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방송-통신 칸막이 이젠 헐자

방송-통신 칸막이 이젠 헐자

한국은 ‘IT 강국’이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방송과 통신이 제도적으로 분리돼 있다. 이는 디지털융합(Digital Convergence)이란 시대적 흐름과 전혀 맞지가 않다. 해결방안은 방송과 통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를 터주는 일이다.
우리는 디지털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법 ·제도는 방송과 통신의 분리 ·규제란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급변하는 기술과 서비스 발전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 경쟁국들은 이미 일찍부터 규제 체계를 통합 ·정비해 디지털융합에 용의주도하게 대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3년 3월에 네트워크 및 매체 간 균형성의 원칙, 전송과 콘텐트 규제의 분리, 공익성 제고를 기본 방향으로 해 네트워크 관련 법 ·규제 체계의 일원화를 꾀했다. 또 방송은 방송대로, 통신은 통신대로 실시됐던 기존의 ‘역무별 규제’를 네트워크 ·서비스 콘텐트 등 ‘계층별 수평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이해관계와 관할권 갈등으로 원론적 수준의 공방만 거듭하며 ‘정책 지체’ 현상을 겪고 있는 우리의 경우와 뚜렷이 대비된다. 최근 각광을 받기 시작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인터넷 전화(VoIP)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인터넷 (IP TV) 등 융합서비스들은 기존의 통신망이나 방송망을 통한 네트워크와 콘텐트 구분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가령 와이브로는 유선과 무선 통신의 경계를 없앴고, DMB는 통신과 방송을 결합시켰다. 와이브로는 나아가 인터넷과 통신, 그리고 방송까지 포함하는 융합서비스를 가능케 할 전망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송법과 통신 관련법들은 방송과 통신의 개념을 전통적인 서비스 관념에 입각해 규정할 뿐 새로이 출현하는 이들 융합서비스를 위한 법적 근거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방송 ·데이터 방송 ·전광판방송 ·위성DMB 등이 법개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방송법에 수용되기도 했지만, 이들 중간영역 또는 경계영역 서비스들은 현재 이중 규제를 받거나 어떤 규제도 적용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다. 이제 디지털융합의 추세에 맞춰 방송과 통신에 대한 기존의 법적 규율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성해야 하며, 새로운 융합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가능한 한 완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부처들은 여전히 방송과 통신 간 기존의 칸막이를 고수하고 있다. 사업자나 전문가들 또한 방송이나 통신 분야 모두가 제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국회는 물론 관계부처들이 각기 다른 법안을 내놓으며 각축을 벌이지만, 아전인수의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을 자임하면서 이처럼 방송통신 융합의 문제를 두고 10년이 다 되도록 허송세월하고 있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책결정의 결과나 영향이 고도로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발점은 정책의 목표를 디지털융합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두어야 한다. 기존의 통신과 방송 간 영역구분을 폐지해 상호 진입규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기존의 규제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가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유인구조를 조성하는 데 목표를 맞춰야 한다. 이때 네크워크는 규제하되 콘텐트는 규제를 완화해 신규 융합서비스의 조기 활성화를 추진한다는 대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아울러 디지털융합에 따른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정책결정과 정부조직개편의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조직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현상유지를 전제로 정책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융합결정이 특정 부처의 존폐를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될 때, 당해 부처가 정책협의나 조정에 선선히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극히 비현실적이다. 그동안 융합에 대한 정책이 표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조직개편과의 연계 문제였다. 이제는 조직개편을 전제로 하지 말고 관계부처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어 실질적인 협업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연락이나 조정을 위한 태스크포스 조직도 필요하겠지만, 융합결정이 어느 한 부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하되 장기적으로 조직과 기능이 수렴 또는 일치되도록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궁극적으로는 접속 ·전달 ·응용 ·콘텐츠 등 서비스 단계와 계층에 따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책의 틀과 로드맵을 수립해 최대한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캄파리그룹, 트랜스베버리지 잔여 지분 인수...'캄파리코리아'로 새 출발

2尹정부에 뭇매 맞던 ‘네카오’...탄핵 집회서 '소통 창구' 역할 톡톡

3美법원, 철강 관세 폭탄에 제동…현대제철·동국제강 안도

4엔씨소프트 ‘리니지2M’, 텐센트 통해 중국 서비스

5김보현 대우건설 신임 대표 “2027년 순이익 1조원 달성하겠다”

6'10년째 최고가' 297억원 단독주택, 소유주는?

7뉴진스, 민희진 손잡고 ‘본명 화보’ 찍었다... 그룹명 언급 無

8녹차원, 탄자니아 미코체니 지역에 식수대 설치

9신한투자증권, AI 기반 ‘해외주식 뉴스 제공’ 서비스 출시

실시간 뉴스

1캄파리그룹, 트랜스베버리지 잔여 지분 인수...'캄파리코리아'로 새 출발

2尹정부에 뭇매 맞던 ‘네카오’...탄핵 집회서 '소통 창구' 역할 톡톡

3美법원, 철강 관세 폭탄에 제동…현대제철·동국제강 안도

4엔씨소프트 ‘리니지2M’, 텐센트 통해 중국 서비스

5김보현 대우건설 신임 대표 “2027년 순이익 1조원 달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