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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빵차’ 잘 달리니 회사도 ‘빵빵’

[파워중견기업] ‘빵차’ 잘 달리니 회사도 ‘빵빵’

“불나면 잘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일부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불 붙듯이 확 일어나 더 잘될 겁니다. 두고 보세요.” 기린 수원공장은 지난해 4월 화재가 났다. 보험 가입금액만 240억원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듯 마침 기린은 빙과공장을 새로 짓고 가동을 준비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일부러 불을 내 기존의 낡은 공장을 헐고 보험금으로 새 공장을 지으려 화재를 낸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도 받았다. 이용수(57)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대표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수원공장에 화재가 난 게 ‘한스럽다’고까지 말했다. “아직 보험금을 받지도 않았고 보험금을 받아도 오히려 손해가 나요. 옛날 설비를 다 복구하지도 못하는데 공장 시설비용만 400억원 정도 견적이 나왔어요. 불 나서 새로 지을 거면 보험금 받아 챙기지 왜 옛날 라인을 그대로 복구하겠어요. 오히려 불이 나서 매출도 줄고 적자도 나고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데 일부러 불냈다니…. 참 사람들이 모질어요. 남의 속 타는 줄도 모르고.” 기린은 지난해 수원공장에서 4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240억~250억원 정도 매출 손실이 났다. 기린은 1969년 부산시 반여동에서 출발한 식품회사다. 빵과 아이스크림·과자를 주로 생산해왔다. 기린의 사업부문은 크게 제빵·제과·빙과 세 부문으로 나뉜다. 부산공장에서는 빵을 만들고 수원공장에서는 과자와 빙과를 만든다. 소비자들이 아는 대표적 제품은 쌀과자 시리즈인 ‘쌀로 별’ ‘쌀로 풍’ 등이 있다. 겨울이면 인기를 끄는 호빵도 만든다. 기린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목이 긴 동물’이다. 육상 포유류 중 키가 가장 큰 동물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롱 다리’다. 큰 키와 순박한 눈망울로 높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을 따 먹는다. 그렇지만 ㈜기린은 순박한 기린과는 달리 아픔이 많은 회사다. 기린은 1997년 1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98년에는 380억원의 지급보증을 선 계열사 기린산업이 최종 부도처리되면서 자금난을 겪었다. 여기에다 97년 말부터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이 급등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영난이 심화됐다. 결국 기린은 98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최종 부도 처리됐다. 부도 이후 기린은 화의를 신청해 98년 법원으로부터 화의를 인가받고 경영 정상화에 들어갔다. 2000년에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전 2300명에 달하는 종업원이 8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회사 매출도 1500억원 정도에서 1998년에는 65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03년에야 화의를 졸업했다. 그렇지만 기린의 실질적인 위기는 2004년에 다가왔다.
“2004년 기린은 핵심인 부산공장을 183억원에 매각하고 회사를 부산 인근으로 이전할 계획이었습니다. 처음 회사를 찾았던 날이 바로 공장을 매각하는 날이었어요. 만약 그때 부산 공장을 팔았다면 회사는 축소지향으로 가면서 결국 암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죽는 날만 기다리는 망하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컸다고 봅니다.” 이 대표는 당시 기린의 ‘점령군’으로 회사를 찾았다. 인수합병(M&A)을 위해 회사를 찾은 것. 그렇지만 회사를 실사하는 과정에서 부산공장의 가치가 1000억원대에 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183억원에 부산공장 부지를 넘기는 것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점점 더 ‘악수’를 두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공장 규모와 인력을 줄이는 것은 결국 기업의 회생능력을 버리고 점점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 하지만 단순히 공장 부지의 가치만 따져서 인수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식품회사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고 오히려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회사라는 분석이 뒷받침됐다.

식품회사는 사양산업 아니다 “글로벌, 글로벌 하지만 따져보면 결국 제조업 중에도 식품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유통기한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죠. 외국기업들이 들어와 다른 산업들이 무너져도 식품회사는 마지막까지 존속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절대 사양산업이 아니에요.” 사실 기린의 모체는 세 발 자동차로 유명한 삼립식품이다. 삼립식품은 회사가 분할되면서 다른 업체로 넘어가 지금은 경쟁회사지만 69년 양산빵 시장에 처음 진출한 회사다. 어릴 적 빵을 실은 삼립빵 세 발 자동차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면 추억 속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기린 공장을 찾으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주히 돌아다니는 ‘빵차’다. 하루에 수원공장에서만 50대가 넘는 차들이 빵을 실어 나른다. 기린 입장에서는 단순한 빵차가 아닌 돈을 벌어주는 ‘돈차’인 셈이다. 빵차와 함께 기린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이다. 기린은 하루 2교대 근무를 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하루 종일 돌아간다. 주로 오후 8시까지는 어느 정도 미리 예측된 물량을 생산한다. 오후 8시 이후에는 추가 주문이 들어온 부분에 대한 맞춤생산에 들어간다. 빵이나 빙과·제과는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당일 오후 5시까지 주문을 받는다. 당일 추가로 들어온 주문에 대한 생산을 저녁 시간에 맞춰 하는 것. 당일 주문을 받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현재는 주문 대비 출하 적중률이 99%가 넘는다. 간혹 물량이 남더라도 100개 중 한 개 정도만 출하되지 않을 정도다. 공장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만큼 이 대표의 하루도 바쁘다. 이 대표는 일주일 중 월·화·수 3일은 부산공장으로 출근한다. 목요일은 서울사무소로, 금요일은 수원공장에 간다. 바쁜 일정에서도 이 대표는 한 가지 경영철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바로 ‘유통기한 이틀 전 회수’라는 원칙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들이 간혹 문제가 되는 일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절대 기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유통기한이 5일이면 3일 지나면 무조건 회수합니다. 조금 더 팔아보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식품회사에서 사고는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회수한 제품은 전량 폐기 처리합니다.” 아까운 빵을 버리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게 낫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유통기한이 남아있기 때문에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에 줄 생각도 해 봤지만 오히려 사고가 생길 수 있어 사료용으로 전량 처분한다고 말한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빵을 주게 되면 바로 먹지 않고 넣어 뒀다가 나중에 먹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자칫 탈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유통기한 이틀 전 수거해 폐기 식품회사의 경우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어떻게 도덕적으로 회사 이미지를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또 한 가지 잘못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지적했다. 흔히 대부분 사람은 베이커리 빵이 신선하고 제빵회사의 빵은 유통기한이 길기 때문에 방부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대해 이 대표는 ‘절대 노(NO)’라고 외친다.
“베이커리 빵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빵이라는 게 꼭 그날 나온 빵이 맛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빵도 살아 숨 쉬는 제품이기 때문에 숙성이 필요해요. 오히려 당일 팔려고 빨리 숙성시킨 빵보다 자연적인 숙성 시간을 따져 만든 제빵회사 빵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베이커리 빵의 경우 빨리 숙성시키기 위해 보조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맛도 떨어지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료 역시 베이커리의 경우 당일 쓰다 남은 재료를 다음날 쓰기도 해 신선도가 떨어지지만 제빵회사는 한번 뚜껑을 열면 당일 다 쓰기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도 좋다는 것이다. 당연히 방부제는 절대 쓰지 않는다. 상온에 빵을 두고 방치실험을 한 결과를 바탕으로 유통기한이 정해지기 때문에 방부제를 쓰지 않아도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방부제보다 고추냉이(와사비)를 신선도 유지에 쓸 정도로 웰빙에도 신경 쓰고 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트랜스지방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올리브유 등 식물성 기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자신한다. 기린은 따지고 보면 참 실속없는 회사이기도 하다. 빵과 과자의 경우 제품의 부피는 큰 반면 개당 단가는 낮기 때문이다. 트럭 한 대 분량을 팔아도 반도체 몇 개 파는 것보다 돈이 안 된다. 똑같은 1000억원대 매출이라도 반도체 회사의 제품은 모아 놓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빵을 팔아 1000억원을 벌려면 속된 말로 산더미처럼 팔아야 한다. 그렇지만 기린은 올해 ‘제2의 창업’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2010년을 목표로 회사 덩치를 지금보다 3배 정도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 지난해 매출이 700억원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1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에는 매출 2000억원, 순이익 200억원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회사 CI도 올해 새롭게 바꿀 생각이다. 부산공장도 올 6월에는 기장군으로 옮긴다. 기존 부산공장 시설이 38년이나 돼 낡은 데다 도심에 위치해 부지를 팔고 옮기는 게 더 돈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부지에는 이미 아파트 사업이 계획돼 있다. 아파트 사업을 통해 투자금을 확보하고 금융부채 120억원도 갚아 무차입 경영에 나서겠다는 생각이다. 빵을 만드는 회사를 넘어 말 그대로 ‘빵빵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리듬발효공법 아세요?


“효모는 음악을 좋아해~”
최근 친환경 농법이 관심을 끌면서 음악도 재배기술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음악을 들려준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의 경우 작황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는 게 속속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빵은 어떨까? 기린의 효모 배양 탱크에는 음악이 흐른다. 때로는 클래식이, 때로는 가야금 산조 가락이 흘러나온다. 빵을 발효시키는 효모가 음악을 듣고 자란다는 얘기다. “음악을 들은 건포도종(효모)들은 일반 효모와는 달리 1.5mm가량 더 부풀어 올라요. 게다가 일반 가요보다 클래식 음악과 가곡, 가야금 산조 등 국악을 더 좋아하니 신기하죠?” 이동선 기린 부산공장 공장장은 ‘리듬발효 숙성 공법’을 확신한다. 효모에 음악을 들려주면 빵 맛이 더 쫄깃쫄깃해지고 향이 좋아진다는 믿음이다. 기린은 지난 7년간 효모에 음악을 들려주는 리듬발효 공법으로 빵을 만들어 왔다. 빵 맛을 내는데 밀가루 등 기본 재료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음악도 맛있는 빵을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올 4월에는 ‘음악을 이용한 건포도종 배양장치 및 그 배양방법’으로 출원해 특허도 획득했다. 처음으로 특허를 낸 건 지난 2004년이다. 당시 기린은 ‘음악을 이용한 건포도종 배양장치 및 그 배양방법’이라는 특허를 취득했다. 식빵 및 주요제품에 대해 음악을 들려주며 배양된 종(효모)을 투입, 제품의 볼륨과 풍미를 더 부드럽게 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기린의 친환경 공법은 음악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트랜스지방에 대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기린은 이미 트랜스지방을 줄이기 위해 식빵 반죽에 올리브 오일을 넣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브람스 식빵’. 브람스 식빵은 반죽에 올리브 오일을 넣어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이 난다. 또 ‘미니 샌드위치 식빵’은 뼈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SGA(Skeletal Growth Activator) 성분을 반죽 속에 첨가했다. 빵을 먹을 때는 잘 모르지만 빵 속에 음악과 친환경적인 생각이 들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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