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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마케팅’은 선택 아닌 필수

‘아트 마케팅’은 선택 아닌 필수

21세기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은 ‘문화’. 이제 문화는 기업들의 마케팅 영역으로까지 스며들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수단 정도로만 활용됐던 문화가 이제는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마케팅과 접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의류 브랜드 ‘닥스’ 매장을 둘러본 고객들은 내부에 전시된 것이 작품인지, 홍보물인지 아니면 판매하는 상품인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닥스를 수입 판매하는 LG패션이 가나아트센터와 손잡고 신진 작가들에게 닥스의 이미지를 활용한 ‘닥스 재해석’이란 공모전을 열어 선정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 이처럼 신인 작가들에게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만들도록 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방법은 요즘 뜨는 아트 마케팅이다. LG패션 관계자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제품 홍보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요즘 마케팅 관계자들의 최고 관심사는 A.R.T.- 아트다. 백화점에서도, 신제품 론칭 행사에서도, 금융투자 강연회에서도 문화와 예술 코드는 필수다. 아트 마케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외국의 유명 문화예술 장소를 활용하는 아트 마케팅은 삼성전자가 먼저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신제품 론칭 행사를 유럽 주요 도시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로댕 박물관에서 ‘글로벌 로드쇼’를 펼쳤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유통업체 특히 백화점의 경우 아트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본점 11층에 30억원을 호가하는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 작품을 들여온 신세계백화점은 아예 미술을 전공한 큐레이터 5명을 상주시켰다. 본점과 주변에는 총 100억원 상당의 작품 50여 점이 전시돼 웬만한 미술관을 능가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객들이 백화점에 물건만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문화를 즐기고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을 원한다”면서 “상품으로 그릇 하나를 더 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되고 있는 명도 닥스 매장.

지난해 3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은 인테리어 구상 단계부터 작품 전시를 위해 기획됐다. 매장 내부 공간을 활용하는 기획전시는 기존의 방식처럼 매장 내 독립공간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와 달리 고객들이 쇼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시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이런 기획전은 매달 백화점 전체 마케팅 주제와 연결해 지속적으로 열린다. 금융권 역시 아트 마케팅이 화제다. 국내 금융권 중 가장 앞서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하나은행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미술·음악 아카데미나 저명인사를 초청한 무료 강의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트 마케팅 혹은 문화 마케팅은 좁은 의미에선 문화를 마케팅이나 홍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상품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해 제품이 잘 팔리도록 하는 행위다. 넓은 의미로는 ‘기업 메세나’ 활동을 마케팅에 접목시켜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활동을 뜻한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메디치 가문의 이름에서 비롯된 ‘기업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 자선 ·후원 ·투자 등을 뜻한다. 메디치가가 학문과 예술을 지원하면서 붙여진 것이다. 기업 메세나가 마케팅 개념으로 확대된 것이 넓은 의미의 문화 마케팅이다. 메세나와 문화 마케팅이 차이가 있다면 문화 마케팅은 이윤추구가 목적이라는 점이다. 스포츠 마케팅이 규모가 크고 더 많은 대중을 목표로 한다면, 아트 마케팅은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스타 마케팅이 단기적 효과를 노린다면 아트 마케팅은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조각 작품.

대표적인 아트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회자되는 것이 프랑스 보르도 특등급 와인 ‘무통 로쉴드’. 당시 2등급 와인으로 분류되던 ‘샤토 무통 로쉴드’는 1946년부터 조르주 브라크·후앙 미로·파블로 피카소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와인의 라벨에 사용했다. 이 독특한 마케팅은 대성공을 거뒀다. 100년간의 2등급 와인 신세를 접고 73년부터 5대 특등급 와인 반열에 오른 것. 이 사례가 최초의 아트 마케팅으로 기록될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서구권에서 아트 혹은 문화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제품과 서비스 수준이 평준화되면서 독특한 문화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급격히 아트 마케팅이 활성화되는 것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의 고정민 박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분석한다. 고 박사는 “소비자들의 소득이나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문화 활동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 경영자들의 문화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트 마케팅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술 ·공연 ·전시 등의 행사에 후원이나 협찬 형태로 지원을 하거나 유명작가 작품전과 공연 등을 직접 개최한다. 둘째, 기업 이벤트에 문화행사를 연계시키는 방법으로 신제품 발표 시점에 미술전 ·패션쇼처럼 이목을 끌 만한 행사를 동시에 개최한다. 셋째, 아트 혹은 문화를 제품에 직접 접목시키거나 유통 장소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해 기업 및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는 방법이다. 첫 번째 유형이 가장 오래된 방법이라면, 두 번째·세번째 유형은 최근의 트렌드다. 기업 홍보의 일환으로 예술행사에 협찬하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업 마케팅의 핵심을 문화나 예술에 맞추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문화 마케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자 문화 마케터란 신종 직업도 탄생했다. 문화 마케팅 커뮤니티나 관련 강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커뮤니티는 최초의 문화 마케팅 전문업체라고 할 ‘풍류일가’가 주도하며, 3,000여 명의 문화 마케터 혹은 문화 마케터 지망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문화마케팅연구회’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컬쳐유니버’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전시된 작품.

평창동에 위치한 갤러리 가나아트센터도 ‘아트 마케팅’팀을 별도로 두고 기업체 사옥 공간컨설팅, 신제품 론칭 쇼, 신차 발표회 기획 등을 하고 있다. 풍류일가의 김우정 대표는 “기업 마케팅에 있어서는 1,000명의 일반 고객보다는 단 한 명의 열성 고객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면서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 마케팅은 열성 고객을 유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콜린 트위디 유럽기업메세나총회 회장은 “A(아트)+B(비즈니스)=C가 된다. 여기서 C는 창조성(Creativity)>·문화(Culture)·통상(Commerce) ·사회(Community)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예술과 기업이 만나면 많은 것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으로 아트 마케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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