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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하나 만드는데 8000억 든다

신약 하나 만드는데 8000억 든다

미국 3대 도시로 꼽히는 시카고. 미시간호를 따라 형성된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이 일품인 곳으로, 건축공학도라면 한번쯤 둘러보고 싶은 선망의 도시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시카고 다운타운의 남단에 위치한 매코믹 플레이스 컨벤션 센터에서 지구촌 최대의 ‘바이오 2006’ 국제박람회가 열렸다. 1987년부터 시작됐으며, 참가 인원이 매년 늘어나 올해는 2만여 명을 시카고로 몰고온 대규모 축제다. 화이자, 머크와 같은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이고 암젠과 제네텍 등 바이오업체, 그리고 벤처기업과 바이오 관련 투자회사, 세계 각국의 대학 및 생명공학 연구소들이 참여한다. 국내에서도 행사 기간 중 관련 기관에서 200여 명이 시카고를 찾았다. 행사 기간을 포함한 1주일 동안 매코믹 센터는 ‘바이오 2006’의 주최 측이 나눠준 빨간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시카고 중심가로부터 반경 20㎞ 내의 호텔방은 일찌감치 동났다. 예약이 취소된 방을 이용하려면 평소 주중 요금의 5배 이상의 ‘바가지’를 써야할 정도였다. 이번 행사의 스폰서는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 애보트와 금융기관인 모건스탠리가 맡았다. 정보기술(IT) 박람회인 ‘컴덱스’나 ‘세빗’과는 행사장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참가자들이 부스를 차리고 홍보에 열중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부스에 눈에 띌 만한 볼거리가 없다는 점이 특색이다. 아무래도 생산제품이란 게 일반인이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약이나 의료기기가 대부분이어서, 이래저래 화려한 IT 행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바이오 2006 행사가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모든 정보가 이곳에 모인다는 점이다. 암 치료, 재생의학, 백신 현황과 같은 치료 현장의 정보를 나눌 수 있는 학회에서부터 바이오산업의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세미나 등이 수시로 열린다. 여기에 지적재산권과 생명윤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소규모로 진행될 정도로 바이오 기술과 산업의 총 집산지라고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바이오 행사를 둘러본 산은캐피탈의 신정섭 바이오투자 심사역은 “미국이 주관하는 박람회인 만큼 5년 전만 해도 미국의 바이오 기술을 알리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앞다퉈 들이닥쳤고, 지난해부터는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이, 올해에는 아프리카까지 바이오 행사장을 찾아 참가 인원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2000년 미국 나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바이오 열풍이 거품론으로 찬바람을 맞은 뒤 요즘 들어 다시 오름세를 탄 것도 바이오 행사에 쏟아지는 높은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미 벤처캐피털 회사인 버릴&컴퍼니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바이오 산업 최대 시장인 미국의 바이오 기업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특히 지난해 매출은 2004년(595억 달러)보다 20% 늘어난 715억 달러(약 68조원)에 달했다. 이처럼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목적은 각양각색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신약이 될 만한 후보물질을 찾아다닌다. 이들은 부스를 찾아 눈에 띄는 포스터가 있으면 현장에서 미팅 약속을 정하고 커튼이 쳐진 미팅룸에서 긴밀하게 정보를 캐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이들이 신약 후보물질을 적극적으로 찾는 이유는 최근 들어 신약개발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개발 비용을 아끼고, 보다 많은 후보물질을 개비해 ‘신약 공급관’이 말라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해보자는 취지다. 2000년대 들어 미 식품의약국(FDA)이 안전성 관련 규제를 보다 강화하면서 신약개발 비용이 덩달아 치솟았다. 예전에 비해 동물실험 및 사람을 이용한 임상시험을 보다 철저하게 수행해야 되기 때문에 신약개발 기간은 10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하나의 신약을 출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또한 8000억원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 단계에서 상품화에 실패하는 비율도 75%에 달한다. 이에 따라 다국적 제약사들은 바이오 2006 행사장을 신약 후보물질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판단되면 해당업체로부터 물질을 사들이는 ‘라이선스 인’ 계약을 하거나, 해당업체를 통째로 인수하기도 한다. 이도저도 안 되면 공동연구 계약을 추진한다. 세계 1위의 제약회사 화이자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피터 코어 수석부회장은 “현재 화이자의 400여 가지 약물 프로젝트 가운데 45%가 사외에서 아웃소싱한 것”이라며 “아웃소싱 비율은 점차 높아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바이오 2006 행사장을 다국적 기업의 투자 유치 장소로 활용했다. 다국적 기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전방위 ‘구애 작전’을 펼치는 국가는 바이오 허브를 자처하는 싱가포르였다. 다른 전시관에 비해 특히 높이 올린 흰색 전시관에 싱가포르라는 까만 글씨가 눈에 띄었다. 2003년 착공해 올해 말 완공되는 바이오폴리스 홍보에 중점을 뒀다. 외국기업의 R&D 센터가 들어와 연구에 착수하기까지 ‘원스톱’ 서비스는 물론이고, 각종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비 지원 제도도 다양하게 갖춰놨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연구개발 예산을 80억 달러(7조6000억원)로, 2001년부터 5년간 연구개발 예산의 두 배로 늘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예산의 대부분이 바이오 분야에 쓰일 예정이란다. 싱가포르 경제발전 위원회 소속의 스완진 베 박사는 “싱가포르는 바이오폴리스에 입주한 외국기업 R&D 센터에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 인력과 인프라를 적절하게 조합해 제공하는 노하우가 이미 확립됐다”면서 “적극적인 R&D 센터 유치로 기술 수준이 향상되고 부가가치가 높아져 싱가포르 내 바이오 기업들의 매출이 2000년 37억 달러에서 지난해 114억 달러로, 목표치인 74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이미 바이오폴리스에는 외국계 바이오 및 제약기업들의 R&D 센터가 들어서 90% 가까이 차 있는 상태다. 일라이릴리·GSK·노바티스 등이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행사 기간 중 필립 쿠릴스키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장 등 3명의 석학을 싱가포르로 영입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며 지금까지 싱가포르가 확보한 과학자들의 면면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제약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인도 또한 다국적 기업들의 시선 끌기에 충분한 ‘미끼’를 던졌다. 영어 사용이 가능한 400만 명의 과학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1500여 명의 박사급 인력 제공도 가능하다는 유인물을 수북이 쌓아놓았다. 여기에 외국계 R&D 센터에 대해서는 연구개발비의 150%까지 비용으로 공제해주고, 초기 투자액에 대해서는 1대1 매칭펀드까지 약속했다. 특허제품이 출시될 경우에는 3년간 면세도 가능하고, 임상시험용으로 수입하는 약물에 대해서도 전액 세금 면제를 공표했다. 중국 또한 자국 내 20개 이상의 ‘바이오텍 파크’ 홍보에 열을 올렸다. 5만여 명의 풍부한 바이오 기술 인력과 2500여 개의 바이오 기업이 존재하고, 매년 100개의 새로운 바이오 기업이 세워진다는 거대 시장을 강조했다. 베이징 바이오텍 파크의 경우 연구개발비에 대해 매출의 50% 수준에서 비용으로 공제해 주는 등 세금과 재정에 대한 각종 특혜를 홍보하며 외국계 기업들을 유혹했다. 생명공학 불모지로 여겨지던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농업에 기초한 바이오 기술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R&D 센터 유치는 물론 공동연구를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곡물과 바이오 연료가 주요 연구 테마다. 태국은 2002년 방콕 북부에 대규모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하고 외국계 기업의 R&D 센터 입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활동은 다소 미진한 감이 있다. 이상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나흘 동안 화이자와 머크 등 다국적 제약사 관계자들과 만나 R&D 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사전 협의를 가졌다”며 “이들은 이렇다할 확답은 안 했지만 이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R&D 센터 유치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 송도와 경기도, 강원도 등도 이번 행사장에 부스를 설치하고 바이오 연구단지 조성 계획을 알리며 외국계 기업의 ‘입질’을 기대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쉽사리 기대해선 곤란하다. 2003년 과학기술부와 스위스의 노바티스사가 국내에 단계적으로 R&D 센터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해왔지만 결국 노바티스의 발길은 싱가포르와 중국으로 향했다. 싱가포르처럼 세계적인 과학자 확보에 큰 돈을 들여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이들이 마음 놓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시설과 각종 규제 등 인프라를 확실하게 구축했는지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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