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바다이야기’보다 무서운 유혹

‘바다이야기’보다 무서운 유혹

‘바다이야기’로 연일 시끄럽다. 성인 오락실, 성인 PC 방 등 불법영업장들이 앞으로도 이슈거리가 될 가능성은 작다. 사법부 등에서 이미 여러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법 밖에 있는 도박 사업들은 어떨까? 한국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메인 서버’를 둔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국내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면? 취재 결과 이는 기우가 아님이 드러났다. 이미 수만, 아니 수십만에 달할지도 모르는 국내 네티즌들이 해외 도박 사이트들의 유혹을 받고 있다. 신용카드 하나만 있으면 ‘도박’을 즐길 수 있는 해외 사이트들의 실태를 집중 분석해 봤다.
서울 S외국인학교에 재학 중인 박종현(17, 가명)군. 박군은 한 달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누구나 포커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문메일이었다. 평소 케이블 TV로 중계되는 포커를 관심있게 봐 온 그였다. ‘클릭’만 하면 ‘게임 시작’ 이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도박용 칩을 사고 게임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성인 인증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확인 등의 절차도 없었다. 박군의 유일한 망설임은 칩을 사기 위해 신용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머니에게서 받은 ‘비상용 카드’로 해결할 수 있었다. 3만원어치의 칩을 사서 사이트에 개설되어 있는 수많은 방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보기만 봤지 처음 쳐 보는 포커. 10분 만에 3만원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박군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5만원어치의 칩을 샀다. 이 또한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잃었다. 같은 과정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도박 중독자들이 늘상 얘기하는 ‘대박 패’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포커 사이트에 접속한 지 6시간. 350만원의 월 카드 이용 한도를 다 채우고서야 박군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또 하고 싶어요. 다른 사이트들도 꽤 많이 알아 놓았는데…. 카드만 있으면…. ” 단 한 번의 도박으로 박군은 해외 도박 사이트의 ‘장기 고객’이 됐다.

도박 사이트 앞다퉈 아시아 진출 해외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의 ‘한국 내 공습’이 시작되고 있다. 자주 적발돼 온 국내 불법 도박 사이트들 얘기가 아니다. 어떻게라도 법망을 조여갈 수 있는 국내 사이트들과는 달리 해외 사이트들에 대해선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할 수가 없다. 해외에 메인 서버를 두고 있고, 운영자들 또한 신원추적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미 많은 한국인이 해외 도박 사이트들을 방문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외화 유출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외화 유출은 앞으로 급속히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많은 도박 사이트들이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시아 국가들은 해외 도박 사이트들의 가시권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 세계 온라인 도박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미국의 경우 온라인 도박을 규제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돼 상원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7월엔 규모론 세계 최고 수준이던 ‘벳 언 스포츠’(미국명 BetonSports)가 도박 사이트 중 처음으로 미주리 주 검사들에게 정식 기소를 당했다. 벳 언 스포츠에 최종 부과될 수 있는 벌금은 대략 4조3000억원(45억 달러)에 이른다. 이 사이트 데이비드 카루더스 사장 또한 구속돼 도박 업체들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많은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은 임시방편으로 미국령이 아닌 코스타리카·도미니카공화국 등으로 ‘기지’를 옮겼다. 영국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곤 대부분 유럽국들도 법적 대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해외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규모도 크고, 이들 사이트를 제어할 만한 법률적 기반도 없어 진출에 큰 어려움이 없다. 7월 이후 전체 매출의 4분의 3을 담당하던 미국에서 ‘퇴각’한 벳 언 스포츠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른 주요 사이트들 또한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서 포커 대회를 개최하면서 점차 아시아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열풍 부는 온라인 ‘포커 붐’ 해외 도박사이트들의 규모는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큰 도박 사이트인 ‘파티 게이밍’(Partygaming.com)의 규모는 110억 달러, 약 11조원으로 추정된다. 웬만한 대기업 못지 않다. 파티 게이밍은 영국 증시에도 상장돼 있다. 영국이 도박 사이트들을 처음으로 산업으로 인정한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온라인 도박 열풍으로 많은 외환을 유입할 수 있다는 영국 의회의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포커· 카지노게임(블랙잭·룰렛 등), 스포츠 도박 등이 주를 이루는 파티 게이밍의 사업 분야 중 가장 큰 수입원은 ‘파티 포커’(Partypoker.com) 라는 포커 사이트다. 파티 포커는 한국에 최초로 진출한 해외 도박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사실은 파티 게이밍 외에 대형급 도박 사이트들이 여러 곳 있다는 것이다. 포커 전문 사이트인 ‘얼티멧 벳’(Ultimatebet.com), ‘풀 틸트’(Fulltilt.com) 등이 그에 속한다. 포커란 게임 참여자들마다 패를 나눠 가진 뒤 패의 ‘순위’에 따라 우열을 가리는 카드게임이다. 프랑스의 ‘포크’라는 게임에서 유래했다. 온라인 ‘포커룸’(카지노에서 포커게임을 하는 장소를 일컬어 부르는 말)에서 오고 가는 판돈은 하루에만 몇백억원에 달한다. 판마다 이용자들 사이에 오고 가는 ‘판돈’의 1~3%를 수수료로 떼는 게 이 사이트들의 주 수입이다. 날마다 수십~수백만 번 ‘판’이 벌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수입은 엄청나다. 도박 사이트들이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한 건 2003년 이후다. 그 전엔 몇몇 곳만이 운영되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젯거리는 안 됐다. 하지만 2003년 여름, 도박 사이트들은 ‘금맥’을 발견했다. 그해 세계 포커 챔피언 십(The World Series of Poker) 챔피언 결정전에서 (Main Event) 크리스 머니메이커라는 미 테네시주의 아마추어가 우승을 한 것이다. 839명이 1만 달러씩 참가비를 내고 치른 대회였다. ‘프로’들을 제치고 ‘아마추어’가 우승한 적은 그 전에도 있었다. 머니메이커가 화제가 됐던 이유는 1만 달러의 참가비를 직접 내지 않고, 40달러의 돈으로 온라인상의 예선전에 참가, 1등을 함으로써 챔피언 결정전 출전권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머니메이커(MoneyMaker) 라는 본인의 성처럼 40달러를 투자해 25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선 ‘포커 붐’ 이 일게 됐다. “머니 메이커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머니메이커가 우승한 이듬해인 2004년엔 2576명이, 2005년엔 5619명, 올해엔 8773명이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2003년 250만 달러였던 상금도 2004년엔 500만, 지난해엔 750만, 올해는 1200만 달러로 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운이 좋아 온라인 예선전을 통과하면 1만 달러의 현금이 없는 이들에게도 1200만 달러의 ‘대박’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포커 붐 덕을 가장 많이 본 곳이 바로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 특히 포커 사이트들이다. 온라인 포커가 가지는 매력도 많이 작용했다.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단순 운 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드라마에서 다뤘듯 일명 프로 겜블러라는 자들이 포커를 친다. 엄연히 ‘실력’과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다. 온라인 블랙잭처럼 컴퓨터와의 1 대 1 대결이 아니라 온라인상의 다른 유저들과의 게임이기 때문에 ‘사기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큰 판’을 위한 ‘연습’ 목적으로 포커 사이트들을 방문하는 이용자들의 수가 최근 몇 년 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포커 사이트들이 많이 생긴 것은 물론이다.

해외 도박 사이트 속수무책 전 세계적으로 ‘포커 붐’이 조성된 데엔 세계 최대 스포츠 채널 ESPN의 역할도 컸다는 분석이다. 인기를 더해 가는 포커는 ESPN에는 절호의 마케팅 기회였고, 2002년부터 시작한 ESPN의 포커 대회 중계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포커는 도박이 아닌 스포츠’라며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서고 있다. 3년여 전부터 ESPN의 포커 중계방송을 한국에서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D케이블 채널에서 방영 중인 올해 분 또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해외 도박 사이트들의 공습.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아직 ‘속수무책’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관계자는 “해외 도박 사이트들의 유해성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 어떤 대책이 있는지에 대해선 말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사이트들을 두고) 앞으로 많은 검토가 필요 한 부분”이라고 했다. 한국 등의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해외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의 홍보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저돌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사이트가 처음 칩을 살 때 2~3배의 칩을 주는 방법으로 새로운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100달러를 지불하면 300달러의 칩을 받을 수 있단 소리다.


르포 | 압구정 ‘포커바’


“한 테이블 판돈 1억원” 포커 붐은 이미 한국에 상륙한 것일까. 카지노 바들의 성업으로 한때 논란이 됐던 압구정 골목들에 포커 바들이 들어서고 있다. 기자가 직접 확인한 포커 바는 총 4곳. 압구정 로데오 거리 골목에 ‘보드 게임방’이란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이었다. 포커를 의미하는 영화 간판만이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대부분 포커 바들의 경우 지하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카지노 바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보안 체계도 매우 엄한 편이다. 기자가 방문한 포커 바는 지하로 내려가는 대문부터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면 카메라를 통해 얼굴을 확인하고 출입시킨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면 아예 대답을 안 한다. 소위 ‘유학생 티’ 를 내야 1차 검문을 통과할 수 있다. 물론 단골의 경우엔 예외다. 곳곳에 자동 암호 장치를 설치해 단골에겐 암호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에도 문이 있다. 이곳도 물론 잠겨 있다. 위를 쳐다보니 감시 카메라가 2개 달려 있었다. 다시 한번 신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다. 단골도 2차 관문에서만큼은 감시 카메라에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한다. 2차 검문을 통과하면 포커 바 안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검문이 끝난 것은 아니다. 모르는 얼굴이 방문했을 땐 ‘휴대전화 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본명을 적고, 휴대전화 번호를 기재한다. 그리고 곧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본다. 본인 번호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3차례에 걸친 검문은 매우 치밀했다. 또 만일을 대비해 게임 중이던 모든 사람이 30초면 달아날 수 있는 ‘뒷문’도 있다고 했다. 총 5대의 포커 테이블을 둔 이곳엔 진한 화장을 한 여성 딜러들까지 두고 있다. 최하 게임 금액은 20만원. 그러나 다른 게임자들의 칩을 고려할 때 적어도 50만원 정도의 칩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테이블 한 대에서 오가는 판돈은 하룻밤 1억원 정도라고 운영자는 말했다. 놀라웠던 것은 고등학생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포커 바의 수입은 매판 걸리는 ‘판돈’의 2~3% 가량을 떼는 것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카지노 칩이 오고 가는 소리.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비밀 도박장’이 서울 한복판에 버젓이 있었다.


도박 사이트 실태


최소 25달러부터 게임 시작
해외 포커 사이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입을 하고 게임을 하는 데 어떤 신원확인 절차도 없다는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18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약관동의에 ‘클릭’만 하면 된다. 즉 칩을 사는 데 필요한 신용카드만 있으면 어느 누구라도 도박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로도 칩을 쉽게 살 수 있다. 한 사이트에 가입부터 게임할 때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봤다. 1.사이트 별로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한 후 이에 접속, 계정을 만든다. 신원확인이라곤 ‘당신은 18세 이상입니까?’라는 질문 옆 상자를 체크하는 게 전부다. 2.칩을 구입한다. 일반적으로 최소 25달러의 칩을 구입해야 한다. 비자·마스터카드 등 어느 신용카드 한 장만 있으면 본인 것이 아니라도 칩 구입이 가능하다. 3.게임을 한다. 큰 사이트의 경우 동시 접속자 수가 피크타임 일 때는 5만 명에 달한다. 가지고 있는 돈의 규모에 맞는 방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기본 1센트 방부터 100달러까지 방의 갯수만 1000여 개다. 100달러 방의 경우 매판 오고 가는 돈이 평균 6000달러를 넘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

2美항모 조지워싱턴함 日 재배치...한반도·中 경계

3공항철도, 시속 150km 전동차 도입...오는 2025년 영업 운행

4두산 사업구조 재편안, 금융당국 승인...주총 표결은 내달 12일

5‘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

6민희진, 빌리프랩 대표 등 무더기 고소...50억원 손배소도 제기

7中, ‘무비자 입국 기간’ 늘린다...韓 등 15일→30일 확대

8빙그레, 내년 5월 인적분할...지주사 체제 전환

9한화오션, HD현대重 고발 취소...“국익을 위한 일”

실시간 뉴스

1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

2美항모 조지워싱턴함 日 재배치...한반도·中 경계

3공항철도, 시속 150km 전동차 도입...오는 2025년 영업 운행

4두산 사업구조 재편안, 금융당국 승인...주총 표결은 내달 12일

5‘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