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가
이필재가
"저는 이미 동아를 위해 모든 걸 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아는 이대로 주저앉기엔 너무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는 기업입니다."
지난 4월1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1층 국제회의장.
파산절차가 진행 중인 동아건설의 소액주주들이 소집한 임시주총서 이사에 선임된 최원석(59) 전 동아건설 회장은 준비한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감격에 겨운듯 두 눈이 충혈돼 있었다.
"우리가 갈 길은 선례를 찾기 힘들고, 그런 만큼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회사 회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 한 몸 사리지 않고 다하겠습니다." 그에 앞서 단상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총장을 가득 메운 소액주주들이 십여 차례 '최원석'을 연호했다. 십여 명의 사진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꽃을 꽂은 그의 왼쪽 가슴 위 옷깃엔 동아건설 배지가 달려 있었다. 부속실에서 단상으로 향하던 그는 설레는듯 나를 향해 "5년 만의 외출이라…" 라는 말로 심경을 내비쳤었다(그의 복귀는 햇수로 5년 만이다).
단상 왼쪽엔 빛 바랜 동아건설 사기(社旗)가 서 있었다. 그 깃봉에 74년과 77년에 받은 대통령 단체표창 수치가 드리워져 있었다.
발언권을 얻은 앞자리의 한 소액주주가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다"며, 만장일치로 이사에 추대된 그를 치켜세웠다. 주총엔 의결권이 있는 4천1백60여만주 중 51.7%가 참여했다.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다른 세 명의 이사들은 그를 동아건설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했다. 지분도, 보수도 없는 자리지만 거의 4년 만에 동아건설 회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날 구성된 이사회의 성격을 '임시정부'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임정의 수반인 셈이다. 임정의 정통성은 채권단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이들은 동아의 소생에 회의적이다. 이들의 4분의 3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강제화의가 이루어질 수 없고, 화의가 안 되면 공사 수주는 고사하고,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떠나면 동아가 더 좋은 회사가 될 줄 알았습니다. 이 지경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 있을 때 김포매립지가 1조2천억이었습니다. 그걸 반값에 팔았어요. 아파트로 포위되어 물도 끌어올 수 없는 땅에 무조건 농사를 지으라더니 당시 우리가 설계한 방향대로 개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날 함께 이사에 선임된 이창복 전 동아건설 사장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비견되는 중국 남수북조 대수로 공사에 대해 설명하고, 중국업체와 공동 참여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공사비에 대해서는 계약이 이루어지면 선수금이 나온다고 했다.
을지로4가 우래옥으로 옮겨 소액주주들과 마주앉자 최회장은 그동안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바탕 꿈이었으면 했다"는 말도 했다. 자유로운 몸이 되어 리비아도 가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한통운쪽의 고발로 아직 재판을 받고 있다.
소액주주 대표 최준영씨는 이 자리에서 "안 되면 별도 회사 차려 최회장 모셔다가 대수로 공사 따내자"고 기염을 토했다.
이틀 전 동아건설의 파산관재인 권광중 변호사는 최회장이 주총에서 이사에 선임되더라도 이를 경영복귀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경영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처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대비된다. 두 사람 다 회사를 떠났고 재산도 거의 다 잃었지만 서 있는 자리는 다르다. 최회장은 주주들의 요청으로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김회장은 해외에서 유랑 중이다. 체포조와 언론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피자의 신세이기도 하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들어서게 했을까?
"쉽게 나왔더니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얼마나 재산이 많으면 채권단에서 나가란다고 그냥 나가느냐는 거예요.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빼돌렸다는 겁니다. 그 바람에 1년 반 동안 내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회사의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결과 뒤늦게나마 명예를 찾을 길이 열린 것일까?
장충동 그의 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마주앉았다. 주총이 열리는 시간 최회장과 함께 나가는 충신교회에서 기도 드렸다는 부인 장은영씨가 동석했다. YTN이 발빠르게 그의 대표이사 선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사흘 전 자산관리공사는 이 집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뜨락에 꽃들이 화사했다.
파산 법인 소액주주들이 소집한 주총이 처음이듯이 채권단의 동의로 과연 강제화의 1호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채권단도 좋고, 주주ㆍ직원들도 좋은 일이면 동의해주겠죠. 자기들도 이익이면 채권단도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수지 좋은 공사를 따온다면 왜 반대하겠습니까?"
리비아 대수로 3차든, 남수북조 대수로든 좋은 공사를 따낼 수 있는지 물었다. 채권단을 상대로 先정상화 後수주를 설득하기 위해선 자신감이라도 내비쳐야 할 것 같았다.
"1백% 수주할 자신이 있어도 얘기하면 안 되는 게 공사입니다. 30년 노하우지만 사인이 끝나야 공사가 떨어지는 거예요. 1백% 자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동아건설은 1호 기록이 여럿이다. 워크아웃 1호 기업이었고, 최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고병우 전 회장은 정부가 공인한 전문경영인 1호였다.
"'황제경영인'이 떠나고, 전문경영인이 왔으면 유종의 미를 거뒀어야죠. 회사를 살렸어야죠. 파산까지 가는 일은 없었어야죠."
그는 회사가 정상화되고 정말 잘 돌아가게 되면 이번엔 스스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산에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떠봤다. "강제화의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가야죠" 하는데 그만 또 눈이 붉어졌다.
그는 외환위기의 마루에 있던 98년 4월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스위스보스턴은행에서 5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오기로 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그 돈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사흘을 앞두고 이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UN의 제재하에 있던 리비아로 돈이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한 미 재무부가 틀었다는 것이었다.
장은영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런 얘기를 해도 되느냐고 말했다. 그녀에게 "더 잃을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최회장은 4월22일 장백발 베이징개발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돌아와 이르면 5월 중순 리비아로 날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을 경매한다는 얘기가 나온 뒤로 운동도, 산책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손가락질 받기가 싫어서다. 오십견인지, 한쪽 팔이 뻐근할 때가 있지만 병원에 갈 만큼 안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장은영씨가 타고난 건강체질이라고 귀띔했다. 체중을 줄여야 하는데 먹는 행위를 너무 좋아한다고 걱정했다.
그녀가 남편의 감성적인 일면에 대해 들려줬다.
"TV 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며 사람들이 무섭다고 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거죠. 저렇게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이 굴던 사람들이 안면을 바꾸는 법이라면서…."
최회장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리와인딩해가며 앉은 자리에서 세 번 봤다고 말했다.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집사람과 '뷰티풀 마인드'를 보러 가서도 혼났습니다. 라스트 신에서 사람을 울리는데 수습할 시간도 안 주고 바로 불이 들어오더라구요."
영화 속의 검프는 계속 달린다. 어려서는 바보스러움을 비웃는 아이들을 피해,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검프의 어떤 면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밀어붙인 이 '불도저'의 누선을 자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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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9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 1층 국제회의장.
파산절차가 진행 중인 동아건설의 소액주주들이 소집한 임시주총서 이사에 선임된 최원석(59) 전 동아건설 회장은 준비한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감격에 겨운듯 두 눈이 충혈돼 있었다.
"우리가 갈 길은 선례를 찾기 힘들고, 그런 만큼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회사 회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 한 몸 사리지 않고 다하겠습니다." 그에 앞서 단상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총장을 가득 메운 소액주주들이 십여 차례 '최원석'을 연호했다. 십여 명의 사진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꽃을 꽂은 그의 왼쪽 가슴 위 옷깃엔 동아건설 배지가 달려 있었다. 부속실에서 단상으로 향하던 그는 설레는듯 나를 향해 "5년 만의 외출이라…" 라는 말로 심경을 내비쳤었다(그의 복귀는 햇수로 5년 만이다).
단상 왼쪽엔 빛 바랜 동아건설 사기(社旗)가 서 있었다. 그 깃봉에 74년과 77년에 받은 대통령 단체표창 수치가 드리워져 있었다.
발언권을 얻은 앞자리의 한 소액주주가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있다"며, 만장일치로 이사에 추대된 그를 치켜세웠다. 주총엔 의결권이 있는 4천1백60여만주 중 51.7%가 참여했다.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다른 세 명의 이사들은 그를 동아건설 대표이사 회장에 선임했다. 지분도, 보수도 없는 자리지만 거의 4년 만에 동아건설 회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날 구성된 이사회의 성격을 '임시정부'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임정의 수반인 셈이다. 임정의 정통성은 채권단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 이들은 동아의 소생에 회의적이다. 이들의 4분의 3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강제화의가 이루어질 수 없고, 화의가 안 되면 공사 수주는 고사하고, 입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떠나면 동아가 더 좋은 회사가 될 줄 알았습니다. 이 지경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 있을 때 김포매립지가 1조2천억이었습니다. 그걸 반값에 팔았어요. 아파트로 포위되어 물도 끌어올 수 없는 땅에 무조건 농사를 지으라더니 당시 우리가 설계한 방향대로 개발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날 함께 이사에 선임된 이창복 전 동아건설 사장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비견되는 중국 남수북조 대수로 공사에 대해 설명하고, 중국업체와 공동 참여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공사비에 대해서는 계약이 이루어지면 선수금이 나온다고 했다.
을지로4가 우래옥으로 옮겨 소액주주들과 마주앉자 최회장은 그동안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바탕 꿈이었으면 했다"는 말도 했다. 자유로운 몸이 되어 리비아도 가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한통운쪽의 고발로 아직 재판을 받고 있다.
소액주주 대표 최준영씨는 이 자리에서 "안 되면 별도 회사 차려 최회장 모셔다가 대수로 공사 따내자"고 기염을 토했다.
이틀 전 동아건설의 파산관재인 권광중 변호사는 최회장이 주총에서 이사에 선임되더라도 이를 경영복귀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경영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처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대비된다. 두 사람 다 회사를 떠났고 재산도 거의 다 잃었지만 서 있는 자리는 다르다. 최회장은 주주들의 요청으로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김회장은 해외에서 유랑 중이다. 체포조와 언론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피자의 신세이기도 하다.
무엇이 이 두 사람을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들어서게 했을까?
"쉽게 나왔더니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얼마나 재산이 많으면 채권단에서 나가란다고 그냥 나가느냐는 거예요.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빼돌렸다는 겁니다. 그 바람에 1년 반 동안 내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회사의 회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결과 뒤늦게나마 명예를 찾을 길이 열린 것일까?
장충동 그의 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마주앉았다. 주총이 열리는 시간 최회장과 함께 나가는 충신교회에서 기도 드렸다는 부인 장은영씨가 동석했다. YTN이 발빠르게 그의 대표이사 선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사흘 전 자산관리공사는 이 집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뜨락에 꽃들이 화사했다.
파산 법인 소액주주들이 소집한 주총이 처음이듯이 채권단의 동의로 과연 강제화의 1호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채권단도 좋고, 주주ㆍ직원들도 좋은 일이면 동의해주겠죠. 자기들도 이익이면 채권단도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수지 좋은 공사를 따온다면 왜 반대하겠습니까?"
리비아 대수로 3차든, 남수북조 대수로든 좋은 공사를 따낼 수 있는지 물었다. 채권단을 상대로 先정상화 後수주를 설득하기 위해선 자신감이라도 내비쳐야 할 것 같았다.
"1백% 수주할 자신이 있어도 얘기하면 안 되는 게 공사입니다. 30년 노하우지만 사인이 끝나야 공사가 떨어지는 거예요. 1백% 자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동아건설은 1호 기록이 여럿이다. 워크아웃 1호 기업이었고, 최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고병우 전 회장은 정부가 공인한 전문경영인 1호였다.
"'황제경영인'이 떠나고, 전문경영인이 왔으면 유종의 미를 거뒀어야죠. 회사를 살렸어야죠. 파산까지 가는 일은 없었어야죠."
그는 회사가 정상화되고 정말 잘 돌아가게 되면 이번엔 스스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산에도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떠봤다. "강제화의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가야죠" 하는데 그만 또 눈이 붉어졌다.
그는 외환위기의 마루에 있던 98년 4월의 비화를 털어놓았다.
스위스보스턴은행에서 5억 달러의 차관을 들여오기로 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그 돈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사흘을 앞두고 이 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UN의 제재하에 있던 리비아로 돈이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한 미 재무부가 틀었다는 것이었다.
장은영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런 얘기를 해도 되느냐고 말했다. 그녀에게 "더 잃을 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최회장은 4월22일 장백발 베이징개발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돌아와 이르면 5월 중순 리비아로 날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을 경매한다는 얘기가 나온 뒤로 운동도, 산책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손가락질 받기가 싫어서다. 오십견인지, 한쪽 팔이 뻐근할 때가 있지만 병원에 갈 만큼 안 좋은 곳은 없다고 했다. 장은영씨가 타고난 건강체질이라고 귀띔했다. 체중을 줄여야 하는데 먹는 행위를 너무 좋아한다고 걱정했다.
그녀가 남편의 감성적인 일면에 대해 들려줬다.
"TV 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며 사람들이 무섭다고 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거죠. 저렇게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이 굴던 사람들이 안면을 바꾸는 법이라면서…."
최회장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리와인딩해가며 앉은 자리에서 세 번 봤다고 말했다.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집사람과 '뷰티풀 마인드'를 보러 가서도 혼났습니다. 라스트 신에서 사람을 울리는데 수습할 시간도 안 주고 바로 불이 들어오더라구요."
영화 속의 검프는 계속 달린다. 어려서는 바보스러움을 비웃는 아이들을 피해, 성인이 되어서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검프의 어떤 면이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밀어붙인 이 '불도저'의 누선을 자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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