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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선진국 견제 뚫어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 견제 뚫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올 들어 달 탐사를 연구하는 비공식 팀을 하나 만들었다. 박사급 연구원 3명이 참여했다. 앞으로 10년 이내 한국에서도 달 탐사 계획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과학위성팀을 이끄는 심은섭 박사는 말했다. “지금은 위성 제작과 발사에 주력하지만 길게 보면 한국도 달과 같은 행성 탐사로 진출해야 한다.” 한국은 언제쯤 달 탐사에 나설까. 과학기술부 우주기술개발과 황판식 서기관은 “2030년께나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지금 여건으로서는 달 탐사가 ‘달나라’ 이야기일 뿐이라는 말이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개발한 최순달 박사도 “지난해 말 카이스트의 한 교수가 달 탐사 기획을 과기부에 제시했지만 승인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달 탐사는 아직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기술도 문제지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데다 경제적 효과는 금세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달 탐사를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과학기술부 우주기술개발과 김원기 사무관은 잘라 말했다. “달 탐사를 하려면 중국, 인도 같이 자체 발사장(우주센터)과 발사체(로켓) 기술 부터 갖춰야 한다. ” 그러나 발사장과 발사체라면 한국도 곧 갖게 된다. 고체연료 과학로켓(98년), 액체 추진 과학로켓(2002년) 발사에 성공했고, 현재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2649억원을 들여 올 6월 말 완공을 목표로 로켓 발사가 가능한 우주센터 건설공사가 7년째 진행돼 왔다. 지난해 말 현재 건축공사의 97%, 토목공사의 89%가 진척됐다. 또 100kg급 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우주 발사체 로켓 ‘KSLV-1(Korea Space Launch Vehicle 1)’도 개발 중이다. 국내 최초의 이 우주발사체 사업에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098억원이 투자된다. 2008년께는 외나로도 우주센터에서 ‘한국이 만든 인공위성을 한국의 우주 발사체에 실어 발사한다’고 정부는 자랑한다. 그러나 KSLV-1는 한국에서 발사되지만 핵심 기술은 러시아에서 빌려온다. 우주 기술의 핵심은 우주로 올려 보내는 로켓 기술이다. 기술협력을 통해 발사체를 사오거나 공동 제작은 해도 독자 제작할 능력은 안 된다. 그래서 “(독자적인) 로켓 기술은 한국에 아직 없다”고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인하대 김범수 교수는 말했다. 특히 발사체는 민관 공용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고, 군사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로켓에 인공위성을 탑재하면 우주 발사체가 되지만, 탄두를 탑재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따라서 발사체 기술은 선진국들이 쉽게 이전해주지 않는다. 우주 기술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로켓 기술, 인공위성 제작 기술, 유인우주선 제작 기술, 대기권 재돌입 기술이다. 이 중 한국이 자신하는 기술은 인공위성 제작 기술뿐이다. 한국은 92년 우리별 1호 발사 이래 15년간 우주 개발에 본격 참여해 왔다. 그 결과 과학기술 위성, 지구관측 위성, 방송통신 위성 등 11기를 쏘아올렸다. 위성의 수명은 10년을 초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5년을 넘기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가동 중인 위성은 아리랑 1·2호, 과학기술 위성, 무궁화 2·3·5호, 한별 위성 등 총 7기다. 아리랑 위성 2호는 세계에서 6개국만 개발에 성공한 해상도 1m급의 정밀 지구관측 기능을 갖췄다. 하지만 유인 우주선 제작 기술 등 나머지 3개 기술은 한국이 보유하지 못했다고 김범수 교수는 말했다. 한국의 우주 기술력은 어느 수준일까. 국가의 우주기술 수준은 통상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뉘는데 과학기술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C그룹으로 분류된다. A그룹은 로켓 발사 능력과 위성 개발 능력 두 가지를 모두 보유한 국가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인도, 중국, 이스라엘, 영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B그룹은 위성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국가로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이 포함된 C그룹은 부분적 로켓과 위성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국가로 오스트리아, 덴마크, 벨기에, 핀란드, 브라질 등이다. 국가별 우주 기술 보유 현황은 보통 선진국에 대비해 어느 정도냐로 표시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위성 기술, 우주발사체 기술, 액체엔진 기술을 기준으로 2006년 작성한 ‘국가 우주 기술 전략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우주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60~70% 정도로 평가됐다. 위성 기술 64개 항목 중에서는 전력 분배와 행성 탐사궤도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30%로 가장 취약하고, 우주환경 구조계 기술이나 구조체 시험 기술은 95%로 선진국 수준에 매우 근접했다. 한국이 기술개발에 공을 들이는 발사체 기술의 62개 항목 중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술, 비행통신장비 개발 기술은 30% 수준이어서 선진국과의 격차가 가장 큰 분야다. 반면 분리구조체 기술, 고체 추진기관 점화장치 기술 등은 95%로 상당한 수준이다. 비교적 양호하다는 위성 기술도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크게 뒤진다. 3국의 핵융합 기술, 실감형 디지털 컨버전스 기술 등 핵심기술 21개를 비교한 자료(2005년도 과학기술부 기술수준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개 분야에서 중국에 앞서면서도 유독 인공위성 기술에서는 20.5%포인트 뒤졌다. 인공위성 기술은 중국보다 6.2년, 일본보다 9.1년 뒤져 21개 분야 중 기술격차가 가장 크다. 발사체 기술은 그나마 더 떨어져 선진국의 50% 선이라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황진영 정책협력부장은 말했다. 한국은 우주개발 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데다 예산에서도 격차가 크다. 한국은 2002년 우주개발에 1억1300만 달러를 투자하다가 2006년엔 2억900만 달러로 2배 가깝게 늘었다. 하지만 미국 385억9000만 달러(민수·군수 포함), 일본 22억3100만 달러, 프랑스 21억9100만 달러, 러시아 10억1800만 달러, 인도 8억1300만 달러 등 우주 기술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우주공간은 첨단기술의 경연장이다. 초정밀 가공조립 기술, 극한환경 기술, 통신정보 기술 등 새로운 부가 가치가 창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의 우주산업은 정보산업의 핵심이자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또 세계 항공우주 시장의 규모는 연간 4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추정한다. 이 중 75%를 기술 선진 7개국인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차지한다. 한국은 80년대에 우주 기술 개발에 착수할 경제규모가 됐지만 미국의 견제로 주저앉았다. 본격적인 참여는 90년대부터다. 92년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이후 우주 기술 개발에 적극 뛰어들었다. 정부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96년부터 2010년까지 총 2조4600여억원의 정부 예산(민간부문은 별도)을 투입하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궁극적 목표는 핵심 우주 기술과 독자적인 우주개발 능력 확보다. 그래서 우주센터와 우주 발사체를 만들고, 2008년 4월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러시아 소유스호에 태워 우주로 보낸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기술사업단장의 말을 빌리면 “경제 11위권인 한국이 우주 기술에서도 선진국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주 기술 개발의 걸림돌은 선진국의 견제다. 우선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 : 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라는 벽이 있다. MTCR은 87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 7개국이 대량살상무기 운반수단의 확산을 방지하려 만들었으며 한국은 2001년 가입했다.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 이상의 미사일 및 관련 부품, 기술의 제3국 수출이나 국가 간 이전을 금한다. 물론 기술이전을 받지 않는 독자 미사일 개발은 주권 국가로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79년 미국과 체결한 미사일 양해각서에서 미국의 기술 도움을 받는 대신 사거리 180㎞가 넘는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MTCR 기준을 적용해도 최대 300㎞을 넘는 미사일 개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MTCR은 우주 발사체(로켓) 개발과 같은 평화적 우주 이용 기술개발은 막지 않는다. 따라서 MTCR에 가입했다 해도 평화적 목적이라면 어떤 성능의 발사체라도 제한없는 기술개발이 가능하다. 그래서 정부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세우고 2015년까지 1.5t급 저궤도 실용위성 발사체를 개발키로 했다. 그러나 우주 발사체 기술은 마음 먹기 따라서는 언제든지 미사일 기술로 전용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우주 발사체 개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미국은 로켓 개발을 주도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92년부터 2001년까지 6회에 걸쳐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보내 현장을 확인했다. 한국이 2015년까지 개발하려는 1.5t급 실용위성 발사체도 미사일로 따지면 중량 500㎏이 넘는 탄두를 실어나르는 기술이 된다. 한국은 평화적 우주 이용 기술개발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군사적 용도로서의 전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우리가 평화적 목적에서 위성 발사체를 쓴다면 미국으로서도 막을 도리는 없다”고 장영근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 연구실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기술개발을 도와줄 리는 없다. 한국이 국내 최초의 우주 발사체인 KSLV-1을 개발하면서 러시아와 손을 잡은 까닭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04년 10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와 우주 발사체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방효충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발사체 기술을 가진 다른 나라에는 말도 못 꺼냈으며, 그나마 러시아가 가장 호의적이었다”고 전했다. 발사체 기술을 가진 국가 중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기술제휴를 꺼렸다는 얘기다. 한국의 우주기술 개발은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우선 한국의 기술개발에 우호적이었던 러시아의 기술이전도 점차 조건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최근 석유 수출로 달러가 넘쳐난다. KSLV-1 기술협력을 맺던 2004년처럼 달러에 목말라 하는 러시아가 아니다. 또 미국이 러시아에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는 데다 러시아도 핵심기술의 제3국 이전을 경계해 기술협력에 미온적으로 나올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우주 기술 선진국들이 발사체 핵심기술의 이전을 거부할수록 러시아가 더 큰 돈을 요구할 개연성도 있다. “핵심기술은 누구도 주지 않는다”고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말했다. “결국 완전한 시스템을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 ” 그래서 KSLV-1을 쏘아올리고 나면 한국이 세계 9위의 기술력을 갖는다는 일부의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과기부는 2015년까지 1.5t급 저궤도 실용위성 발사체의 시스템 통합과 독자적 운용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내년께 발사하는 KSLV-1은 이런 목표를 향해나가는 과정이다. 장영근 교수는 “러시아에서 주는 기술로 우리가 곧바로 발사체를 만들지는 못하며, 이런 경험을 토대로 우리 스스로 독립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랑 3호 개발 책임자인 최해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도 “기본적으로 발사체 기술이전은 힘들며, 자체기술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2015년까지 독자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7~8년 안에 독립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고 최순달 박사는 말했다. 한국이 로켓 부품 제작 기술과 시스템 기술을 배우려 해도 러시아가 설계, 제작 기술이전에 소극적이라고 최 박사는 전했다. 카이스트 방효충 교수도 “러시아 같은 나라가 수십 년 동안 개발한 기술을 한국이 하루 아침에 독자 개발해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우주개발은 목표 연도에 맞춰 성공하는 예가 거의 없다. ” 한편에선 막대한 예산이 드는 우주개발 사업을 냉철하게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 국내 기술진이 거둔 성과는 화려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위성 1기당 2000억원에서 3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외양에 비해 실속이 빈약하다거나, 우주산업에 거품이 끼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과연 비용 대비 효과는 합리적 수준인가.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 해서 우주기술 수준도 반드시 11위권에 들어가야 하나? 이런 문제를 두고 사회적 합의나 토론, 객관적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지적했다. “옆 사람 목소리가 커지면 몰려가는 경향이 있듯 우주산업도 상당 부분 그렇게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출발하지 않았다. ” 본격적인 우주시대 개막을 앞두고 기술개발의 목표와 방법론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도 반드시 빼놓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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