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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 오른 한국군 해외 파병

도마에 오른 한국군 해외 파병

외교통상부 국제연합과와 국방부 국제정책팀이 한목소리를 내는 분야가 있다. 유엔 평화 유지활동(UN Peace Keeping Operation: PKO)에 보다 많은 한국군을 파병하자는 말이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공동으로 PKO 파병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지난 4월에는 PKO 파병 입법 관련 세미나를 열고, 대학생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도 그 필요성을 알리는 등 공론화에 착수했다. 지난 7월 당시 오영주 국제연합과장은 “파병에 반대하는 NGO와 정례적인 협의에 나서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피랍사건 이후 PKO 파병 법안을 입에 올리기가 민망할 정도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탈레반은 당장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동의·다산부대의 철수를 요구한다. 한국의 파병반대국민행동도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목적과 역할, 현지 상황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피랍 직후 실시된 사회동향연구소의 여론조사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에 찬성(36.4%)하기보다 반대(54.1%) 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공교롭게도 PKO 파병 관련 실무 책임자들이 8월 전후 정기인사에서 다른 부서로 전출됐다. 오영주 외교통상부 국제연합과장은 주 중국 대사관 참사관으로, 김정섭 국방부 국제정책팀장은 재정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당부서에서 PKO 파병 관련 실무에 정통한 두 사람이 교체되면서 PKO 관련 법안 추진에도 김이 빠졌다. PKO는 2000년 들어 유엔을 대표하는 활동이다. 전 세계 20개국 153개 미션에 유엔평화유지군(PKF) 8만3000여 명이 활동 중이며, 예산도 2006년 기준으로 52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유엔 정규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액수다. 냉전 종식 후 국가간 분쟁은 감소한 반면 인종, 종교 차이로 발생한 내전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이 자국과 큰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의 분쟁에 참여하기를 꺼리면서 유엔이 PKO를 통해 개입하는 일이 더 늘어났다. 7월은 한국의 PKO 활동사에서 뜻 깊은 달이다. PKO 파병 규모 면에서 117개 병력 공여국 중 30위권(38위·393명)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 350명이 UNIFIL(UN Interim Force in Lebanon·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에 새로 합류하면서 순위가 올랐다. 6월만 해도 48명, 78위로 오랜 기간 하위권을 맴돌았다. 합참의 해외파병과 최기환 중령은 “한국도 국제사회가 수긍할 정도로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적 기여를 해야 한다”며 반색했다. 한국은 1993년 소말리아 PKO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레바논 파병 전까지 13개 분쟁지역에 모두 1270명을 파견했다. 대부분 공병대대, 의료지원단, 정전감시단에 집중됐으며, 전투병을 파병한 사례는 동티모르 단 한 곳이다. 요 몇년간 한국이 연간 PKO활동에 운용해온 평균 병력은 40명 선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한국군은 다국적군의 일원일 뿐, 유엔 안보리나 총회 결의에 따라 파병되는 PKO 활동과는 무관하다.) 이번에 레바논 동명부대 350명이 더해지면서 역대 최대 병력을 가동하게 됐다. 정부는 아직도 양에 차지 않아 한다. 국방 당국자들은 국제회의에만 가면 따가운 시선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중국, 일본, 러시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독일 등 10여 국가와 번갈아 가며 국방정책실무회의를 연다. 올 8월 초 정기인사 전까지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국제정책팀장으로 1년 반을 일했던 김정섭 국방부 재정기획팀장은 각 국가와의 국방정책실무회의에 대부분 참석했다. 김 팀장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과 국방정책실무회의를 할 때면 PKO 파병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자기네 파병실적을 거론하면서 한국도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는 식의 압력이었다. 김열수 국방대학교 교수도 “국제회의에 가면 학자나 외교관들이 한국이 보다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경제력이나 국제사회의 위상에 비춰볼 때 세계 평화와 안정에 한국의 기여도가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PKO 활동이 왕성한 국가가 보유한 병력은 고작 10만~20만 정도로 우리의 10%밖에 안 되는 나라도 더러 있다”고 김정섭 재정기획팀장은 말했다. 사실 한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에서 PKO 병력을 운용해왔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은 PKO 파병에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가 따르지 못해 부정적 여론이 더 컸다. 국군의 해외파병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헌법이 규정해 파병 절차도 까다롭다.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군사력을 해외에 돌릴 여유가 없었던 점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 정상회담까지 여는 마당이라 남북 대치를 핑계 삼아 빠져나가기도 점점 더 힘들어진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법대)는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제사회의 대접과 존경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PKO 정책 전환을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도 PKO를 새롭게 평가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특정국의 분쟁을 방치하면 그 파장이 전 세계로 퍼져간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각국이 참여를 서로 자원한다. 김열수 국방대학원 교수는 그 원인을 이렇게 풀이했다. 과거 국익이라면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 영토적 이익, 지정학적 이익이 전부였지만, 탈냉전 이후엔 개념이 달라졌다. 이른바 인권보호,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지렛대 삼아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이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8만3000여 명의 유엔 PKO 중 5만4000여 명이 아프리카 지역에 주둔하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PKO 파병과 관련한 중국의 변화가 대단히 두드러진다. 예전엔 어느 나라든 주권국가의 내정에 개입하는 행위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PKO란 유엔 결의를 핑계로 강대국이 약소국 주권에 간섭하는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중국은 보았다. 중국 스스로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 문제와 대만과의 양안문제가 있어 개입의 대상이라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그래서 냉전체제가 무너지고도 거의 10년간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적극 개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은 7월 말 현재 1830명(11위)의 병력을 PKO에 파견했다.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프랑스(1928명·12위) 다음으로 많다. “자기네 주권이 침해 당할 가능성보다 평화활동을 통해 자기네 국익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스웨덴(177명·56위), 캐나다(125명·62위), 호주(108명·67위) 등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를 가진 부유한 국가들도 PKO를 파병했다. 김정섭 국방부 재정기획팀장은 “이들 국가는 PKO 활동을 통해 자국의 물리적 영향력보다 훨씬 더 많은 국제적 발언권을 확보한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변했다. 일본은 그간 국제사회에 돈으로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정작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자위대를 직접 보내는 방향으로 전환해 간다고 국방부 국제정책팀 임종권 중령은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PKO 파병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에 걸맞은 행동과 책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은 유엔분담금을 6년째 연체했다. 그래서 반 총장은 당선자 시절 한국 정치권에 분담금 완납을 요청하기도 했다. 외교통상부는 기획예산처의 협조를 받아 올해 안에 밀린 분담금을 내기로 했다. PKO 파병도 이런 측면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 군사, 에너지 분야에서의 기회 확대가 더 현실적인 이유다. 통상 PKO 활동이 평화구축활동에 연계되면서 분쟁 후 재건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이권 활동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병력운용과 전투력 점검 차원에서도 PKO 파병은 유용하다. PKO에 참여하면 실전과 비슷한 대비 태세를 갖추게 된다. “병력들이 짐을 꾸리고, 수송하고, 현지에 전개하는 일들은 모두 파병 경험에서 나온다”고 김정섭 국방부 재정기획팀장은 파병의 군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군에 긴장감도 불어넣는 소중한 기회다.” 한국군은 월남전 이후 한 번도 해외 실전경험을 쌓지 못했다. 국방부 임종권 중령은 군사력을 현지에 투사하고, 운용하고, 참여국과 협조하는 일 자체가 연합작전 능력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PKO 활동은 한국정부의 에너지 확보 노력과도 연결된다. 한국은 수입 에너지의 97% 이상을 해상 수송한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한국군의 활동환경을 한반도를 벗어나는 해역으로까지 넓혀볼 필요가 있다”고 김열수 교수는 주장한다. 또 이라크 파병은 비록 PKO는 아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라크가 현지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 우월적 신분을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학계는 먼저 안전문제를 들어 해외 파병에 반대한다. 평화운동단체 ‘나눔모임’의 박노해 시인은 지난 7월 동명부대의 레바논 파병에 앞서 한국전투병 파병이 비극적 사태를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2005년과 2006년 레바논 각지를 누빈 박 시인은 동명부대 주둔지 티레가 이슬람 군소 무장조직이 파고든 위험지역으로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일관되게 파병지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등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슬람 문제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도 “현지 주민들과 일체화돼 있는 실질적 자치정부인 헤즈볼라와 물리적 마찰을 빚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정부에 따졌다. 하지만 국방부 임종권 중령은 “위험하지 않다면 왜 PKO가 필요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평화지역에는 군이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도와주려고 가면 그만한 위험은 감수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 위험한 지역에 파병할수록 국제사회는 더 높게 평가한다”고 임 중령은 말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조상현 소령은 2005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유엔 그루지야 정전감시단 옵서버 자격으로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군인 신분은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는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도 무턱대고 PKO 파병을 반대하진 않는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오혜란 팀장은 “PKO 활동 전부를 반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측센터 박정은 팀장도 “PKO 자체를 부인하진 못한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 혹은 총회의 결의안이 유엔 정신을 반영하며, 분쟁 양쪽 당사자가 동의한다는 조건이라면 문제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각론을 하나하나 짚다 보면 견해가 벌어진다. 진정한 국익의 실현은 뭔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놓고 해석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예를 들어 박정은 팀장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묵인하던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헤즈볼라 무장해제 같은 이스라엘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담았다”며 유엔 결의의 편파성을 지적했다. 평통사의 오혜란 팀장도 미국이 중동에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권과 대립해서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구도에 한국도 뛰어들었다고 레바논 파병결정을 비난했다. “유엔 결의에 따른 PKO 파병도 유엔 정신에 충실한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오 팀장은 주장한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한국이 결국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편드는 모양새가 된다. 그래서 “레바논 파병으로 중동에서의 한국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최창모 건국대 교수(히브리 중동학)는 역풍을 경계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엔의 중립성도 의심받는다. 민노당 이영순 의원은 “유엔이 사실상 강대국인 미국의 지배 아래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민노당은 유엔의 평화유지라는 원래 목적과 달리 이라크 전쟁에서처럼 강대국의 패권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PKO 파병 자체를 반대한다. 참여연대 이태호 합동사무처장도 “미국의 패권적 군사행동에 이렇다 할 독자적 입장을 유엔이 내세우지 못한다”며 유엔의 중립성 약화를 걱정했다. 사실상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추인하는 추세여서 PKO부대는 미국 요청에 따른 상비 파병군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 국익을 평가할 때도 다르다. 정부는 신속한 파병이 바람직하다고 확신한다.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국제전략에 일방적으로 편승한다 해서 국익이 자동 보장되지 않는다고 본다. “사례별로 국익 여부를 우리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로 정부와 만나서 토론하고 싶다”고 오혜란 팀장은 희망했다. 참여연대 박정은 팀장은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을 방패막이로 파병을 정당화하려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나아가 굶주리는 중동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나마 먹고산다는 국가들이 국익을 논하는 게 과연 도덕적이냐는 반론도 있다. 결국 PKO 파병에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대립하는 이유는 상반된 국익관, 세계관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국제사회에서 유일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이 보는 것과 말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우리 정부가 생각하지 않느냐고 의심한다. 기원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그들이 지닌 힘을 행사하고 약자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의의 표준은 강제할 수 있는 힘에 의존한다는 말이다. 2000년 이상 지속돼온 이 현실을 한국정부가 거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말했듯이 “경제적인 성과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을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의사결정인 양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이 판을 치는 세상에 무작정 순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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