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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대화] ‘사람 품질’ 바꾸는 게 최고 혁신

[CEO의 대화] ‘사람 품질’ 바꾸는 게 최고 혁신

▶이상진 지사장(왼쪽)과 강보영 이사장이 야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었다. ‘사막을 관광도시로 만드는 것’이나 ‘인구 16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암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나. 요즘 혁신을 이야기하지 않는 기업이 없다. 발전하고 변하지 않으면 곧 도태되는 것이 기업생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만’ 혁신이 더 많다. 강보영 안동병원 이사장은 달랐다. “환자만 있고 고객은 없는 병원은 망한다”는 게 강 이사장의 생각이다. 이상진 아랍에미레이트항공 한국지사장은 “두바이는 혁신 경영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위기를 보고 겪으며 혁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두 CEO. 안동과 두바이만큼 거리가 먼 두 CEO는 “위기가 혁신을, 혁신이 오늘의 발전을 낳았다”는 데 의외로 쉽게 동의했다.

사회(이석호 기자): 강보영 이사장 명함에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강보영 이사장(이하 강보영) : 제가 하루에 “고맙습니다”만 300번 넘게 합니다. 저부터 친절하면 직원들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MK식 친절경영을 선포했을 때 처음부터 직원들이 잘 따른 건 아니었습니다. 의사들이 워낙 자기고집이 세서…. (웃음) 당시 MK택시 유봉식 회장의 성공스토리를 읽고 제가 바로 일본에 전화했습니다. “저와 16명의 의사가 함께 가겠으니 꼭 만나주십시오”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본 병원에 견학도 갔죠. 일본에선 고인이 병원을 빠져나갈 때 담당의사가 배웅을 하죠.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의사도 저러는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죠. 병원도 특급호텔만큼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바이는 무관세·무세금

이상진 지사장(이하 이상진): 호텔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두바이에는 세계 최고의 호텔이 많죠. 제일 싼 방이 1500달러 합니다. 이런 호텔을 비롯해 대체로 호텔들의 1년 예약률이 88~89%에 이릅니다. 평소에 빈 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두바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죠.

사회: 두바이는 어떤 곳입니까?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을 짚어주시죠.

이상진: 두바이에는 규제가 없습니다. 무관세, 무세금입니다. 이런 곳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겠지요. 바로 두바이가 사막에 도시를 건설한 것처럼 말입니다. 규제가 없으면 사람들이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창의력도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 천국입니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규제개혁위원회는 규제를 개혁하기 위한 ‘규제’를 하고, 자유무역지대에 자유는 없고 규제만 있다는 소리를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두바이는 ‘뭐든지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생각이 넘치고 있고 한국은 ‘이런 걸 해도 될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죠.

강보영: 맞습니다. 경영도 고정관념이 가장 문제인데요,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도산입니다. 어제 방식으로 오늘을 살 수는 없습니다. 내일은 새로운 방법이 창출되어야 합니다. 노벨상을 탄 지식도 10년 전, 20년 전 것이면 죽은 겁니다. 아인슈타인이 오늘날 통하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이 PC방에 가면 요즘 애들한테 안 될 것입니다. 경영이 어려운 것은 오늘 통하는 지식을 내일 또 써먹을 수 없다는 겁니다. 혁신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지금 잘된다고 안주하고 답습하다가 금방 엎어지죠.

사막에 건설한 골프장·스키장

사회: 고정관념, 과거의 방식을 어떻게 깼습니까?

강보영: 교육밖에 없죠. 계속 교육시키고, 리더가 솔선수범하는 거죠. 이사장이 환자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의사들도 찔리는 게 있겠죠. 제가 우리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 찾아가며 문상갔는데 의사라고 ‘에헴’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

사회: 그래도 쉽지 않을 텐데요. 병원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라….



강보영 안동병원 강보영 이사장은 의사가 아니지만 경영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1982년 안동병원을 설립했다. 부도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MK 경영방식을 적용해 지금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 5월에는 암센터 건립을 앞두고 있다. 병원 서비스 혁신의 대명사다.



강보영: 사실 의사들은 잘 안됩니다. 그런데 딱 한번 된 적이 있어요. 98년 외환위기 땐데요.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외환위기가 딱 3년만 더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환위기 때 우리가 혁신한 게 참 많습니다. 우선 응급실에 전문의를 배치한 것도 그때죠. 전문의 누가 24시간 응급실에서 일하려고 합니까? 그러니 인턴, 레지던트가 응급실을 담당하는 데 잘못하면 사람 죽이거든요. 그런데 IMF가 딱 되니까 의사들이 일자리가 줄었습니다. 응급실 아니라 응급실 할아버지라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줄 서는 거예요. 또 그때 관리 쪽에서 구조조정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서비스를 높이고, 휴일 근무, 설·추석 근무를 시작했죠. 일요일에는 사람이 안 아픕니까? 설날에는 환자가 안 생깁니까? 이런 게 다 있는데 그동안은 병원이 자기 편한 대로 해 온 거죠. 의사를 비롯해 병원 직원들이 배짱장사 한 겁니다. 그런데 IMF가 오니까 월급도 안 올려 주는데 이런 걸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니까 환자들이 늘어나는데 그때 우리 병원이 엄청 컸습니다. 직원들은 일자리 보장해줘서 고맙다고 하죠, 환자들은 병원이 좋아져서 고맙다고 하죠, 저는 저대로 또 돈을 많이 벌어서 고맙죠(웃음). 저는 제 인생에서 다시 그렇게 좋은 시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진: 제대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훌륭한 사람과 조직은 평소에도 혁신을 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일반인은 그렇지 않거든요. 두바이도 중동에 있지만 석유 매장량이 크지 않습니다.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면 사실 암담하죠. 그러니 지도자들이 석유가 아니라 물류·관광·금융 중심지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강보영: 세상에서 품질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제품이 바로 사람입니다. 얼굴 생김새, 몸의 형태 등 외관은 다 비슷하지만 제품을 써보면 품질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혁신하는 게 필요하죠. 병원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100명 중 1명만 불친절해도 그 사람을 상대한 고객은 ‘그 병원은 전부 불친절한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MK택시에서 배우고, 삼원정공에서 배우는 것도 이런 품질을 균일하게 맞추기 위해서죠.

사회: 변화하고, 혁신하는 게 옳지만 조직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강보영: 처음에 안동에 암센터 짓는다고 하니까 많이들 비웃었습니다. “1000억원이 어디서 나오느냐, 곧 부도날 거다, 아니다 벌써 났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인구 16만8000인데 시민을 전부 환자로 만들려고 하느냐”며 해봤자 망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는 오히려 암센터 간판에 ‘세계적인 수준의 암센터를 열겠다’고 써놓았습니다. 서울도 아닌 주제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요? 우리가 새로 들여온 장비는 세계적인 기계입니다. 모 대기업 계열 병원보다 최신형이죠. 그럼 세계적인 장비가 안동에 오면 변합니까? 서울의 유명한 의사도 모시고 왔죠. 그 의사가 안동에 오면 실력이 변합니까?



이상진 아랍에미레이트항공 이상진 지사장은 20여 년간 노스웨스트항공에서 경력을 쌓은 항공업계 베테랑이다. 2005년 3월 아랍에미레이트항공 한국지사장에 부임한 이후 두바이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이상진: 모두가 ‘NO’했던 일을 성사시킨 것이 두바이와 참 닮았습니다. 두바이도 처음에 외부 사람들이 믿지 않았어요. 사막에 골프장을 짓고, 스키장을 만드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죠. 물론 스키장도, 골프장도 적자입니다. 그 자체로 이익이 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두바이라는 상품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죠. 남들이 다 하는 방식,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는 건 혁신이 아니죠. 깜짝 놀라게 하는 것(surprising)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사소한 반발은 조직의 리더가 극복해야 합니다.

“추워도 에어컨을 틀어라”

사회: 안동병원도, 두바이도 원래 사람들의 주목을 못 받는 변방이었군요. 역시 중요한 변화는 중심이 아니라 항상 변방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강보영: 두바이 골프장을 얘기하니까 저도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82년 병원을 세우고 이듬해 바로 부도 위기에 처했어요. 일단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해야겠다 싶어 인력을 줄이려고 하니까 노동부에서 해고하면 감옥에 보낸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에라, 차라리 감옥 가자’ 이런 심정이었죠.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는 사원도 있었죠. 언론이 ‘안동병원 구조조정’ 소식을 발표하니 87명이던 환자가 47명으로 확 줄었습니다. 정말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죽겠다고 하니까 진짜 병원이 죽는 것 아닌가?’ 생각을 확 바꿨죠. 바로 넥타이 매고 이발하고 말끔하게 해서 은행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큰소리쳤죠. “내가 언제 연체 한번 했습니까?” 그러고는 “병원 잘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은행 사람도 태도가 바뀌던데요. 돌아와서는 병원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라고 시켰습니다. 밤이 돼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병원 마당도 깨끗하게 포장하고. 그러니 병원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춥다고 해도 에어컨 계속 틀라고 했습니다. 환자들 시원하게 하려고 트는 게 아니고 우리가 에어컨 틀고 있다고 알리기 위한 거였거든요 (웃음).

이상진: 두바이의 골프장도 매일 적자입니다. 아무리 손님을 불러 받아도 물값도 안 나옵니다. 사막에서 잔디를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 이사장님 에어컨 튼 것과 똑같습니다. 황량한 사막에 외국 사람들이 비즈니스 하려고 왔는데, 놀이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두바이에 가면 골프장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죠.
사회: 아랍에미리트 주위의 많은 나라는 왕족들이 오일머니를 모두 챙겨 일반 국민은 못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바이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상진: 두바이에서는 국가 부통령 겸 총리를 셰이크, 곧 부족의 족장이라고 부릅니다. 셰이크 모하메드, 이 사람의 메시지는 심플합니다. “2010년까지 우리는 100년 후에 먹고 살 방식을 찾기 위해 석유 의존도를 0%로 만들겠다.” 두바이 모든 사람이 동감하는 그런 메시지죠. 구체적인 실행은 2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이점을 살려 무역의 거점을 만들어보자.” 다시 몇 년 후 “이란·이라크·오만 등 모든 중동의 경제 거점이 되자.” 지도자가 말하는 어젠다가 착착 실행되고 있습니다. 주된 벤치마킹 대상은 싱가포르입니다.

강보영: 박정희 모습도 살짝 떠오르는데요. 강한 지도력이나 주변 선진국 벤치마킹하는 모습 등이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메시지가 심플해야 조직이 한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두바이 성공은 단순한 메시지 덕

이상진: 그런 면에서 한국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 체제만 다른 게 아니고 생각하는 게 좀 다르죠. 우리는 요즘 점점 이념형으로 변하고 있는 느낌이고, 이념형이었던 아랍이 오히려 실용형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념형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을 어렵게 합니다. 그러나 두바이는 전제주의라도 실용형이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습니다. 추진력이 있다 보니 점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메시지는 단 하나죠. ‘중동 지역의 허브’입니다.

강보영: 그렇습니다. 고정관념, 머릿속의 생각으로는 바뀌는 게 없죠. 제가 하루에 300번 고맙다고 인사한다고 했는데요. 우리 병원 병상이 160개 정도 됩니다. 들어갈 때 한 번, 나갈 때 한 번 하면 300번은 거뜬하죠. 저는 실제로 환자들이 고맙습니다. 그들도 의사가 필요해 오지만 우리도 그들이 아니면 경영이 안 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사소하지만 이렇게 이사장인 제가 앞장서서 인사하고,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라도 좀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미 간호사나 직원들은 상당히 변했고, 의사 선생님들도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사람 품질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회: 사람 바꾸는 것이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겁니까?

강보영: 그렇죠. MK택시 경영법을 배운 것도 다 그런 것이죠. 최근엔 『에너지 버스』란 책을 읽었는데 재미있어서 시험을 한번 쳐 보려고요. 가끔 직원들에게 시험을 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직원들이 사표 내는 사유 중 하나가 글쎄 ‘교육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답니다. 품질 차이가 심하다 보니 교육 열심히 시키고 있습니다.

이상진: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투자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 아랍에미레이트항공도 그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제의 방법으로 오늘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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