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잊혀지는 ‘미군 희생’
쉽게 잊혀지는 ‘미군 희생’
블랙호크 추락으로 이라크 주둔 12명 목숨 잃었지만 미 국민들 반응 무덤덤 이라크 주둔 미군병사들은 낙이 별로 없다. 그래도 고향의 가족과 연락이 쉽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된다. 많은 장병이 매주 수차례 배우자와 자녀에게 전화하고 매일 e-메일을 보내면서 안부를 확인한다. 존 게리 브라운 중사는 비행을 떠날 때마다 부인 도나가 걱정한다는 사실을 안다. 아칸소 주방위군 소속 블랙호크 헬기 기장이며 사수인 브라운은 결혼생활 18년차인 부인에게 걱정말라며 안심시킨 경험이 있다. 이들 부부는 전에도 전쟁 때문에 떨어져 산 적이 있다. 15년 전 걸프전에 복무하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황량한 풍경 위로 비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래도 도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운은 매일같이 부인에게 전화하고 편지를 보냈다.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전화기는 막사에서 약 3㎞ 떨어진 데 있다. 처음에는 걸어서 갔지만 나중에는 근무를 마치고 떠나는 사병에게서 자전거를 샀다. 통화하면서 비교적 안전한 구역을 정기적으로 비행하는 일이라고 안심시켰다. 헬기가 지나가는 지역의 이라크 아이들에게 “사탕 폭탄”을 떨어뜨리게 사탕이 가득한 위문품을 보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감출 방법은 없었다. 덩치가 크고 종종 저공비행을 하는 헬기는 저항세력의 좋은 목표물이다. 그들은 헬기를 보면 기관총과 로켓포를 쏘아댄다. 헬기는 또 기계 결함에 취약하다. 이라크 같은 혹독한 기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추락한 헬기가 약 90대다. 군인은 가족들에게 전투작전 내역을 상세히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브라운은 부인과 대화할 때 간단한 암호를 썼다. “훈련” 비행을 떠난다고 하면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임무”를 맡았다고 하면 위험 구역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착륙하는 대로 곧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1월 19일(금요일) 오전 5시14분, 도나가 리틀록의 집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듣기 겁나는 단어가 언급됐다. 브라운은 비행장에서 이륙 직전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임무”를 맡았다. 1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방금 이라크에 돌아온 때였다. 브라운은 부인과 두 자녀와 두 손자 때문에 휴가가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통화를 끝내려 서둘렀다. “진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도나의 귀에는 헬기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토요일 브라운의 전화가 안 오고 e-메일도 안 오자 도나는 걱정이 됐다. 그러나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으려니 하고 자위하면서 전화기나 컴퓨터 앞에 갈 엄두를 못 냈다. 하루 종일 전화벨이 울리기만 기다렸다. 일요일이 돼도 전화가 오지 않자 최악의 상황이 걱정됐다고 도나는 말했다. 그렇기는 해도 막상 육군 사상자 지원단 소속 장교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찾아왔을 땐 가슴이 철렁했다. 월요일 오후 누가 대문을 두드렸다. 열 살배기 손자 크리스천이 문을 열고는 두 남자가 왔다고 말했다. 도나는 뭘 팔러 왔나 물어보라고 시켰다. 그러자 손자가 대답했다. “장사꾼이 아니고 군인들이에요.” 이라크 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세 시쯤 바그다드 북쪽 디얄라 지방에서 브라운의 블랙호크 헬기가 추락했다. 브라운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다. 이번 비행은 승무원 네 명과 승객 여덟 명을 태우고 발라드 인근의 대형기지 캠프 아나콘다에서 이라크 수도로 이동하는, 겉보기론 평범한 수송작전이었다. 바쿠바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브라운의 헬기 이지 4-0호가 긴급구조 신호를 보내고는 추락했다. 같이 가던 블랙호크기가 근처에 착륙했는데 병사들은 저항세력의 사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육군은 유별나게도 이번 추락사건에 관해 입을 다물었다.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13명이 숨졌다더니 12명으로 고쳤다. 관련자들은 장비 고장 탓이라고 말했다가 저항세력의 사격 탓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제는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숨진 병사들의 유가족은 군에서 유골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추락사고를 좀 거시적 차원에서 해석하려는 사람은 사망자 중 10명이 주방위군이라는 사실을 지적할지 모른다. 한국전쟁 이래 전투에서 희생된 주방위군 수치로는 이번이 최다다. 또는 그날 이라크 전역에서 숨진 미군 희생자(총 25명)가 개전 이래 가장 많은 편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가장 두드러진 면은 일반 국민이 12명이라는 병사의 희생을 의식은 했나 몰라도 너무나 빨리 잊었다는 점이다. 이제 이라크전에서 숨진 미군 병사가 3000명이 넘는다. 처음에는 사망자 수치에 놀라지 않고 배기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4년이 지나니 오히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 않기가 어렵다. 기억에 남는 근래의 주요 분쟁을 살펴보면, 징병제가 없는 미국에서 전선과 고향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지금처럼 빈약한 경우는 없었다. 전투에서 숨지는 군인들 뉴스가 넘치다 보니 자세한 내역은 흐릿하다. 희생자 유가족 말고는 한 명이 죽든 스무 명이 죽든 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서는 전쟁 자체에 관한 우리의 대화방식도 바뀐다. 남편 잃은 아내나 부모 잃은 자녀 이야기는 그만두고 대신 그들의 고통을 좀 더 모호하고 먼 용어로,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하기 쉬운 용어로 가리려 든다. 고개를 흔들면서 “손실”을 거론한다. 현재 워싱턴에선 온통 이라크 이야기다. 민주당(Democrats)은 의회 장악과 부시의 인기하락에 힘입어 전처럼 조지 부시의 전쟁노선에 맞섰다가 “패배주의당(Defeatocrats)”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는 일을 겁내지 않는다. 척 헤이글과 존 워너 상원의원을 포함한 일부 공화당원은 전쟁 수행방식과 인명 희생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유화적인 동시에 단호한 인상을 주려고 다른 사람이야 뭐라든 상관 않고 이라크에 반드시 추가 병력 2만1000명을 보내겠다고 한다. 설령 의회가 반대하더라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고 딕 체니 부통령이 지난주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문제의 그 추락사고를 토요일 느지막이 보고받았다. 그는 매일 아침 참모들이 “파란 종이”라 부르는 보고서를 받는다. 상황실에서 파란 종이에 인쇄해 올리는 이라크 1일 현황 보고서다. 첫 줄에는 최신 사상자 현황이 오른다. 헬기 추락사고는 아직 워싱턴에 보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부시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병력 증파를 논의하며 그날 오전 일부 시간을 보냈다. 두 장관 모두 신이라크 전략 추진차 유럽과 중동을 방문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일부 동맹국이 병력 증가에 찬성하지 않았다. 추가 병력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대통령의 생각은 과연 옳은가, 이라크전은 미국의 패배인가? 이런 의문들이 뒤늦게 이제서야 전쟁과 관련한 진지한 논의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전쟁의 정치만 논한다. 2008년에는 누가 뜨고 누가 지나? 부시의 대통령직은 사실상 “종쳤고” 미국인들은 민주당원에게, 어쩌면 여성에게, 군 통수권을 맡길까? 민주당원들(과 반기를 든 공화당원들)은 “철수 전략”과 “철군 일정표”를 둘러싼 냉정한 논쟁에 정열을 바친다. 또 병력 증강을 규탄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을 허용한 “구속력 없는” 결의안을 자축한다. 그러나 그 병사들의 운명을 해결하려는 정치인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라크 사태의 해결방안에 관해선 늘 그렇듯 해답보다 질문이 더 많다. 사심 없는 사람이라도 남는 편이 더 위험할지 떠나는 편이 더 위험할지 생각이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블랙호크 추락사고로 숨진 군인 12명은 전투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랑하는 가족이 전투 중 숨질 경우 많은 유가족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생생하게 상기시켜준다. 주방위군이 이 전쟁의 부담을 상당히 떠안았다. 그 헬기에 탑승해 숨진 사람들은 비범한 임무 수행을 요구받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전투 중 목숨을 잃은 다른 병사들과 다를 바 없다. 남편이고 아내였으며, 부모이고 심지어는 조부모였다. 종교 신앙에 의지한 사람도 있고 군 통수권자에 대한 신뢰에 의지한 사람도 있었다. 적어도 이 전쟁이 가치있는 싸움이라고 믿지는 않으면서도 임무를 수행했다. 총 34명의 유자녀와 적어도 10명의 손자·손녀를 남기고 떠났다. 그들과 같은 남녀를 더 많이 위험지역에 투입하는 문제가 논의되면서 그들의 죽음은 전시에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유일한 의문을 남겼다.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숀 라이얼리(31) 육군대위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라이얼리는 헬기 탑승자 중에서 젊은 편이었다. 군인을 많이 배출한 집안 출신이라는 자부심 강한 그 텍사스인은 텍사스 A&M 대학을 다녔고, 텍사스 주방위군에 들어갔다. 육군에서 복무한 부친 조지 라이얼리는 “집안 유전자”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와 백부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다.” 라이얼리는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때 루이지애나에서 헬기 구조임무를 수행했다. 지붕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인 실라(24)는 남편의 충정심을 겁낼 필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행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실전에 불려나갈 가능성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라이얼리는 사실 군용 헬기 근처에 간 적이 별로 없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고 나중에 홈디포의 한 매장 원예 책임자로 일했다. “군 복무는 한 달에 한 주말, 1년에 2주가 전부였다. 실전에 배치될 줄은 몰랐다”고 실라는 말했다. “보스니아에 갈지 모른다는 말을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보스니아요? 당신은 주방위군이라고요.’” 그러나 지난해 2월 소집령이 나왔다. 보스니아가 아니었다. 라이얼리는 이라크행을 앞두고 긴장했지만 가문의 전통대로 해외에서 복무하게 된 사실에 자부심도 느꼈다. 수많은 다른 병사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가면 뭔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실라 역시 남편처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때론 두려움을 이기기 어려웠다. “걱정이 됐다. 나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석연찮은….” 실라가 돌이켰다. 전투부대 대위인 라이얼리는 넓게 산개한 캠프 아나콘다에 배치됐다. 그 기지는 이라크를 종횡으로 비행하는 헬기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요즘은 이라크의 도로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적의 공격이 너무 잦아 병사들은 그 기지에 ‘박격포 고을(Mortaritaville)’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라이얼리가 매일 밤 9시쯤 오스틴 교외의 플러거빌에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걸 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웹캠을 이용해 이제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들 잭이 좋아하는 그림책(보통 ‘탱크엔진 토머스’)을 읽어주며 가정 분위기를 흉내내곤 했다. 남편의 전사통지를 받고 이틀이 지난 뒤 실라는 아들에게 사실을 설명하려 했다. 천국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아빠가 하느님을 만나러 천국에 가셨단다”고 조용히 말했다. “아빠와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이제 볼 수는 없어. 아빠는 늘 우리가 하는 말을 듣지만 집에 오시지는 않을 거야.” 잭은 멍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아냐, 올 거야.” 세 살배기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있게 말했다. “이라크에 갔어. 끝나면 집에 올 거야.” 빅터 랭가리카(29) 상병은 숀 라이얼리처럼 이라크행 임무를 낙관적으로 생각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전속령을 받는 순간부터 살아서 전쟁터를 빠져나가기는 글렀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개죽음을 당하리라 생각했다. 두 차례 이혼 전력이 있는 어린 아들과 딸의 편부로서 홈디포에서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는 데 필요한 기능을 익히려 육군에 자원 입대했다. 해외 복무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머니와 두 전처가 돌봤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9개월간 실전 복무한 사실을 자랑스레 여겼지만, 아프가니스탄 복무 후 평소 쾌활했던 그는 우울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다. 한번은 아프간 병사가 그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바람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다른 미군이 총을 쏴 죽였다. 랭가리카는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지 못했으나 천사라고 생각했다. 추락사고로 죽은 대다수 병사와 달리 랭가리카는 정규 육군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속명령서를 받았을 때는 가고 싶지 않았다. 미국이 왜 이라크를 침공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시가 우리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그의 모친 펄 루카스가 말하면서 아들의 말을 돌이켰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이유도 모르고 죽을 거예요. 석유 때문인지 보복심 때문인지.” 랭가리카는 지난해 9월 이라크에 도착했다. 위험하리라던 걱정은 역시 옳았다. 바그다드 남부에 주둔한 그는 중장비 수리공으로 일하느라 전투에 참여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업무상 거리에서 총격이나 미사일 공격으로 고장난 험비와 기타 차량을 수리해야 했다. 하루는 자동차 밑에 들어가 수리하는데 총알 하나가 머리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랭가리카는 11월 2주 휴가를 얻었다. 귀국해서 조지아주 디케이터로 어머니와 딸을 만나러, 메릴랜드주 브룬스윅으로 아들을 만나러 갔다. 친척들에게는 이라크로 돌아가기 겁난다고 말했다. 이모는 탈영해 자신과 어머니가 태어난 니카라과로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랭가리카는 임무를 완수할 각오로 이라크에 돌아갔다.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이미 자신이 “하느님의 천사로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늘 혼이 함께하리라”고 믿었다. 2003년 어머니에게 보낸 서신에선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전 정말 천사라고 생각해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헬기 비행을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다음날 죽을 게 확실하다는 신념에서 집에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들이 기다리니까.” 어머니는 여섯 살배기 딸 더비나를 바꿔줬다. 딸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어머니로 바꾼 그는 울고 있었다. “항상 어머니를 잊지 않겠어요.” 제인 올굿은 남편 브라이언 올굿(46) 대령이 이라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니 속은 편하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었다.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정형외과 의사인 브라이언 올굿은 이라크 주재 연합군의 최고위직 군의관이었다. 직위를 이용해 이라크 의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준장 진급도 멀지 않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수시로 이라크 전국을 돌아다니는 위험을 감수했다. 육군 의무대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퇴역 대령인 부인 제인은 남편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업적 위험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언제 여행을 다니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약속했다. 일주일에 반드시 한번은 그가 집으로 전화를 걸고, e-메일은 가급적 자주 보내기로 했다. 올굿이 자신의 인생 항로를 의심했던 적은 없다. 열일곱 살에 미래의 아내를 만났고, 이미 의사 자격증을 따고 군인의 길을 걸을 계획을 세웠다. 비행 경험이 많고 실전 수술에 능숙한 그는 공수 부대원들의 부상을 좀 더 효율적으로 치료할 생각으로 육군 레인저 훈련도 받았다. 쾌속 승진을 거듭했으며 주한미군 의무대 대장으로 근무했다. 다음에는 독일에 주둔한 미군 의무대 대장으로 내정됐다. 독일에는 현재 부인과 열한 살짜리 아들 와이어트가 산다. 올굿은 군인이기 전에 먼저 의사라고 생각했으며, 부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비가 있으면 조달하려 난관을 개의치 않았다. 이번 가을에 한 보병부대가 내화성 전투복을 요구했다. 통상적으로 항공기 승무원만 입는 옷이었다. 올굿은 모든 부대원이 그 옷을 입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며칠 내로 새 군복 구입비 2000만 달러를 결제했다. 진급을 눈앞에 둔 장교는 보통 상관들에게 거액을 요구하지 않는 법이다. “안 된다고 거절하거나 한 부대에만 주면 쉽게 끝나는 일이었다”고 바그다드에서 올굿과 함께 근무한 도널드 젠킨스 대령이 말했다. “돈의 용도를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목숨을 앗아간 마지막 임무에 중요한 의미가 담겼다. 올굿은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다친 이라크 민간인의 의료 개선안을 궁리하느라 수백 시간을 보냈다. 사고를 당한 토요일은 타지에서 이라크 주민에게 미군이 지은 새 병원을 기증한 뒤 바그다드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라크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이야기에서 군복 입은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민간인의 일상생활을 하다 차출된 많은 주방위군 중에는 40대나 50대 후반이 많다. 버진아일랜드 방위군 소속의 데이비드 C 카네가타 3세 중령은 네 자녀의 아버지로 15개월 된 손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오와 방위군 소속인 메릴린 개버드(46) 원사와 남편 에드는 일곱 자녀 밑으로 11명의 손자·손녀를 뒀다. 메릴린은 이번 헬기에 탑승한 유일한 여성이었다. 군생활이 28년째이고, 아이오와 방위군 중에서 최초로 원사가 된 여성이었다. 자신이 천사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을 잊은 랭가리카와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희생자가 신앙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카네가타는 교회에서 건반악기를 연주하면서 아내 셰네스와 함께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버지니아 방위군 소속의 대릴 부커(37) 하사는 간발의 차이로 박격포 공격에서 살아남은 적이 있는데 다만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부친 어니스트 하디는 “녀석은 늘 ‘전 가호를 받아요,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가호를 받는다는 말은 곧 예수가 지켜준다는 말이었다. 미국 정부가 지켜준다는 말이 아니고.” 자신이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신념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도 있다. 메릴랜드 방위군 소속인 로저 홀러(49) 원사는 방위군의 70연대 본부 사병 중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었다. 9·11 사태에 자극받아 아프가니스탄에 갔고, 이어 자신의 마지막 임무가 되는 이라크에 갔다. 아들 대니얼 홀러 병장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복무했다. 대니얼은 미국에 돌아왔고 아버지의 복무 기간도 조만간 끝날 참이었다. 때를 잘 맞춰 딸 캐서린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꼭 참석하게 되기를 바랐다. 홀러의 오랜 친구인 퇴역 원사 캐서린 헐리는 그가 총격의 와중에서도 낙관적이었으며, 이라크전 복무가 정당한 일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많은 친구와 유가족의 감정을 대신해 그의 복무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헐리가 말했다. “그가 사망자 집계 속으로 그냥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 지난주 수요일 캠프 아나콘다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약 1200명의 장병이 모였다. 그 기지에는 육군 주방위군의 첫 헬기 여단인 제36전투항공여단이 주둔한다. 추락사고로 사망한 군인 중 네 명이 36전투항공여단 소속이었다. 이라크 내에서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그들의 일을 가리켜 메기항공이라 부른다. 기지에 주둔한 부대원들이 이번 사고의 충격을 제일 심하게 받았다. 그 토요일 오후 부대원들은 심상치 않은 사태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기지내 인터넷과 전화가 불통이었다. 군인 사망사고가 일어날 경우 보안 차원에서 취하는 정보 차단 조치였다. 그날 운명의 비행을 떠난 선두 헬기가 귀대하자 승무원들은 타고 온 헬기 엔진을 완전히 끄기도 전에 곧바로 끌려가 함구령을 받았다.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기지 내 군인들은 블랙호크 한 대가 추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도식에서는 고인들을 기리는 뜻에서 걸어총 자세에 철모를 얹었다. 여단장과 군목이 일어나 연설하고 이어 고인의 친구들이 짤막한 추도사를 했다. 거기 모인 군인들은 참혹한 장면을 수없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눈물을 참지 못했다. “아주 애절한 장면이었다”고 대외업무 담당관 찰스 휠러 상사가 말했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 꾹 참으려 하지 않았다.” With ARIAN CAMPOFLORES in Decatur, GRETEL C. KOVACH in Pflugerville, BABAK DEHGHANPISHEH in Baghdad, STEFAN THEIL in Heidelberg, DAN EPHRON, EVE CONANT, RICHARD WOLFFE, DAREN BRISCOE, JONATHAN MUMMOLO and STEVE TUTTLE in Washington and ANDREW MURR, SARAH CHILDRESS and KAREN BRESL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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