장을 만났다. 서울 광화문 신문로에 위치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이하 혁신위) 위원장 사무실에 들어서자 넓은 유리창에 청와대와 정부 중앙청사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야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너무도 명백한(?) 사무실이었다. 또 예상과 달리 단아한 모습에 논리적이고 낭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어려운 일을 맡아 힘들 것 같다”는 말을 꺼내자 예상 외로 무거운 마음을 툭 꺼내보였다. “이게 엄청난 악역입니다. 야당도 혁신에 찬성하고, 학자와 국민도 다 그렇게 돼야 한다고 합니다. 정부의 정책 중 이렇게 지지를 받는 게 없어요. 그러면 너무 쉬울 것 같은데, 허허…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옳다고만 이야기하지 무관심하다는 겁니다. 막상 일을 할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혁신을) 지지하는 사람은 멀리 있는데,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만이 가깝게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약간은 허탈한 마음이 든 듯 그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사실 윤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꼭 읽어야 할 교과서”라고 추천해 유명해진 저서 『정부 개혁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 바 있다. (혁신을 하려면)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고뇌하며 비난을 받을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153쪽)는 대목이다. 그런데 ‘당사자’가 되고 보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더구나 ‘공적 1호’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니 마음 고생이 어떨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다시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자 “다시 쓸 거 많다”면서 “회고록에나 쓸 내용도 꽤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상황을) 인정해요. 기왕에 욕먹은 거니까, 되돌릴 수 없으니까 과제를 확실하게 챙겨서라도 욕먹은 값을 하겠습니다.” 선선하게 대답하는 그에게서 학자풍의 강골이 느껴졌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해남이다.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윤 위원장은 해남 윤씨의 시조인 고산 윤선도의 14대손이다(현재 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고산 윤선도 유물관 신관’이 그가 태어난 집이 있던 곳). 그에게 가문의 기질을 묻자 “전통적으로 야인 기질”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선조는 당파에서 주류 남인(南人)이었다. 호남지역에서는 드물었던 남인을 선택할 정도로 기질이 남달랐다. 해남 윤씨는 혼인도 남인끼리 했다. 특히 영남지역의 남인이었던 권씨와 혼인을 많이 했다고 한다. “색깔을 유지하기 ㎸?방법”이었다. 이런 전통은 대대로 이어졌다. 그가 어렸을 적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다른 집은 귀금속을 땅에 묻었지만 우리 집안은 책을 묻었다”는 말로 손자들에게 기질을 내리물림하는 데 애썼다. 또 “고산 할아버지는 광해군 때 상소를 올려 유배를 당했다”며 손자들에게 그렇게 살 것을 다짐받곤 했다. 강골의 야인 기질이 윤 위원장 혼자만의 것이 아닌 셈이다. 이 ‘강골의 야인’이 혁신을 맡았으니 사실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혁신을 ‘강골’로 밀어붙이지는 않는 편이다. 그의 혁신론에는 단순한 ‘칼날’ 이상의 뭔가가 있다. 좋은 예가 클래식 음악이다. 그는 예전부터 혁신과 클래식 음악을 비유하곤 했다. 요즘 바쁘신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실 시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음악이 혁신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봐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음악가들은 모두 혁신가였어요. 바흐는 물론이고 모차르트도 대단히 혁신적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음악가들은 귀족들이 스폰서를 했어요. 그런데 하이든 같은 사람은 하인의 옷을 입고 근무를 했답니다.” 음악 얘기가 나오자 그의 말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과 미술을 말했지만 주제는 역시 혁신이었다. “예술이 왜 혁신과 관련이 있는가 하면 둘 다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 사람들이 했던 것을 뛰어넘지 않으면 위대한 작품이 되지 못합니다. 고흐는 태양을 노란색으로 그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화가들은 다 빨간색으로 그렸거든요. 다들 고흐를 이상하다고 했죠. 하지만 이게 바로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예술의 특성입니다. 저는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예술이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혁신적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술을 멀리하면 안 됩니다.” 책을 읽어 생겨나는 지식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스트레스도 음악으로 풀 정도로 애호가다. 그중에서도 바흐와 바그너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링’(반지) 4부작을 좋아한다. “웅장하고 사람에게 힘을 주거든요. 바그너는 그 시대의 오페라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은 맑고 투명한,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증류수와 같아요. 바흐의 음악은 수학적으로 가장 균형이 잘 맞아 있고… 투명하고 맑고 조화로운 음악이죠.” 그가 혁신을 어떻게 전개할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신도 “공정한 자세가 내 삶의 모토”라고 말한다.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도 운동이 사물을 균형있게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가져야 할 경쟁력은 어떤 겁니까? 무조건적인 혁신 동력보다는 자기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개인이나 기업처럼 특화되고 전문화된 부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 자신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정부가 뭐든지 직접 했습니다. 건설이 필요하면 직접 하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도 직접 제공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을 건설해야 한다고 정부가 결정하면 민간에서 건설하고, 어떤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고 정부가 결정하면 민간에서 공급행위를 담당해야 하는 겁니다. 이제는 정부 주도하에 많은 주체가 같이 결정하는 체제로 가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방폐장(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입니다. 정부가 (방향을) 결정한 것을 주민들이 참여해 결정한 것이거든요.” 그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단순한 대목은 아니었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비전이나 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에게 무슨 농작물을 심으라고 하기보다는 과잉공급이 될지 안될지 같은 시장상황을 잘 예측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결정하면 구체적인 행위는 당사자인 국민이 선택하는 식이다. 정부 혼자 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해요. 개인이나 기업 등 국가 전체가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미래를 예측해주고, 부족한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필요한 것을 교육·훈련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겁니까? 위원장님이 쓰신 『정부 혁신의 비전과 전략』을 보면 뉴질랜드처럼 전체 인원은 줄이되 부서 숫자는 늘리는 ‘일종의 큰 정부’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부 조직에서 더 커져야 할 분야가 있고, 작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커져야 할 분야가 착착 커지고 줄어야 할 분야가 줄어들지 못하다는 데 있어요. 우리나라 현실은 뉴질랜드처럼 부서 숫자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대국민 서비스에 관련된 분야, 예를 들면 복지·치안·교육·위생 같은 분야는 강화돼야 합니다. 대신 규제·관리·통제를 담당하는 분야의 공무원은 줄어들어야 하고요. 방향은 이렇습니다.”

▶1953년생 광주일고-고려대 졸. 미국 UC 버클리대 경영학 박사, 미국 공인회계사. 1987년 미국 텍사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1988년 한양대 교수. 1992년 고려대 교수. 2004년~現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

예전부터 정부는 정책 결정 및 조정에 주력하고 집행 기능은 민간에 이양하거나 공기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현재 정부조직 중 대상이 되는 곳이 있습니까? “철도청을 공사로 전환한 게 대표적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마디 할 게 있습니다. 모두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왜 이걸 포함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정부로 유명한 뉴질랜드를 예로 들면서 수천 명 조직을 수십 명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이는 공무원을 공기업 회사원으로 전환한 겁니다. 그런데 왜 철도공사로 전환돼 공무원이 2만8000명 줄어든 것은 계산하지 않습니까? 이걸 감안하면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는 줄었어요.” 그는 정부의 몸집이 비대해지고 있다는 지적에 민감해 했다. 어떻게 보면 혁신의 성과를 상쇄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짚고자 한 것은 언론들이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가 늘고 있다”며 “지난해 7월까지 2만여 명이 늘었다”는 보도다. 그는 이런 평가를 목에 걸린 가시처럼 여기는 듯했다. “줄여야 할 곳을 팍팍 줄이지 못해 그런 건데요. 사실 가장 어려운 수술이기도 한데 이건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합니다. 무조건 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든요. DJ 정부 시절 부부가 같이 근무한다고 한 사람을 내보냈는데 그러면 안 되죠.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해요. 무능한 사람을 내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능한 사람을 고를 거냐? 이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근무평가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현실 아닙니까? 줄이더라도 제대로 줄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근무평점을 도입한 것도 바로 이런 걸 준비하는 차원입니다.”

몇 개의 공기업이 또 탄생한다는 얘기군요.
“시장성이 강한(시장에 내보내도 되는) 기업은 민영화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손볼 데가 많습니까?
“공기업은 일단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이 평가 시스템입니다. 특히 산하기관이라고 하는 공공기관들이 기획예산처의 평가대상이 된 상태입니다. 아마 올해는 기획예산처에서 많은 공기업 혁신을 하게 될 겁니다. 기획예산처와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고 평가를 한다든가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뭘 할 것인가,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뭘 할 것인가를 강구하는 거죠.”

참여정부가 혁신을 표방한 지 3년이 지나 4년 차가 됐습니다. 처음 내걸었던 혁신과 달라진 것들이 있습니까?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혁신이 성과를 내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 다음 정부에 가서나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은 월드뱅크와 손잡고 일하는 획기적인 것인데 월드뱅크가 전 세계 모범 사례로 전파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2007년에 가서야 비로소 작동을 해요. 작동이 잘 되면 수출도 할 텐데, 그런 과실은 다음 정부가 누리겠죠.” 그는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듯한 언급을 몇 번씩 반복했다. “다음 정부가 혜택을 볼 것”이라는 말도 여러 번 반복했다.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록물관리제도, 전자정부 프로젝트도 같은 수식어로 표현했다.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향하는 곳은 또 있을 듯했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성과에 조바심을 내는 이들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또 성과에 집착하는 지자체들에 대한 경계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현재 정부 혁신 프로젝트는 세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제도를 연구·개발하는 혁신위와 정책을 결정, 조정하는 청와대 혁신수석비서실, 그리고 실행을 맡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혁신관리본부다. 그런데 최근 혁신위를 제외한 두 축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움직임이 있다. 정부 혁신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혁신관리본부가 성과 내기로 돌아서는 것 같다”는 말을 해 윤 위원장의 우려를 뒷받침했다.

요즘에는 어떤 일에 주력하고 계십니까?
“현재까지 진행된 일을 잘 마무리하고, 국민이 생각보다 (혁신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홍보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조세 개혁도 한 축입니다. 재경부와 같이하고 있는데, 이전과 다르게 소득 파악률을 높이는 것과 무(無)기장 거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겁니다.” 혁신 로드맵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면서 위원회에 대해 여러 평이 나오고 있다. ‘칼자루’를 잡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 하지만 모두 인정하는 건 있다. 혁신의 방향 설정을 잘했다는 점이다. 특히 성과가 금방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소프트웨어 부문에 타깃을 맞춘 것에 대한 평가다. <박스기사 참조> 그의 말처럼 다음 정부에 가서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 많아 야당의 반대도 심하지 않다. 하지만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겉돌고 있다”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그것이다. 그 또한 모를 리 없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맑은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억울하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자신감 또한 그만큼 준비하고 있었다. “외국 전문가들은 우리의 혁신을 높이 평가한다”는 게 그것이다. 어려움도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비는 넘겼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무엇이 고비였을까? “정부 조직 내에서 혁신위가 제시한 제도를 채택한 것이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공무원 조직이 장점도 있어요. 저항도 세게 하지만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면 손 털고 지지하거든요.”

혁신위가 제시한 안을 공무원들이 실행하면서 당초 취지와는 달리 왜곡하고, 형식적인데 그치고 있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퇴색되고 있어 답답하기도 해요. 그래서 올해는 (잘하고 있는지) 평가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대통령 직속인 이상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할 텐데 요즘 거리감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전혀 멀어진 것 없습니다. 잘 만나고 있습니다.”

혁신은 리더의 관심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노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대단한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대통령을 만나면 혁신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많이 하죠. 생각 이상으로 소상하게 잘 알고 계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세한 분야까지 챙기고 있어 놀랄 때도 많습니다. 얼렁뚱땅했다가는 큰일날 분위기죠.” 정부 혁신 프로젝트에 간여하고 있는 핵심 관계자에 말에 따르면 실제로 노 대통령은 “챙기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정치 혁신과 정부 혁신을 내걸었는데 정치 혁신은 반응이 없지만, 정부 혁신은 되는 것 같다”며 “결국 다음이나 다다음 대통령이 혜택을 볼 텐데 나만 욕먹는다”는 유머까지 했다고 한다. 식견 또한 상당해서 보고서가 올라가면 A4 용지 가득 세밀한 촌평을 달아 작성자를 긴장케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윤 위원장 또한 “우리 위원들도 청와대 회의를 갔다 오면 감탄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위원장에 부임하기 전 감사원과 기획예산처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해받을 수 있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다만 (감사원은)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상당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는 어떻습니까? 너무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고 하셨는데.
“많이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매년 4, 5월이면 (예산 확보를 위해 로비를 하러온 이들로) 기획예산처 주차장이 발디딜 틈도 없었는데 요즘에는 한가하답니다. 어쨌든 첫 단추는 잘 꿴 것 같은데, 올해는 공기업과 (정부 부처)산하기관 정비에 주력할 겁니다.”

청와대는 어떻습니까? 혁신의 본산인데 혁신을 잘하고 있습니까?
“그럼요. 회의를 보면 알 수 있죠. 예전에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회의였는데 요즘 청와대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용이나 발언자를 정하지도 않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양보하고 타협하고 그렇습니다.” 그와 약속한 1시간30분이 다 흘렀다. 비서가 두 번이나 들어와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일러주었으나 그는 “잠시 기다리시라”고 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11월 4일 입법예고된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치 조직·인사권에 재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제주도를 홍콩과 싱가포르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제주도로 유학 가자”는 말이 나오게끔 교육·의료분야를 특화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직접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실현이 잘 될 경우 지방자치를 통한 선진적인 지방분권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망치를 쥐면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했던가. 아마 정부 조직의 잣대를 만드는 윤 위원장의 눈에는 모든 것이 혁신의 대상으로 비칠 것이다. 더구나 그를 발원지로 한 혁신의 물줄기는 지금 시냇물을 거쳐 강이 되고 있다.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격랑을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절제를 보이고 있다.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인터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또박또박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차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비전이나 전략 차원이 아닌 한 어떤 것도 단언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게임이론 전문가인 바스카르 차크라보티는 혁신은 빠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느리게 진행된다고 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말을 아끼는 것일까? 그를 잘 아는 한 사람은 “만약 하마평에서 자유롭다면 자유롭게 (혁신과 혁신 대상 등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을 것”이라며 그가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직 기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의 생각, 행동 하나하나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이유다. 아마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은… 윤성식 위원장은 고려대 교수로 있던 2002년 5월, 대선을 앞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추락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대학 동기인 정세균 현 산자부 장관의 도움 요청을 받았다. 그는 주저 없이 지지선언을 했다. 원칙을 중시하는 데 매료됐다고 한다. 그게 인연이 돼 2003년 8월 노 대통령은 그를 감사원장에 지명했다. 정부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열린우리당의 분당에 분노하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연합,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켜 무산됐다. 노 대통령이 두고 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개각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는 것에는 대통령의 신뢰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6개 유전자론 담긴 ‘혁신 자동장치’] “제대로 가동되면 다음 정부 혁신 안 할 수 없을 것” 윤성식 위원장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부 혁신 로드맵을 간략하게 요약, ‘혁신 자동장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6개의 혁신 유전자론이 그것이다. “대통령이 혁신을 강조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데, 21세기에 이러면 안 됩니다. 21세기는 정답이 없는 시대예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지시를 내려서 되겠습니까. 저절로 되게 해야죠.”

1. 평가와 감사 시스템. “이걸 잘 갖춰 놓으면 문제가 있을 때 자동으로 드러납니다. 처음에 거세게 반발하던 공무원들이 얼마나 바뀌었는 줄 아십니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자기네들이 깨끗해질 수 있는가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평가와 감사는 혁신을 하게끔 하게 하는 겁니다.”

2. 투명성 “자기가 한 것이 다 드러나야 해요. 국가기록물관리시스템이 구축되면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부가 됩니다. 모든 게 다 기록이 됩니다. 지금 일부 정부 부서에서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전자결재시스템이 확장되면서 책임이 명백해지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어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효율성이 대단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언젠가는 공개됩니다.”

3. 기록물 관리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전에는 기록이 아예 없었어요. 어처구니없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조직인데 (누가 뭘 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4. 전자정부 “사람들의 사고 행태를 완전히 바꿀 겁니다.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 같은 경우 주민들이 지난해 보건소 예방접종 예산을 인터넷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정부 조달업무도 완전히 바뀔 겁니다.”

5. 혁신 문화 “조직을 혁신 지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의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윗사람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개방형 조직 “언제든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민간 전문가가 들어오고, 공무원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이렇게 서로 어울리면 서로 배우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혁신 자동장치가 갖춰집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다음 정부는 혁신을 안 할 수 없을 겁니다. 모든 게 드러나거든요. 모든 게 평가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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