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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막내는 대우의 ‘큰 형님’이었지”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막내는 대우의 ‘큰 형님’이었지”

이제 5형제 중에 막내가 근로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델코 김성중(金成中·66) 회장이다. 그는 대우자동차 사장으로 재직하다 1993년 2월, 대우그룹 협력업체였던 한국델코전지(옛 델코)를 맡아 독립했다. 그러나 대우에 있을 때부터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을 정도로 평판이 자자했다. 한마디로 대우그룹 생산직원 모두를 집합시켜 놓고 인기투표를 하면 어떤 임직원도 그를 능가하지 못할 만큼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정밀을 거쳐 대우자동차로 옮기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사원들한테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김우중 회장이 웃으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가 한때 노사문제로 홍역을 앓은 적이 있지 않아요? 물론 기아차나 현대차에 비하면 대우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막내를 부른 거지요. 파업 현장을 좀 정리해 보라고. 근데 불가사의한 일입디다. 내가 열번 나서도 타결이 안 되는데 막내가 나타나면 몇 마디 안 하고 파업을 풀게 만들어요. 매력인지 위력인지 그런 힘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하하하. ”

대우의 ‘인기왕’ 자동차 업계가 파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어 자연히 노조 문제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지만 김 회장이 동생을 극구 칭찬하면서, 경영 측면이 있는 것인데도 노조 때문에 중공업에서 자동차로 스카우트(?)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농담 같아 둘째형인 김관중 회장에게 김우중 회장의 웃음을 전달해 보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김관중 회장은 막내에 대해 더 신뢰를 보내면서 존경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내가 존경하는 동생이야. 진짜 멋진 친구예요. 우리 형제 중에서 아무도 갖지 못하고 있는 독특한 친화력이 있어요. 그걸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형제끼리 이런저런 이유로 전부 한두 번씩은 다 다투었거든? 근데 성중이하고는 싸움이 안 돼. 전부 성중이 넉살에 나가떨어져요, 핫핫핫. ” 김관중 회장은 김 전 회장이 막내동생에게 자동차를 맡긴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한다. “성중이가 나서면 파업도 막아요. 인기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우리 형제 중에 최고예요. 김 사장(자신은 성중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했지만)한테는 술만 한잔 탁 부어놓고 같이 앉으면 전부 형님, 아우래, 핫핫핫. 상하관계에서 담이 없다는 거지요. ” 사실 생산직 사원들에게 김성중 회장은 형님이고, 삼촌이고, 보호자이고, 친구이고 때로는 아버지로 통했다. 철을 만지는 사람들은 경직되고 조금은 거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직선적인 마찰과 단순한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작업복을 걸치고 나서 융화할 수 있는 사람이 김성중 회장이라는 얘기였다. 여자 때문에 괴로워하는 직원이 있으면 무조건 여자가 나쁘다고 대신 욕을 해주고, 남자 직원 때문에 속상해 하는 여직원에게는 무조건 “그놈의 자식, 순 나쁜 놈”이라면서 위로하고, 파출소에 붙들려 있는 기능공이 있을 땐 자신이 보증을 서든 변상을 해주든 어떻게 해서든 빼내려 애썼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목욕탕에 있어도 격의 없이 등도 밀어주고 밀어달라고 하는 이가 김 회장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재벌의 동생이라든가 직책의 권위 같은 것은 이미 목욕탕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진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목욕탕 송사’라는 말이 대우 형제 중에 유일하게 그에게서만 통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있다. “핫핫핫, 그 얘기 어떻게 알았어요? 직원 중에 어떤 친구가 모함을 받아 잘리게 돼 있었대. 성중이는 기억에도 없는 말단 직원이고 데리고 있었거나 근무를 같이 해본 적도 없는 젊은 직원인데,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성중이가 자주 가는 목욕탕을 알고 여섯 번이나 왔더라는 거야. 카운터에서 그러더래. 김 사장님 왔느냐고 자꾸 묻는 사람이 있다고. 근데 웬만하면 누군지도 모르니까 피하거나 조심할 거 아니에요? 거침없이 들어가서 보니까 새벽인데 그 친구가 사우나탕에서 자고 있는데 편지를 비닐봉지에 담아 손에 꼭 쥐고 있더라는 거야. ‘김성중 사장님께’라고 써 가지고. 오죽하면 여섯 번이나 찾아왔을까 싶어 깨웠대. 그러니까 막 울더라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 부인이 무슨 병인지 나는 기억에 없는데, 좌우간 사경을 헤매다 겨우 동네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러다 보니 근무를 제대로 했겠어? 생산직이니 욕만 얻어먹고 잘리게 된 거지. 그런데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 막히거든? 지쳐 쓰러져 자던 얼굴도 생각나고 입술도 부르트고 그렇더래. 성중이는 그런 사연 들으면 지가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때부터는 성중이가 더 바빠지는 거야. 목욕이 뭐야, 아주대병원에 연락해서 그 부인을 옮기게 하고 말이야, 어떤 놈이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농땡이 부리는 친구로 모함했냐고, 내가 보증 서줄 테니 열흘 휴가 내라고, 핫핫핫. 그게 목욕탕 송사 스토리야. 동생이 그런 사람이에요. ”

그 유명한 목욕탕 송사 김관중 회장은 그런 동생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성중 회장이 그처럼 자신 있는 언행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장과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형들이 걸어온 길이 카펫 깔린 아스팔트였다면, 성중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자갈 길을 걸어 왔다. 그는 형들과는 달리 소년 시절을 어머니 사랑만 받으며 아버지의 준엄한 꾸중은 한번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막내에다 어머니의 보호가 철저하다 보니 형들은 무섭지도 않았고, 고교 시절부터 시쳇말로 ‘막 나가서 놀다 보니 니꺼 내꺼가 없게 되는’ 망나니로 컸다.

▶적잖은 수의 대우맨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막내동생인 김성중(작은 사진) 전 대우자동차 사장이 계속 회사에 남았더라면 과연 대우가 무너졌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1990년대 중반 ㈜델코로 독립한 김 사장(현 대주주)은 회사를 세계적인 배터리 업체로 키워냈다. 큰 사진은 대우자동차 군산 공장의 로봇 용접 라인.

공부할 시간이 아예 아까웠을 것이다. 형들처럼 경기고를 나오지도 못했다. 서울사대부고를 겨우 나왔다. 형들은 전부 경기고를 나왔는데 우당 선생 집안에서 혼자만 돌연변이가 생겼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성중은 개의치 않았다. 씨익 웃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형들은 부대도 없지? 나는 특공대 대장이야! 낄낄…. ” 정말 주변에 친구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때의 친구들이란 크레파스보다 더 많은 갖가지 색깔일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그런데도 두목이었고 그들이 이유 없이 좋아 어울려 다녔다. 그러면서 그는 친구들의 환경·배경·행동·사고방식이 전부 각각이었지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생겨났다. 바로 그때의 생활이 대우에 몸담았을 때 ‘형님’ 같은 성중으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이 세상에 과거 외엔 확실한 것이 없고 과거에 쌓은 힘이 미래를 가르친다 했지만 김성중이 그렇다는 것이다. 결혼도 당연히 직접 연애해 골랐다고 넉살을 부리더라고 했다. 김 회장의 부인은 이화여고에서 배구선수 생활을 했던 황숭이 여사. 그래서 동서들 중 키가 제일 껑충하다. 미국에서 연애했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훔쳐본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김 회장의 스타일로 미루어 밖에서는 두목 기질이 다분해도 집에서는 경처가(소리만 지르면 경끼를 일으키는) 노릇을 할지 모르겠다고 형들이 웃었다. 김성중 회장은 일찍 대우를 떠난 셈이었다. 많은 사람이 김우중 회장과 함께 있었다면 대우그룹이 오늘날처럼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지만, 가상의 진단은 언제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성중 회장은 일찍 대우를 떠났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적인 배터리 제조업체로 델코를 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는 대우를 떠날 때 이미 김우중의 동생이 아니었다. 대그룹의 자동차회사 사장이라는 화려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경북 구미의 조그만 회사에 몸을 파묻은 채 독자적인 자동차의 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정말 현기증 느낄 정도로 집념을 보이며 자신만의 성(城)을 구축하려 몸부림쳐왔던 것이다. 93년 한국델코전지 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만 해도 대우자동차가 성장의 동력이 돼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우자동차에 만족하지 않았고 전 세계 완성차 메이커들이 탐내는 배터리 회사로 만들어 나갔다.

▶형들은 부대도 없지? 나는 특공대 대장이야! 낄낄….

한국델코는 대우와 미국 델파이 합작으로 85년 10월 경북 구미에서 설립됐다. 이때만 해도 이 회사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배터리 제조업체로 성장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그랬던 델코가 김성중이라는 선장을 맞이하고 상호를 ㈜델코로 변경하면서 불과 10여 년, 국내 완성차 메이커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자동차의 라이벌인 도요타·혼다·닛산·스즈키, 그리고 최고급 벤츠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좋다는 상(賞)은 모두 휩쓸다시피 한 것이다. 결국 그는 김우중의 동생이 아닌 김성중으로서 독립독행(獨立獨行)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우당 선생으로서는 하나뿐인 외동딸이고 5형제에게는 유일한 여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때 나는 왜 주워온 자식처럼 돌림자가 틀리냐고 투정을 해 ‘영중’이라고 부르며 웃었다는 김영숙 여사가 맨 끝이다. 김 여사는 서울대 ‘3대 석학’ 중 한 사람으로 꼽혔고 지금은 한양대 경영대학 석좌교수로 있는 윤석철 박사의 부인. 윤 박사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경영학계의 독보적 인물이고, 김 여사는 학자를 남편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인지 오빠들에게 집안일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큰오빠의 얘기였다. 여동생은 윤석철 교수의 부인 얼마 전 제주도가 자립적 민주주의 자치지역으로 다시 태어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선친의 뜻을 기려 제주 발전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도서관 헌납으로 비로소 얼굴을 내민 우당 선생의 다섯 자제들을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는 것을 이들이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김우중 회장의 최근 행적에 관한 수많은 언급이 있고, 과거에 대한 논객들의 날카로운 평가도 있는 줄 알지만 아직 그 모든 것을 평가할 자료는 누구도 준비돼 있지 않을 것이다. 김우중 회장이 80년 신군부 등장으로 이른바 산업합리화 조치가 단행되고 대그룹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국보위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 때문에 정주영 회장과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당시 국보위 시절의 정확한 내막에 대해 증언을 들으려 하자 짧게 했던 대답이 있었다. “내가 확인하고, 내가 아는 만큼만 얘기해야 되잖아. 그게 도움이 되겠어요?” 우리는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전부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은 정치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경제에 관한 것일 수도, 군사에 관한 것일 수도, 외교에 관한 것일 수도, 북한에 관한 것일 수도, 그리고 연예인 신변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전부의 진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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