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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진타오 주석 독주체제 굳힌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 독주체제 굳힌다


전임자 장쩌민의 추종세력 상하이방 대거 축출로 집권 2기 권력 다지기 본격화 2주 전 중국 공산당의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가 전격 해임됐다. 미국 할리우드의 마피아 영화 속 같은 사건이었다. 오만한 천 서기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사이의 권력투쟁은 약 2년 전부터 시작됐다. 상하이시 정부의 부패문제와 경제정책을 둘러싼 두 사람 사이의 심각한 철학적 견해 차이가 발단이었다. 그러나 후 주석은 천량위를 신속히 제거할 수 없었다. 천량위는 후 주석의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천량위가 속한 이른바 상하이방(上海幇·장 주석 시절 중용된 상하이 출신 고위 인사들)의 대부다. 그래서 후 주석은 적절한 공격기회를 모색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는 먼저 베이징과 톈진, 그리고 해군 내부에서 부패척결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 8월 상하이에서 1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회보장기금 관련 추문이 터졌다. 그 직후 후 주석은 장쩌민의 새 책 출간을 거당적으로 축하해 주면서 그의 기분을 맞춰줬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수사관 100여 명이 상하이시를 급습해 천량위의 측근 한 명을 구속했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지 카이징에는 상하이시 고위 관리들이 인민들의 연금기금을 각종 부동산 프로젝트에 불법적으로 투입해 낭비한 내막이 전례 없이 자세하게 소개됐다. 3주 전 후 주석은 상하이시에 새로운 준(準)경찰기구를 설치하고 자신의 측근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동안 상하이시의 공공치안 책임자는 장쩌민의 조카(그 역시 지금은 당국의 조사를 받는 중이다)가 맡아왔다. 외국 언론매체와 인터뷰할 권한이 없어 익명을 요구한 한 공산당 관보의 편집인은 이렇게 말했다. “후 주석 측은 상하이시 관리들의 도피를 막아야 했다. 게다가 부패사건 수사를 상하이시 경찰에만 의존하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10여 년래 가장 고위급 인사들을 겨냥한 이번 숙청에서 천량위는 연금기금 추문에 연루된 혐의로 모든 당직을 박탈당했다. 이번의 권력게임은 후 주석으로선 전례 없이 좋은 시기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주 공산당 16대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를 연다. 여기에서는 당 조직 개혁과 후 주석의 연임을 위한 정책 처방이 논의된다(후 주석은 2007년부터 시작되는 5년 임기의 국가주석직에 재선출되리라고 예상된다). 가장 중요한 사안은 후 주석 이후를 대비한 권력승계 문제를 검토하는 일이다.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에 대한 상하이방의 장악력을 분쇄한 만큼 후 주석은 여느 때보다도 강력한 모습으로 6중전회에 참석했다. 미 시카고대학의 정치학자 양달리는 “후진타오에겐 진정으로 획기적인 대회다. 그의 위상은 난공불락이다. 이제 관심사는 후 주석이 그런 권력과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점이다”고 말했다. 부패문제 이외에도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상하이방과 충돌해 왔다. 그들은 중국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좁히고 가난한 내륙지방에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들을 주창해 왔다. 번창하는 해안지대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상하이방은 이런 문제를 중시하지 않았었다. 일각에서 촌스럽고 거칠다는 인물평가를 받는 천량위는 2004년 6월 공산당 정치국 회의 때 노골적인 발언으로 파벌·지역 간 긴장을 조성했다. 당시 그는 중앙정부가 거시경제적 통제수단을 이용해 해안지방의 경제성장을 방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특히 상하이시의 성장을 어떻게 막으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 회의에서 천량위는 원자바오와 설전을 벌이면서 만일 중앙정부의 규제조치로 실업·파산 사태가 촉발된다면 원 총리와 그의 내각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후 주석은 중앙정부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반박했다. 그러나 그 후 상하이시의 경제성장률은 계속 치솟아 지난해에는 13%를 기록했다. 2주 전 숙청 드라마의 정치적 효과는 심대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중국식 비공개 중간선거의 서막이다. 후 주석의 최대 관심사는 후계자, 혹은 후계자들(어느 정계 관측통의 표현)을 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록 천량위를 제거했지만, 후 주석은 장쩌민보다 훨씬 더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 이는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오쩌둥·덩샤오핑, 그리고 어쩌면 장쩌민의 치하에서처럼 강력한 철권통치와 거창한 이념투쟁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고도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치밀한 위험관리가 필요한 시대다. 공산당의 권력장악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은 점차 당권투쟁에서 정부 정책 분야로 옮겨져 왔다. 천량위와의 마찰에서 드러났듯이 당내 갈등은 중요한 정책 추진을 저해하기도 한다. 후 주석은 많은 지방정부 책임자 자리에 젊은 측근들을 임명해 오면서 그런 도전들을 사전에 차단하려 애써 왔다. 특히 정실주의적 국가사업 발주 관행을 없애고 사회주의식 복지혜택을 부활시킴으로써 지방과 도시의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앞서의 당보 편집인은 이렇게 말했다. “심지어 천안문 사태 기간에도 긴장은 주로 당내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에서 발생한다.” 워싱턴 DC 소재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 관련 전문가인 쳉리는 후 주석이 자신의 인사정책에 도전할지도 모르는 인사들에게 ‘도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면서 “그는 이제 정치국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놓을 권한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2007년 이후에도 정치국의 9인 상무위원회에 잔류할 게 확실해 보이는 인사들은 후 주석과 원 총리, 그리고 이념담당 상무위원인 리창춘(李長春)뿐인 듯하다. 이는 후 주석 측이 상무위원직 2~6개를 더 확보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의미심장한 권력변화다. 상하이방과 연계된 상무위원들, 예를 들어 황쥐(黃菊) 전 상하이시 당서기(그의 부인은 천량위 사건에 연루됐다)와 전 베이징시 당서기 자칭린(賈慶林) 같은 인물은 입지가 좁아질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후임자 임명에서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은퇴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권의 상층부에서는 동시에 대규모 세대교체도 시작됐다. 후 주석과 원 총리가 이끄는 중국의 이른바 4세대 지도부는 머지않아 5세대 정치인들(40대 중반~50대 중반)에게 자리를 양보할 전망이다. 현재 정치국에 들어와 있는 5세대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이는 후 주석이 지방정부 수장들 중에서 곧바로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해 정치국 상무위원에 승진 발탁할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덩샤오핑도 1992년 후진타오를 그런 식으로 발탁했다). 후 주석이 총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지는 않다. 사실 그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단파(團派), 즉 공산당 청년단에서 많은 피후견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를 승계할 대표적인 인물들은 “두 명의 ‘리(李)’”로 알려졌다. 랴오닝(遼寧)성 당서기인 리커창(李克强·51)과 장쑤(江蘇)성 당서기인 리위안차오(李源潮·56)다. 1980년대 초 두 사람은 청년동맹에서 후진타오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법학과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다. 또 견실한 지도자로 알려졌고 서로 잘 아는 사이다. 1980년대 중반에는 베이징대학에서 경제개혁에 관한 책을 공동 저술하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쳉리는 리위안차오가 “훨씬 더 대담하고 창의적인 인물”이라고 평했다. 리위안차오는 2000년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6개월간 공부했다. 장쑤성의 성도인 난징의 당서기인 그는 공무원 채용 시 면접 장면을 TV로 중계하는 등 실험적인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후 주석이 자신의 고향인 장쑤성으로 데려와 고위직에 앉히기 전까지는 정부 내에서 약 20년 동안 고위직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후 주석이 천안문 사태로 처벌받은 동지들에게 동정심을 보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고 쳉리는 말했다. 쳉리에 따르면 후 주석은 그런 동지들 몇 명을 장쑤성으로 데려와 고위직에 앉혀 많은 당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 상하이시 부시장의 아들인 리위안차오는 오래전부터 천량위의 후임으로 상하이시 당서기가 될 후보들 중 한 명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물론 후 주석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편애하는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2005년 홍콩에서 출간된 ‘중국 공산당의 제5세대(The Chinese Communist Party’s Fifth Generation)’에 따르면 후 주석은 2004년 장쑤성의 한 철광석 탄광에서 발생한 세금포탈 추문으로 곤경에 빠진 리위안차오를 구해준 적이 있다. 그 사건에 연루된 장쑤성 관리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자 후 주석의 비판자들, 특히 상하이방은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후 주석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간주되는 인물은 리커창이다. 리커창은 공산당·공업·농업 등 세 핵심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신중하고 인맥이 두텁다고 알려졌다. 다시 말해 후 주석과 매우 닮았다는 얘기다.“리커창은 자신의 모든 연설 내용을 기억하며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앞서의 당보 편집인은 말했다. 리커창은 공산당 청년단장을 역임한 뒤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사회적으로 열악한 허난(河南)성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그곳에서 그는 대형 국영 탄광들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폭발사고 등 각종 재앙에서도 살아남았다. 현지 당국자들이 외국인 기자들을 빈번히 억류하기로 악명높은 허난성에서 그가 정보의 흐름을 철저히 차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각종 추문도 용케 피해갔다. 2주 전 상하이시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찰이 있은 뒤 두 명의 허난성 고위 관리가 2003년에 발생한 정부 부지 불법 징발 행위로 비판을 받았지만 리커창은 비난을 면했다. 대체로 중국의 5세대 정치지도자들은 선배들보다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좀 더 개방적인 듯하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그렇다. 베이징 소재 런민대학의 공공행정학 교수 마오셜롱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 젊은 당 지도자들은 겸손하고 보다 실용주의적이며 타인들과의 논쟁을 피한다. 또 잘난 체하지 않으려 애쓴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학생시절이던 문화혁명 때 농촌으로 쫓겨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경제개혁 시대에서 공직생활을 해왔다. 그런 만큼 이념적 금기에 본능적으로 얽매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는 차기 총리나 부총리가 될 후보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이들 후보군에는 왕치산(王岐山) 베이징 시장, 저우샤오촨(周小川), 보시라이(簿熙來) 상무부장이 포함된다. 모두들 시장지향적이며 외국 경제계에서도 평판이 좋은 인물들이다. 상하이시 부패관리 검거 선풍은 후 주석의 집권 2기와 그를 추종하는 지도자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만한지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막대한 사회보장기금(중국의 국영 언론은 이를 ‘생명을 구하는 돈’이라고 부른다)을 활용해 도시 실업자들의 취업을 돕고 지방 농민들의 교육·보건 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후 주석의 경제적 대중영합주의(populism)가 곧 진보적인 노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 역시 입으로는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정치개혁을 향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없다. 다당제 선거, 사법부 독립, 진정한 언론자유 등 입헌 민주주의의 특징들을 구현할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다. 현재 후 주석의 우선 과제는 공산당의 정치적 생존이다. 앞서의 당보 편집인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사실 정풍운동의 일환으로 당원들을 모아놓고 소련 붕괴 과정을 기록한 선동적인 TV 시리즈를 시청하게 한다. 과연 후 주석의 강력한 후원이 후계자들의 전향적인 개혁 실험을 가능하게 할까? 5세대 그룹에 속한 어느 고위 중국 관리는 얼마 전 두 명의 뉴스위크 특파원과 점심 식사를 하며 전례 없이 솔직하고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경제성장에 걸맞은 정치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개혁하지 않으면 중국은 사회 혼란에 직면한다.” 그는 후 주석 세대의 지도자들로부터는 진정한 정치개혁을 바라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그 관리의 시야는 동료 5세대 그룹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내년의 공산당 대회 이후를 노리며 기다린다. 그는 뉴스위크 기자들에게 “중국의 5세대 정치인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또 느닷없이 차세대 정치 유망주들(그는 자신과 ‘두 명의 리’도 포함시켰다)의 이름을 5~6명 거명하면서 “미국 언론은 우리에 관해 아는가? 미국 정부나 미국민은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진정한 대답은 ‘모른다’이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군에 관해 많이 생각해본 미국인은 드물다. 그러나 이는 중국 인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공산당 정치국 내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권력투쟁에 관해 2주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번의 상하이방 숙청은 대대적인 지도부 교체가 임박했음을 인민들에게 상기시켰다. 중국의 새로운 통치방식상의 변화는 그 이후에야 이뤄질지 모른다. With MELINDA LIU in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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