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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알아야 10년 후도 생존”

“디자인 알아야 10년 후도 생존”

▶후쿠다 다미오 교수가 3월 20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창간 24주년을 기념해 강연을 하고 있다.

왜 지금 또 디자인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24주년 기념행사로 디자인 경영 전문가 후쿠다 다미오 교수의 특별강연을 준비하면서 이 질문을 몇 번이고 거듭했다. 1996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한 이후 한국 기업의 디자인 수준은 급격히 성장했다. 요즘에는 기업을 넘어서 도시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디자인이 조명되고 있다. 이날 강연에 축사를 한 오세훈 서울시장도 ‘디자인 서울’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상황이 이 정도니 기업경쟁력으로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24년 특별 강연에서 후쿠다 다미오 교수는 “한국 기업은 이제 세계 무대에 데뷔했을 뿐”이라며 “지금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전쟁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10년 후에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시 한 번 디자인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얘기였다. 후쿠다 다미오 교수가 누구인가.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96년 디자인 혁명을 이끈 주역으로, 일반에겐 ‘후쿠다 보고서’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리고 후쿠다 보고서는 삼성 제품의 디자인을 세세히 비판해 삼성 개혁의 밑바탕이 된 보고서다. 후쿠다 교수는 이번 강연에서 ‘신 후쿠다 보고서-한국 기업 디자인 경쟁력을 말한다’는 주제를 선정했다. 다시 한 번 ‘디자인 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 혁신이란 경영 전(全) 단계에서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제품을 넘어 고객의 경험 전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것을 “경험 디자인, 감성가치 디자인”이라고 표현했다. 이코노미스트 창간 24주년을 맞아 열린 후쿠다 교수의 특강은 경제계·학계·관계 인사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월 20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후쿠다 다미오 교수의 강연 요지다. 누구나 기업경쟁력을 말한다. 기업경쟁력의 핵심요소는 바로 디자인이다. 그러나 많은 최고 경영진이 디자인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디자인이 ‘모양과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CEO는 디자인 컨설팅을 받으면서 이렇게 묻기도 한다. “안이 3개가 있다. A,B,C 중 무엇을 신제품 모델로 채택해야 할까? 아니 차라리 섞어버릴까?” 이것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나 통했던 생각이다. 그때는 만들기만 하면 팔렸다. 그러나 하드웨어만 생각하는 디자인은 경영자원이 될 수 없다. 제품의 ‘소프트웨어’를 생각할 때 디자인은 경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경영자는 디자인에 브랜드 마케팅 개념을, 나아가 기업의 비전을 담을 수 있다. 나는 1989년 디자인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그리고 삼성의 고문이 됐다. 93년 6월에 ‘후쿠다 보고서’로 알려진, 5년 동안 연구한 나의 보고서가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전달됐다. 6월 3일로 기억한다. 나는 도쿄의 한 호텔방에서 이 회장을 만나 새벽 3시 정도까지 디자인에 관해 토론했다. 이후 10년간 삼성 디자인은 놀랍도록 발전했다. 삼성의 디자인센터를 보자. 서울, LA, 밀라노, 상하이 등 세계 곳곳에 있으며 이곳에서는 현지 디자이너들이 일하고 있다. 정말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공부한 10년의 결과를 오늘 우리가 보고 있다. 이 회장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 통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 대부분은 이제 세계 무대에 데뷔한 것뿐이다. 예전에는 뒤떨어진 것을 따라잡는 것이 목표였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디자인 수준과 비등한 수준에 올랐다. 따라잡을 1등이 없는 지금, 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기업만이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진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미 해외 유수기업들은 이러한 노력을 20년 전부터 했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렉서스가 그 사례다. 도요타는 렉서스를 이미 83년 계획했다. 도요타가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는 사이 닛산은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카를로스 곤이라는 프랑스 사장이 와서 재건하기 전까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가.

▶오세훈 서울시장, 윤영달 해태제과 회장,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왼쪽부터)이 강연을 듣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 방식에서 배워라
그렇다면 도요타가 20년 전부터 공부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경험가치다. 경험가치는 나 같은 경우엔 워크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워크맨이 신기술을 도입한 획기적인 제품은 아니다. 내가 처음 워크맨을 샀을 때, 줄을 서서 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당시 유행하던 카펜터스의 음악을 들었다. 지하철에서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첫 워크맨을 산 지 30여 년이 됐지만 나는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험가치이며 감성가치다. 도요타 디자이너들은 ‘감성가치’나 ‘경험가치’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렉서스 개발스토리를 들어보면 경험가치가 강조돼 있다. 고급차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상류층의 문화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도요타는 디자이너를 미국의 고급 리조트에 보내 일 없이 놀다 오는 생활체험을 하게 했다. 감성가치를 제품에 담기 위해 전통공예나 꽃꽂이 등 당장 제품과는 관계없는 활동도 디자이너에게 하게 했다. 이런 경험과 감성을 렉서스에 녹이는 것, 이것이 도요타의 목적이었다. 앞으로 한국 기업은 한국보다 먼저 디자인 경영을 도입한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면 최고경영자가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경영의 구체적인 방법이 있을까? 조직을 바꿔보자. 현재 조직에선 내년 목표는 세울 수 있어도 5년 후 경영목표는 세우기 어렵다. 도요타와 닛산의 사례에서 보듯이 먼저 준비한 사람이 승리한다. 최고경영자는 내년 모델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5년 후 브랜드 컨셉트를 잡아야 하고 5년 후 상품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전략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네트워크’ 조직이다. 지금까지는 기능별 조직이었다. 기능별 조직에서는 디자인과 기술을 연결해 줄 고리가 없다. 소니도 지금까지 기능별 조직이다. 그렇다 보니 지금 삼성이나 LG에 추격을 당했다. 이에 반해 네트워크 조직이란 마켓의 흐름을 읽고 회사의 조직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기능별 조직은 이미 갖추어진 틀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압박해야 하는 형태라면 네트워크 조직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컨셉트에 맞춰 조직 형태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프로젝트’형 조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할리우드다. 조지 루카스는 영화 기획을 할 때 인재를 영화에 맞춰 모은다. 최고의 배우, 최고의 음악전문가 등 한 영화를 위한 인재를 뽑는다. 이렇게 되면 짜인 조직이 아닌 네트워크 조직으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조직이 움직이게 된다. 1975년 영화 ‘스타워즈’도 그렇게 만들었다. 할리우드에서 30년 전에 한 일을 한국 기업이 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성공 비결
경험가치와 감성가치를 네트워크 조직 내에서 실현시킨 예는 또 있다.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예를 소개하고 싶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일본의 홋카이도에 있다. 이곳은 한때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시장도 작았다. 도쿄 우에노 동물원의 경우에는 1200만명이지만 홋카이도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경우는 36만 명에 그칠 정도로 작다. 지방의 작은 동물원은 희귀한 동물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도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희귀동물이 없다. 동물 수도 725점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동물원이 현재 일본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떻게 일본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경험가치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개혁을 준비하며 디자인 경영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앞서 말했듯 디자인 경영을 완성하는 네트워크 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선 시장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고객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동물과 함께 경험하는 것을 원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외관을 크게 바꾼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즉 전시방법을 조금만 바꿨다. 동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전시하고 관객이 함께 경험하게끔 한 것이다.


후쿠다 다미오가 남긴 말 ■ 21세기 경쟁력의 키워드는 경험가치다. ■ 디자인은 내년 출시 모델의 모양과 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5년 후 브랜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 디자이너를 활용하는 것은 결국 경영자다. ■ 훌륭한 경영자는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긴다. ■ 5년 앞을 내다보지 않았다면 이미 늦었다. ■ 도요타 렉서스는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렉서스는 83년부터 계획됐다. ■ 지금까지의 조직론은 버리고 마켓에서 원하는 조직을 만들어라. ■ 김치를 먹는 디자이너가 파스타를 먹고 있는 국가의 냉장고를 디자인할 수 없다. ■ 디자인 인력을 뽑을 때 어떤 회사도 단순히 그림 잘 그리는 학생을 뽑지 않는다. ■ 과학과 예술 그 가운데 있는 것이 디자인이다. ■ 디자이너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주요 참석자 명단(가나다 순)

경제계 야마자키 신야 고세코리아코스메틱스 사장, 강문석 LG텔레콤 부사장, 곽태선 세이에셋코리아자산운용 대표이사,권순철 KT 본부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전무, 김기범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김명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행장, 김문걸 전자랜드 부사장, 김미성 W 인사이트 부사장, 김양 현대성우리조트 부사장, 김주수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사장, 김중겸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김재실 성신양회주식회사 사장, 김흥수 STOC 대표이사, 민복기 EXR코리아 대표, 박병재 영창악기 부회장, 박오규 삼성토탈 부사장,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 박종수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 박흥석 대명리조트 대표이사, 서강호 한솔CSN 대표이사, 석강 신세계 대표이사, 세이지 바바 일본대사관 경제참사관, 송주영 KTFT 사장, 신영도 크루즈얼라이언스 대표, 신용호 금강제화 대표이사, 신희호 아모제 사장, 안성식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대표이사, 양재열 한국전기안전공사 대표이사, 양정무 랭스필드 회장, 염용운 동양매직 대표이사, 오치훈 대한제강 부사장, 원대연 SADI 학장, 원효성 국민은행 부행장, 윤병석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윤수영 키움증권 전무, 윤영달 해태제과 회장,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이사, 이영두 그린화재해상보험 회장, 이재호 신세계건설 대표이사, 이종서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이해선 아모레퍼시픽 부사장, 이호규 KAA 대표이사,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이사, 전용준 태진인터내셔날 대표이사, 정준명 LEE인터내셔널 고문, 조웅기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주장건 세종그룹 회장, 지동훈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부소장, 채수삼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회장, 최병인 노틸러스효성 대표이사,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대표이사, 황선 SWAROVSKI 대표이사, 황영기 법무법인 세종 고문

학계·연구소·기타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고석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 김영철 건국대학교 법과대학장, 구용훈 롯데경제연구소 소장, 오세훈 서울특별시시장, 이광철 홍익대학교경영대학원장, 이기수 고려대학교 총장, 이상정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장, 이원모 KMI지식경영원 원장, 장재옥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장, 조동성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 박원경 한국저작권연구소 소장, 최진만 한국경영시스템연구원 원장, 하경효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장, 호문혁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홍복기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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