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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한국’의 관문 활짝 열리다

‘통일 한국’의 관문 활짝 열리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에 자리 잡은 부산 신항. 녹산산업단지를 지나 접어든 북 컨테이너 부두에 9대의 초대형 안벽 크레인이 줄지어 서 있다. 5만t급 배 세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1.2㎞의 안벽을 따라 도열한 이 크레인은 배가 접안하면 컨테이너를 찍어 올려 부두에 부리는 장비. 신항의 안벽 크레인은 높이 65m로 기존 제품 중 가장 크다. 배후의 야드에서는 컨테이너를 쌓는 트랜스퍼 크레인 18대가 움직이고 있다. 야드엔 그러나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반(半)무인화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통제실에선 모니터로 컨테이너마다 찍혀 있는 일련번호까지 인식할 수 있다. 부두엔 100대의 CCTV 카메라가 돌아가고, 게이트 입구엔 자동 폭발물 탐지기까지 설치돼 있다. 신항 운영을 맡고 있는 부산신항만㈜(PNC) 관계자는 “앞에선 보이지 않는 컨테이너 뒤쪽까지 모니터로 체크할 수 있어 외부인의 잠입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산항은 국내 물류의 약 70%가 경유하는 경부 축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부산 지역 경제에 대한 부산항의 기여도는 괄목할 만하다. 부산의 사업체 수는 27만2778개, 부가가치액은 40조2500여억원에 달한다(2004년 말 기준). 이 가운데 항만 물류 관련 업체 수는 2만4103개로 전체의 8.8% 수준. 그러나 부가가치액의 비중은 ‘업체 비중’의 두 배가 넘는 8조1816여억원(20.3%)에 이른다. 기항지로서, 또 환적항으로서 부산항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1조2500억원에 달한다(부산발전연구원 평가). 경쟁 항만인 중국 상하이항의 약 6.3배, 일본 고베항의 약 4.5배 수준이다.


첨단 항만정보시스템 구축 부산항은 일제의 압박으로 1876년 개항했다. 신항의 개장은 부산 입장에서 보면, 가히 제2의 개항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부산항은 1978년 국내 첫 컨테이너 전용 부두(자성대 부두)로 출범했지만, 화물 야적장 부족으로 신항 개장 전까지 항외 야적장(ODCY)을 이용해 왔다. 그 바람에 도심이 교통난으로 몸살을 앓았다. 부두에 바로 야적하는 신항은 부산항의 새 동력일뿐더러 부산 경제의 신형 엔진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 빠졌던 부산 경제는 2002년 월드컵, 아시안게임, 아태장애인게임, 합창올림픽 등의 개최 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여 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지정, 신항 건설 등은 이 지역의 경제 기대심리를 부추겼다. 항만 물류 산업은 부산의 10대 전략산업 가운데 하나. 2003~2010년 성장 기여도(전망치)는 10.7%로 10대 전략산업 중 기계부품소재 다음으로 높다. 항만 산업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다.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고 있지만 항만 물류 산업은 중국에 대해서도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


부산 신항의 성공조건은?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Big Hairy Audacious Goals)의 설정 필요 부산 신항은 국가 차원의 경쟁력을 높이는 사회간접자본이다.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큰 그림, 그에 걸맞은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세계적 항만물류 클러스터 구축 긴요 항만 못지않게 그 배후 부지를 잘 개발해야 한다.

랜드마크 및 이벤트 기획 시급 ‘꿈의 도시’ 두바이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신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 김진혁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부산항은 미주-동북아-유럽을 잇는 간선항로 상에 있다. 자연히 선박들의 기항 빈도가 높다. 부산 신항보다 한 달여 전 개장한 중국 상하이 양산(洋山)항도 간선 항로상에 있지만 환적 화물 처리의 효율 면에서 부산항에 미치지 못한다. 양산항은 부산과 더불어 동북아의 중심항(hub port)으로 부상하고 있는 곳. 부산항의 수심은 기존 북항이 15m, 신항이 16m로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도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다. 또 천혜의 조석 간만차로 24시간 접안이 가능하다. 중국과 일본의 항만이 갖추지 못한 최상의 자연조건이다. 올해 초 개장한 신항은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항만 정보 시스템, 항만 안전 및 보안 시스템 등을 구축하고 있다. 하역·세관검사·검역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온 도크(on dock)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배후엔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배후엔 3100만 평에 이르는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이 자리 잡고 있다. 신항 배후의 물류기능과 경제자유구역의 생산기능이 적절히 결합한다면 그 상승효과는 막대할 것이다. 부산 신항엔 정부 돈 4조1739억원, 민자 4조9803억원 등 모두 9조1542억원이 투입됐다. 인천국제공항 공사비(5조901억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액수다. 부지는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북안, 진해시 용원동·안골동 웅동만, 제덕만 일원. 배후 부지까지 합친 규모는 676만 평으로 서울 여의도의 7배가 넘는다. 국내 항만 중 최대 규모. 신항은 총 30개 선석 규모로 건설된다. 지난 1월 1-1단계로 3개 선석(배가 닿는 부두)을 개장했다. 지난해 12월 양산항이 개장함에 따라 1년여 앞당겨 부분 개장한 것이다. 그 바람에 물동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머지 27개 선석은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개장할 예정이다. 30개 선석 개장 후 컨테이너 처리 능력(20피트 컨테이너 기준)은 연간 804만 개. 2008년엔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산 북항의 재개발 사업이 착수될 예정이다. 국내 첫 항만 재개발이다. 신항 1단계 터미널의 건설 및 운영 주체는 PNC,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포트 월드(DPW)가 최대주주다. 이 회사는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2위의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사로 PNC와의 계약에 따라 부산 신항 터미널의 운영을 맡고 있다. PNC 관계자는 “화물이 DPW가 운영하는 부산 신항에서 왔다는 것 자체가 국제 규정을 제대로 준수했다는 보증수표”라고 말했다. “부산 신항은 국제 관행상의 안전수칙을 엄격하게 지키기 때문에 보안이나 안전보장 면에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을 IT가 집적돼 있는 부산 신항의 중앙 통제실.

부산 신항이 지난 9월 말까지 확보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11만7877TEU. 2006년 목표치 80만TEU에 크게 미달한다. PNC 관계자는 “개장 초기에 물동량이 적은 것은 전 세계 어느 컨테이너 터미널이나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항만산업의 특성상 정상화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년 물동량 목표는 200만TEU.

당면 과제는 물동량 늘리기 부산 신항의 당면 과제는 물동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자면 배후의 물류 부지와 수송망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항만의 물동량이 늘어나면 지역 경제도 탄력을 받게 돼 있다. 이희상 부산발전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물동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지향해야 하며 그래서 더욱 배후의 물류단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신항의 안착엔 항만 물류 산업을 관장하는 행정 시스템의 일원화도 긴요하다. 이희상 초빙연구위원은 “부산항을 물류 중심 항만으로 육성하려면 부산항과 배후 물류단지에 대한 행정권한을 부산광역시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해·공 복합운송체계를 구축해 컨테이너 화물의 항공·철도·연안 수송 분담률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부산 신항은 인천공항과 더불어 동북아 물류 허브의 핵심 거점이다. 신항이 과연 동북아 중심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이 개방되어 아시아∼북미 항로가 시베리아 철도로 유라시아 지역과 연결된다면 부산항의 물동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존 엘리엇 PNC 영업·마케팅 담당 상무는 “부산 신항만이 동북아 물류 허브의 거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중국의 신항 건설 계획을 알고도 외국계인 DPW가 부산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신항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 나름대로 중국의 계획을 분석해 보고 여러 차례 조사를 벌였지만 부산은 결정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도석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산항을 지역항으로 보는 시각을 탈피해 통일 한국의 관문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항은 국익 창출의 창구로 부산 신항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죠. 특히 항만 배후의 물류단지를 확보하고 배후 수송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은 항만의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인터뷰 ㅣ 추준석 부산항만공사 사장


“외국에 ‘항만 운영 노하우’ 팝니다”

“부산항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만이에요.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부산항의 위상에 걸맞은 항만 운영 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 그 경험을 잘 살린다면 우리도 항만 운영의 노하우를 해외에 내다팔 수 있습니다.” 추준석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은 “우리나라도 항만 건설·운영의 경험과 노하우를 수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항만공사법 개정으로 BPA도 해외 항만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항만 물류는 굴뚝 없는 산업이에요. 싱가포르 항만공사(PSA)는 이미 해외에서 항만을 건설하고 있죠.” 문제는 경쟁력인데요. 우리나라가 과연 그만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까? “BPA가 항만 건설·운영 경험을 갖춘 건설사, 하역사, 해운사, 금융회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이렇게 컨소시엄 방식으로 해외 항만 건설에 참여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커요. 동남아 지역 등의 항만 건설에 참여하게 되면 수익창출은 물론 부산항의 물동량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죠.” 부산항 자체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입니까? 상하이 양산항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나요? “미주 항로는 양산항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특히 일본·중국과는 거미줄처럼 각각 60개, 45개의 피더(feeder·지선)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있어 동북아 지역의 역내 운송은 어느 항만에 대해서도 비교 우위에 있죠. 동북아권에서의 운송은 부산이 역내 어느 항만보다 짧은 시간에 화물을 실어나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부산 신항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뭔가요? 정부 사이드에서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합니까? “물동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도로·철도 등 신항 배후의 연계 수송망을 완비하고, 현재 준설토를 쌓아놓은 신항 배후의 웅동단지를 물류단지로 개발해야 합니다. 또 신항 건설 등에 BPA가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향후 3~4년간 지방세를 감면해 주는 등 특단의 조치도 강구돼야 합니다.” 동북아 물류 허브가 우리나라의 비전이 될 수 있다고 봅니까? “물류 전문가들은 동북아에서 중심항(hub port)이 될 가능성이 큰 항만으로 부산과 상하이를 꼽습니다. 중심항이 되려면 항만의 생산성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한편 물류비용을 지금보다 더 낮춰야 돼요. 제조업 경쟁력은 중국에 밀리고 있지만 항만물류 산업은 정부가 육성하기에 따라 충분히 미래 유망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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