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자신의 정점에서 자화상을 그린다.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모습을 후세에 남긴다는 의미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인간 본질의 문제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화가 자신의 외양뿐만 아니라 삶 전체의 모습이 집약적으로 담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화상은 세계에 대한 자아의 투영이며, 자기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자아표현의 첨예한 형태다. 즉 자기 대결의 드라마라고 하겠다.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풍요한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렘브란트다. 현재까지 전하는 그의 자화상은 약 100여 점에 달한다. 렘브란트 자화상은 단지 분량이 많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전적 세계를 집약시켜 보여주고 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인상주의 이후 화가들은 자아표현의 한 수단으로 자화상을 즐겨 그렸다. 그중에서도 고흐는 폭발하는 듯한 내면의 욕구를 자신의 모습으로 담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서양 미술에는 자화상이 표현의 한 방법으로 발달했지만 우리나라 미술에서는 본격적 의미의 자화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호랑이 얼굴같이 보이는 이 인물은 300여 년 전 선비의 얼굴이다.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우리 미술사 최초의 자화상으로 평가되는 걸작이다. 반듯하고 선이 굵은 얼굴이다. 성격파 배우쯤 해도 괜찮을 용모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겠지. 눈썹 한 올, 수염 한 터럭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표현한 것이 놀랍다. 얼굴 피부의 느낌까지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마치 진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듯한 현실성이 느껴진다. 서양의 사실주의 미술보다 100여 년 앞서 나타난 조선 회화의 사실주의라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닌 듯싶다. 이 그림에 사실성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머리에 쓴 탕건은 과감하게도 짙은 먹으로 쓱쓱 칠해 단순하게 처리했다. 추상적인 방법이다. 눈은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강조해 놓았다. 눈동자 또한 도드라지고 있다. 작가의 정신을 담기 위한 표현 방법이다.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인물의 형상 재현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48세에 삶을 마감한 작가가 죽기 3년 전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윤두서는 정말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통해 내면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말년에 삶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내면의 성숙함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여러분도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늦가을은 그리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윤두서가 자화상을 통해 그리려던 세계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 그림은 얼굴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몸통을 그리지 않았다. 귀도 그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윤두서의 혁신적 현대감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로는 몸통과 귀를 그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의 손자이자 실학의 대가 정약용의 할아버지였던 윤두서는 조선 중후반기 대표적인 명문가의 인물이다. 시·서·화에 능했으며 현실적인 포부도 대단했던 인물이었지만 기꺼이 선비의 삶을 택했고, 화가로서 조선 회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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