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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大亂 ‘새는 곳 틀어막아라’

원자재 大亂 ‘새는 곳 틀어막아라’

원자재 대란(大亂)이다. 가만히 앉아서 손해를 보는 기업들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기름 값에 철강, 식량까지 모든 원자재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짠물 경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짜는 방법은 스스로 고사(枯死)하는 후진적 방법이다. 새는 곳을 틀어막으면서 공격적 혁신을 꾀해야 한다. 안팎으로 고생이 심한 기업들. 어떻게 위기를 돌파하고 있는가. 이들 기업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
‘5달러를 잡아라.’ 지난해 매출 63조원을 기록한 거대 기업 삼성전자. 그런 회사가 휴대전화 부문 5달러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저가폰의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다. 현재 삼성의 저가 컬러 휴대전화는 40달러대 초반 원가를 달성한 수준이다. 매출 63조원의 기업이 5000원 때문에 신제품 출시를 미루고 있다. ‘0.01을 잡아라.’ 한국의 ‘도요타’로 불리는 삼원정공은 1990년대 시작한 ‘사력 0.01 운동’을 올 들어 전사적으로 재개했다. 사원들의 시간을 초 단위로 관리하는 이 회사는 0.1초, 1원, 1%가 결국 회사의 운명을 가른다고 믿고 있다. “원가절감은 끝이 없다”는 게 이 회사 양용식 사장의 지론이다. 이 회사는 한물간 스프링 사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들의 원가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원재료비 부담은 오르고, 소비자의 지갑은 얇아지고, 나라에서는 물가대책을 내놓으면서 원가절감의 중요성이 새삼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대기업 120개와 중소기업 380개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99%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기업들은 이제 어떻게 고비용 구조를 감당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 날 판이다. 과거의 원가상승이 갑작스러운 에너지가격 상승, 경기의 급속한 후퇴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었다면 이번 원가상승은 장기적인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구조적인 것이다. 반면 소비 둔화와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경기 둔화 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은 커지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가 부담을 기업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의 원가절감 노력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특히 유통과 제조가 분리된 업체들은 거대해진 유통업체의 견제 때문에 가격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한다.


■ 도요타의 일과 헛일 구분

고객이 있는 것 돈이 되는 것 제조·판매

헛일 고객이 없는 것 돈이 안 되는 것 재고·관리·생산계획
국내 제과업체의 영업부장은 “원가상승 요인으로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지만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버텨 어쩔 수 없이 기존 가격으로 판다”고 하소연했다. 이 때문에 단순히 판매 관리비를 줄이는 이른바 ‘마른 수건 짜기식’ 원가절감으로는 한계가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저비용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지속적인 원가절감이 가능한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
원가절감의 메카 LG전자
비단 삼성전자나 삼원정공이 아니라도 세계적 기업 중에 원가에 둔감한 기업은 하나도 없다. 거대 기업일수록 원가에 민감하다. 1원의 상승이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도요타다.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창시자인 고(故)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 부사장은 생산방식 혁신으로 도요타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 혁신은 낭비 제거다. 세계 최고의 제조기업인 도요타의 해법은 간단하다.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면 팔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헛일’을 하지 말고 ‘일’을 하라는 뜻이다.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낭비의 제거, 원가절감뿐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이 간단한, 그리고 강력한 방식을 외면한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창한 구호나 전략을 갖다 붙인다. 부가가치를 높이고, 브랜드를 강화하고, 마케팅 활동을 혁신해야 한다며 복잡한 슬라이드를 통해 설명한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는 요즘 한국 기업들도 다시 사무실과 공장을 돌아봐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이 원가의 압박을 받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주범이긴 하지만 소비자들은 기름 값, 라면 값 오르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외면 받기 싫다면 이제 기업들은 지금 가격을 유지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LG전자 창원공장은 원가절감의 메카로 얘기할 만하다. 1990년 200억원 넘게 적자가 났던 LG의 전자레인지는 지난해 수백억원 흑자가 났다. 시장이 좋아졌다고? 1990년 당시 전자레인지의 단가는 110달러 수준이었다. 지금은 27달러에 불과하다. 그동안 원재료비 상승, 인건비 상승까지 포함하면 판매가는 4분의 1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10분의 1로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LG전자는 지금도 전자레인지를 통해 이익을 내고 있다. 불필요한 공정을 제거하고, 작업자들의 동작을 개선한 결과 라인은 짧아졌고, 생산성은 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한 영창악기는 지난해 7월부터 실시한 생산성 향상 프로그램에 따라 40% 이상 원가가 절감됐다. 공장 면적은 기존의 절반(6897㎡→3593㎡)으로 줄었고, 피아노 한 대를 생산하는 시간은 50%(45일→30일) 줄었다. 생산직 인원 역시 절반 이하(223명→109명)로 줄었지만 매출액(515억원→588억원)은 지난해 오히려 늘어났다.
영창악기 박병재 부회장은 “혼재된 라인, 복잡한 공정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가절감은 투자 없이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경영방법이다. LG전자나 영창악기를 보면 원가절감은 공격적으로 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5%, 10% 절감이 아니라 30%, 50% 절감도 가능하다. 최근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과업체의 노력은 차라리 눈물겹다. 롯데제과는 본사 및 전국 영업소에 있는 화장실 용변기 약 3000개 앞에 원가절감 십계명 스티커를 붙였다. 여기에는 주로 차량 연료비를 절감하는 내용들이 있는데 ‘사전계획에 의한 운행 및 코스 선택’ 등 일견 과학적인 것도 있지만 경제속도 유지, 차량 관성 주행 최대 이용 같은 구태의연한 것도 있다. 건설업체인 신한 역시 임원들 활동비를 30% 이상 줄이고 영업비, 접대비 등을 모두 없애는 등 특단의 조치로 마른 수건을 짜고 있다. 즉시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지속적인 원가절감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수준의 원가절감이라면 한국 기업의 갈 길은 멀다. 크라운제과는 작업교대 때 에너지 손실과 리드타임(생산준비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라인에서 맞교대로 방식을 바꿨다. 크라운의 이창학 기획부장은 “기존에는 앞 조가 라인에서 나오고, 뒷조가 라인으로 투입되는 시간이 30~40분 걸렸는데 이를 개선해 에너지 절감은 물론 생산시간도 단축했다”고 말했다. 동작을 바꿔 원가를 절감하는 건 도요타의 가이젠(改善)에 해당한다. 크라운은 또 원재료 거래선을 해외 직거래로 바꾸고, 급등한 곡물의 대체재도 개발하고 있다. 오리온제과도 아직까지는 영업차량 동선 개선으로 유류비를 절감하는 등 소극적 대응밖에 못하고 있다. 사실 원재료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원재료 원가절감에 대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글로벌 기업에서는 그런 노력이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포스코는 저품위 철광석을 사용하고도 동일한 품질의 철강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 불용설비 재활용 등 극한적인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지난해 총 8287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다. 올해도 7506억원의 원가를 절감할 계획이다. 기술혁신에 의한 원가절감이야말로 포스코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다. LG전자의 싱글스캔 기술도 원재료 사용을 줄인 대표적인 기술혁신에 의해 원가를 절감한 경우다. 원래 PDP TV는 화면 아래위에서 스캐너가 영상을 주사해 화면을 만든다. 하지만 LG전자는 지난해 풀 HD TV에 하나의 스캐너로 영상을 주사하는 싱글스캔 기술을 개발해 스캐너 원가의 30% 이상을 줄였다. 이 두 사례는 원가가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임을 말해준다.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업체들은 고유가를 넘어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원료 관리팀을 만들고 최적의 경제항로를 구축하고 있다. 또 기내 탑재물 경량화, 기내 용수 감량 등으로 비행기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항공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와 항공유를 공동구매해 1년에 10억원 이상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비행기 내 카트 구조를 변형해 무게를 한 개당 7㎏씩 줄이는 등 ‘도요타식 0.1초 줄이기 운동’까지 하고 있다. 지상에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대한통운은 짐칸을 상대적으로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제작하고, 트럭 중간에 타이어 하나를 더 설치해 적재량을 19t에서 22.5t으로 늘려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또 전 차량에 ‘아이들링 컨트롤러’를 설치해 일정시간 차가 정차해 있으면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게 했다. 롯데건설은 VE(Value Engineering)활동을 통해 신평면을 개발하고 신공법을 적용해 ‘공기단축’ ‘원가절감’ 효과는 물론 ‘품질향상’ ‘업무효율 증대’까지 거두고 있다. 작년 한 해만 124건의 VE활동을 통해 105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또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신기술, 신공법 개발 등 원가절감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바닥재, 창호 등 건축자재 생산업체인 한화L&C는 재료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PVC 수지를 폐기물로부터 생산되는 재생원료로 대체해 원가절감뿐 아니라 환경보호까지 이루고 있다. 수년에 걸친 노력으로 품질 저하 없이 상당 부분에서 재료 대체에 성공해 지금은 PVC 장판류의 경우 투입량 기준으로 50%까지 폐장판류를 재활용한 재생원료로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용 다이캐스팅 업체인 코다코는 생산계획 향상으로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재료가 들어가는 주물공정을 재료별로 일괄 생산함으로써 재료의 낭비도 줄이고, 원재료 효율성도 높였다. 문제는 시장의 요구와 생산량을 맞추는 것이다. 회사 측은 “주문생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재료별로 생산을 하면 낭비가 없고, 원재료를 사용하는 효율성이 높아진다. 일반 기업에서도 예측이 가능하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저가 남성복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STCO는 중국 생산의 효율화를 통해 낭비요인을 줄였다. 보통 공장당 1만~5만 벌로 분류해 7~8개 공장에 나눠주는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한 공장에 50만~100만 벌의 생산량을 줘서 원가를 낮췄다. 김흥수 사장은 “중국산 중저가 옷은 디자인 요소보다 가격 요소가 더 크고, 한 공장에 많은 물량을 줘야 디자이너까지 배치해 품질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역발상을 통해 원가를 낮춘 방식이다. 원가절감은 제조업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권 역시 인건비가 많이 나가는 창구업무 대신 자동화기기나 인터넷 뱅킹으로 고객을 유도하고 있다. 겉으론 고객편의를 내세우지만 사실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이다. 금융업의 가장 큰 원재료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의 노력에도 아직 한국의 원가절감은 갈 길이 멀다. 곳곳에 재고가 쌓여있고, 공장에는 여전히 필요 없는 공간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공장혁신과 원가절감 전문가인 백대균 월드컨설팅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낭비를 낭비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눈을 부릅뜨고 보면 낭비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1950년대 위기에 빠진 도요타가 GM을 따라잡을 때 처음 내세웠던 목표인 생산성 8배 향상은 그 당시 눈으로 보면 허황된 것이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TPS를 통해 이를 달성했고, 결국 세계 자동차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미국의 델 역시 PC가격의 혁명을 주도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탄생했다. 원가절감을 단순히 경비절감 차원에서 본다면 아직 멀었다. 원가는 결국 기업 경쟁력과 혁신활동의 결과인 셈이다. 원가를 장악하면 최고가 된다는 증거들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7가지 낭비론

1.낭비는 면적에 비례한다 → 공장을 크게 만들지 말고, 동선을 최소화하라

2.재고는 놓을 자리가 있을 때 생긴다 → 창고를 크게 만들면 재고가 는다

3.원가는 고정돼 있지 않다 →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줄일 수 있다

4.팔릴 물건만 만들어라 → 많이 만든다고 많이 팔리는 게 아니다

5.하루 일과 중 일하는 시간은 5%, 나머지는 낭비다 → 기계를 보고 있다고 일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6.품질관리를 없애면 불량률이 줄어든다 → QC팀이 있으면 작업자들이 느슨해진다

7.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낭비 제거다 →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돈 버는 일인지 점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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