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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구 중 1가구 서울 떠났다

3가구 중 1가구 서울 떠났다

▶뉴타운 공사를 위해 철거된 진관내동 주택단지. 뒤로 은평 뉴타운 1지구 개발이 한창이다.

왜 재개발을 하는가?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본지 865호(2006년 12월 5일자)에서는 ‘2006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서울 은평구 재개발을 들여다봤다. 그렇다면 재개발 현장을 떠난 은평구 원주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놀랍게도 3가구 중 1가구는 서울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코노미스트는 SH공사가 작성한 은평구 주민 이주 현황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서울 은평구 재개발 지역 주민 3가구 중 1가구는 서울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SH공사 작성, ‘은평 재개발 지구 주민 이주 현황’ 자료에 따르면 원주민 5172가구 중 1490가구가 서울을 떠나 경기도 등 지방으로 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개발 지역 원주민의 이주 현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개발 지역 주민 다수가 서울에 머물지 못하고 지방으로 이사한 것은 높은 집값과 생활고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은평 지역은 서울에서 비교적 집값이 싼 곳에 속했다. 이들이 토지 보상을 받아 서울로 재진입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번에 공개된 SH공사 자료는 재개발이 결과적으로 서민들을 외곽으로 내쫓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은평 1지구 같은 경우 전체 1191가구 중 488가구(약 41%)가 서울을 떠났다.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사한 곳은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대. 또 경기도 파주시, 인천광역시 등지에도 이들이 많이 정착했다. 심지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충청·전라·경상도로 이주한 가구도 적지 않았다. <표 참조> 이들 지역으로 옮긴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집값 때문으로 풀이된다. 은평 원주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은 경기도다. 고양시 950가구를 포함해 총 1339가구가 경기도 곳곳으로 이주했다. 그 뒤를 인천광역시(47가구)와 충청도(30가구)가 이었다. 강원도와 전라도로 17가구가 집을 옮겼으며 경상도에도 15가구가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에도 4가구와 3가구가 각각 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로 간 주민(2가구)도 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가구도 오모(74)씨는 은평구 진관내동에서 16년을 살다 2005년 9월에 고양시 지축동으로 옮겼다. 오씨는 진관내동에서 9평짜리 집을 한 채 가진 가옥주였다. 뉴타운 시공사인 SH공사와 보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계속 버텼다. 원래 계획으로는 2005년 8월까지 이주를 완료해야 했지만 오씨는 계속 진관내동에 남았다. 결국 SH공사가 후하게 쳐준다는 보상금 1400만원을 받고 나왔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2~3개월 수소문 끝에 구한 집이 고양시 지축동 전세. 그 집에 들어가기 위해 전셋값을 맞춰봤지만 주인은 4000만원을 전셋값으로 요구했다. 결국 2000만원을 빌려 그 집으로 입주했다. 내 집에서 편히 살 수 있는 가옥주에서 전세 세입자로 전락한 것이다.
“SH공사 측에서는 공사가 완료되면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 하는데 아직 입주금도 안 정해졌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보증금 7000만원에 월 4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는데…. 아무리 소문이라지만 뉴타운 아파트가 평당 1000만원을 넘어가는데 1000만~2000만원에 집이 나올 리는 없지. 당장 1000만원도 없는 우린데 7000만원을 어떻게 구해? 뉴타운 개발은 있는 사람만 위해 하는 거야.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나가 죽으라는 말이지.” 실제로 은평 뉴타운 1·2·3-1지구에서 지축동과 장흥면으로 옮긴 원주민들의 주거 환경이 대부분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축동으로 옮긴 가구는 1지구 101가구, 2지구 28가구, 3-1지구 34가구다. 장흥면으로는 1지구 38가구, 2지구 17가구, 3-1지구 24가구가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구 중 몇몇을 제외한 가옥주들은 대부분 전셋집을 살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판잣집과 방 한 칸짜리를 겨우 구해 살고 있었다. 은평구에 살 때는 가옥주였는데 재개발 때문에 지방으로, 그것도 세입자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지축동 675번지 일대에 살고 있는 김상호(61)씨는 진관내동에서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을 내고 살던 세입자였다. 그가 지축동으로 옮기면서 받은 돈은 720만원. 지금은 방 한 칸짜리 집에 살면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 20만원을 내고 있다. 김씨는 “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만든 개발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세입자들을 위해 임대아파트를 내놓았지만 재입주할 확률은 희박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장흥면 산 중턱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사는 한 주민은 “전에는 나도 떳떳한 진관내동의 가옥주였다”며 “받은 보상금이 12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 갈 곳이 없어 결국 여기로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 진관내동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지축동 67X번지는 비닐하우스가 집이었다. 갈 곳이 없어 결국 비닐하우스와 힘들게 구한 방 한 칸을 이어 집으로 쓰고 있었다. 심지어 이주 허위신고만 해놓은 채 사라진 세입자도 있다. 이주지를 지축동 47X번지로 신고한 진모씨는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 3년 동안 꾸준히 산 정모씨 가족만 있을 뿐이다. 정모씨는 “진씨가 누군지도 모른다. 난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권영빈 중앙일보 사장(앞줄 오른쪽)과 신동훈 조선미술협회장(왼쪽)

15년 동안 지축동에서 산 이순례(가명)씨는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진씨도 돈만 받고 살 집이 없어 어디론가 잠적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무성의한 대책과 조사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서울에 남은 이들이라 하더라도 주거 환경이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 서울에 잔류하고 있는 3682가구 중 2913가구는 은평구 인근 지역에서 살고 있다. 진관내·외동과 수준이 비슷한 불광동과 갈현동으로의 이주가 가장 많다. 1792가구(약 62%)가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들어간 불광동과 갈현동 일대 주택지는 18평 이하가 대다수다. 불광동의 한 부동산 업자는 “갑작스러운 인구 유입으로 전셋값이 약간 오르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영세민임을 감안했을 때 6000만원 안팎에서 전세가 거래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집값 상승 추세에 비교해 봤을 때 6000만원 전세는 비싼 게 아니다. 하지만 보상가를 2000만원도 받지 못한 세입자들에게 6000만원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돈이다. 그래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05년 3월 불광동 16평 주택으로 이사한 김모씨는 “은평구 뉴타운 발표를 듣고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부풀었다. 보상과 이주 문제로 1년 넘게 시달리다 보니 아예 이런 걱정 없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직장과 애들 학교 때문에 쉽게 옮길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원도로 떠난 사람도 있어 은평구를 제외한 나머지 서울지역으로 간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분포 지역을 보면 비교적 집값 부담이 덜한 강서구·노원구·서대문구 쪽으로의 유입이 많다. 강원도·경상도·전라도 지역으로 이사 간 주민들도 역시 같은 이유다. 뉴타운 3지구가 얼마 전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다. 올 7월부터 착공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까지 10가구 정도가 집을 지키고 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집을 지키고 있는 김제일(43)씨는 “가격이 마땅한 곳이 없어 아직 집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지축동으로 이사한 이모(44)씨는 “우리 같은 약자는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 현실적인 보상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평 주민 모여 사는 고양시 지축동


“갈 곳 없는 사람 모인 버림받은 동네”
은평구 1지구(진관내동)와 바로 맞닿은 고양시 지축동.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과 지축역으로 한 정거장 차이다. 집값도 은평구 일대와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직장, 학교 등의 문제로 진관동 주민들의 유입이 많다. 진관내동 입주자들은 지축역을 중심으로 좌·우 주택에 분포돼 있다. 지축역은 지축동 695-8번지다. 지축동 행정을 보는 효자동사무소는 지축동 522-1번지다. 지축동 400, 600, 800번지와 500번지 일부가 지축동 북쪽에 있으며 500, 700번지대는 남쪽에 있다. 뉴타운 지역 이주자들은 대부분 지축동 북쪽에 살고 있다. 뉴타운 1지구 보상 협의가 시작되던 2004년 10월부터 지축동 인구 유입이 늘었다. 지축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정석(10)군은 “원래 학생이 거의 없는 곳인데 지난 1년 동안 4명이나 전학왔다”고 말했다. 급격한 인구 유입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진관내·외동 주민들은 지축동 곳곳에 있지만 ‘안진동’이라는 곳에서도 살고 있다. 안진동은 지축동 818번지 일대로 1970년 초 서울시가 확장되면서 강제철거민들이 모여 만든 동네다. 10평 내외의 판잣집 350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고 있다. 동네 골목도 한 사람 외에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진’이라는 말은 ‘이제 다시는 쫓겨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안진동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안진동은 진관내동과 함께 정부의 무자비한 정책이 낳은 버림받은 동네”라고 말했다. 2004년 지축지구 개발이 발표되면서 지축동 일대도 몸살을 앓고 있다. 안진동이 녹지지구로 지정돼 한 가구당 보상비 200만원을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축지구 대책위원회 박수진 위원장은 “지축동 일대 거주자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다. 우린 돈도 없고 ‘빽’도 없다. 정부가 우리를 무시한 채 대책 없는 개발을 계속한다면 우리도 꿈틀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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