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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에 야망선까지 새긴다

손금에 야망선까지 새긴다

▶이비인후과에서 목소리 성형술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07년 직업시장 전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81.5%가 “올해 일자리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영화와 소설에서는 수년째 ‘백수’가 주인공 자리를 꿰차며 ‘전성시대’를 이어오고 있지만 취업시장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취업포털 잡링크(www. joblink. co. kr)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가운데 7명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소화불량·불면증·두통 등 취업병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에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생존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취업 포털사이트 커리어(www.career.co.kr)가 대학생 1420명을 대상으로 ‘2006년 대학가에 등장한 신풍속도’를 조사한 결과 ‘취업 성형’과 ‘취업 운세·점보기’가 각각 5위와 10위에 랭크됐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성형외과 홈페이지 상담코너마다 구직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취업을 앞둔 학생인데요, 요새 취업을 접할 때마다 정말 외모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성형하고 싶어요. 우선 얼굴을 좀 작게 했으면 좋겠고요, 이마가 너무 넓어 좁게 하고 싶은데 수술하면 언제쯤 자국이 눈에 안 띄게 사라지나요?” “취업을 앞둔 터라 마음이 급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취업 준비를 하려면 외모에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서…. 쌍꺼풀 매몰법과 앞트임을 하고 싶은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구인광고에서‘용모단정’이라는 용어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됐지만 외모는 ‘취업 성형’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여전히 우리 사회 취업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 인터넷 포털 엠파스(www.empas.com)는 네티즌 1940명을 대상으로 ‘외모가 취업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1124명(58%)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약간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사람은 637명(33%)에 달했다. 반면 “전혀 무관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1%에 불과했다.


취업 위한 ‘귀족 성형’ 인기 취업의 칼자루를 쥔 기업 역시 외모와 인상을 중요시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 co.kr)가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870명을 대상으로 ‘면접 시 지원자의 외모나 인상이 채용에 미치는 영향은?’에 대해 조사한 결과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사람은 65.2%를 차지했다. “상당히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대답한 사람도 29%였다. 그뿐만 아니라 “면접 시 외모나 인상 때문에 감점을 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75.5%에 달했다. 서울 K대 행정학과 4학년 안윤선씨에 따르면 취업을 겨냥한 쌍꺼풀과 코 성형은 기본으로 “성형 축에도 못 끼는” 실정이다. 안씨는 “취업시즌에 치아교정 수술을 받는 것도 일반적이다. 면접에서 미소를 지을 때 깨끗하고 고른 치아가 드러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면접을 볼 때 외모나 이미지를 중요하게 보니까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술비 마련에 대해 안씨는 “몇십만원일 경우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100만원이 넘는 수술비는 부모님이 대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아이미성형외과 김성민 원장에 따르면 취업 성형을 위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가 1~3월이다. 김 원장은 “취업 목적으로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가 전체 환자의 20~30%를 차지한다. 대학 3학년 때 미리 취업 성형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최근 성행하고 있는 취업 성형 유형은 얼굴 전체 이미지를 바꾸는 귀족 성형과 페이스(얼굴) 리모델링이 있다. 이외에 취업 운을 좋게 하는 관상 성형과 손금 성형, 목소리 성형과 치아·잇몸 성형, 귀 성형 등이 있다. 광대뼈나 턱뼈를 깎아 얼굴의 윤곽을 교정하는 안면윤곽술 대신 최근 새롭게 등장한 것이 귀족 성형과 페이스 리모델링이다. 귀족 성형은 얼굴의 중간 안면부가 꺼져있거나 입이 튀어나온 경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이미지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교정해 ‘귀티’나 보이게 하는 수술을 일컫는다. 페이스 리모델링은 미세지방이식술을 이용해 얼굴의 전체적인 비율과 입체적 볼륨을 균형 있게 잡아주는 성형 방법으로 부드럽고 세련된 얼굴 이미지를 만드는 시술이다. 김성민 원장은 “눈과 코 등 부분 수술을 주로 했던 과거에 비해 최근 취업 성형 환자들은 얼굴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좋게 하는 성형수술을 선호한다. 때문에 상·중·하 안면부의 비율을 잡아주고 얼굴 윤곽을 부드럽고 세련되게 해주는 귀족 성형이나 페이스 리모델링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입체 안면윤곽술로 불리는 페이스 리모델링은 수술 흉터가 없어 무슨 수술을 했는지 모르지만 많이 예뻐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했다.

‘관상 성형’ 전문 병원 성업 중 랭키닷컴 등 포털 랭킹 집계 사이트에 따르면 온라인 점집은 150여 개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사주팔자를 분석한 자료를 제공하고,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손금을 찍어보내면 손금까지 해석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메신저나 화상채팅을 통한 1대 1 상담이 가능하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직접 점집을 찾아가지 않고도 관상과 손금을 볼 수 있는 편리함, 운과 미신을 강하게 믿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어울리면서 관상 성형과 손금 성형이 취업 성형의 새로운 유형으로 떠올랐다. 28세 여성 K씨는 평소 미간의 내천(川)자 주름과 매부리코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도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인상이 강해 팔자가 사나워 보인다”며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회사 면접시험을 앞두고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코 수술과 주름제거 수술을 받았다. 또 다른 20대 취업 준비생 L씨는 볼품없이 낮은 코와 납작하고 좁은 이마가 불만이었다. “코가 낮아 샤프한 이미지가 아니었고, 납작한 이마는 영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걸 무시할 수 없었던 그는 수술을 선택했다. 구직자 사이에 관상과 손금이 관심을 끌자 관상 성형 전문병원임을 내세우는 성형외과도 등장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박현 성형외과는 ‘결혼 운·취업 운·재물 운 등을 좋게 하는 관상 성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병원 측에 따르면 관상 성형은 얼굴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 음양오행을 살펴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관상학에서는 흔히 얼굴빛이 맑고 깨끗해야 운이 좋다고 본다. 때문에 피부과를 찾아 얼굴을 거무튀튀하게 보이게 하는 기미나 잡티를 제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이미성형외과 김 원장은 “취업 성형은 수술한 티가 나지 않게 자연스러워 보여야 면접 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예쁜 것보다 호감을 주는 이미지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결점을 커버할 정도가 적당하고 과도한 수술은 피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손금 성형은 본인이 원하는 부위에 따라 레이저 또는 절개로 손에 상처를 내 흉터를 만드는 시술이다. 취업시기를 점칠 수 있는 운명선의 합류 지선과 직장 운을 나타내는 사업선, 사회적 성취와 성공을 나타내는 야망선(일명 노력선 또는 상상선)과 태양선이 취업 성형의 주요 포인트다. 메디컬 성형전문 사이트 미미(www. mimi.co.kr)가 네티즌 136명을 대상으로 ‘손금 성형으로 당신의 운명이 바뀐다면 손금 성형을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성형을 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70.6%를 차지했다. 손금닷컴(www.sonkum.com)을 운영하는 손금전문가 유종오씨는 “3~4년 전 세 명 중 한 명꼴로 취업과 관련한 손금 성형을 상담해 왔다. 병원에 갔더니 필요한 손금을 알아오라고 하더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레이저 시술로 손금 성형을 받은 40대 남자가 수술이 잘못돼 흉터처럼 남은 손금만 보면 짜증이 난다고 상담해온 경우가 있었다. 손금 성형이 무분별하게 유행처럼 번지고 비과학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 요즘은 손금 성형을 만류한다”고 했다. 유씨는 “손금 성형을 통해 운세를 좋게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통계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목에 보톡스 주사까지 맞아 한편 각종 취업포털에 올려진 ‘면접에 성공하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보면 “정확한 발음과 목소리를 만들라”는 충고가 빠지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에 따르면 대화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38%로 가장 높다. 이외에 표정 35%, 태도 20% 순이다. 대화 내용은 불과 7%를 차지한다. 그만큼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면접을 앞두고 목소리를 성형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30대 중반 여성 A씨는 평소 말할 때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특히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면 긴장돼 목소리가 더 떨렸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그녀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5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목소리 성형에 대해 듣고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후두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된 연축성 발성장애였다. 보톡스 주사를 맞자 목소리는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펑펑 울었다. 요즘은 새롭게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32세 남성 B씨는 말을 하면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고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때문에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면접을 볼 때마다 번번이 낙방했다. 성대에 홈이 파인 성대구증을 앓고 있던 그는 지난해 여섯 차례 시술 끝에 정상적인 목소리를 되찾았고 얼마 전 취업에 성공했다. 목소리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 김형태 박사(음성센터 원장)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취업을 앞둔 환자가 크게 늘었다. 그는 “과거에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장비가 발달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치료기술과 장비 발달로 목소리 성형 전문센터들이 많이 늘었다. 또 그동안 목소리가 약간 이상해도 별 불편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 취업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목소리의 단점을 개선시키려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는 목의 양쪽에 있는 성대가 서로 맞닿아 진동하면서 만들어진다. 진동에 따른 주파수는 사람마다 다르고 이에 따라 성격과 이미지가 좌우된다. 예를 들면 굵고 낮은 목소리는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 중저음 톤으로 억양이 일정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는 지성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반면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는 불안정감을 준다. 이처럼 목소리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인상과 호감도를 좌우하기 때문에 취업 시 면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김 박사는 “목소리가 쉬거나 거칠고, 떨리는 등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자연발생적이라 여기고 가만히 두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목소리 이상은 대부분 질환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목소리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초기에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못생긴 귀도 흉터없이 성형 아름다운미소치과 정현철 원장에 따르면 취업을 앞두고 구직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잇몸과 치아 성형이다. 웃을 때 잇몸이 많이 보이거나 치아 배열이 고르지 못한 경우 깔끔한 인상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는 취업 성형 환자는 전체 환자의 약 30%를 자치한다. 정 원장은 “앞니가 약간 벌어졌거나 치아의 배열이 고르지 못한 경우 치아 표면을 살짝 벗겨내고 얇은 세라믹을 그 위에 코팅해 접착하는 간단한 라미네이트 시술로 가지런하고 하얀 이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귀 성형을 위해 병원을 찾는 경우 당나귀 귀(일명 미키마우스)나 귓바퀴에 주름이 없는 밋밋한 귀를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경기도 분당 엘성형외과 박상현 원장에 따르면 스튜어디스나 은행원 지망생이 취업을 앞두고 귀 수술을 많이 받는다. 박 원장은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는 직종의 구직자들도 귀 성형을 많이 하는데 이들은 주로 직업상 머리를 단정하게 묶거나 귀 뒤로 넘겨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귀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으면 머리를 넘길 수가 없다. 당나귀 귀나 주름이 없는 귀는 최근 절개하지 않고 특수 실을 이용해 모양을 잡아주기 때문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시술도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시중에는 ‘여자가 결혼도 못하고, 취업도 못한 채, 서른 살을 훌쩍 넘겨, 대학원에 진학해, 기초학문을 전공하며, 외모도 별 볼일 없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도 변변치 않은’ 경우를 일컬어 ‘신(新)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회자되고 있다. 부모로부터 결혼자금까지 앞당겨 취업 성형에 뛰어드는 절박한 구직자가 적지 않지만 각종 경제·사회 지표와 취업 관련 통계는 여전히 ‘빨간불’을 깜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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