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인 질환’에 ‘이혼 여부’까지...대한항공, ‘승무원 개인정보 유출’ 의혹 도마 위
근로자 개인정보 열람 가능한 팀장 통해 유출 정황
노무사 “대한항공,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돌봄 휴가를 낼 경우 직속 팀장에게 가족관계증명서가 공유됩니다. 팀장은 이 서류를 바탕으로 소속 직원의 편부모 및 이혼 여부를 떠봐요. 또 병가 휴가를 낼 때도 진단서가 팀장에게 공유됩니다. 왜 내 병명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해요.”
# “앞으로 저의 가족관계증명서가 제가 알리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계속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속상해요. 회사는 팀장이 팀원의 스케줄은 열람하더라도 이런 개인정보의 열람은 불가하도록 조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고소는 변호사 상담을 먼저 받을 겁니다.”
대한항공이 소속 승무원들 사이에서 발생한 개인정보유출 문제로 시끄럽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들이 휴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신청자의 개인 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속 부서 팀장이 다른 직원들에게 휴가 신청자의 개인정보를 노출한 정황이 나온 것. 이에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들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점에 대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의 시작은 ‘가족돌봄휴가’와 ‘병가’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가족 돌봄 휴가를 신청할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병가를 신청할 경우 진단서를 인사팀에 제출해야 한다. 가족돌봄휴가는 근로자가 가족의 질병·사고·노령으로 인해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해 신청하는 휴가를 말한다. 병가는 신체의 질병으로 인한 치료를 위해 내는 휴가다.
문제는 각각의 휴가 신청 시 제출하는 서류를 인사팀과 함께 직속 팀장도 함께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부 팀장은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한다.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들에 따르면 이런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팀장을 통해 가족관계증명서 및 진단서 등에 기재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및 제71조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허가 없이 유출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한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가족관계증명서나 진단서는 고유식별정보 및 민감정보를 포함해 일반적인 정보보다 처벌이 더욱 강화된다.
본지와 직접 연락이 닿은 대한항공 승무원 A 씨는 “산부인과 질환 등 민감한 병명을 왜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건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공유 되는 게 맞는 거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승무원 B 씨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누가 스스로 알리고 싶어 하겠냐”며 “(내 개인 정보를) 누군가가 계속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 팀장이 팀원의 스케줄은 열람하더라도, 개인정보 열람은 불가능하게 조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 소속 직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개인정보유출에 대해서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며 “근로자의 진단서 및 가족관계증명서를 두고 소속 팀장이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돌봄 휴가, 병가 등을 사용할 때 관리자에게 (개인정보까지) 보고가 되기 때문에 다들 눈치를 보며 심리적 부담을 갖고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피해사례를 종합하면, 휴가를 내기 위해서 제출한 서류들은 소속 팀장에게도 공유된다. 이에 따라 휴가를 마친 후 돌아올 경우 개인의 질환 내용이나 가족사 등이 팀장을 포함한 팀 내에서 이야기가 돌아 불쾌한 상황을 겪는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대한항공노조 측도 해당 사안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직속 팀장들이 모든 걸 알고 있고, 지금까지도 가족관계증명서나 진단서 제출로 인해 승무원들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팀원 관리 명목으로 열람 권한을 허가한다고 하는데, 팀장이 모든 걸 알게 되니까 정작 직원들은 회사의 복지를 맘 편히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서 병가를 썼는데, 팀장이 아닌 다른 팀원들한테 (질환에 대한)안부 연락이 오기도 했다. 진단서에 적힌 질환들은 개인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팀장의 발설로 인해 원치 않게 내 병명이 알려져 곤욕을 겪기도 했다. 사실상 개인정보가 공공연하게 다른 직원들에게 알려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회사 내규에 따라 고용자는 병가 및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하기 위해 진단서나 가족관계증명서를 사업주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개인정보가 담긴 해당 서류는 직접적인 휴가 처리 부서에만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사안에 대해 한 중견기업 인사팀 소속 관계자는 “병가를 쓸 정도면 비교적 큰 질병이라 구두로 소속 팀장에게 설명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인 정보가 담긴 서류는 유출 우려가 있어 인사팀에만 제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특히 가족관계증명서의 경우 매우 민감한 정보라 소속 부서장이나 팀장에게 공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대한항공의 휴가 신청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의 경우 최소한으로 공개되는 게 원칙이지만, 직속 팀장에게까지 불필요하게 공유돼 개인정보 유출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여수진 직장갑질 119 노무사는 “가족관계증명서나 진단서 등 개인정보는 최소한으로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다. 해당 자료들은 근로자들에게 민감한 서류인데, 이 자료들이 직속 팀장에게 공유되는 것은 근로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직속 팀장이 돌봄 휴가 및 병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에 팀장에게 해당 서류들이 공유되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설령 팀장에게 이를 판단할 권한이 있다하더라도 근로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은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팀장이 소속 팀원의 관리를 위해 필요 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관리 방법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대한항공 측은 관련 내용에 대해 “팀장은 승무원의 직속 상사로 직원에 대한 관리 책임과 평가권을 가지고 있으며, 팀장에 의한 소속 팀원의 관리 및 양성을 위해 회사는 근무 기록, 스케줄 등 필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조직 내 관리자에 의한 직원 관리는 조직관리의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답했다.
이어 “회사에서는 팀장 전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정보 보안’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정보 보안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추가로 ‘직원 개인정보보호 서약서’를 징구하여 직원 개인정보보호 의무와 법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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