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빚 이자만 한 달 200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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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오른쪽) 사장과 양계업 회원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
“허, 참. 아들이 농장을 이어받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내는 말리는데…. 나는 이도 저도 할 수 없어 그냥 입만 다물고 있지, 뭐.” 지난 10일 기자가 경기도 화성시 장암면에 위치한 영남농장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 모인 몇몇 농부가 푸념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한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를 제주도로 옮기는 것보다 힘든 게 뭔 줄 압니까? 이런 농장을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옥수수, 밀, 콩 같은 곡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축산농가들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생산원가에서 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양계농가는 직격탄을 맞은 듯하다. 이곳 화성시에서 28년 동안 닭을 길러 온 최길영(60) 영남농장 사장은 “이제까지 닭을 키워왔지만 사료값이 이렇게 오른 적은 처음”이라며 담배 한 개비를 빼 물었다. 최 사장은 다방커피 한 잔 값이 300원일 때부터 닭을 키웠다(지금 커피 한 잔 가격은 3000원). 그가 키우는 닭은 계란을 낳는 산란계(産卵鷄)가 아닌 닭고기를 파는 육계(肉鷄)다. 그에 따르면 이들 육계에 먹이는 사료값은 1년 만에 40% 넘게 올랐다. ‘가격 상승’이 아니라 ‘폭등’ 수준이다. 사료협회의 공식적인 결과인 35%보다 높은 수치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폭등 여파가 농민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한 해 사이 왜 이렇게 천정부지로 뛴 것일까? 국제 곡물가격과 유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국제 농산물 가격지수인 S&P 골드먼삭스 상품지수는 2007년 한 해 동안 30% 증가했고, 유가는 올해 초 한때지만 장중 100달러를 돌파했을 만큼 상승 일변도였다. 유가가 최 사장의 고민을 증폭시키는 것은 곡물을 싣고 오는 배 운임, 양계장 난방비가 생산원가를 높이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생산원가도 못 건져 생산원가가 오르면 소비자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비싸진 닭은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이 와중에 해외로부터의 닭 수입량은 계속 늘고 있어 국내 생산자끼리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최 사장 같은 양계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시장의 수급 원리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육계를 기르는 양계업자 중 85% 이상은 하림, 동우 같은 육가공업체(계열업체)와 계약을 맺고 닭을 생산한다. 업체에서 사료, 병아리, 사육비를 농가에 주면 농가가 닭을 길러내는 시스템이다. 최 사장도 양계장 규모가 커지자 효과적인 유통 및 판매를 위해 2년 전 한 업체의 계열농가가 됐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육비가 자꾸 줄더라고….” 국내 양계장 현황을 차분하게 설명하던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입에 문 담배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재가 떨어졌다. “지금 닭 한 마리당 180원의 사육비를 받아요. 하지만 이 돈으로는 오르는 생산원가를 채우기에 어림없어.” 그는 낙담인지 분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면서 아직 다 타 들어가지 않은 담배를 버리듯이 비벼 껐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자 계열업체들의 마진이 준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계열업체들은 자신의 마진을 껴안는 대신 농민에게 ‘일부’를 전가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닭 1kg(닭 한 마리는 보통 1.4kg)당 생산원가는 2006년 1000원에서 2007년 13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업체로부터 받는 사육비는 지난 한 해 동안 5~10% 정도 줄었다. 4000평의 땅에 5만 마리의 닭을 기르고 있는 그에게 5%, 10%는 큰 액수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사료값이 오르다 보니 업체에서 주는 사료의 질이 낮아지더라고. 사실 사육비가 준 것보다 이게 더 힘들어요. 좋은 사료를 쓰지 않으면 면역체계가 약해져 질병이 잘 생기잖아. 그렇지 않아도 조류인플루엔자다 뭐다 해서 난리인데 (건강한) 닭을 길러내기가 점점 힘들어져요.” 최 사장은 ‘질병’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리는지 “병든 닭은 아예 도계장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75도 이상으로 끓여 먹으면 안전하다고 그러는데, 우리에게 그건 말이 안 돼”라고 말했다. “병든 닭은 아예 시장에 나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다시 담배를 빼 물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보려는 것이다. 계열업체들은 농가와 계약을 할 때 닭을 기를 때 들어가는 사료량을 정해준다. 이것을 ‘사료 효율’이라고 하는데 이 양보다 사료를 더 많이 쓰면 그 양은 농민이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함부로 사료를 더 쓸 수도 없다. 그런데 업체들이 경영난을 겪게 되자 이 사료 효율을 자꾸 낮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덜 먹이라는 것이다. “5년 전인가 닭 1kg당 사료 2.1kg이었는데 지금 1.8kg이거든. 나름대로 농민들 사정 생각해서 정한 양이겠지만 자꾸 낮추면 어렵지, 어려워.” 사료값은 오르는데 사료 질은 떨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사료를 그냥 보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요. 병아리가 닭이 돼 봐야 아는 건데, 영양분이 흡수 안 되면 다 그냥 똥으로 나와. 비싼 사료 들여서 똥 만드는 기계 만드는 거여.”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아이오와주에서 화성시 장안면까지미국 아이오와주 옥수수값 상승 / 국제유가(운임) 상승 ▼ 사료비 상승 ▼ 생산원가 상승 ▼ 닭고기 값 상승 (소비자 외면→계열업체 경영난) ▼ 사육지원비 감소 ▼ 양계농민 적자 화성시 |
사료의 질이 나쁘면 닭의 건강이 나빠지고 그렇게 되면 영양제 값, 주사 값 등이 추가적으로 들어간다. 물론 이 비용은 모두 농민들 몫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소득은 거의 적자다. 인건비가 무서워 사람도 쓰지 않고 혼자서 4000평이 넘는 넓은 양계장을 관리하는데도 이렇다. “예전에는 사람을 쓰면 하루에 3만~4만원 줬는데… , 요즘엔 7만원이잖아. 허….” 그래도 최 사장은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일에 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양계장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보며 하소연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선진 방식을 도입해 전문성을 길러 좀 더 나은 농장을 만들어보겠다는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지 않은 벌이를 쪼개 시설을 자동화하고 있다. “이 닭 키워서 아이 셋 대학 다 보냈어요. 아들은 해병대에 가 있고, 둘째 딸은 이번에 임용고시 봤는데 떨어졌다대. 그게 다섯 번은 봐야된다면서요? 다 빚내서 하는 거지. (농장 하느라 진 빚에 붙는) 이자가 한 달에 200만원이야.” 요즘 그는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연구하는 것은 적은 사료로 닭을 건강하게 기르는 법이다. “이제 마음을 비웠어요. 곡물값은 계속 오를 것 아니오. 농민들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 노력은 하겠지만 그는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직불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직불제는 주로 논농업자에게 지원하는 제도인데, 임대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땅 규모에 따라 지원비를 주는 것이다. 최 사장은 “개인농장이 아닌 계열농장을 하는 양계업자들이 업체와 관계 없이 지원비를 받으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다시 입에 물었다. 지구 저 건너편에 있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자라는 옥수수가 그의 담배량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취재가 끝날 즈음 최 사장의 집으로 몇몇 농민이 들어섰다. “면담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좀 좋은 사료가 오려나?” “오늘 오르고 또 오른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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