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이해관계자를 찾아라
숨은 이해관계자를 찾아라
협상은 그 일의 직접적인 관계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일이다. 협상 테이블에 모인 참가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이해관계자들이 협상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부와 관련된 협상에는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다. 이해관계자는 협상의 중요 변수다. 협상 당사자 간에 이익이 생기더라도 뒤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손해가 될 경우 협상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에선 가난한 나라를 위한 긴급 식량 원조를 크게 늘리는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의 핵심은 예산 변동 없이 원조를 늘리는 방안이었다. 물론 많은 정치인들과 사회 사업가들이 법안을 열렬히 지지했다. 유독 한 단체가 끝까지 반대했다. 놀랍게도 이곳은 가난한 나라에 식량 원조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였다. 그 단체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 이유는 그 단체와 관계 있는 다른 이해관계자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그 시민단체는 여러 해 동안 식량 원조를 늘리기 위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 왔다. 그때마다 미국의 농민들이 발 벗고 시민단체를 지지했다. 왜 농민들은 시민단체를 도왔을까. 미국 정부가 식량 지원을 늘리기 위해선 농민들에게 더 많은 식량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2005년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미국 의회는 예산 확보가 힘들어지자 조금 더 싼 값에 식량을 구매해야 했다. 이때 의회가 찾은 방법은 미국 농산물보다 저렴한 개발도상국의 식량을 사들이는 것. 이 법안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농부도 돕고, 다른 가난한 나라에 대한 식량 원조도 늘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시민단체도 이런 장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시민단체는 이처럼 합리적 방안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단체는 오랜 정치적 파트너인 미국 농민들을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합리적 방안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식량 원조 로비 활동에서 농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시민단체는 숨어 있는 이해관계자인 농민들 때문에 누가 봐도 불합리한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협상에선 숨어 있는 이해관계자를 잘 찾아야 한다. 정부가 참여한 협상에는 관련부처와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외환위기 당시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이다. 협상 과정에서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협상이 이뤄지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대우자동차는 긴 협상을 거친 후 2002년 4월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20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 협상은 오히려 손실이 더 컸다. 2년 전에 우선협상자였던 포드가 제시했던 대우차 인수희망가격은 7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기업을 상대로 진행하는 협상에선 관련부서가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다. 최근 모 보험회사가 수년간 보험 왕을 차지한 최고의 영업사원을 경쟁회사에 뺏겼다. 종업원의 임금인상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회사의 영업담당 임원이라면 이 최고의 영업사원의 임금을 높여주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당연히‘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회사는 인상 요구를 거절했을까? 이 경우에는 다른 제약사항이 있었다. 바로 인사 부서가 직원들 간의 위화감을 막기 위해 임금 격차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만들었고, 규정의 준수를 강력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이 있는 지역은 기업 활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덕분에 일자리 창출도 늘고 세금도 많이 거둬들인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편의를 제공하고 감세 혜택을 주는 등 기업 유치에 노력한다. 울산의 현대, 수원의 삼성, 파주의 LG 등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은 의사결정에 있어 지역 주민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만일 인건비가 비싸다고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당장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1998년 미국 은행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 발생했다. 퍼스트유니온뱅크가 코어스테이츠 파이낸셜을 16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실사가 끝나고 퍼스트유니온은 가격에 대한 코어스테이츠의 요구를 거의 들어줬다. 그런데도 코어스테이츠의 CEO인 테리 라슨은 최종안 사인을 망설였다. 일주일이 다 되도록 결정을 내리지 않자, 퍼스트유니온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 이유를 알아봤다. 문제는 가격과 관련이 없었다. 라슨은 자신과 코어스테이츠 파이낸셜이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델라웨어 이들 세 주에 약속한 자선 활동이 인수 이후엔 중단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것이다. 이는 지역사회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라슨이 지역사회를 팔아 넘겼다는 비난을 살 수도 있는 문제였다. 퍼스트유니온 측은 즉시 1억 달러 규모의 지역사회재단을 별도로 설립하겠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이 재단은 세 주의 지역사회를 위해 사회공헌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운영권은 라슨에게 맡겼다. 재단 설립이 추진되자 라슨은 앞장 서서 이사회 설득에 나섰고, 거래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는 뒤에 숨어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찾아 그들을 위한 제안을 한다면 상대방은 자신이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고 느낄 것이다. 바로 이런 노력이 상대방이 승리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그것도 가능하면 상대방이 만든 것처럼 느끼도록 유도하라. 승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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