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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에게 배우는 경영] “일생의 80% 인재 양성에 쏟아”

[위인에게 배우는 경영] “일생의 80% 인재 양성에 쏟아”

지난 호에 짚어본 것은 호암이 어떻게 큰 의사결정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는가였다. 그렇다면 그가 내렸던 수많은 전략적 의사결정의 수준은 어떠했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1950년대 설탕과 모직을 만들어 팔기로 한 결정부터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때 기업이 소비재를 생산하느냐, 생산재를 만드느냐에 따라 그 기업의 도덕성을 평가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에 대한 호암의 생각은 확고했다. 경제에는 발전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 맞춰 그는 사업을 전개하려 했다. 초기에는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소비재 산업과 경공업을 육성,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경험과 기술능력 그리고 자본을 축적한다, 그 바탕 위에서 고도의 기술과 많은 자본이 소요되는 중화학 공업이나 전자 등의 고도기술 산업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1950년대 한국의 경제적·기술적 여건을 생각하면, 그리고 귀중한 외화의 대부분이 공산품·소비재를 수입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식품과 의류에 집중하기로 한 결정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수입 대체 산업을 통해 외화를 절약할 수 있었고 상당한 기술능력과 경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60년대 말 그는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시장 규모, 수출 전망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적합한 진출 분야가 전자산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기존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1969년 1월에 출범한 회사가 오늘날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다. 흑백TV 생산으로 시작한 삼성전자는 컬러TV·냉장고·에어컨 등을 생산하면서 1983년 반도체에 뛰어든다. 평소 사장단의 의견을 늘 존중했던 호암이었지만 반도체에 대해서는 사장단의 반대를 물리쳤다. 당시 그의 결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다음과 같은 정보였다. “철강은 부가가치는 t당 340달러, 석탄은 40달러, 알루미늄은 3400달러, 텔레비전은 2만1300달러, 반도체는 85억 달러, 소프트웨어는 426억 달러나 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에 내린 이 결정은 먼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기업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교훈2 : 경영의 앞면은 기술이다 호암은 이공계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기술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으며, 매우 중시했다. 그는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술은 돈보다 중요하다.”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기술도입 4원칙
1. 최고경영자는 솔선수범해서 적극적으로 기술을 도입하되 그것을 효율적으로 살려야 한다. 2. 도입의 거점을 도쿄에 두고 세계 특허 등 고급 자료를 입수해서 활용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3. 삼성 내부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기존의 연구단체인 카이스트(KAIST) 등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4. 무조건 저자세로 도입하려 들지 말고 왜 그 기술에 접근하려는가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해서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탕 공장이나 모직 공장을 지을 때도 그는 제품생산을 위한 공정기술, 제품기술 등에 대해 열심히 묻고 배웠다. 따지고 보면 그는 평생 동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기업을 일으킨 진취적인 기업인이었다. 제당·모직에서 가전·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그는 끈질기게 경영과 기술, 기술과 경영의 두 문제와 씨름했다. 그에게 있어 기술과 경영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일찍이 기술도입 4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박스 참조> ‘숨은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세계 초일류 중소기업들의 전략을 연구한 바 있는 독일의 헤르만 지몬 교수에 따르면 세계적인 많은 대기업이 지나치게 기술 또는 시장에 치우치는 흠이 있다. <도표 참조> 그런데 네 번째 항목에서 보듯 호암은 기술의 시장성·수익성을 중시하고 있다. 시장성을 무시한 기술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과 시장에 대한 균형감각이다. 호암의 기술에 대한 강한 애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삼성종합기술원의 설립이다. 원래 호암은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원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현되지 않자 1982년부터 86년까지 종합기술원에 무려 4600억원을 쏟아 부었다. 또 삼성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86년에만 총 매출액의 4%에 해당하는 2200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당시 국내 제조회사들이 매출액의 평균 1.9%를 기술개발에 쏟아 넣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다. 호암은 그의 마지막 정열을 기술원 설립에 쏟았다. 그는 말년에 경영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을 대부분 남에게 맡겼지만, 기술원에 관한 한 진척상황을 스스로 점검하고 인재 확보 및 운영 방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삼성종합기술원은 기술을 중시한 기업인 이병철의 최후 작품이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그가 임종하기 직전 완공되었는데, 그는 건강이 악화돼 준공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기술원의 네 가지 주요 과제를 제시했다. 1. 미래 유망 첨단상품의 개발 2. 여러 회사에서 공통으로 활용할 핵심기술의 개발 3. 개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거나 파급효과가 큰 소재 및 제품의 개발 4. 계열사들이 중복하여 개발하고 있거나, 또는 공동으로 개발해야 하는 대형 과제

교훈 3 : “인재 못 키워도 부실경영”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가 1980년 『경쟁전략』이라는 책을 쓴 이후 세계의 많은 기업은 자기 회사만의 독특한 경쟁우위를 갖추고 또 그것을 지키는 데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다. 기술과 마케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시장에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스탠퍼드 대학의 제프리 페퍼 교수가 1994년에 낸 『사람이 경쟁력이다』라는 책에 따르면 1972~1992년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다섯 회사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말해 사람을 잘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꾸준히 개발·활용하는 것이 이들의 성공비결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벤슨 샤피로 교수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만이 일을 해낼 수 있다.” 호암 이병철이 50여 년간 줄곧 실천한 것도 바로 ‘인재 제일’이라는 경영이념이었다. 1980년 7월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어느 연수 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일생의 80%를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에 보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인다. 삼성은 인재의 보고(寶庫)라는 말을 세간에서 자주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이 이상 즐거운 일은 없다.” 그는 평소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이 말에는 단순히 사람이 귀중하다는 뜻을 넘어 기업은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회사란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팔아 이윤을 남기는 조직체가 아니고, 인재 양성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발전을 꾀하는 곳이다. 그는 사람에 관해 원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모처럼 길러 놓아도 떠나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삼성을 떠나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떠나는 사람을 굳이 잡지 않는다. 유능한 인재를 길러 회사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기업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사람’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사람’이다. 국가·사회에 쓸모 있는 인재를 길렀다고 생각하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래서 그는 인재 양성을 게을리하는 기업인들을 매우 못마땅히 여겼다. “기업이 귀한 사람을 맡아서 훌륭한 인재로 키워 사회와 국가에 쓸모 있게 만들지 못한다면 이 역시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부실경영(不實經營)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그의 ‘인재 제일’이라는 경영이념을 실천에 옮겼을까? 생각과 행동이 다른 차원이듯 이념과 실천도 그렇다. 실천은 쉽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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