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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 법안에 서명해주는 관행을

차기정부 법안에 서명해주는 관행을

▶교육정책 실패 부서로 지목된 교육부 역대 장관의 사진.


차기정부 법안에 서명해주는 관행을

강 원 택 숭실대 교수 인수위가 잘한 일은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준 일이다. 못한 일은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정책을 충분한 검토없이 쏟아낸다는 느낌을 줬다는 점이다. 정책 대부분이 여론수렴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인수를 위한 기구인지, 새 정부 정책을 입안하는 정책형성기구인지 혼란스럽다.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세세한 대목까지 과단성 있게 결론을 내리는 일은 인수위의 역할이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인수위원들의 의욕과잉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당선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원인이다. 현정부가 국민으로부터 하도 많은 욕을 먹자 우리는 다르다고 과시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된다. 또 새 정부 공직 인선과 4월 총선 공천을 의식하다 보니 제대로 정리, 토론되지도 않은 정책이 마구 내던져진 측면도 있다. 인수위는 지금 집권 초기로 여기고 통치를 하려 든다. 스스로의 역할을 너무 크게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집권을 준비하는 단계일 뿐 인수위는 아직 권력을 쥐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직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존재하는데도 마치 없는 양 인수위가 행동하니 자극을 받게 된다.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못한다는 주장도 일면 이해되지만 그래도 이 시점은 그렇게 할 때가 아니다. 노 대통령도 새 정부가 원만하게 출발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철학에 맞지 않는 법률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이는 아주 미묘한 문제다. 어떻게 보면 다음에 올 많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정치관행이나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즉 정부조직개편과 같은 새 정부 출범 후에 적용될 사안을 담은 법률은 현직 대통령이 서명을 해주고 떠나는 관행이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도 대승적 차원에서 법안에 서명해줘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정철학과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든다. 정부조직법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면 된다.
한자리할 욕심에 과욕 부려선 안 돼

임 혁 백 고려대 교수

▶인수위에서 메모 중인 외교통상부 간부들.

인수위는 기본적으로 당선인의 철학과 국정운영방침을 토대로 차기 정부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구다. 또 대선 공약 중 걸러낼 사안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지금 인수위는 너무 넓고 구체적으로 관여한다. 그러다 보니 얼토당토 않은 정책이 나온다. 예컨데 영어교사 2만3000명 채용 등 세세한 수치까지 인수위가 정할 이유가 없다. 그런 내용은 교육부와 국회의 몫이다. 인수위가 아무리 자세한 정책을 수립해도 차기 정부의 새 장관이 들어와서 바꾸면 그만이다. 인수위 안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면 장관이 할 일이 없다. 나도 인수위를 해봤지만 인수위는 축소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 인수위는 정부가 아니라 차기정부의 징검다리다. 지금 인수위는 과욕을 부린다. 왜냐하면 인수위 관계자 중 일부가 마음이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한자리 하겠다는 생각이 사람을 무리하게 만든다. 영어 몰입 교육 같은 설익은 정책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분란을 일으키고 정권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비록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국어마저 영어로 가르치겠다는데 말이 안 된다. 보수정권이라면 나라의 근본을 더 잘 성찰해야 한다. 국어를 지키려고 선조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데 그런 얘기가 나오는가. 매국노적인 발언으로 용납하지 못하겠다. 정부조직개편안을 보면 통일부를 없앤다고 한다. 당선인이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므로 부서 통폐합은 있을 법하다. 하지만 통일부는 국정의 연속성을 생각해 없애서는 곤란하다. 통일부는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었다. 남북관계는 민족적 차원에서 봐야 하는데 지금은 당파적 차원에서 논의된다. 지난 10년간 대북화해정책은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기본 틀은 계승하면서 엄격한 상호주의 적용 등 그들의 철학을 구현하길 바란다. 통일부를 없애는 정부라면 남북관계는 앞으로 진전이 없을뿐더러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될 여지도 많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고 모두 다 억지로 다 바꾸려고 해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혁명이다. 인수위는 항상 열린 자세로 국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참고로 5년 전 16대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써붙이고 일했다. 그래도 나중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안 기울여 이 지경에 왔다. 지금 인수위가 유의할 대목이다.
완장 찬 혁명군’ 소리 듣지 않아야

김 근 식 경남대 교수 의욕이 앞서 보인다. 10년 만에 정권교체 하다 보니 정권교체의 정치적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혼선도 빚는다. 차기 정부가 내놓을 정책의 기조를 서둘러 발표한다면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는 일이다. 설령 정책을 제시한다 해도 협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은 그런 과정을 누락한 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시사한 정부조직법은 단 한차례의 공청회도 열지 않았다. 반대 내지는 우려하는 의견을 들어보는 기회가 없다. 오래 준비했다지만 여론을 수렴하지 않아 ‘완장 찬 혁명군’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해도 여론 수렴은 기본이다. 사실 이명박 당선인이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정동영 후보가 너무 표를 못 받은 측면이 강하다. 2002년 대선보다 투표율이 낮고, 당선인의 득표율은 노무현 당선인보다 낮다. 따라서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이 더 많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내가 전권을 위임 받았다는 식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까지 포함해서 전체를 대표하는 국정운영을 하려면 의견수렴이 필수적이다. 일부에서는 인수위가 총선을 의식해 정책을 남발한다는 말도 한다. 인수위 역할은 법적으로 어떤 정책이 준비되는지 현안을 파악하고, 과제가 뭔가를 알아보는 데서 끝난다. 총선을 겨냥한다면 그 자체로 비판 받아야 한다. 정권 인수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라 많이 바꾸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내정 분야는 야당 시절의 기조를 따라도 되지만 외교, 안보, 통일정책은 초당적인 과제다. 한반도 전체의 국가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외교·안보분야는 지나친 단절보다는 연속성을 보여야 좋다. 통일부 폐지나 인수위의 대북 정책은 단절에 집착하는 듯하다. 지난 10년간 국민의 뇌리에 가장 상징적으로 남은 성과라면 남북 관계 개선이 꼽힌다. 인수위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한다. 그래서 국민의 머리 속에 가시적으로 남은 남북관계를 부정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외교와 남북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법이고, 객관적인 조건과 환경을 잘 활용해야 한다. 정치적 잣대에 따라 마음대로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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