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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CEO 키우는 사관학교

농업 CEO 키우는 사관학교

충남 금산의 한 폐교 건물에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겉보기엔 허름하기 짝이 없지만 이곳은 ‘스타 농민’의 산실이다. 매년 100만 명 가까이 찾는 매화꽃 축제로 유명한 전남 광양 청매실 농원의 홍쌍리 사장, 인삼 초콜릿을 개발해 히트상품으로 만든 이종태 본정초콜릿 대표, 도라지를 한국의 대표적 농업수출상품으로 개발해 연매출 50억원을 넘긴 이영춘 장생도라지 대표가 이곳 출신이다.

1년 코스 수업료 90만원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지난 2001년 4월 설립됐다. ‘경쟁력 있는 스타농민’을 육성할 목적으로 출발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외부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 농업인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연간 수업료는 90만원이고 1년 코스다. 선발 방법도 독특하다. 입학부터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등 경쟁을 거친다. 등록금은 반드시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농업 교육을 정부가 부담해왔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에 익숙한 농업인들에게는 낯선 조건이다. 강사는 강사료를 농산물로 받는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있는 강의는 보통 새벽 1시나 돼야 끝나고 밤샘 토론도 종종 이어진다. 출석률은 거의 100%라고 한다. 지금까지 6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놀라운 것은 졸업생 400여 명 중 10명이 농림부 장관상을 받고, 150여 명이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입소문이 나면서 입학 경쟁률은 보통 4대 1을 넘는다. 현직 농림부 국장도 올해 벤처농업대학의 학생이 됐다.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도 쉽지 않다. 졸업논문은 ‘사업 계획서’로 대체한다. 사업 아이템과 실행계획을 동료와 졸업 심사자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50~60대 농업 CEO들도 이 과정을 지옥문 통과라고 부른다”는 것이 학교 측 얘기다. 졸업 심사 통과율은 60~70%다.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지난해 11월에는 100명이 일본 시즈오카현을 방문해 일본 벤처 농업인과 ‘아시아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과 농업교류회를 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농업 명품화를 목적으로 CJ홈쇼핑과 ‘1사 다촌(1社 多村)’의 자매결연을 하고 ‘1촌 1명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대학 설립을 주도한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농업경제학)는 “농업도 첨단산업이 될 수 있다”며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농업, 핵심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농업, 고객만족과 창의력, 벤처정신을 갖춘 농업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과 경영 위주 교육 전준일 교수는 “농업의 새로운 경쟁 규칙을 배우는 학교, 기존의 생산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과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을 체득해 가는 학교, 농업으로 돈을 버는 농업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학교가 한국벤처농업대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학의 커리큘럼에는 농업 생산에 관한 내용이 없다. 대신 마케팅과 경영 수업에 치중돼 있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생산물의 출구, 즉 소비에서 찾기 위해서다. 무역·회계 분야나 홍보 및 브랜드 전략, 농업 지적재산권 권리, 사업계획서 작성, 조직 리더십 등 새로운 농업 환경을 위한 경영기법 강의도 충실하다.


농업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 이런 교육 과정을 거쳐 탄생한 벤처 농업 CEO들은 올 2월부터 농업 분야에 처음 시행된 이노비즈(Inno-Biz) 프로그램을 간단히 통과해 농업 이노비즈 기업에 선정되는 등 우리 농업 경영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 나아가고 있다. 수능 시험생 머리를 좋게 해주는 쌀, 젊은 주부들의 생활 패턴에 맞게 포장된 쌀 등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고품질로 쌀 소비 문화를 바꾸고 있는 ‘한국 라이스텍(대표 윤명희), 순수한 우리 한약재를 이용해 만든 화장품과 한방 음료로 포화 상태의 시장 상황 속에서 틈새 마케팅으로 성장하고 있는 ‘하늘호수(대표 서미자)’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된장·고추장 사업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 장류 인증을 획득한 ‘가을 향기(김영환)’, 먼 여행길의 추억을 상품화한 브랜드 된장 ‘해남에 다녀왔습니다(이승희)’ 등도 벤처농업대학 출신 신(新)농업인이다. 이 밖에 경기미 명성에 어깨를 겨루며 곡물 메이저의 꿈을 다듬는 ‘PN 라이스(나준순)’, 미래의 한국 녹차 시장을 준비하는 사천녹차(이창효) 등 이 대학 출신 신농업인들이 경기도 양평부터 호남의 땅끝까지 한국 농업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소비자 감동할 장인 정신 갖춰야


산업이나 제품의 핵심적 가치는 소비 시장이나 패턴의 변화에 맞춰 생성,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농업을 간단히 식량 생산업이라고 규정하는 한 배고픔의 고통을 잊은 지 오래된 소비자를 상대로 돈을 벌 수 있는 핵심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두렵지만 보호막의 통념을 과감히 버리고 소비 흐름에 부응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농업인의 벤처 정신이 필요한 때다. 그 벤처 정신은 ‘농업의 명품화’와 연결된다. 농업의 명품화에는 조건이 있다. 소비자가 상품으로부터 생산자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남에게 입소문을 내고 싶어 할 만큼 강한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 품질과 기능, 안전은 기본이다. 하지만 ‘농업’ 특히 ‘농산물의 명품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단 소비자들은 패션제품과 달리 농산물로부터 고품격을 느끼기가 어렵다. 또한 명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소장의 기쁨’도 갖기 어렵다. 소비자들이 농산물에 대해서는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걸림돌이다. 유통·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도 농산물 명품화는 녹록지 않다. 우선 자연산 또는 신선 농산물의 경우 균질한 품질의 명품을 만들기가 어렵다 . 명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대량 유통이 아니면 잘 알릴 수 없다. 때문에 명품을 지향하는 농업인이라면 생산자와 지역을 브랜드화하고, 차별화·계층화된 유통경로를 개발해 공략해야 한다. 농업·농촌의 명품화를 위해서는 우리 농업을 둘러싸고 있는 제도의 혁신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비효율적이며 시장 기능이 작동될 수 없는 제도와 과정을 과감히 바꾸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 생산물을 정리할 수 있는 혁신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농업의 명품을 기대할 수 있다. 혁신적 실천의 중심은 역시 사람이다. 명품을 만들기 위한 관문은 농업인이 생각을 바꿀 때 통과할 수 있다. 명품화는 ‘사치의 대중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생산자가 고품질, 고가 전략을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농업인, 소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 끊임없는 열정과 인내심을 갖고 장인정신을 겸비해야만 가능하다. 전준일 (한국벤처농업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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