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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휩쓰는 교통사고 공포

아프리카 휩쓰는 교통사고 공포

미스카노 메셀레(52)는 일개 트럭기사일 뿐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사람들 눈엔 밤마다 도로를 질주하는 그의 4.5t 흰색 이스즈 트럭 같은 차량은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오죽했으면 그런 트럭에 “알카에다”란 별명까지 붙었을까. 메셀레도 최근 트럭을 몰다가 20대 청년을 치어 죽였다. 그는 엔진 위쪽의 페인트 칠이 벗겨진 곳을 가리켰다. 한 달 전쯤 혼잡하기로 악명 높은 국도(트럭, 보행인, 당나귀 수레, 가축이 뒤엉켜 다닌다)를 따라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던 길이었다. 청년의 부모는 메셀레를 고소했다. 이런 일은 에티오피아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 나라는 교통사고 치사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차량 1만 대당 190명이 사망한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15~44세 젊은이의 사망원인을 따져보면 교통사고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에이즈뿐이다. 어린이들은 교통사고가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아프리카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은 미국인보다 100배나 높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전 세계의 4%에 불과하지만 교통사고 사상자는 11%가 넘는다. 그나마 어림잡은 수치다. WHO는 아프리카의 교통사고 사상자는 실제 건수의 12분의 1만 보고된다고 추산한다. 인구와 자동차 증가세를 감안하면 2020년엔 사망자가 80%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아프리카에서 교통사고 사망은 전염병처럼 흔하다. 여느 질병처럼 교통사고도 충분한 노력과 돈, 교육을 통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7년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의 국제적 지원 규모는 47억 달러에 달했지만 도로안전 개선작업엔 고작 1억 달러가 쓰였다. 뒤늦게 세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엔은 최근 도로안전을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과 같은 정도의 보건 위기”로 규정하고 내년 러시아에서 국제 정상회담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통사고 사망에 둔감한 원인을 딱히 한 가지로 꼬집기는 어렵다. 메셀레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인들이 트럭 기사들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운전하려고 암페타민과 효능이 비슷한 카트라는 식물을 씹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효가 떨어질 때쯤엔 졸음이 밀려온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않는다. “한 친구는 한숨도 자지 않고 닷새 동안 내리 달렸다”고 메셀레가 카트로 잠을 쫓은 동료 기사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도랑으로 돌진해 죽었다.” 또 다른 문제는 아프리카의 차량이 낡고 대부분 에어백이 없으며 기사들이 과로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다수 택시는 1980년대 모델이며 아프리카 사람이 많이 이용하는 미니버스는 15년 이상의 노후 기종으로 수십만㎞를 달렸다. 교통경찰 다니엘 케베다 경사는 이름도 걸맞게 혼잡광장으로 불리는 아디스아바바의 교차로에서 근무한다. 에티오피아의 교통법규상 트럭 기사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지 않는 점이 큰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기사가 잠을 자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교육 문제도 있다. 케베다는 안전벨트를 매는 운전자는 자신이 본 바로는 100명 중 4명밖에 안 된다고 추산했다. 보행자는 달려오는 차가 정지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예 모르거나 전혀 신경을 안 쓴다.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으며 사고에 대한 판단력조차 없다. “교통사고로 입는 부상은 대부분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데도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주술사 탓이라거나 도로의 ‘검은 점’ 탓으로 돌린다”고 미국인 제프리 위트가 말했다. 그는 가나에서 일하는 도로안전 비정부기구 아멘드의 창립자다. 교통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데는 부패도 일조한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오랫동안 택시운전을 해오는 아부 무네는 서툰 운전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뇌물만 주면 면허시험을 치지 않고도 면허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네는 지난해 9월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에 추돌을 당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그냥 보냈다. “벌금도 없다. 음주운전법은 집행되지 않는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애쓰는 나라도 있다. 르완다는 세계은행의 1996년 보고서에서 운전하기에 가장 위험한 나라 명단에 올랐다. 그러자 정부는 일련의 규정을 신설했다. 속도제한을 시속 60㎞에서 20㎞로 낮췄고 오토바이 탑승자는 헬멧을 착용토록 했다. 또 면허시험을 더욱 까다롭게 했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운전자에겐 막대한 벌금을 매겼다. 공무원 월급의 20%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정부는 또 뇌물을 받고 벌금을 부과하지 않은 부패 경찰관을 100명 가까이 해고하는 등 의지를 표명했다. 이런 엄격한 단속에 대해 이웃나라에서 온 트럭 기사들의 불만이 들끓었지만 그것은 좋은 조짐이었다. 정부가 새 교통법을 시행한 뒤로 교통사고 사망 건수가 30% 이상 줄었다. 다른 나라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선진공업국들의 모임인 G8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도로 개발용으로 12억 달러를 책정했다. 그러나 안전에 쓰는 비용은 고작 0.5%라고 ‘도로안전캠페인’의 대변인 에이비 실버먼이 말했다. 이 돈으로 좋은 도로를 건설한다 해도 운전기사와 보행자 교육을 게을리하거나 여타 기본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결코 줄일 길이 없다.


With JASON MCLURE in Addis Ab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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