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가슴에 ‘영혼’ 불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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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정부조직개편 공청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행자위 복도에서 정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회의 내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
기업 위기관리 분야에서 쌓은 노하우를 정부기관에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필자는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잠깐만 생각해도 불합리한 시스템을 개선할 해답이 있는데 아무리 설득해도 그리 가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무원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문제없이 하는 게 중요하다.” 몇 년 전 기존 시스템이나 업무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담당 공무원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최근 어느 공무원의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자조 섞인 변명(?)도 이런 복지부동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에서 이런 인식을 가진 직원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해도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에 성장이 없다는 것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퇴보다. ‘문제없이’ 경영을 했다 해도 경쟁사들이 치고 나오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기업 간 전쟁이다. 실패는 용서받을지라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그런 전장이다. 적어도 경쟁 상대가 없는 정부가 굳이 기업처럼 사활을 걸고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정부는 기업처럼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라 예산을 쓰는 조직이므로 기업처럼 경영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어떻게 잘 쓰느냐도 버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게다가 정부는 가계와 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정된 자원(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제의 명암이 엇갈릴 수 있는 것이다. 예산 집행도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기업형 정부와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한 공무원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수년간 공무원 교육을 진행하면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도대체 공무원·관료 조직에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하나다. 혁신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얘기다. 어부도 날씨를 분석한다 기업은 365일, 24시간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자본, 상품, 조직, 사람 등 어느 하나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분야가 없다. 지속적으로 변화에 대응해 나가는 것이 체질화돼 있다. CEO 출신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 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훨씬 더 기업형으로 운영될 것이 점쳐진다. 그러면 과연 기업형으로 정부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과거 적잖은 정부조직 개편과 혁신 전략을 통해 시스템 부분은 기업에 못지 않게 많이 개선됐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른 편이다. 동사무소의 친절도와 지역 세무서의 업무 처리는 놀라울 만큼 개선됐다. 이제는 인식 변화가 과제다. 정부 위주, 공무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정책의 시작부터 고객 중심, 국민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언젠가 한 공무원이 작성한 ‘국민 인식 개선 대책’이란 전략을 검토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고객(국민)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제목은 인식 개선인데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계획만 있지, 국민의 인식에 대한 분석이 없었던 것이다. 고객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는가. 기업에서 ‘고객은 왕’이니 ‘고객 감동’이니 하는 구호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구호만 있고 고객 분석이 없을 리 만무하다. 마케팅 부서 예산의 많은 부분이 소비자 분석에 투입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기업형 정부로 가는 Key ▶ 공무원의 혁신 마인드를 길러라 ▶ 국민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하라 ▶ 기업처럼 전략적 사고를 하라 ▶ 뚜렷한 목표 담은 매뉴얼을 구축하라 ▶ 지속 가능한 경영 목표를 세워라 |
‘국민 고객’의 인식을 혁신하려면 정부가 기업처럼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 전략적이라 함은 과학적 분석과 체계적 기획, 계획적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의 기획안을 보면 실행안만 있는 경우가 많다. 고기 잡는 어부도 날씨를 분석하고, 고기떼의 이동을 탐지하며 내일의 전략을 짜는데 말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목표란 일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다. 목표를 보다 구체화하는 조직은 그만큼 상황 분석에 철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업무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업에선 고객상담 직원의 책상 앞에도 매뉴얼이 있고, 사장의 책상에도 매뉴얼이 있다. 이번 숭례문 화재 사고 때 방재 매뉴얼이 없었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왜 혁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성 확보 문제다. 혁신의 결과와 공무원 자신의 비전이 합치되지 않으면 결국 당위성이 사라져 버린다. 이를 위해선 보상 체계가 적절히 이뤄져야 한다. 교육공무원 보상제도 등 과거에도 수없이 봐왔지만 공무원 보상제도가 나올 때마다 합의가 안 돼 의견이 분열되기 일쑤였다. 기업에선 이제 보상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연봉도 다르고, 성과급도 다르고, 승진도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나지 않는가. 나이 적은 팀장을 모시는 곳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공무원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아마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것이다. 이런 인식을 빨리 바꿔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조율하는 것도 핵심 과제다. 기업경영에서 최근 화두는 ‘관계 관리’다.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공중, 특히 이해관계가 밀접한 공중과의 관계 설정을 잘해서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아직 우리 정부는 너무 서투르다. 이해관계자가 누군지,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해관계 조정 능력 키워야 예컨대 쓰레기처리장 하나 짓는 데도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는가. 지역 주민, 환경단체, 교수 같은 전문가, 지자체, 건설업체, 하청업체 등 이들을 모두 차별적으로 설득해 문제가 없어야 그 정책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방폐장 처리시설, 미군기지 이전, 행정수도 이전, 납골당 건립, 신도시 개발, 도로 건설 등도 대부분의 정책에 이런 문제가 관련돼 있다. 기업은 최근 ‘지속 가능한 경영’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윤리적, 환경친화적, 사회공헌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지속 가능성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가. 윤리 문제만 해도 뇌물 받는 공무원에게도 선거사범처럼 뇌물액의 50배를 배상토록 하는 법만 만들면 뇌물은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는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결국 윤리적 사고를 기본으로 혁신 마인드로 무장하면 경쟁력 있는 정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검찰청의 한 검사와 일하면서 감명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친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빈틈없는 업무 처리, 연일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그것이 공무원으로서의 가야 할 길이라는 얘기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들이 “나 공무원이오” 소리치며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새 정부가 할 일이 많겠다. 기업형 국가니 하는 말도 사실 그 중심에는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좋지만 국민이 공무원에게 ‘오피셜 프렌들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새 정부의 큰 몫이리라. 박재훈 컨설턴트는 SK그룹 홍보실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대 객원연구원, 외국계 홍보회사 코콤포터노밸리 대표를 지냈다. 현재 기업과 정부부처 고위간부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위기관리 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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