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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중견기업] 조류 독감 딛고 힘차게 ‘꼬끼오’

[파워 중견기업] 조류 독감 딛고 힘차게 ‘꼬끼오’

▶1942년 전남 목포 서울대 축산학과·美 컬럼비아대 국제경영학과 수료 1967년 농림부 농촌지도사 1972년 대성미생물 영업부장 1974년 서울식품 농장담당 부장 1977년 퓨리나코리아 기술·기획부장 겸 농장장 1982년 대상사료 사업본부장 1990년 대상농장(옛 제일농장) 대표이사 1991년 체리부로 설립, 현 대표이사 회장

중부고속도로 진천 IC. 여기서 10여㎞쯤 더 시골길을 달려야 국내 3위 닭고기 가공업체 ㈜체리부로 본사가 나온다. 거래업체 말고는 손님이 거의 없을 것 같은 한적한 곳인데 최근 이 회사의 김인식(64) 회장은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 9월 5일 제2공장을 준공하고 나서 대대적으로 회사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예부터 소나 닭 같은 생물을 잡는 것은 보고 싶어 하지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런 연유로 ‘도축장=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지요.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봐야 닭고기의 품질과 위생을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억원을 투자한 신공장을 자랑하고도 싶고요.” 김 회장은 견학로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고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고 자랑한다. 그의 말대로 닭고기 공장엔 예상보다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에어 칠링 시스템(Air Chilling System)’이다. 도계는 저온 냉각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 어떻게 냉각하느냐에 따라 닭고기의 신선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닭고기는 털을 뽑아낸 후 최소한 6℃ 아래에서 냉각해야 한다. 에어 칠링 시스템이란 닭고기 가공 라인에 0~1℃의 ‘차가운 바람’을 쏘아주는 것을 말한다. 스프링클러가 잔디밭에 물을 뿌리는 것처럼 닭고기를 순간 냉각한다고 보면 된다. “에어 칠링 시스템의 길이가 2㎞에 이릅니다. 국내 최장이지요. 닭고기가 1시간30분 동안 찬바람으로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염과 세균 감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어요. 또 수분 함유를 줄여 훨씬 쫄깃한 육질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미세한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부들은 단박에 어떻게 다른지 압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체리부로 단골’이 꽤 늘어날 것입니다.” 첨단화된 사진판독도 볼거리다. 닭고기 생산라인에서는 1초에 두 마리 반의 닭고기가 지나간다. ‘똑딱’ 하는 사이에 닭다리 다섯 개가 지나가는 셈이다. 사람 눈으로 품질의 결함 여부를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김 회장은 “그래서 모든 제품을 ‘속살’까지 들여다보고 이상이 있을 경우 자동 탈락하는 디지털사진 판독 시스템을 갖췄다”며 “특히 히스토리 기능이 있어 사육농장을 역추적해 문제점을 뿌리부터 개선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속살까지 들여다본다” 체리부로. ‘맛있는’ 이라는 뜻을 가진 ‘체리(Cherry)’와 ‘육용으로 쓰이는 닭’을 일컫는 ‘브로일러(broiler)’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맛있는 닭고기라는 뜻이다. 1991년 창업 때 김 회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일반인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체리부로는 축산업계에서 오뚝이 같은 회사로도 통한다. 축산업계에서는 ‘산 역사’ 같은 인물이 김 회장이다. 고교 때 수원농대(현 서울대 농대)에서 말을 타본 것에 반해 축산학과를 택한 김 회장은 50년 가까이 축산 외길을 걸어왔다. 농촌 지도직 공무원(1967년)에서 시작해 사료회사 경영자(68년), 미생물회사 영업부장(대성미생물·72년), 소 목장 관리인(서울식품·77년), 다국적 사료회사 기술부장(퓨리나·77년), 돼지 농장 대표(대상농장·90년) 등을 거쳤으니 축산 전공자치고 김 회장처럼 복(福)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이력 참조). 서울식품 시절엔 300두의 소를, 대상농장 시절엔 40만 두의 돼지를 길렀다. 그만큼 ‘새끼’를 많이 경영했던 기업가도 드물 것이다. 지금은 연간 3700만 마리의 닭고기를 공급하고 있으니 새끼가 훨씬 늘었다. 잘나가던 봉급쟁이였던 김 회장이 지천명의 나이에 독립을 결심한 것은 대상그룹(옛 미원)의 도계장 인수가 좌절되면서부터. 대상에 근무하던 시절 김 회장은 식품사업으로 외연 확장을 원했지만 “재벌 사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여론에 좌절하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고유 업종 침해 논쟁이 시끄러울 때였다. 육계부터 도계·사료·유통까지 닭고기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주장하던 김 회장은 사표를 냈다. “회사가 안 하면 내가 한다”는 각오였다. 종자돈이 없었다. 농림부 축산국으로 달려갔다. 이때가 91년 7월이다. 도계장 신축 허가를 받고 창업자금 10억원을 대출해달라고 신청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축산업자 대출한도가 5억원이다. 게다가 대출 신청기간도 지났다”는 게 이유였다. 추가경정 예산으로 잡아달라고 우겼으나 이번에도 “예산 배정기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추경예산에 반영하느냐”는 쌀쌀한 대답뿐이었다. 하릴없이 1년을 놀아야 했다. 그런데 일이 성사됐다(!). 8월 초에 농림부에서 연락이 왔다. 때마침 산란계(알을 낳는 닭) 농가들이 도계장을 지어달라고 건의문을 올렸던 것. 여기에다 김정용 당시 축산국장이 “축산발전기금 1조원을 쌓아두고 무슨 소리냐”며 호통을 친 것이 일을 재촉했다. 여기저기서 15억원을 더 마련했다. 합쳐서 25억원을 들고 충북 진천으로 내려왔다. “미리 마련해둔 진천 땅 9000평에 도계장을 짓고 기숙사를 올렸습니다. 공장을 완공한 것이 93년입니다. 무엇보다 물이 좋았어요. 지하 70m를 파내려 갔는데 천연 암반수가 펑펑 터져나오는 겁니다. 지금도 이 물로 닭고기를 씻어요.” 문제가 생겼다. 도계장 사업으로는 한계가 뻔히 보였던 것. 산란계를 잡아주는 데 마리당 150원을 받았는데 1년 동안 사업을 해보니 삯방아 찧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루 2만 마리(300만원)를 잡아야 월급 주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데 실적은 하루 3000마리가 고작이었다. 씨닭을 만드는 종계부터 부화·사육·사료·가공·유통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대형화가 필요했다. 음성 부화장을 준공했고 구미·장성 도계장을 인수했다. 2002년엔 ‘처갓집 양념통닭’으로 유명한 한국153유통을 인수했다.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것도, 후발주자로 업계 3위에 오른 것도 이 무렵이다.

확장, 시련, 부활 시련이 찾아왔다. 2003년은 닭을 사육하는 농가나 닭고기 가공업체에 악몽의 계절이었다. 연초부터 출혈경쟁이 10개월 이상 계속되면서 닭 판매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졌다. 그해 12월에는 조류 독감(AI)이 발생했다. 하루 2억원을 웃돌던 매출이 50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전국 수백 개의 부화장 중에서 체리부로 소유의 천안·음성 부화장에서만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아리가 검출됐다. 정부 지시에 따라 15만여 마리의 닭과 병아리, 110만 개의 종란(부화용 달걀)을 땅에 묻었다. 은행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대출금 회수에 들어갔다. “그해 6월에 유럽으로 출장 갔다가 ‘AI 폭풍’을 맞은 네덜란드의 1, 2위 닭고기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봤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래도 남의 회사 얘기겠거니 했는데…. 폭풍이 눈앞에 닥쳤어요. 도리 없다, 부도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자식들이 잘 자랐고 한평생 멋지게 살았다고 생각하니 “허-” 하고 웃음이 나오더란다. 그해 12월 말 김 회장은 25명의 농가 대표를 조용히 불렀다. “솔직히 얘기했지요. 이대로 가면 2~3개월 안에 부도가 난다고. 제가 책임질 테니 농가 여러분이 경영주체가 돼 달라고 했습니다. 3개 계열사 자산이 45억원, ‘처갓집 양념통닭’이 50억원 정도 나갈 것이라고. 농가 법인을 만들고 사업자등록증을 내달라고 부탁했지요. 직원들을 불러놓고도 ‘흔들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것이 그만입니다.” 2004년 2월 10일 부도가 났다. 5월에 법원으로부터 화의 인가를 받았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임직원과 육계 농가, 협력업체들이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이다. 월급이 2개월 이상 밀린 운송업자 70명도 그대로 남았다. 250여 육계 농가 중에 공급을 중단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회사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2명이 회사를 그만둔 것이 ‘부도 이후’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다. “조류 독감이 멀쩡한 회사를 부도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면서 여론의 지지도 받았다. 대통령부터 닭고기 시식에 나섰다. 태국과 미국산 육계 수입이 중단된 것도 체리부로에겐 ‘굿 뉴스’였다. 주문이 밀렸다. 재고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체리부로는 350억원의 은행 빚을 갚으면서 화의에서 벗어났다. 화의 인가를 받은 지 1년9개월 만의 일이다. 평균 10년 걸린다는 화의 종결을 2년 안에 끝낸 것이다. 김 회장은 “최단기간 화의 종결 사례”라며 으쓱했지만 “그래도 끔찍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모진 시련은 회사를 화끈하게 담금질했다. 협력농가까지 합쳐 양계 규모는 닭 2500만 마리, 삼계 1200만 마리로 2003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 제2공장이 준공되면서 연간 3700만 마리의 닭고기가 차질없이 공급 가능하다. 내년에는 4700만 마리, 2009년께는 8000만 마리가 너끈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순익이 114억원이나 됐다. 김 회장은 농가를 사랑한 것이 ‘부활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닭고기 계열화는 농가가 절반을 하는 것입니다. 농가와 회사는 두 바퀴가 달린 한 축입니다. 회사가 부도났을 때 250여 농가들이 의리를 지켜줬습니다. 나름대로 ‘빚’을 갚으려고 노력도 많이 합니다. 지난해 기름값이 폭등해 농가가 어려움을 겪을 때 단열재 설치비용을 회사가 지원했어요. 이런 것들이 사업을 하는 ‘진짜 보람’ 아닌가요?” 1년9개월의 화의가 체리부로에게 약이 된 것은 분명하다. 김 회장은 비수익 사업을 정리해 회사가 더 탄탄해졌다고 말했다. 한번 휘청거리고 나니 짠물 경영이 체질이 됐다는 것이다. 현재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100% 남짓에 불과하다. 그래도 부족하다. 회사 곳곳에는 ‘내핍’ ‘절약이 경쟁력’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짠돌이 경영’은 아들·딸에게도 적용된다. 김 회장의 1남1녀는 대학 시절 등록금 마련을 위해 진천 공장에서 닭 내장을 솎아내고 비린내 나는 도계 라인을 청소해야 했다.

“다시 전쟁이다” 이쯤 되면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김 회장은 다시 머리띠를 졸라맨다. 김 회장의 다음 목표는 일본 시장 진출이다. “닭고기는 유통기간이 6일에 불과해요. 냉장 상태로 60~70일까지 보관 가능한 돼지고기나 쇠고기와 다르지요. 그래서 일본 시장에 갈 수 있는 겁니다. 일본 닭고기의 절반은 규슈 남쪽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나온 제품이 2~3일 만에 도쿄·오사카에서 유통되는 거지요. 그런데 규슈~도쿄 거리가 마산~도쿄 거리와 비슷하지요. 한국은 일본에 냉장 닭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일본 진출을 위한 체리부로의 ‘전진기지’가 제주다. 벌써 제주도에 도계·종계·부화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설비는 준공 단계에 있다. “대상농장 시절 냉장 돼지고기를 일본에 수출한 적이 있어요. 이미 성공사례를 가지고 있는 거지요. 내년에는 대한민국산 생닭이 도쿄에서 ‘꼬끼오’ 하고 신나게 울어젖힐 것입니다.”


체리부로는 이런 회사

6%
:

1991년
설립된 ㈜체리부로는 진천·구미·장성에 도계장을 두고 연간

3700만
마리의 닭고기를 공급하고 있다.

330여 명
의 임직원이 올해

1100억원
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림·마니커에 이어 업계

3위
회사로 시장 점유율이

6%
에 이른다. 관계사로는 씨닭(원종계)을 생산하는 한국원종, 삼계탕 닭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금계, 부분육 업체인 한국육계유통, ‘처갓집 양념통닭’ 프랜차이즈 채널인 한국

153농산
, 제주 특산 닭고기를 생산하는 제주삼다들닭 등

6개사
가 있다.

6일
: 생닭은 유통기간이

6일
에 불과하다. 그만큼 까다로운 식품이란 얘긴데, 김인식 회장은 “그래서 일본에 생닭을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주장한다. 체리부로는 조만간 제주도에 도계장을 지어 일본 수출 길을 열겠다는 각오다.

6조원
: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9.5㎏
. 닭 한 마리가 대략

1㎏
이라고 했을 때 우리 국민은 연간

10여 마리
의 닭고기를 먹는 셈이다. 닭고기 시장 규모는

1조8000억원
가량.

4조원
에 달하는 닭고기 외식 시장까지 합치면

6조원
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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