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바다 개척하고 하늘에 눕다
[삶과 추억] 바다 개척하고 하늘에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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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조선사업 기틀 놓아 빈소에서 만난 현대그룹 관계자는 “아산 정주영 회장이 해운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고인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이 울산 조선소를 건설할 때 고인이 그동안 해운사업을 하면서 친분이 있던 해외 굴지의 선주들을 정 회장에게 많이 소개시켜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조선소가 완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계 3대 선주로 손꼽히던 그들로부터 선박을 수주하자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적 식견이 필요했다. 정주영 회장은 현 회장에게 울산까지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신한해운이 홍콩 선사들의 한국대리점을 하고 있어서 현 회장은 그쪽 선주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선주들이 울산에 가보니 허허벌판에 도크를 파고 있는 중이었다. 황당해하는 홍콩 선주들에게 현 회장은 “정 회장의 눈을 보라”고 했다.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저만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 해내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현대는 두 척의 유조선을 수주했다. 이 일은 아산과 현 회장의 친목이 돈독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현 회장의 딸 현정은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아들 몽헌 회장 간에 혼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던 것도 이때쯤이다. 그런데 홍콩 선주가 경기가 안 좋아지자 중도에 계약을 포기하고 만다. 현대가 해운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거절한 배 두 척이 시작이었다. 배 두 척의 처리로 고민하던 정주영 회장에게 고인은 “아예 그 배를 밑천 삼아 해운회사를 차리라”고 조언한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실제로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 상선을 설립했고, 현 회장은 창립 발기인의 한 사람에 들었다. 84년 해운합리화 조치로 신한해운이 현대상선에 합병되면서 현 회장은 직접 현대상선 경영에 참여,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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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의원도 빈소 찾아 현 회장은 해운회사를 경영하면서 해운업계 발전을 위한 대외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신한해운을 경영하던 1970년부터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을 맡아 1992년까지 22년간 재임했다. 2000년 2월에는 제22대 한국선주협회 회장에 선임됐다. 이어 2001년 1월 현 회장은 제23대 한국선주협회 회장에 회원사 만장일치로 재추대돼 2003년까지 재임했다. 고인은 선주협회 회장 재임 시절 제주 선박 등록 특구 지정, 각종 세제지원 제도 정착 등 선박의 등록과 금융제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 선박 제도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빈소에서 만난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상무는 “현 회장이 선주협회 회장으로 재임했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해운업이 불황이었을 때였다”며 “고인이 해운업계 개선을 위해 적극 활동을 펼친 덕분에 지금은 우리나라 해운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도 우리를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고인의 빈소엔 현대그룹 전인백 사장 등 현대그룹 사장단과 이계안 의원 등 국회의원 등의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24일 오후 3시20분쯤엔 현정은 회장의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현대 일가 중 처음으로 빈소를 찾기도 했다. 올 초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과 다가올 현대건설 인수 건으로 불편한 심기가 있어서일까? 정몽준 의원과 현 회장은 별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현 회장은 정 의원을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했다. 이날 오후엔 현 회장의 시조카인 기아자동차 정의선 사장 내외와 정일선 비앤지스틸 대표, 시동생인 정몽윤 현대해상 화재보험 회장 등 현대 일가가 줄줄이 조문했다. 현 회장은 생전 아버님에 대한 추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심적으로 경황이 없으니 나중에 하자”고만 말했다. 그는 언젠가 모 매체에 아버지를 회상하는 말을 했었다.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딸만 넷이었지만 남녀차별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는 밖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어머니의 의견을 물었다. 저녁밥은 늘 온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는 현정은 회장에게 고인은 아버지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여파로 금강산 관광 사업도 어려운 때 아버지의 타계는 현 회장에게 큰 시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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