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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접목시켜 세계로 뻗는 철강도시

IT 접목시켜 세계로 뻗는 철강도시

▶IT를 기반으로 철강제품 생산을 종합 제어하는 포항제철소의 생산관제센터.

경북 포항시 괴동동 포스코 본사 건물에서 북동쪽으로 5㎞ 떨어진 파이넥스 2공장 건설 현장. 송도해수욕장이 바라다보이는 부지에 본 공장과 원료저장 시설, 산소발전 공장이 들어서 있다. 8만1700평의 공장 부지는 축구장 넓이의 30배 규모. 2006년 여름 건설 노조원들의 파업으로 중단됐던 공사가 82일 만에 재개됐지만 연내 완공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정상 가동은 2007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2공장 옆에 자리 잡은 파이넥스 시험공장은 이미 가동 중이다. 연간 생산 규모는 60만t. 연구용이라 규모가 작다. 그러나 파이넥스 공법의 원가 경쟁력을 입증하기엔 충분한 규모다. 파이넥스 2공장은 2004년 여름부터 포스코가 1조3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최첨단 시설이다. 연간 생산량 150만t 규모로 파이넥스(finex) 공법이 적용되는 첫 상용화 시설이다. 고로(용광로) 없는 제철소. 상용화에도 성공하면 이 공장은 세계 철강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파이넥스로 세계 철강사 새로 써 정부는 이 ‘꿈의 기술’을 2005년 ‘대한민국 10대 신기술’로 지정했다. 포스코는 2008년 인도 오리사주에 짓기로 한 일관제철소에도 파이넥스 공법을 도입할 방침이다. 포항·광양에 이은 이 제3 제철소는 포스코 대형화 전략의 전진 기지다. 세계적으로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 파이넥스는 해외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1994년부터 파이넥스에 매달려온 배진찬 파이넥스2공장장은 “경영자의 확신과 기술자의 집념·열정이 만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넥스 공장은 박태준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입니다. 1968년 영일만의 모래 벌판에 포항제철소를 지을 당시 박태준 사장은 이렇게 말했었죠. ‘만일 실패하면 전 임직원이 바로 우향우해서 저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 포스코의 또 다른 비기(秘技)는 스트립 캐스팅(Strip Casting) 기술이다. 섭씨 1500도 이상인 고온의 쇳물이 롤을 통과하는 동안 0.2초 만에 응고시켜 얇은 열연 강판으로 만드는 신기술이다. 반제품인 슬래브를 만들어 압연하는 공정이 생략돼 납기가 단축될뿐더러 환경 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국내 최대의 철강도시 포항의 견인차다. 포항제철소의 생산 활동은 지역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고용 인력은 포항시 전체 공단 근로자의 36.6%에 이른다. 포스코와 연관된 협력 업체 수는 1만여 개. 포항은 포스코 타운, 말 그대로 포스코 기업도시다. 2006년 8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포항건설노조의 파업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궐기대회가 열렸을 땐 무려 5만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50만여 포항 시민이 열 사람 중 한 명꼴로 참여한 셈이다.

민영화 앞두고 프로세스 혁신 포항제철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반면 포항 지역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경제가 철강 산업의 경기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산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포항의 숙제다. 성장 동력이 없다 보니 인구도 줄고 있다. 2000년 약 51만6000명이었던 포항 인구는 2006년 현재 50만5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인구가 50만 명 아래로 내려가면 시의 조직이 축소되고 세수 등 재정 수입도 줄어든다. 지역 경제의 침체가 가속될 수도 있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 포항시는 2006년 초 ‘파워풀 포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포스코가 일군 영일만 신화를 첨단 벤처와 조선산업을 통해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2005년 유치한 현대중공업 조선블록공장은 이 장정(長程)의 첫 이정표다. 포항시와 현대중공업은 2008년까지 3170억원을 들여 연간 10여 척의 유조선을 건조할 수 있는 육상조선소 건설에 관한 투자협약을 맺었다. 철강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변화에 둔감한 산업의 특성상 경쟁력의 요체는 기술력과 더불어 원가 절감 능력이다. 포스코는 생산 효율을 높여 원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관리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켰다. 경영 혁신을 통해 임직원들의 사고방식도 바꿔놓았다. 우선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등 7개 패키지를 활용해 전사적으로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포스피아(Pospia)다. 포스코와 유토피아(이상향)의 합성어. 이에 앞서 1999년 포스코는 민영화를 앞두고 프로세스 혁신(PI)을 추진한다. 구매·생산·판매 등 전 부문에 걸쳐 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이 같은 내부 혁신은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공기업 시절 작동했던 국정감사 등의 감시 장치를 떼어내는 데 따른 대응 조치랄까? 통합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업무 기준, 데이터 등을 표준화했다. 과거엔 포항과 광양의 명명 원칙(네이밍 룰)이 달라 같은 물품도 공장에 따라 이름이 달랐다. 그래도 공장 단위로는 별 불편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표준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나 회사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했다. V벨트 같은 물품은 사들인 단가가 두 제철소 간에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경영 혁신을 주도한 실무팀은 톱 다운 방식의 혁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수시로 설명회를 열어 직원들을 설득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적자 한 번 낸 적 없는 잘나가는 회사가 왜 굳이 다 바꿔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통합 시스템은 표준화라는 혁신에 IT를 접목시킨 것이다. 당시 유상부 포스코(당시는 포항제철) 회장은 IT 경영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통 제조업 즉 T(traditional)-비즈니스에 IT의 날개를 달아 e-비즈니스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 진입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다. 더불어 IT 경영으로 고도의 효율과 부가가치를 창출해 우리 자신의 삶의 질도 향상시켜 보자.” 2005년 포스코는 신일본제철(NSC)보다 열연 코일 값을 t당 10달러씩 더 받았다. NSC에 주문하면 30일 이상 걸리는 납기를 14일로 단축한 덕이다. 판매·생산 계획 수립 기간은 60일에서 15일로 단축됐다. 7개 주요 고객사들은 이로써 재고를 약 34% 줄일 수 있었다. 고객과의 윈윈 체제다. 납기 응답 시간도 2~3시간에서 2.5초로 줄었다.

통합 시스템으로 납기 단축 10일 단위로 이루어지던 제품 주문의 주기도 하루로 단축됐다. 시스템상에서 분기 단위로 수요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지금 고객사와 생산 계획을 공유한다. 고객사의 모든 구매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공급사도 98%를 온라인으로 납품한다. 이들 거래는 스틸앤닷컴이란 사이트에서 전자적으로 이루어진다. 관련 정보도 이 사이트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통합 시스템의 도입으로 업무의 투명성도 높아졌다. ERP엔 수정한 기록도 남는다. 부재 중 업무 보고도 없어졌다. 보안카드만 있으면 해외출장 중에도 메일로 보고하고 온라인 결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측은 PI 실시에 따른 기업 가치 증대 효과를 2조5000억원으로 평가한다. 2002년엔 6시그마 운동을 시작했다. PI가 시스템 바꾸기라면 6시그마는 일종의 문화 운동. 일하는 문화를 바꿔 보자는 것이다. 포스코 측은 6시그마 활동으로 2006년 1조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2005년 포스코가 올린 순이익(4조129억원)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2004년 신년사에서 이구택 회장은 “6시그마를 포스코만의 DNA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원자재 수급난에 자원민족주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철강사들은 철광석·유연탄 등 연·원료 확보에 골몰하고 있다. 포스코가 인도에 진출하는 것도 이 나라에 철광산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인도에서 30년에 걸쳐 철광석 6억t과 석탄 2억5000만t을 캘 수 있는 광권을 확보했다. 이구택 회장은 2006년 9월 열린 투자 활성화 민관전략회의에서 포스코의 향후 투자 방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철강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해외에서는 원료를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집중하겠다.” 포스코는 해외 광산에 대한 직접투자로 철광석·유연탄 등의 원료 자급도를 2010년까지 현재 20% 수준에서 3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구택 회장은 “인도·중국 등에의 설비 투자는 포항과 광양을 넘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것으로 영속하는 기업으로 비상하기 위한 백년대계”라고 밝혔다. 글로벌 포스코의 밑그림인 셈이다.


‘꿈의 기술’ 파이넥스 공법은?


용광로 없앤 후 경쟁 패러다임까지 바꿔

“10년 후 21세기엔 환경 문제로 인해 고로(용광로) 방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992년 정계에 몸담고 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포스코에 고로 없이 쇠를 만드는 신공법을 개발해 보라고 권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보라는 것이었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지금도 포항제철소 경내 곳곳에 걸려 있는 박 회장 재직 시절의 표어다. 14세기 이래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하기까지 쇳물은 고로에서만 뽑아냈다. 1973년 완공된 포항제철소 1기 고로도 33년째 시뻘건 쇳물을 토해내고 있다. 고로 방식은 지금도 제철 공법의 주류다. 포스코는 곧바로 신공법 개발에 착수했다. 최정예 인력 5명으로 설비개발팀을 짰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공법인 만큼 참고서도 없었다. 보안이 생명이다 보니 기술 조언을 받을 형편도 못 됐다.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듭했다. 2003년 6월 시운전이 성공한 후엔 수명 6개월인 기계 장치 성형철(HCI)에 문제가 생겼다. 일주일도 안 돼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깨진 것. 프랑스의 한 회사가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내 전문가들이 모여 석 달 만에 HCI를 다시 만들었다. 파이넥스 공법 개발엔 연구개발(R&D) 비용으로 4200억원이 투입됐다. 고로 방식은 철광석을 쪄서 덩어리로 만드는 소결 공정을 거쳐야 한다. 연료인 유연탄을 구워 덩어리로 만드는 코크스 공정도 필수다. 포스코가 자체 개발한 파이넥스 방식은 그러나 철광석과 유연탄을 사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공정이 단축돼 가동 비용이 20% 덜 들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 즉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도 현저히 줄어든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의 고로 1,2기가 노후화되는 2010년 이후 이들을 파이넥스 시설로 대체할 계획이다. 2004년 여름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 철강업계는 귀를 의심했다. 세계적인 철강사들이 고로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신공법 개발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경제성이란 벽은 더 더욱 넘기 어려웠다. 파이넥스 공법은 지름 8mm 이하의 철광석 부스러기(분철광석)를 원료로 쓸 수 있다. 그 덕에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중국의 저가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신병기랄까? 포스코 측은 고로 방식에 비해 생산원가를 17%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분철광석은 전 세계 철광석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흔한 만큼 덩어리로 된 괴철광석보다 20% 이상 싸다. 연료비 역시 고로용보다 20% 이상 덜 먹힌다. 중질의 석탄을 쓰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고로를 없앰으로써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블루 오션’으로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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